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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스크랩 ● 세계지도.와, //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스위스 역사..
임광자 추천 0 조회 308 14.08.23 15: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2]항가리, 체코, 유고, 스위스역사:



[1] 오스트리아에서; 독립된, 나라들의 고대현대


 

 (1) 헝가리 역사 [ 지도 ]

 

BC 14년에 헝가리(서부-판노니아)는;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게르만계 부족과, 아시아 종족들이; 거주하였다.  

 

AD 800년경 샤를마뉴
대제에게 정복되었고, 5세기에 유목생활을 하는 마자르족(몽골인의 한부족으로 금발에 미인이 많음)이 유라시아의 스텝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이곳으로 왔다.

 

마자르족
은; 955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였다.

889년 마자르족의 수장인 아르파드(재위 889-907)가 아르파드왕조를 세웠다.
975년 그리스도교가 들어오고, 1000년에 즉위한 게조(저)의 아들이슈트반 1세(재위 997-1038)은; 그리스도교 전파와 국가의 발전을 계속 추진하였다.

 

1241-42년
몽골인의 침략을 받아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대 수난을 겪었다.
자기민족이 세운 왕조 아라파드 왕조(1301-1918년)가 망 할 때까지 헝가리는 단 1차례를 제외하고는,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 마티아스 코르비누스왕(재위 1458-90) 치세에는 중부 유럽 제일의 강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궁정을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개화하였다.

 

1526
년의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투르크에 패한 후 약 2세기에 걸쳐 국토의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1568
년에 지금의 영토는; 3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중요한 서쪽 지역인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으며,

동쪽의 트란실바니아(지금의 루마니아 북서부)는; 1566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자치권을 누렸고,

나머지 지역(중앙 평원)은 투르크의 직접 통치를 받았다.

투르크를 물리친 합스부르크 왕가는; 반란을 가혹하게 진압하였다.
1848년 에서 혁명이 일어나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오스트리아는; 통치권을 다시 주장하다가 국력이 쇠퇴하자 헝가리와 타협하였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설립하였다.
1918년 10월 24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은; 마침내 해체되고 독립하였다.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폴란드, 이탈리아가; 헝가리 영토 일부를 나누어 가졌고,

 

이 영토 되찾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협력하였다가 패하여 소련군이 점령하였다.

1947년 소련은 조약을 핑계로 계속 주둔하였다.

1956년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반정부시위운동이 일어났지만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990년 5월 헝가리민주포럼이 정부를 구성하여 45년 동안의 공산주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2) 체코슬로바키아 역사 [ 지도 ]

 

이 지역에 최초로 정착한
켈트계보이이족의 이름에서,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되었다.

 

슬라브족
이 도착하기 이전부터, 켈트족, 게르만족, 아바르족이 연이어 들어와 모라비아

슬로바키아에도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다.

9세기에는 슬라브족의 일파인 체크인들은; 보헤미아 중부지역에서 세력을 떨쳤고,
그 뒤 모라바 강 근처에 정착한 슬라브을; 모라비아인으로 불렸다.

이웃 지역들과 오랜 분쟁 끝에 모라비아는; 보헤미아합병되었다.

895-1306년 최초의 *보헤미아 왕국은; 프라하에 존속하였다.
1085년에 프르셰미슬 왕조는 많은 부를 축적하여 ‘보헤미아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바츨라프왕(王)이 나타나 신성 로마 제국으로부터 하나의 독립된 왕국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306년 바츨라프 3세가 죽음으로써 프르셰미슬 왕가의 왕권은; *룩셈부르크가(家)로 넘어갔다.

1346년 2대왕 카렐 1세가 왕위에 올라 1355년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카를 4세)가 되었다.
그는; 프라하를 행정중심지로 삼아, 보헤미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15세기에는 체크의 성직자이자 학자인 얀(요한) 후스가 주도한 종교개혁운동이 보헤미아 전역을 휩쓸었는데,

후스가; 체크어를 사용하는 대중에게만 지지를 호소하여,

독일어를 사용하는 로마 가톨릭교도들과 분리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1526카톨릭교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의 왕권을 차지한 후 일어난 후스파의 반란(1618)은; 30년 전쟁도화선이 되었다.

