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댐(칠성댐)과 산막이옛길 기타-----
교통로:영남이공대학-북대구IC-경부고속도로-구미-중부내륙고속도로-선산휴게소-낙동JC-상주IC-북상주IC-문경세재TG-문경새재터널-연풍IC/TG-괴산군칠성면외사리괴산댐(칠성댐)
* 귀로에 수안보 세계사 및 미륵불, 가능한 경우 문경 하늘재 포함 관광
* 충북 괴산은 명산 군자산 주변에 연하구곡, 쌍곡구곡, 선유구곡, 화양구곡, 괴산댐(칠성댐)과 산막이길 등 명승으로 유명함
* 괴산댐과 산막이옛길-도보 1시간, 돌아오는 길 유람선?
충북 괴산에는 그곳 사람들이 제주 올레길보다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산막이옛길이 있다. 충북 괴산군이 10억 원을 들여 괴산댐의 둘레에 지난해 10월에 조성한 산막이길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다양한 볼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산막이길은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과 산막이마을간에 조성된 산책로다. 산막이 마을 주민들이 다니면서 생겨난 길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것이다. 총 길이 2.5㎞에 폭은 2m 정도. 성인 걸음걸이로 2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산막이길 전체 가운데 출발지점 300m구간에는 황토가 깔렸고, 경사가 급하거나 다소 위험한 구간에는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나무데크가 설치됐다. 나머지 구간은 기존의 흙길을 그대로 보존했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이 이곳을 찾아 산책을 즐기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평일에도 300여 명이 이 길을 걷는다.
산막이길이 관광명소로 주목받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경관 때문이다. 산막이길은 괴산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괴산호를 끼고 돌아 아름다운 수변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산막이길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괴산호와 주변 산의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환상적인 자연과 어우러진 옛길을 최대한 살려 옛 정취와 향수도 느낄 수 있다. 산막이길에는 옛날 이 지역에 있던 한 서당이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야외 학습장으로 이용했던 고인돌 쉼터와 앉은뱅이가 물을 마신 뒤 효험을 보고 걸었다는 앉은뱅이 약수터, 소나무 출렁다리, 산딸기 길, 진달래 동산 등 19곳의 명소도 자리잡고 있다.
군은 산막이길을 문학도 감상할 수 있는 명품산책로로 만들기 위해 비탈면 20곳에 시화대를 설치해 문인협회와 출향문인들의 시와 그림을 전시할 계획이다.
산막이길을 찾은 관광객들 중 걷기가 힘든 사람은 괴산호를 유람선 관광할 수도 있다. 괴산댐에 올려면 괴산댐을 찾아오면 된다. 괴산댐 근처에만 오면 이정표가 있어 찾아오기가 쉽다.
@ 산막이옛길의 명소-고인돌쉼터, 연리지, 소나무동산, 소나무출렁다리, 정사목, 노루샘,연화담, 망세루, 호랑이굴,매바위,여우비 바위굴, 옷벗은미녀참나무,앉은뱅이약수,얼음바람골,호수전망대,괴산바위,괴음정,고공전망대,마흔고개,다래숲동굴,진달래동산,가재연못,산딸기길,풀과나무의사랑,신령참나무,시련과고난의소나무 등
@ 괴산댐 주변 유적-소재 노수신과 후손 노성도. 산막이 마을 입구를 지나면 소재 노수신(1515~1590)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던 곳이 나온다. 노수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을사사화에 휘말려 오랜 세월 유배당했고, 훗날에는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하구곡을 노수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관리하러 온 10대손 노성도(1819~1893)였다는 점이다. 그는 조상의 유배지를 관리하러 왔다가 수려한 풍광에 홀딱 빠져 “이곳 연하동은 가히 신선의 별장”이라고 노래했다. 산막이길은 노수신 적소를 끝으로 돌아서야 한다. 산막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걸어왔던 산막이길을 바라보며 돌아가는 길. 군자산이 호수까지 내려와 떠나는 길손을 배웅한다.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소재 월악산 세계사 미륵불
천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월악산에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나라 잃은 서러움이 전해온다. 망국(亡國)의 설움을 달래며 경주를 떠나온 이들은 월악산에 절을 세워 불법을 닦으며 여생을 보냈다.
불심이 돈독했던 이들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로 인해, 월악산 주위에는 불교에서 유래한 땅이름이 유난히 많이 남아 있다. 마의태자가 창건한 미륵세계사(彌勒世界寺)가 있는 곳의 지명인 미륵리(彌勒里)가 가장 대표적이다.
미륵세계사에는 보물 96호로 지정된 건장한 법체(法體)의 미륵부처님이 서 계신다. 이 부처님은 키가 무려 10.6m로 나라 잃은 '청년왕자' 마의태자를 보는 듯하다.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언제가는 새나라를 세울 것이란 서원을 느낄 수 있다. 미래에 올 부처님을 모신 것도 이같은 희망과 발원을 엿보게 한다. 이 미륵불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씻겨도 두상, 얼굴 부분은 결코 오염을 받아들이지 않아 항상 밝고 맑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점이 아주 특이한 부처라고 한다.
미륵리는 영남지방에서 문경의 새재 이전 하늘재를 넘어 충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과거를 보러 가던 젊은 선비나,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의병을 일으켰던 조상들의 의지가 알알이 배여 있는 땅이다. 또 고구려·백제·신라로 나뉘어 같은 민족이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싸웠던 아픔도 숨길 수 없는 땅이다. 이제는 미륵리가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길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