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순 ‧ 권양숙, 이희호 ‘그들’
재작년 사월에 진영 대창초등학교 바로 맞은편, 진영노인대학에 수업을 하러 갔었다. 아무리 신나는 일이지만, 난 정상이 아니라고 고백할밖에. 아내가 아파서 김량장동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니까. 열 시간 넘게 걸리는 거길 왜 기를 쓰고 왕복했을까, 수수께끼라 해 두자.
대창초등학교라면 아는 사람은 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모교다. 서너 해 그 노인학교에 강사로 다녔기 때문에(한 달에 한 번 정도),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를 정말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 다니는 학생들로부터다. 작년엔 대창초등학교 교장실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교장은 자연스레 노무현의 천진난만한 소년 시절 이야기까지 들먹이더라. 나는 일어서면서 그에게 물었다. 손명순이 기증했었던 교문 바로 안쪽 게시판은 왜 안 보이느냐고. 워낙 오래 되어 철거했다는 대답이다.
물론 그 흔적이-하다못해 표지판이라도-어디 남아 있겠지만, 어리둥절할밖에. 하기야 손명순이 김영삼과 결혼하던 무렵의 이런저런 이야기는 노인학교에 가서도 들을 수 있으니,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돌아 나왔다.
진영 대창초등학교와 나는 인연이 있다. 나는 초임 교사 시절, 그러니까 군 입대 전에 가끔씩 거기 가서 이미 고인이 된 친구 K 형을 만나기도 했으니까. 학교에 다닐 무렵만 해도 진영에서 부산으로 기차 통학을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는데, 상당수가 대창초등학교 출신이었다. 지금은 노인학교에 가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 기가 찰 노릇이 아니고 무언가?
그러나 대창초등학교라면 무엇보다 대통령 영부인을 둘이나 배출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일이다. 김영삼의 부인 손명순과 노무현의 부인 권양숙…….아마도 다시는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기 힘들리라. 하기야 전두환 ‧ 노태우는 같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더라만.
김영삼이 사거(死去)했다. 사거(逝去)라 하지 않고, 내가 이렇게 낯선 단어로 고집을 피우는 이유는 하느님 때문이다. ‘선종’이니 ‘소천’ ‧ ‘열반(입적)’, ‧ ‘운명(殞命) 등등.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두룩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로마 가톨릭 교황이 숨을 거두면, ‘선종’ 아닌 ‘서거’라 한다는데 그게 하느님 앞에서 맞는지……. 참으로 아리송하다. 예수님을 두고 우리 가톨릭 신자는 예사롭게(?) '죽음(---죽음을 선포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아니면 ‘죽으심’이라 한다. 아니면 ‘돌아가심(예수님께서 십자에 못 박혀 도라사심을 묵상합시다)’이라 하든지.
그러니 김정일이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거’라는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중국 언론이 오히려 정필을 내보이더라. ‘김영삼 전 대통령 사거’라 제목을 뽑은 것이다. (김영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니 만큼 차라리 ‘소천’이라 할 걸 그랬나?)
다시 두 영부인 이야기. 권양숙과 손명순 중 누가 더 내조를 잘했는지는 모두에게 관심 밖의 일이다. 다만 지금은 국가장 상중이라 손명순의 얼굴이 가끔 보이고 자연스레 ‘그’가 방송에서 부각되는 중이니, 약간 간접 대비가 되긴 한다. 또 한 사람 대창초등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또 다른 영부인 이희호(김대중의 부인)가 김영삼의 빈소를 찾아 문상을 했단다.
이쯤에서 건너뛰자. 이희호는 개신교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손명순도 마찬가지. 권양숙은 모르겠다. 노무현은 세례까지 받았지만, 성당에 다니지 않았고. 김대중은 가톨릭을 믿었다. 글쎄, 김대중이 선종(사거)했을 때 손명순이 문상을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권양숙도 그렇고. 여기서 나는 이희호가 다른 둘보다 약간 결이 다른 삶을 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김대중이 가톨릭 신자라서 편든다고? 그 정도의 비난이라면 차라리 감수하자.
이희호를 치켜세우는 또 다른 이유 하나. 지금 나는 <성경>을 열심히 필사하고 있는데, 오늘은 ‘요한복음’ 11장에 손을 댔다. 여기에다 그대로 옮겨 보자.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후략).
가톨릭에 ‘그녀’란 말이 없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이희호 여사가 언젠가 이걸 꼬집은 것이다. ‘그녀’란 말은 소설가가가 엄청나게 많이 쓰는 걸 그가 안타깝게 생각했단다. 그 ‘그녀’는 일본말 ‘카노조’에서 온 것이니 모름지기 배척해야 할 순위 첫째라 했던가? 우리 작가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마땅한 지적이란 데에 동의할 수밖에.
배꼽을 잡게 하는 에피소드(?). 어느 정치인이 여자 정치인에게 ‘그년…’ 운운한 적이 있다. 비난이 빗발치자, 내놓는 해명이 기가 막힌다. ‘그년’은 ‘그녀는'의 준말이라고. 궁색하기 짝이 없다. 그 정치가는 가톨릭 신자다. 게다가 하필이면 항렬로 쳐서 내 아저씨라나? 소름이 끼쳤다. 나보다도 더 성경을 안 읽어서, 성경에서 그녀’란 말이 없다는 걸 모르는 소치이고말고. 하느님을 모독한 거라곤 할 수 없지만, 뒷맛이 영영 개운치 않다.
손명순/ 권양숙/ 이희호…….‘그녀들은’ 대통령 영부인이었고, 부군은 모두 서거했었다.(특히 앞 둘은 진영 대창초등학교 출신이었다.)? 만약 위와 같이 누가 표현한다면 우셋거리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당연히 이래야만 하느님의 진노(?)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 영부인이었고, 부군은 모두 사거했다. (출신 학교는 중요치 않다.)
내가 모자라는 신앙인이란 걸 너무 잘 안다. 나는 죽으면 그저 별세쯤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착하게 못 살았으니까, 관속에서라도 '선종'했다는 이야기 듣기가 민망하리라.
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