이 전쟁에서 보헤미아인들이 패배하여 가혹한 보복조치를 당하였고 엄중하고 노골적인 통치를 받았다.

1867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성립으로,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 루테니아 지방이 합쳐져, 단일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하였다.

1939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1944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였다.
공산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여, 소련이 지원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정부가 수립되었다.

1968년 당 제1서기가 된 알렉산데르 두프체크가 개혁을 단행하여 '프라하의 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군이 침략하여 저항하는 프라하 시민을; 굴복시켰다.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운동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였다.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굴복하여 12월 반정부 인사였던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공산주의는 막을 내렸다.

1990년 6월에 실시된 자유 총선거에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시민 포럼(forum-집단, 조직, 시장, 집회장의 뜻)이 압승을 거두었다.

1992년 6월 개혁의 과정에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꼈던 슬로바키아에서 민족주의가 일어나 슬로바키아 공화국에서는 좌익 민족주의 성향의 민주 슬로바키아 운동이 승리를 거두어 연방해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1993년 1월 1일 양측 당수는 74년 동안 이어져온 연방을 분리 해체하기로 합의하여,

 

1933년 5월 20일 체크와, 슬로바키아는; 각각 독립국으로서 새로 출발하였다.

체크는; 모라비아 지방과, 보헤미아 지방이 합쳐져 공화국을 이루고 수도는 프라하이다.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지방이 사회주의 공화국 이루고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이다.

슬로바키아에는 타트라스 산맥있는데,

이 산맥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국경을 따라 약 64㎞에 걸쳐 뻗어 있으며, 빙하만년설이 없는 점을 제외하고, 알프스 산맥과 산세가 비슷하고 아름답다.
고지호수와 계곡에 여름과 겨울 스포츠 휴양지 등이 많이 있다.

국경지역에 2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하나는 폴란드의 타트라 국립공원(216㎢)이고,
다른 하나는; 슬로바키아의 하이타트라 국립공원(502㎢)이다.

 


 

 

 *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참조]

룩셈부르크 왕가(Luxemburger)

13세기초 림부르크백작 발레람 4세가 룩셈부르크백작 집안의 상속인 에르메진데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하인리히 2세가 새로운 백작의 집안을 이루었다.

그의 손자인 하인리히 4세가 130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헨리)7세로 즉위하여 15세기까지 거의 이 집안에 의하여 황제가 계승되었다.

하인리히 7세는; 아들 요한(재위 1310-1346)은; 보헤미아 왕가와 결혼시켜 1306년에 프르셰미슬 왕권(보헤미아모라비아)을; 넘겨받았다.

그의 손자 카를 4세는 황제에 선출되어 왕가의 기초를 공고하여 슐레지엔, 라우지츠, 브란덴부르크를 합병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금인칙서를 발포하였다.

 

그의 아들 벤첼이 제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헝가리를 획득하여 동생 지기스문트를 헝가리 왕국의 왕위에 앉혔다가 벤첼은 제후의 반감을 사게 되어 폐위되었다.

 

지기스문트(재위 1411-1437)의 사망으로 왕가는 단절되었고, 제위도 영구히 잃게 되어,

왕가영지는; 사위인 합스부르크의 알브레히트 2세가; 소유하게 되어 룩셈부르크가는; 소멸되었다.

 



룩셈부르크 나라(Luxemburg)
룩셈부르크는; 프랑크왕국의 일부였던 룩셈부르크가; 963년 아르덴백작 지그프리트 때에 독립하였는데,

그 자손이 1060년경 룩셈부르크 백작의 칭호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룩셈부르크 지역은; 로마시대에 벨기에와 같은 종족인 트레베리족(族)이; 거주해 왔다.

5세기초부터 프랑크족이 동방으로부터 침입하여 샬레망(샤를레망)제국(帝國)의 일부가 되었다.

