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부도서관에 갔다.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을 읽어볼까 하고. 집에 책이 있긴한데 요즘 어디서건 조용히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주 들르던 남부도서관 종합자료실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내가 읽으려한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있으려니하고 집에 놓고 온 것이 잘못이다. 그래서 그 비슷한 내용과 비슷한 분위기의 책으로 <조용한 생활>을 빼어들었다. 서너장 읽고는 대출받아 집으로 왔다. 그곳에서도 읽고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점심먹고 애 끌고 두류공원으로 갔다. 아이는 빈터에서 놀고 나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스무장쯤 읽었다. 이제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마침 일요일이어서 애들은 늦잠자게 놔두고 또 너덧장 넘겼다. 내가 왜 요즈음 오에 겐자부로에게 잡착하는 걸까. 참 아픈 글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아 자식을 키우며 겪는 마음의 고통을 딸의 입을 빌어 이 글을 전개시킨다. 다소 냉철하고 냉소적인 딸의 시선으로 자신에게 마음껏 채찍질하고 그 동안의 심적아픔을 토해내는글. 읽어내기가 수월한 글은 아닌 것 같다.
오전에 한 목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지난주, 한 중년남자가 한글을 깨치지 못하여 여러모로 고생중인데 한번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다른 어떤 일보다 한글 깨쳐주는 일은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평소에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고민이 아주 많았다. 자신을 조율하기 어려운 사람이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때 전화가 온 것이다. 아무래도 어렵겠어요. 남자라서 불편도 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고민이 사라진 그때의 시원함이란! .... 그런데 왜 이리 우울한 것일까. 아마도 나는 며칠동안 열패감에 시달리고 말것 같다. 겐자부로의 책이 옆에서 부추길것도 같고.
# 겨우 열이 내리고 가을이 무르익던 어느 날, 나는 이요와 역전의 슈퍼에 쇼핑을 하러 갔다. 완전히 기가 허해진 듯해서, 바구니 두 개는 팔힘이 센 이요가 들어 주었다.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전에 오빠가 혼자 숨어 있던 여러가지 꽃과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룬 저택으로 향하는 네거리에서, 나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던 오빠가 척척 그쪽으로 돌아갔다. 왜 그래, 이요? 그러면 멀리 돌아가는 거잖아, 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반항하면서도 따라갔는데, 역시 철쭉으로 된 울타리의 움푹 패인 곳에 어깨를 쑥 집어 넣고 멈춰 선 오빠는 , 천진난만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피아노 연습소리가 들렸다. 잠시 듣고 나서, 이요는 평온하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쾨헬 311의 피아노 소나타입니다만, 괜찮습니다. 그 뒤로는 어려운 부분이 없으니까요, 전혀!"
그때 나는 나 자신을 휘감고 있었던 고뇌 또한 극복되어졌음을 느꼈다. #
<조용한 생활>.고려원.1995. 38~39쪽에서
여기서 <나>의 고뇌는 오빠 <미요>에 대한 오해가 풀림으로 해소된다. 이즈음 동네에 치한(성폭행자 또는 노출증자)에 의한 사고가 있었다. <나>는 오빠가 울타리의 움푹 패인 곳에 어깨를 쑥 집어넣고 가만히, 한참을 서 있는 뒷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발설할 수 없는 고민에 휩싸였었다. 오빠는 음악만을 통하여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는 작곡가가 된다.
첫댓글 한 번 읽어 봐야 겠네요. 요즘 내가 읽는 책들은 숙제탓도 있지만 이상하게 읽어내려가기가 힘이드네요. 어디 정신이 벗쩍드는 글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내용의 글이없을까요? 말하자면 애정이가는 작품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