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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이여, 웅비하라
내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이제컷 자기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고,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때만이 내일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가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내 정치 현상은 이것이 나라가 굴러가는 것인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도 모르고 진흙 속에서 허우적 대는 꼴이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쪽으로 가던지 좋은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그 방향성를 옳게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도, 권력을 쥐고 이 세상이 좌지우지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일 수도, 천문과 지리를 통한 道人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깨춤치는 노사모들과 그 이하의 쫄개들도 몇 년이 지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오히려 제갈대중이나 노무현 이런 인간 같지도 않은 개백정같은 인간들이 설치게 된 것은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자기의 한풀이를 하는 인간들도 한 번 날개짓을 해보란 시간일뿐입니다.
이 시간이 자기들의 시간같지만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役事일뿐입니다.
우리 한민족이 전세계 민족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끔 하는고통과 시련일뿐입니다.
애국가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라고 했듯이 우리는 동방문명 아니 현세계의 문명을 창도하시고, 우리의 직계조인 신농씨 하나님(청동기 명문- 금문(4500년전의 문자)에서 ㅣ 즉 하나로 표현하고 있음)이 우리를 보우하고 계십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좌익이고 보수고 이런 관념이 모두 서구적 인식방법에서 나왔고, 이런 관념을 벌써 서양에선 폐기된 인식 방법이고, 그네들은 동양으로 눈을 돌려 동양적인 사고에서 인류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려고 하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 21세기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페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미 한물간 20세기의 사건과 사상들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한민족이 웅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웅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모습을 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이미 잘 못 들어선 길로 계속 걷다보면 거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더욱 더 몽매해 질 뿐입니다.
그럴때면 다시 원자리의 자취를 돌아다보며, 다시금 처음부터 우리를 봐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이 한반도에서가 아니라 현중국의 곡부(아사달)에서 부터 우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인류의 4대종교가 흘러나오고 현생인류의 신화가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중국대륙을 경영해야한다는 생각(mlnd)를 가지고, 준비를 해야될 것입니다. 漢나라의 유방과 楚의 항우는 무참히도 중국대륙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제의 후손들에게 처절한 살륙을 감행했습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진시황제의 후손들과 중국통일에 같이 동참했던 사람들이 대륙의 恨을 품고 이 한반도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삼국사기에 秦之亡人들이 이곳으로 왔다고 분명히 적혀있고, 문무대왕비문에는 바로 김씨나 박씨가 진시황의 직계 후손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그럼 "천하는 한사람만의 천하가 아니다"고 역설한 진시황제가 韓민족을 있게한 장본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륙에서 여기 한반도로 온것은 이곳에 安住하여 安樂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륙을 경영하기 위하여 잠시 숨을 고르면서 2000년동안 그네들의 外侵을 무단히도 견디어 낸 것입니다.
대륙에서 쫓겨나와 한 파는 한반도로 또 다른 한 파는 일본열도로 가서 현재의 일본을 있게 하였습니다. 일본의 초대천왕은 김해김씨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게 된다면, 일본이 이씨조선을 합병하여 통치를 한 것은 韓민족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조상도 바꿔버린 즉 환부역조한 공자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도 모르고 단지 명분론에 휩싸여 너는 틀리고, 나만 옳다는 식으로 책상머리에서 싸운 이씨조선을 뭉개고 이 땅을 새로운 터전을 만들기 위해 그런 시련을 견디게 한 것입니다.
또 같은 진시황제의 자손인 일본이 19C 조선말 여러 세계 강국에 휩싸인 이씨조선을 고조선의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서 씨가 다른 족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고대왕조인 하,은,주 이전의 朝代名이 바로 고조선이었기 때문에, 그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씨조선이라 말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역사를 비추어볼 때, 과연 지금에 있어서 친일파니 무슨 파니 하는 것이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고, 오히려 우리자신을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들뿐입니다.
10여년동안 청동기명문에 나타난 4500여년전의 문자를 연구하면서 그 문자속에 나타난 우리의 모습은 우리의 본향은 이 조그만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의 가장 알짜배기 땅인 곡부(아사달)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낸 중국본토이며, 저 광활한 아시아 대륙과 미주대륙까지 우리가 문명의 씨를 내렸다는 것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면, 씨를 뿌린 이가 거두어 드리게 되어 있으며, 이제 때가 다 되었습니다. 추수할 때가
이제는 우리가 아시아대륙과 세계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를 말해야 될 것이며, 우리의 아들,딸들이 어떻게 세계를 경영할 것인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웅비하라 한민족이여!란 제목으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여기를 통해서 말을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를 명확히 인식하기 바랍니다.