그 제국이 셋으로 나뉘어 질 때에 중부 오버로트링겐에 병합되었다.

963년 아르덴 백작 지그프리트에 의하여 독립, 15세기경까지 계속되었다.

지역은; 합스부르크에서 분리되어, 부르고뉴합스부르크가프랑스네덜란드프로이센이 차례로 지배하였다.

 

1867년 런던조약으로, 프로이센에서 대공국으로서, 중립이 인정되었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점령당하였으며, 소국이라 네덜란드와 손잡고 자립을 꾀하고 있다.

 

 

[2] 스위스(Switzerland)역사 [ 지도 ]
기원전 스위스에는 성질이 사납고 전쟁을 좋아하는 겔트족 일파인 헬베티아족이 정착하여 사냥꾼, 어부, 농부 등과 무장한 전사들이 정착하는 땅이었다.

전쟁을 좋아하는 헬베티아인은 잘 훈련된 로마군대에 패하였고, 겁먹은 그들은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마는; 이곳을 '헬베티아'라 부르고 BC 58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알프스 산맥 통로를 요새화 하였다.

3세기 게르만족이 로마인들을 공격하였고,

5, 6세기에는 게르만족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7세기에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많은 헬베티아인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하였다.

9세기에 프랑크족의 지배가 확고해졌다.

 

10세기에, 회교도와, 마자르족 침략자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

11세기에 현재의 스위스 영토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로서, 가장 많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하였고, 스위스를 괴롭게 하였다.

1273년 스위스 연방의 중심으로 합스부르크를 반대하는 연맹을 형성하였다.
1314년 스위스 연방의 일원이었던 슈비츠 사람들이; 아인지델른 대수도원을 약탈하자 이 지역의 지배권을 주장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1세는 모르가르텐 고개를 거쳐 슈비츠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슈비츠군과, 스위스연방군은; 오스트리아군이 고개에서 빠져 나오기 전에 공격하여
1315년 1,500명을 죽이고 일부는 호수로 몰아넣어 처음으로 스위스는 대승하였다.

이 전투에서, 슈비츠가; 유명해졌기 때문에, 전체 연방은; 슈비츠(독일어로 슈바이츠, 프랑스어로 쉬스, 이탈리아어로 스비체라, 방언은 스비즈라, 영어로 스위철랜드)로 알려지게 되어, 스위스의 국명이; 되었다.

국제적으로는 라틴어 표기법으로 헬베티아(Helvetia)라고 하지만,

약자 표기는 특이하게도 CH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스위스연방(Confederatio Helvetia)' 영문자의 앞머리이다.

1353-1415 스위스 연방은; 루체른, 취리히, 베른, 졸로투른, 바젤과, 아펜첼 등이 참가하였다.

1351년 주도 취리히는; 스위스 연방에 가입한 첫 도시이다.

1386년 합스부르크 인접지역을 침입한 루에른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 3세는 공격하였으나 젬파흐 전투에서 스위스 연방군에 오스트리아는; 참패를 하였으며, 레오폴트는 전사하였다.

1476년 스위스부르고뉴와 2년간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으나,

빼앗는 것보다 지키기가 더 힘든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빼앗은 땅을 15만 굴덴을 받고 프랑스 루이 11세에게 팔았다.

1499년 합스부르크와 7개월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막시밀리안 1세는; 스위스 13주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이 때에 스위스 농민들의 용맹이; 유럽에 전하여져, 용병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스위스용병은; 농토도 없고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선택한 직업으로 전쟁이 없으면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스위스 영주들은 용병을 보내고 돈이나 땅을 대가로 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바티칸시국에는 스위스 용병이; 나가 있다.

1515년 연전연승한 스위스 연맹은; 남의 땅 이탈리아 영토를 넘보다가 프랑스와 전쟁하여 패한 것이 그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이기지만,

탐욕의 전쟁은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대로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기로 한 것과 이 있어야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스위스의 8개의 고봉과 헛간>

16세기부터, 스위스는; 프로테스탄트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고,

 

연방은;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교가 분리되어 주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평지는; 프로테스탄트가, 산지는; 로마 카톨릭이 지배하게 되었다.

