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7.
감자 택배
수확한 감자를 작은 상자에 나눠 담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딸에게 3.3kg, 늘 자랑스러운 효자 아들에게 2.8kg, 큰처남에게는 장인어른까지 생각해서 6.3kg, 포항과 울산 동생에게도 4.4kg씩 담았다. 고심하다가 누님에게는 조카 내외와 나누라고 5.5kg을 담고 각각을 포장했다.
내 누님은 세세한 감정조차 숨김이 없다. 언어가 간단하고 직설적이다. 상대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동조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이면 같이 염려하고 함께 아파한다. 우리가 아프면 누나 마음도 생채기가 난다. 맏이라서 그런 것 같다. 축하할 일에는 팔을 걷고 나서서 서너 배의 즐거움으로 뻥튀기해 버리는 묘한 능력도 있다. 그만큼 심성이 연하고 착하다. 갓 캐낸 껍질이 연한 감자 본연의 순수함이 가득한 고운 여인이다.
바쁜 아침이다. 감자 수확을 자랑하려고 누님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낼모레 양일간 휴무여서 외손자 보러 창원에 간다고 한다. 오늘 보낼 택배 상자를 누님은 3일 후에나 받겠구나 싶다. 토실토실한 타박 감자를 조카랑 같이 맛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하루만 일찍 서둘렀으면 누님이랑 조카네 식구 셋까지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마음에 걸린다.
“뭐! 내가 배달하면 되지” 서둘러야 한다. 대구 누나 집으로 배달하고 구례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대충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된다. 늦어도 세 시 반에는 돌아와서 나머지 감자 상자를 우체국 택배에 맡겨야만 한다. 마트에서 사면 삼사천 원 정도의 감자다. 이제 이 감자는 팔만 원짜리다. 인건비를 뺀 고속도로 통행료와 유류값만 그 정도다. 내 누님은 비싼 감자를 드실 운명인가 보다.
황당하여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퇴근한 누님이 택배를 잘 받았다며 고맙다고 한다. “혹, 택배 도착했다는 문자 왔어요?”라고 물으니 모른다며 의심하지도 않는다. 상자에 붙어 있어야 할 주소 스티커조차도 확인하지 않았단 말인가. 감자 택배의 진실을 전한다. 그제야 놀랍고 미안함에 되레 화를 낸다. 어리석은 행동을 나무란다. “이노무 쌔끼! 돈이 썩어 빠졌다” 목청 높여 내지르는 꾸중과 욕이 싫지 않다. 실없는 웃음을 던지며 “누나는 어째 그리도 의심이 없노”며 신중치 못함을 탓했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진실과 허상은 가깝다. 이쪽 끝과 저편의 끝은 같다고 한다. 그렇다. 미리 통화를 했으니, 모든 허상과 진실이 헷갈렸을 것이다. 현관 입구에 있어야 할 택배가 주방 싱크대에 놓인 것도 의심스러웠을 텐데. 누님은 동생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모양이다. “누나! 나도 누나 사랑합니다”
첫댓글 ㅋㅋ 지대로다 언니을 지대로 안다
ㅋㅋㅋ 누나는 이 글 안 읽겠제? 바빠서 읽지도 않을끼니까 괜찮을란가?
내가 보여 줫지
잉.... 반칙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