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풍자, 재치 있게 비판하자
1. 세태풍자
풍자는 사회비판을 목적으로 합니다. 사회적 의도가 있는 문학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풍자는 독자에게 웃음이나 통쾌함을 주는 만큼 대상에게는 상처를 줍니다. 풍자는 인간의 우행과 위선, 사회의 악덕과 부조리를 폭로하는 데 주력합니다. 그러나 풍자의 궁극적 목적은 부정적 대상과 가치를 개선하고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존슨은 풍자를 악이나 어리석음을 문책하는 시라고 하였고 드라이든은 풍자의 진정한 목적은 악의 교정이라고 하였습니다. 풍자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모자라는 사람들 또는 제도나 철학을 우습게 보이도록 제시하여 인류를 교훈하려고 합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 전문
오규원은 풍자적 시점의 해석적 진술은 시적 논평이라고 하였습니다. 풍자는 대상에 대한 탐구보다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자적 형태의 진술은 보다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을 주로 합니다. 포프는 풍자가를 진리의 방패라고 하였습니다.(오규원, 190쪽 참조)
이 작품에 나오는 사실적 예화들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나 이상에 반하는 일들입니다. 시 한 줄은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는 사람이 돈의 힘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사실이나, 그런 사람을 위해 유명한 문인이 묘비명을 썼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묘비명은 사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속어를 동반한 성적 표현은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닙니다. 1950년 전영경의 시에서 두드러졌던 비속어의 시적 수용은 1960년대 김수영, 1970년대 김지하로 이어지면서 우리 시사에 흐름을 형성합니다. 황지우는 신문기사와 낙서에서 소재를 채용하여 비속한 일상을 풍자합니다. 수사법상 인유의 방법입니다.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 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스
러워.......
어느 날 나는 친구 집에 놀
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랑이
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
그래서 나는……………
-황지우,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KBS 2TV.산유화(하오 9시 45분)」 전문
기존 시 형식을 파괴한 낯설게 하기와 비속한 내용의 드러냄이 독자에게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습적이고 저속한 일상성을 드러내기 위해 1연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2연은 공중화장실의 낙서를 소재로 채용하였습니다. 텔레비전 연속극과 낙서도 시가 될 수 있다는 데서 의외성과 재미를 줍니다. 특히 2연은 저급하고 비속한 낙서를 시에 수용하면서 창작자와 독자의 공유된 경험으로 재미를 더하지요.
스위프트는 풍자는 교정 가능한 인간의 악덕과 우둔을 교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지 장애나 매부리코 등 신체적 약점을 비웃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풍자는 골계미의 한 변형인 만큼 숭고미를 통한 외경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웃게 만들어 희극적 반응을 자아내도록 합니다. 풍자는 진지성과 가장 거리가 먼 문학형태이며 기지, 조롱, 아이러니, 야유, 냉소, 패러디 등 여러 기교를 가지며 이런 기교들 자체가 풍자의 어조가 됩니다.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은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하지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 보시오)
밤낮 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전문
패러디(parody)도 풍자의 대표적 기교이며, 원래의 작품을 모방하는 형식에서 성립되는 기교입니다. 패러디는 원 작품의 모순이나 결합을 드러내는 목적에서 이루어지지만 대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이 작품은 목적 자체가 시사하고 있듯이 기독교회 주기도문의 진지하고 간절한 어조를 해학적으로 변용시켜 신도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인 인간현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믿습니다”라는 당시 대통령이 했던 유행어와 말더듬이 형태의 반복어를 구사한 것도 풍자적 효과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밤낮 없이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시여”라는 구절도 풍자적입니다. 에이브럼스에 의하면 풍자는 어떤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그것에 대하여 재미있어 하는 태도나 경멸이나 분노나 조소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 대상을 깎아 내리는 문학상의 기교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독실한 신자였던 나를
도덕교과서라고 부른다. 그러나
회사 접대 술을 마실 때면 항상
여자를 옆에 앉히는 버릇을 가졌던 나는,
생일날 친구네 식구들을 초청하여
술을 마시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 아내의 사타구니에 그만
손을 넣는 바람에 대판 싸우고
뜻하지 않게 친구까지 잃었다.
“애새끼들만 아니면 네놈하고 안 살아!”
아내는 울고불고하다가
지갑을 압수하고 신용카드란 카드는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다.
“썅놈! 신용 지랄하네!
그놈의 물건도 그냥 잘라버릴쳐!!”
- 공광규, 「우리 집에서 생긴 일」 전문
위 시는 풍자적 음성이 일인칭 화자인 ‘나’를 솔직하게 말하는 직접적 풍자입니다. 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화자는 자기풍자가 분명하지만 내용은 타자 풍자입니다. 타인의 악덕과 약점을 조소하기 위해 자신을 비판하는 기법에서 자연스럽게 재미를 드러냅니다. 창작자는 화자를 일인칭화하여 종교에서 도덕을 강조하는 독실한 신자이면서도 도덕불감증에 걸린 ‘나’를 솔직하게 고백해 버립니다.
상업자본주의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입니다. 창작자의 생활이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위선적 종교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생계를 위한 회사원으로서 화자의 습관화된 부도덕성을 고백하여, 불특정 독자에게 한바탕 웃음과 도덕적 우월성을 갖게 하여 재미를 주려는 것입니다. 독자는 시를 읽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 불감증에 걸린 관성적 삶을 되돌아 볼 것입니다.
2024. 3. 2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