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원래 소아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디오니소스 신앙이 트라키아 지방과 보이오티아, 펠로폰네소스로 들어와 마침내 그리스 전역에 파급되었고 나아가 그리스의 여러 섬을 상대로 포교 여행을 전개할 때의 일이다.
디오니소스가 홀로 디아 섬 해안가에 앉아 있다가 마침 델로스 섬을 향하여 항해하고 있었던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튀레노이' 해적들이었다. 디오니소스의 차림새를 본 해적들은 몸값이라도 받을 생각으로 그를 납치하려 했지만, 번번히 포박에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밧줄이 기적의 힘에 의해서 스스로 풀렸던 것이다.
이것을 본 '아케테스'라는 키잡이가 디오니소스에게 인간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동료들을 만류하였지만 몸값에 눈이 멀어버린 해적들은 그를 비웃었다.
"이봐, 아케테스! 이 자를 이집트나 키프로스로 데려가 노예로 팔면 몸값이 얼만데 그런 김새는 소릴하는가!"
해적들이 디오니소스의 '몸값 올리기'를 위한 의견교환에 정신이 없을 때, 아케테스는 신에 대한 불경죄를 두려워하면서 기도를 하고 디오니소스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고 있었다.
의견의 일치를 본 해적들은 돛을 올리고 항해를 계속하였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젊은이(디오니소스)를 풀어주고 용서를 빌자'는 아케테스를 선상 반란행위로 규정하고 배 바깥으로 내던지려고 하자, 갑자기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정지하더니 돛대에는 포도넝쿨이 감기고 밧줄에는 포도송이가 무성하게 열렸으며 배 안에 향긋한 냄새의 포도주가 철철 넘쳐 들어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신비스러운 피리소리가 들리더니 시라소니와 점박이 표범들이 뛰어들었고 디오니소스는 사자로 변신하여 이곳저곳 헤치고 다니면서 해적들을 한곳으로 몰아갔는데 이번에는 곰 한 마리가 선원들을 몰아서 선수(船首) 쪽으로 집결시켰다.
"엄마야!"
해적들이 모두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들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에 뛰어든 해적들은 목숨은 건졌지만 돌고래가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스무 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디오니소스를 풀어주자고 제안했던 아케테스 한 사람뿐이었으며 디오니소스는 공포에 떨고있는 그를 위로하면서 자신이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라고 밝혔다.
아케테스는 디오니소스의 지시에 따라 낙소스에 도착하여 제단에 불을 밝히고 디오니소스 제전을 거행하였는데, 마침 그곳에는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은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가 와있었다.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은 크레타 왕 미노스가 강요한 공물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일곱 명의 소년과 일곱 명의 처녀들을 해마다 황소의 몸뚱이에 인간의 머리를 지닌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의 밥이 되기 위해 보내어 지는 것이었다.
그 괴물은 '다이달로스'라는 사람이 만든 미궁 속에 갇혀 살고 있었는데, 미궁의 구조가 어찌나 교묘하게 만들어졌는지 일단 한번 갇힌 자는 혼자 힘으로 도저히 탈출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테세우스는 죽을 각오를 하고 크레타로 건너왔고 그를 본 아리아드네가 사랑에 빠져 괴물퇴치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즉, 아리아드네는 사랑을 위해서 조국 크레타를 배신했던 것이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괴물의 급소를 찌를 칼, 그리고 무사히 미궁을 빠져 나올 수 있는 한 타래의 실을 건네주었고 덕분에 미노타우로스를 성공적으로 죽이고 미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테나이로 가는 도중 낙소스 섬에 머무는 동안 테세우스는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났던 것이다(그림: 잠든 아리아드네).
디오니소스는 슬픈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었던 아리아드네를 위로하면서 구혼하였다. 이렇게해서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로부터 세 명의 아들을 얻었는데, '암펠로스', '스타필로스', '오이노피온'이 바로 그들이다(그림: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던 그녀! 조국을 위한 모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테세우스를 도와주었으나 그가 아리아드네를 배반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테나이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그녀를 버린 것은 디오니소스의 명령 때문이었으며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생이별을 가슴 아파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당시 테세우스는 '아이글레'라는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아드네를 버렸다고 믿었다. 그리고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를 버리도록 한 것은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아테나였으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아리아드네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여 사제였으나 디오니소스 신전에서 테세우스와 관계를 맺어 순결서약을 파기한 죄로 아르테미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신화적 사건에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하고 신화를 대하기 바라는 뜻에서 이야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