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질 당한 후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응시하는 그리스도
벨라스케스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Loyola, 1491-1556)는
16세기에 들어 시각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관상방법론을 교회에 퍼트렸다.
성 이냐시오는 ‘영신수련’(靈神修鍊)을 통해 그리스도를 잘 알기 위해서,
나아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삶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를 시각적으로 보라고 권고했다.
이 방법론의 기원은 중세 말부터 전해 오는 가톨릭 명상전통이다.
성 이냐시오는 작센의 루돌프가 그리스도 삶의 신비를 묘사한 책인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이를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조금 더 앞서 나온 보나벤투라의 「그리스도의 일생 명상」의
이론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방대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한 글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읽을 때
상상력을 동원해 그 장면들을 내적으로 음미하라고 권한다.
특히 독자가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사건의 이미지를 만들어
그 장면으로 들어가 사건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독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단순히 머리로만 생각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교훈에 대해 생생하게 묵상할 수 있게 된다.
화가들은 복음사가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에 영감을 받아 그 내용을 시각화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듯이 그림들을 읽어나가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할 수 있다.
또 그림 속 장소로 들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으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요한 19,1; 마르 15,16-19)
예수님은 커다란 대리석 기둥에 두 손이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기우러진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
이 작품은 로마 군사들에게 총독관저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한 뒤의 장면으로,
바닥에는 채찍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17세기 스페인 자연주의 바로크의 거장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는
1629년경에 <채찍질 당한 후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응시하는 그리스도>을 그렸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반나체의 몸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벨라스케스는 종교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예수님의 애절한 눈빛에서 무언의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매우 단순하지만,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명암법과 사실주의적 묘사로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화가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여러 대가와 고대 작품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 예수님의 몸을 고전 조각의 기념비적인 분위기로 연출하면서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이 화가는 예수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육체적 고문보다는
그리스도의 인내의 참된 가치와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화면 정중앙에 위치한 예수님은 모진 채찍질을 당한 뒤라 매우 지쳐 보이지만,
‘어떤 사람보다 수려한’(시편 45,3) 아름다운 몸으로 묘사돼 있다.
예수님의 얼굴은 엄숙함과 절제로써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임박한 죽음,
상상할 수도 없는 육체적 피로와 고통을 일으킬 공포를 엄숙한 절제로 극복하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육체적 피로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자신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옆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흰 옷을 입은 소년은
예수님께서 매 맞으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순결한 마음으로 명상에 잠겨 있고,
소년 뒤에 있는 수호천사는 근엄하면서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며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머리에서 작은 광선이 나와 소년에게로 향하고 있다.
예수님을 향한 소년의 간절한 마음은 수난의 참 의미를 관통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