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중에 우리가 과연 어디서 왔고, 우리가 무엇으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을 했지만 우리 한민족은 天下를 다스릴 뱃심과 기백을 길러야 합니다.
제갈대중이나 놈현과 같이 쫄장부같은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맞이할 우리의 내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생각으로 국정에 임한다면, 교육하는 담당하는 이들이 천문. 지리를 달통하지 못할지라도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런 배경을 깔아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라도 4500년전 즉 고조선문자로 쓰여진 역사적 사실을 본다면, 중국과 일본이. 특히 일본이 남의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히 나타나며,
역사를 4500년 긴 역사속에서 보여진 우리를 봐야하지 단지 한 세대 전 역사의 일들을 자기의 입맛에 맞추어 재단하는 어리석음으로 회칠하고 있는 놈현의 정권은 하루빨리 그만 두어야 합니다.
등소평이 "흰고양이든지, 검은 고양이던지간에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려고 했던 그런 입장과 그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입장에서 국정에 임한다면, 과거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을텐데.
자기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서 우리 민족을 여기까지 부흥시켰고,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신 박정희 전대통령을 그렇게 짓밟아도 되는지.
이런 이야기보다는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의 뿌리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하는 의문점을 우리역사속에 나라를 건국한 시조는 하나같이 알에서 나온 난생설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하는 것부터 봐야할 것입니다.
오제본기 즉 고조선본기에 나오는 은과 진의 직계조인 제전욱을 ○이나 ●로 표시하였는데, 2000년 지나 그 때의 史家들이 이 글자를 보고 望文生義(글자만 보고, 글자 생긴대로 훈독한 것을 이름)하여 알로 말하고, 제비알을 먹고 잉태했다던지, 거인 발자국을 밟고 잉태했다고 적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기록한 당시의 사가들은 고조선사회의 사회제도 특히 혼인제도를 몰랐기 때문에 그런 愚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민족의 뿌리를 유추할 수 있는 중국책 秦史稿를 번역하여 올리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탐독하는 동안 우리 본연의 자신과 앞으로 중국을 경영할 생각(mind)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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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고
기원전 6,7천년전 황하유역의 앙소문화는 모든 씨족이 모여 번영된(발달된)모계씨족사회를 이루었다.
많은 씨족 부락은 동.서 두 방향으로 나뉘어져 비옥하고 풍요로운 황하중류의 황토평원으로 이동하였다.
후에 그들은 마침내 중원지구에 모여, 그 지역부락집단이 하나로 융합하여 역사상 문화시대로 진입하게 된 최초의 華夏族이 되었다.
이 부락 중에서 이후에 商왕조를 건립한 商나라 사람은 최초로 동방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주왕조를 건립한 周人은 최초로 서방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은 원래 우리나라 국경안에 다른 방향의 씨족부락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秦과 殷은 똑같이 우리나라의 동해 근방에서 왔는데, 어떤 증거가 있는가?
1. 殷과 秦은 같은 토템을 숭배하였다.
우선 먼저 관념적인 신앙의 측면에서 고찰에 따르면, 秦人과 殷나라 사람은 똑같이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玄鳥(제비)"를 선조로 섬겼다.
전에도 이미 말하였지만, 진나라의 선조인 여수는 제비알을 삼키고 大業을 낳았는데, 殷人의 조상에 대한 전설도 매우 이와 비슷하다.
예전에 어떤 간적이라는 여인니 있었는데, 세수를 하고 있을 때, 제비가 알을 낳는 것을 보고, "간적이 그것을 삼키고, 잉태하여 契(계)를 낳았다.(<<사기.은본기>>) 이 契가 바로 殷나라의 시조이다.
오랜 옛날 각각의 씨족은 그 시조가 탄생하는 여러가지 신화중에서 유독 秦과 殷의 전설은 서로 이와같이 매우 비슷한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어떤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지어 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 그것은 어떤 문제로 설명되는가?
