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2월 22일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가 세상을 떠났다.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했다. 이론 영역인 랑그는 문자체계와 문법규칙이고, 실천 영역인 파롤은 사람이 구사하는 말 자체이다.
파롤은 랑그의 규칙에 따라 발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약속인 언어가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있고, 랑그가 올바르게 수정되고 재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 상황 중에도 그런 ‘범법’을 두고 공방이 오간다.
2021년 11월 10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방문록에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글씨가 쓰였다. 이튿날 서울경제신문은 “이재명 후보 측이 ‘반듯이’는 ‘반드시’로 표기해야 한다며 ‘한글도 모른다’고 지적”하자 “윤 후보 측은 ‘반듯이’도 표준어라며 쓰임새에 맞게 적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 후보는 ‘반드시가 아니라 똑바로(라는 의미로 쓴 것)’라고 보도했다.
소쉬르는 모든 기호는 형식인 기표記標(signifiant)와 내용인 기의記意(signifié)로 나뉜다고도 설명했다. 한국에서 ‘집’을 말로 표현하면 소리인 “집”과 이미지인 ‘ㅈ’ ‘ㅣ’ ‘ㅂ’은 기표(시니피앙)가 되고, 뜻인 ‘거주용 건축물’은 기의(시니피에)가 된다. 이때 ‘집’을 영어에서 “house”로 달리 표기하는 것을 보면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집’을 꼭 “집” 또는 “house”로 발음해야 하는 필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집”이든 “house”든 말을 하는 순간 사람은 필연적으로 ‘거주용 건축물’을 떠올리게 된다.
1836년 2월 22일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은 500권의 저서를 집필하고 2500수의 시를 남긴 ‘역사의 학자’이다. 그의 시 가운데 “鷰子初來時 喃喃語不休 語意雖未明 似訴無家愁”라는 표현이 있다. 인용 구절은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와 / 지지배배 그치지 않고 우는구나 / 말하는 뜻 잘 알 수 없지만 /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정도의 뜻이다.
정약용이 한시를 쓰면서 글의 의미를 정확히 떠올렸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제비와 정약용의 언어가 달랐듯이, 그토록 백성을 사랑한 선비의 글임에도 백성 대부분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뜬금없지만 ‘다산 선생이 소쉬르의 이론을 글쓰기에 적용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남양주 홍보물)’도 그 점에서만은 시대를 뛰어넘지 못했구나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