1890년대의 마을.
초가지붕이 인상적이다.
1890년대의 아녀자들.
분을 바른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미백 화장품들은 납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많은 기생과 아녀자들이 납 중독에 걸려 사망했다.
저 분들도 납 중독에 걸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
1900년대로 추정되는 사진.
1900년대에 찍힌 소년들의 사진이다.
저번에 왜 댕기머리 안하고 찍었냐고 물어보는 일게이가 있었는데 단발령이 1895년에 내려졌고 이건 1900년대 사진이니 댕기머리인게 오히려 이상할거야.
사진에 찍힌 소년들은 이미 사망했겠지. 그 들의 인생은 우리가 살아갈 인생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만날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게 노무노무 많은데......
1900년대의 짚신장수의 사진이다.
이 아저씨가 쓰고있는 탕건은 이미 1920년대에 희귀해져 버렸다....
그러므로 이 사진은 상당한 역사적 값어치가 있다고 하겠다.
저 사진에 나온건 옥수수도, 집신도 아니라 '짚신'이다.
저번에 올릴땐 뭔지 몰랐는데 누가 옥수수라고 그러는거 보고 다시 찾아봤다. 옥수수 아니다~
1904년 부산. 호주 사진기사가 찍음.
부산 1904년.
호주의 사진기사가 찍음.
1910년대의 서울시내 한복판.
전봇대에 앉아있는 사내가 양복을 입고 있다.
점차 서구화 되어가고 있다.
1920년대의 모내기.
1920년대의 야간학교다.
수업하고 있는 사람은 무어박사라는 사람이다.
1920년대에는 전세계적으로 파나마 모자가 유행이었는데 조선인들도 점차 세계적인 유행에 눈뜨고 있다.
맨 왼쪽 아저씨가 투블럭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1920년대. 조선호텔.
1920년대의 어느 교회
1920년대 불상 앞에서.
양복입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 들이다.
1930년대 광화문 앞.
1930년대의 서울 전경.
1930년대로 추정되는 어느 주택가.
조선 전역의 주택가는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1932년 첨성대로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
1934년 진주.
놀랍게도1940년대에 찍힌 사진이다.
가운데의 어린이는 아까 1900년대 어린이와 비교했을때 머리가 매우 짧은데, 1940년대 당시에 공립학교 학생들의 대체적인 머리스타일이었다.
일본 군대식 교육과 전시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때는 이상할게 없다.
1949년 서울 번화가.
1949년 서울 번화가.
1949년 서울시내의 한 장터.
뒤에 보이는 산에 나무가 한그루도 없는게 인상적이다.
1949년 서울 시내.
맨 오른쪽 조선상호은행 건물 간판에 영어로 "유엔 이사회의 방문을 환영 합니다" 라고 쓰여 있다.
그 왼쪽 간판에는 한문으로 "조선 토기 상회" 라고 쓰여 있고 바로 밑에 한글로도 씌여있다.
1950년대 중반의 수원화성 사진이다.
앞에 현수막에 "성심리발관" 이라고 씌여있다.
1952년 6 25 당시의 수원화성
1952년에 찍힌 아이들 모습. 수원화성 근처.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인천.
1950년대의 흔한 마을 풍경.
아까 서울시내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1953년에 찍힌 사진.
수원화성 근처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
1952년 화서문
놀랍게도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찍힌걸로 알려져 있다.
옆에 서있는 사람 구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후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노인들은 대부분 두루마기에 갓 쓰고 다녔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장차림을,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 일어난 등산복 센세이션으로 지금의 노인들은 모두 등산복을 입고 다닌다. 아는분 말마따나 "(등산복은) 머리털나고 입어본 옷중에서 최고로 편한옷"이란다.
1950년대 후반. 버스터미널.
1950년대 후반의 우시장.
각 집안의 전 재산을 끌고 나온 셈이다. 당시는 '소 팔아서 자식 서울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의 몸값이 비쌌다.
새마을 운동 이전이라 기와지붕이 아직도 많고 옷도 개화기 차림과 큰 차이가 없다.
1958년. 전후.
1950년대 후반의 아녀자. 1959년 추정
1951년 부산
1951년 부산.
1952년 전쟁 당시의 어느 이름모를 군인들
1952년 수원화성
1952년 추정.
1954년 전후에 방치된 창룡문
1958년의 교통사고. 경기도로 추정
1960년대 달구지
1960년대 중반의 서울시내
1960년대의 한강 철교
1960년대 서울시내
1966년의 연말. 서울시내
왼쪽 위부터 "연말연시"
"300원 매상마다 경품?일매증정"
"경품 부 대특매"
"1등 산전 코로나"
"2등 기아 오오토바이"
"3등 금성 냉장고"
"4등 벽시계"
라고 씌여있다.
1966년 여름.
하수시설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 비만 왔다하면 홍수가 나던 시절이었다.
당시 학교 운동장에는 비만 오면 물이 찼는데 거기에 학생들이 옷을 벗고 수영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길거리의 위생상태는 별로 좋지 못해서 배변과 오물이 떠다녔다고 한다.
1970년대 대구의 백화점.
1970년대초의 동대문
1970년대초반에 찍힌 사진이다.
아직 시골지역은 많이 낙후되어 있다.
1970년대 신촌. 1977년 추정.
1970년대 창덕궁 돈화문
1970년대 초 부산
1970년대 초반 종호 3가 일대
1970년대 초반 종로 2가
1970년대 파고다 공원........
1970년대 후반 고등학교의 교련시간 제식훈련
1980년 팡주의 폭동을 진압하는 계엄군
1980년대 초 명절 풍경. 경부고속도로에 대한민국 차를 전부세워도 채우지 못할거란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중이다.
1982년 프로야구단 입장. 1982년은 대한민국에 프로야구 리그가 처음으로 생긴 해이다.
1984년 서웋 2호선 개통 축하식
1985년의 명동거리
1986년 군산의 데모. 80년대 후반은 데모의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1986년 미국에 처음으로 상륙한 현대자동차 포니악셀 승용차.
1988년 부평대로. 88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좆불집회 누구들하고는 사뭇 대조적이다.
1988년 종합운동장. 88올림픽 직전.
1990년 63빌딩 위에서 찍은 사진
1990년대의 명절.
1990년 부산항 부근
1990년대 분당
1992년 미화당 백화점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
1995년의 게임매장
1996년 신촌
1998년.... 경제만 암흑기가 아니었다..... ㅎㄷㄷ
2001년의 피씨방. 저때 스타하던 초딩들 지금은 뭐하노? ㅋㅋㅋㅋㅋㅋ
2008년 숭례문 전소 당시.... 저때 불질렀던 미친새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 씨발새끼 죽여버리고 싶네
2016년 서울 전경.
3줄요약
1. 구한말때 존나 못살고 똥송함
2. 1950년대까지 갓쓰고 도포입은 씹선비들 천지에 달구지 끌고다님
3. 60~80년대부터 산업화 들어가고 경제성장 존나 빨라서 그때 살던 사람들 존나 어리둥절 할듯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