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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76) 2026. 8. 16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
행17:22-25
<마음에 격분하여>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피신한 바울은 동역자들을 기다리면서, 아덴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16절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아덴은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 학문과 예술, 정치, 과학, 철학 등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되는 유산이 풍부한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읽을 만한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이 있었고,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멋진 음악 소리가 들리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위세를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시내 전체가 박물관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격분’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현상 뒤에는 ‘우상숭배’의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 부러움과 감탄의 대상이 된 것들이 바울의 눈에는 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격분’이 일어난 바울은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습니다. 나아가서는 당시 아테네를 주름잡고 있던 두 주류의 철학자들(‘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과 쟁론하였습니다(말싸움). 논쟁(쟁론)은 공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갔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이상한 말’, ‘예수와 부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였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오늘 본문은 아래오바고에서 전한 바울의 설교 내용입니다.
22~23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바울의 첫 마디는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라고 말이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아덴은 온통 우상으로 가득찬 도시였습니다(신전, 제단). 그 우상들은 스스로 거기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고작 나뭇조각, 쇳조각, 돌조각에 불과합니다. 그 죽은 우상들이 거기 서 있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심성을 금방 파악했습니다. ‘범사에 종교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종교심’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물리적인 세계와 사건의 이면에 역사하는 절대자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일에 행할 때마다 신을 의식하고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신이 함께해야 잘 되고, 신이 도와주어야 어려움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범신론).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위한 신상과 제단을 세웠는데, 혹시라도 자신들이 몰라서 빠뜨리고 제사하지 못한 신이 있을까 봐, 그러면 그 신으로부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까지 세워놓았습니다.
우리 민족도 종교심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리 삶의 곳곳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장승), 주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한 쌍을 마을 입구에 세워놓았습니다. 마당에도 신이 있고, 부엌에도 신이 있고 마을 중앙의 큰 나무에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산이나 우리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산이나 들이나 개울가에도 돌만 보면 탑을 쌓았습니다(소원을 빔).
관습과 절기에도 우리 민족의 종교심이 들어 있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밤을 수놓는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는 악귀를 쫓고 재액을 막으려는 주술적인 의미와 놀이의 즐거움이 결합한 풍습입니다.
언어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세상 떠난 분을 ‘돌아가셨다’ 혹은 ‘별세하셨다’ 즉 ‘이 세상과 이별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의 존재가 깡그리 없어졌다는 표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움과 흥에 취할 때 발하는 감탄사가 ‘신난다’입니다. 그런데 ‘신나다’는 ‘신명나다’의 축약형입니다. ‘신명’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흥겨운 멋이나 기분’이란 뜻과 함께 ‘하늘과 땅의 신령’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자로 신명(神明)이라고 표기합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도 범사에 종교심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지하는 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천지신명)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와,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이 정확하게 제시된 것입니다(하나님). 그래서 빠른 속도로 복음이 퍼지고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민족의 심성 깊은 곳을 채운 종교심 때문이었습니다.
요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사마리아인들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유대인들과 장소는 달랐지만 성전이 따로 있었고, 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아테네 사람들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섬기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섬기며 예배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부터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참 하나님을 소개하여, 그 하나님을 알고 예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
그럼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선포한 ‘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5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어떤 신이 만일 다른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거나, 아니면 심지어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피조물’이지 ‘진짜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출애굽에 앞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소개하셨습니까?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나는 나다).
단지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만 강조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심과 동시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 <세 가지 창조> 한글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단어가 한 가지로 쓰였지만. 원어 성경에서는 ‘창조’라는 뜻의 다른 세 가지 단어가 쓰였습니다. 첫째, '바라'라는 단어입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창조는 ‘무(無)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나 물질을 조합하여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던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아사'라는 단어입니다. 창1: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것은 ‘개조한 창조’라는 뜻으로,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을 가리킵니다. 동식물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와 그 공중에 모든 피조물을 각각 그 종류대로 지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셋째, ‘야탈'이라는 단어입니다. 인간을 창조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창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Imago Dei)로 창조하셨습니다. ‘아사’나 비슷하지만 특별한 목적에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천하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고, 재료를 이용하여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또한,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창조하신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을 통해 영광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드신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8)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이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
이와 같은 바울의 주장(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은 헬라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낯설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의 신들은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의 여러 신 중에서 모든 신과 인간을 다스리는 주신(主神)은 ‘제우스’인데, 그에게도 아버지 ‘크로노스’가 있었습니다. 크로노스는 아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듣고서 그 아내인 ‘레아’에게서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족족 삼켜버렸는데(5형제), 레아가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 그 대신에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건네고 제우스를 다른 곳으로 빼돌려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우스’라는 주신(主神)조차도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 곧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하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낯선 유일 신관이었습니다.
