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기도원 중에서 가장 수도원다운 분위기를 간직한 곳이 있다면 ‘광림수도원’일 것이다. 명칭 또한 개신교 시설로는 드물게 ‘수도원’이다. 기실 그 명칭의 의미는 교회사에 나오는 전통적인 ‘수도원’(修道院·Abbey)이 아니고 ‘수도원’(修禱院·Prayer & Meditation Center)이다. 그러나 수도원의 경관이 중세 수도원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만은 사실이다. 수도권에서 1시간 이내에 닿을 만큼 입지 여건도 좋다.
설립자인 광림교회 김선도 원로 목사가 ‘수도원’이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영성훈련센터를 세운 데는 남다른 의도가 있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도하고 집회하기 위한 기도원은 많지만 명상과 ‘영적 휴식’을 함께 취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판단 아래 김 목사는 1988년 ‘광림수도원’을 설립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광림수도원은 여느 기도원과 같은 정규 집회나 자체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에 시설을 개방하고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개별적으로도 언제든지 찾아와 기도와 명상,영적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엄연히 휴식도 사역의 연장이다. 또한 보다 큰 영적 성숙과 도약을 위한 재충전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영적 분위기는 휴식에 익숙해 있지 못하다. 심지어는 휴식 자체를 ‘영적 나태’로 생각하는 편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실천신학 영역에서 ‘휴식훈련’이 강조되고 있을 정도로 휴식은 성도의 영성 회복에 중요한 요건이며 나아가 영성훈련의 한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시 127:2)고 하시지 않았는가.
이처럼 ‘영적 쉼터’ 역할을 자처하는 광림수도원에는 교회나 신학대학 등 국내 주요 기관들의 이용이 활발하다. 매주 금요일이면 유명 목회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기도하며 설교준비를 하기도 한다. 광림교회 역시 자체 제직훈련 및 평신도 영성훈련을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실시한다. 광림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도 마침 광림교회에서 1개 선교구 성도 200여명이 입소해 제직 영성훈련을 받고 있었다.
광림수도원은 2000명이 동시에 집회를 하고 훈련 받을 수 있는 대성전을 비롯,100여개의 개인기도실과 소집회실 숙소 성만찬실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이 중에서도 명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이 ‘명상의 산책로’와 ‘겟세마네 동산’ 등은 이곳을 찾는 성도들을 ‘영적 순례자’로 생각한 배려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광야금식으로부터 십자가 고난과 부활,승천까지 주요 사건에 따라 조형화한 12개의 작은 동산은 그 자체가 기도처이자 명상의 공간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 성막을 짓게 하신 하나님은 외면의 검박한 모습과 함께 내면의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공력과 장식을 갖추도록 명하셨다(출 26∼27장).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는 데는 내면도 중요하지만 외면의 시각적 분위기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모형(Typos)과 상징(Symbol)은 신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외형이 지나치게 강조돼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무시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형식적인 것을 지나치게 중시함으로써 우상숭배의 위험에까지 노출됐지만 개신교회는 이를 지나치게 경시함으로써 신앙의 경건성과 품위를 많이 상실했다. 21세기 개신교회는 성경적인 참된 기독교 문화와 예술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꽃피워야 할 사명을 가졌다. 이런 점에서 광림수도원은 영성 훈련 장소일 뿐 아니라 기독교 문화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또 반가운 것은 광림교회는 경내에 현 시설과는 별도로 그야말로 중세 수도원의 영성을 실감할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을 건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곳은 비교적 넓은 부지에 작은 구릉들이 많아서 태고의 정적과 중세의 영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작은 수도원까지 만든다면 앞으로 개신교 수도원의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 분위기는 너무 들떠 있다. 부흥회는 요란스럽고 영성훈련도 지나치게 역동적이다. 물론 개신교의 특징은 역동성과 적극성에 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움직이는 영적 감화력을 가지려면 내적 고요함과 함께 영적 깊이,그리고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충전할 은밀한 영적 수양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신교의 특성에 걸맞은 수도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과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영적으로 재무장하는 일,그리고 교회를 바로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현재 한국 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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