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와 소년병
고사리는 호오가 갈리는 음식이다. 그러나 워싱턴주 한인들에겐 관심 깊은 물산 중 하나다. 조개 철에 조개 잡으러 가고, 연어 철에 연어 낚으러 가고, 미역 철에 미역 따러 가는 건 레저활동에 속하지만 고사리 채취는 좀 다르다. 시애틀 고사리는 한국 시장에서도 인기란다. 누군가 고사리로 하여 생계를 이어간다는 뜻이다. 심지어 선교비를 위해 매해 고사리 따러 가는 분도 봤다.
하도 유명한 고사리 따기인지라 어느 봄에 한번 따라나서 봤다. 동네 산책로를 걸어도 고사리는 많지만 꺾을 엄두가 나지 않기에 누군가와 함께 해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행과 함께 스노퀄미 근처 너덜겅을 따라 걸었다. 지천으로 솟은 고사리, 그들은 거기를 고사리밭이라 했다.
다년간의 숙련된 솜씨로 그들은 고사리 목을 딱딱 꺾어 나갔다. 그 기세에 업혀 나도 손을 내밀어 어쭙잖게 목을 꺾었다. 따악!
순간 맑은 공기를 가른 울림이 약하고 연하나 예리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소리의 진동이 몸으로 흘러들며 팔에서 힘이 좌악 빠져나갔다.어머! 내가 남의 목을 꺾었잖아.
그 느낌은 생선의 배를 가르고 목을 쳐 토막을 낼 때 주저되던 것과 같았다. 주부란 내 가족의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거둬들이는 무서운 손을 가진 존재다. 그러니 세상 여자들이 다 그러고 산다 싶어 심사를 다스려 다시 도전의 용기를 내 봤다.
하지만 손을 뻗어 목을 꺾을 때마다 손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는 반응이 내 혼쭐을 교란시켰다.
그런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신입생들을 차출해 연극 『춘향전』을 준비했다. 주연은 상급생들이 했고 우리는 기생, 군졸, 육방 관속 등이 되어 강의 시간을 빼앗긴 채 한 학기 동안이나 연습했다. 공부하러 왔지 연극하러 왔냐, 관제 연극으로 우릴 억압하지 말고 그만 집어치워라, 울근불근하며 겨울이 왔고 몇 명의 미 하원의원들을 관객으로 맞아 연극은 강행됐다. 그리고 본 공연 후 방학 동안 군부대 위문 공연에 동원됐다. 전방 부대에도 갔고 논산 훈련소에도 갔다.
논산 훈련소에선 2박
3일 체류했다. 연극으로 위문 공연 하루,
이틀 군사 훈련 체험을 했다.
구보,
포복,
하강,
등등.
그리고 사격도 했다.
열 명씩 열을 지어 사격 준비를 했다.
배 깔고 엎드려 포대 위에 총신을 놓고 장총을 쏘는 것이었다. 내 차례가 오고, 엎드려 조교가 돕는 대로 총을 어깨에 받쳤다. 어깨가 총의 지지대가 되는 탓이다. 발사! 훈련기 신호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연발로 다섯 발. 그날 나는 복통을 일으켰다.
발사와 동시에 어깨가 총신의 진동을 삼켰고, 그 순간 바로 숨이 콱 막혔다. 이게 사람 목숨을 거두는 진동이구나. 엉겁결에 다섯 발을 다 쏘긴 했으나 억제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위가 대신 감당했던 것일까. 그들은 왜 이런 경험을 하게 하나,
불쾌했다.
그 후 그 기억을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그 일이 떠오르면 애써 잊어버리려 했다.
한데 어느 해,
6.25 참전 학도병이 남긴 편지를 읽고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중략)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가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중략)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중략)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중략)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러나 이 편지는 발신되지 못했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포항 전투에 투입된 중학 3학년 학생이었던 그의 편지는 그의 주검을 수습하던 동료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전해졌고, 영화의 모티브가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남의 목숨을 거둬 놓고 공포에 떨던 여린 소년병의 연두빛 영혼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누구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었던 두려움.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내몰린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엄혹한 현실은 목숨을 선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끌어안고 절절매는 생명이란 존재의 핵심은 무엇일까. 예전에 그림 그리는 친구가 말했다. 물체를 그리려면 빛 옆에 어둠을 넣으라고. 그러면 입체감이 살며 물체가 드러난다고. 하기에 존재는 빛과 어둠이 그 기본이다. 그림자를 거느리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러나 빛과 어둠은 찰나에 소멸한다. 생명은 일과적(一過的)이며 찰나적인 속성을 가진 슬픈 존재다. 하지만 그 생명들은 영원히 존재할 듯 다른 생명들을 지배하고 억압한다. 또한 빛과 어둠을 미화하여 존재를 과장하기도 하고 축소하여 왜곡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의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니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담백하게 포기하자. 만일 소년병에게 이 일을 시켰으면 뭐라 했을까. 그도 파르르 떠는 고사리의 비명을 듣지 않았을까.
이쯤에서 고사리 따기는 그만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일행 속에서 그들의 작업에 말로만 보태며 주위를 얼쩡거리는 일로 하루를 끝냈다. 그리고 봉지마다 가득 채워 하산하는 일행의 뒤를 피곤한 마음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사리나물만 호오가 갈리는 게 아니라 고사리 채취도 호오(好惡)가 갈린다는 점을 돈오(頓悟)하며.
첫댓글 고사리 따는 경험도, 공 선생님과 통하는 학교인데 연극, 위문, 훈련 경험도 없으니...??.
가냘픈 공 선생님이 거긴 왜 가셨을까? ㅎㅎㅎㅎ 고사리 밭의 비명과 소년병의 운명이 슬프네요. 가슴이 먹먹해서
물 한 잔 마셨어요.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기엔 슬픔들에게 미안한 거지요?
수필은 상생과 화해의 문학이라고 하던데 전 늘 이렇게 문제 제기에 고발만... ㅎㅎ 괴롭혀 드려 죄송합니다. ^^ 물 맛이...
앗, 대학교였구나~.
빛과 어둠, 존재를 과장 축소 왜곡 멋진 표현들 ...화요일오후, 여러가지 상념에 사로 잡힙니다.
전쟁이 꺾은 무수한 젊은이의 목숨 앞에...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작년 여름에 써서 가을에 목요글방에 가져 갔던 글입니다. 아직 덜 익었는데 그럴 일이 있어 여기에 우선 올려 둡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