30년 전쟁 후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에서 13개 주들은; 신성 로마 황제에게 더 이상 지배받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17세기 스위스는; 중립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는 프랑스 혁명 때까지 계속되었다.

1798년 프랑스는; 스위스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여 헬베티아 공화국을 세웠다.
1803년 나폴레옹은; 스위스 특징을 잘 살린 헌법을 만들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무렵 빈 의회의 참가자들은; 스위스중립을 보장하였다.

1840년대에 루체른, 우리, 슈비츠를 포함해 몇몇 주들은; 독립된 연방의 형성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알리 뒤푸르라는 영웅이 나타나 오스트리아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동맹군을 물리쳐 외세를 몰아내고
스위스는; 통일의 무장중립을 다시 확립하였다.

미국식 헌법을 본받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임무를 분리하는 지방자치제의 헌법을 1848년 개정하여, 수도를 베른으로 하는 새로운 연방국가가; 형성되었다.


1864년 알리 뒤낭는 인류의 양심과 인도주의에 호소하여 만국적십자를 만들어 제네바에 본부를 두었다.


적십자 깃발은; 스위스 국기에 색깔만 붉은 색으로 바꾸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적십자 때문에 중립을 지키는데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당사자간에도 회담장소로 중립국인 스위스가 적당함으로 국제회담장소로 각광 받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로잔에는 올림픽본부, 제네바에는 유엔의 여러 기관 중에 (유럽본부,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 아동기금, 경제위원회, 무역개발회의)와 그리고 국제전기통신연합, 국제기상기구, 국제노동기구, 관세무역일반협정, 세계보건기구 등이 있다.

베른에는 만국우표연합있어 수십 개가 넘는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위치하여 회담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고위직이라 그들이 뿌린 돈만 가지고도 700만 국민이 먹고도 남는 액수라고 한다.

세계에서 스위스 은행에 저축하는 돈과 독재자들이 저축하는 검은 돈이 남아돌아 저축하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관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1920년 국제연맹제네바본부를 설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독일에 함락됨으로 독일이탈리아 동맹의 중간에 둘러싸여 국경전체가 동맹군과 대치하는 불리한 상태가 되었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와 단거리 운송로를 얻기 위하여 스위스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참모들이 스위스 국민의 수만큼 독일의 군인도 잃을 것이라는 충고하였으며

 

한편 스위스는 모든 도로와 터널을 파괴할 것이라며 독일을 협박하여 독일이 공격을 포기하였다.

그래도, 스위스는;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가 동원되었다.

지금도 스위스는 정식군대(직업군인만 있다)는 없지만 잘 조직된 예비군과 민방위가 있다.

그리고 몇 달간 생활하면서 원자탄에도 버틸 수 있는 지하방공호를 만들고도 남는 돈을 투자하여 최신화된 비행기와 무기로 전쟁준비를 항상하여 무장중립을 지키고 있다.

핵무기가 등장으로 구식무기의 무용론이 대두되어 비무장 중립을 국민투표에 붙였으나

부결되어 무장중립을 계속하게 되었다.

1959년 유럽 자유무역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1986년 스위스 국민은; 국가의 중립정책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국제연합(UN)에 가입하자는 의회의 제안을; 국민투표에서, 거부하였다.

 


 

 윌리엄 텔(Wilhelm Tell) 이야기

 

그는 전설 속의 인물로 실존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하여지는 이야기로는

그는 활의 명수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아 명중시킨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농부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통치에 대항하여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고

1307년 11월 오스트리아 총독을 죽였다고 한다.

 

1308년 스위스는; 해방되었고, 그를 해방자로 추앙하고 있다.
이야기는; 스위스 연대기에 전하여지며,

1804년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폰 실러가 쓴 희곡 '빌헬름 텔' 의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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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475.daum.net/_c21_/home?grpid=1Ix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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