둘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천지의 주재시라고 말했습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바울은 그 하나님을 가리켜 여기서 ‘천지의 주재’라고 부릅니다. ‘주재’는 ‘주인’(Lord)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 또한 헬라의 신들과 비교하여서 하는 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제우스’가 아무리 모든 신과 인간을 다스리는 주신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역할은 ‘하늘의 신’으로 기후를 조절하는 일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농업을 관장하는 여신은 ‘데미테르’이고, 바다의 신은 ‘포세이돈’입니다. 그리고 지하 세계는 ‘하데스’가 다스립니다. 즉 자신이 관할하는 영역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그 신들은 다 가짜 신들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신은 ‘천지의 주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에 갇혀계시지 않는 분이심을 증언했습니다.
24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는 분이시기에,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에 갇혀있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분이십니다.
헬라 사람들은 신들에게는 반드시 신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얼마나 웅장한지 모릅니다. 아테네를 지키는 여신 ‘아네나’를 위해 지은 신전입니다. 그 안에 금과 상아로 12m가 넘는 아테나 여신상을 세웠습니다. 금빛이 번쩍거리며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들은 신전 안에 갇혀있는 죽은 우상에 불과하였습니다. 1687년 투르크인(오스만 제국)과 싸우던 베네치아인들이 아크로폴리스를 포격하던 중,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던 화약고가 폭발해 건물 중심부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던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후에 봉헌예배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대하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그렇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진짜 하나님을 모두 담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들의 생각은 편협해 졌습니다.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려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순교에 앞서, 그들의 이러한 행태를 지적하였습니다.
행7:47~50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이 이 설교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전 중심의 종교를 만들어 놨기 때문입니다. 종교 권력의 기득권자들인 제사장들에 의해서 하나님은 성전에 갇혀 계신 분처럼 포장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직 성전에 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강조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성전 자체를 우상 숭배하듯 한 것입니다. 성전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지금 스데반도 예수님과 똑같이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당연한 말씀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마음에 찔림을 받아) 분노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성전’으로 표현되면서, 우상화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합니다(성전 건축이란 표현은 잘못된 표현 - 예배당 건축이 맞는 표현).
넷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25절a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
많은 사람이 자기가 선을 행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헌금을 함으로, 하나님을 자기가 도와드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완전하고 충만하신 분이십니다(엡 1:23).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에게 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자신의 손에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으로 먹고 사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은혜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책망 – 마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임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공적(혈통)으로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교만하고, 다른 민족을 멸시하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듯이(창 2:7), 당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발밑의 돌이나, 아니면 유대인들의 발밑의 돌처럼 천하게 여기는 이방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재창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다섯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25절b “...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반대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특히 여기서 ‘호흡’은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만물 - 자연)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체온은 36~37도를 늘 유지하고, 심장은 하루에 103,689번 뛰고, 피는 하루에 2억6천8백만km를 혈관 속을 달린답니다(서울에서 부산이 500km라면 하루에 26만 8천 번 왕복). 호흡은 하루에 23,040번 쉬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근육과 세포들이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일까요? 이 놀라운 우리의 신체를 알면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신묘막측’하다고밖에 고백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생명을 주시고, 유지시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진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가짜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배하기 전에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예배해야 합니다.
첫째, 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둘째, 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셋째, 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에 갇혀계시지 않습니다.
넷째, 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다섯째, 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앞으로 바울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참 사랑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에게 제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채워주시고, 구원하시는 참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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