秦과 殷은 모두 玄鳥(제비)와 관련이 있는 선조(조상) 탄생에 대한 전설을 남기고 있으며,그들이 일찌기 공동의 "토템숭배"를 하였다는 것을 반영하고, 공동으로 숭배한 토템은 바로 제비였다.
秦인과 殷人이 모두 현조 즉 제비를 자기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그들은 제비에 대해서 대단히 숭배하고 공경하여, 조상의 이름자에 까지 제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은나라 사람은 대단히 미신적이었으며, 그들은 占卜으로 길흉화복을 치고 움직였으며, 占卜이 갑골문 중에서도 그런 글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吉燕"(<<은허수계>>전편권6)
"貞惠燕"(同上)
"貞惠吉燕"(同上)
一. 아득히 먼 시대의 전설
인류가 지구상에 3백만년전에 출현한 이래로 역사무대상에서 많고많은 위무와 웅장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멀고 먼 옛날 그 당시의 문자로 기록할 수 없었을 때에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일들은 대부분 유유히 흐르는 세월속에 사라져 버리고 인간의 기억속에 지워져 버렸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하나의 신비스럽고 너무 기이하여 현실과는 동떨어진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1. 모계사회에 관한 전설
우리나라(중국)고대는 일찍이 일종의 신화로 전해내려오는 일이다. 이전에 女脩(수)라고 불리우는 아가씨가 어느날 실을 짜다가 한 마리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주어서 단번에 삼켜버렸는데, 어느 누구도 이 알을 삼키고 나서 여수가 남자아이를 낳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나, 이 남자 아이가 바로 대업이며, 그가 秦나라의 선조가 되었다.
한 아가씨가 제비알을 삼키고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당연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런 류의 신화 전설이 역사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수 없다.
그것은 비록 전혀 황당무계하지만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반드시 현실을 바탕으로 꾸며졌음에 틀림없다.
만약에 우리가 현대적으로 엄밀한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서 신비의 외투를 벗어던져 버리게 되면, 여전히 그속에 비추어진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실의 그림자를 볼 수가 있다.
여수가 제비알을 먹고 대업을 낳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중국 古書에 적지않게 기록되어있다.
이런 류의 고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古史의 주인공이 태어난 이후에는, 모두 어머니는 알고,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우연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바로 고대사회에 시대 상황을 반영한 때가 하나의 모계사회라는 것을 말해주고있다.
엥겔스가 지은 <가정.사유제와 국가의 기원>에서 한가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원시사회의 혼인은 일찌기 群婚이었는데, 모든 군혼가정 중에서 어느 누가 어느 아이의 아버지인가는 확인할 도리가 없었으나 아이의 어머니는 오히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설사 어머니가 공동가정의 모든 자녀를 자기의 자녀라고 불렀었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어머니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신의 친자식과 그 나머지 자식들과는 구별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군혼으로 존재한다면, 그 世系(선조의 계통)는 어머니 계통으로 확정하였으며, 여자쪽으로 계통이 이어져 내려갔다.(마르크스.엥겔스전집)
秦人의 선조는 최초로 전해내려오는 이름은 바로 여수이다.
민속학의 근거해서, 이것은 진의 후손들이 그들 선조의 계통을 유추해서 올라가면, 전설중에서 줄곧 모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제비알을 주어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신화까지 가야한다.
그리하여 진나라 역사와 관계가 있는 제일 첫번째 전설중에서 이런 류의 사실을 긍정할 수가 있다.
진나라 사람은 조국(중국)땅에서 최고로 오래 거주한 사람들중의 하나이며, 그들은 멀고 먼 모계씨족사회말기에 길고긴 역사과정에서 자기가 확인하지 못하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나라와 관계가 되는 전설중에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데; 秦人은 조국(중국)땅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중의 하나이며, 그들은 아득히 멀고 먼 모계씨족사회말기에 오래동안 유유히 흐르는 과정에을 거쳐 자기의 모호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燕"은 "吉"과 "惠"와 똑같은 뜻으로 쓰였으며, 이런 좋은 글자와 연관시켜 占을 치고 제사지냈다는 것은 그 숭배와 공경의 정도를 알수가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조상을 "玄王"으로 칭하였고, "玄王"은 殷의 선조인 契를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