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드 보이들의 귀환’
“인간은 물질적 자원만큼이나 인간들 사이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공동체주의적 정치학자 찰스 테일러(1931-)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서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인정을 받아야만 각자가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인정하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억압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인정받지 못하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타인을 적절하게 인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하는 예의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른바 테일러의 ‘인정의 정치학(Politics of recognition)’이다.
테일러의 ‘인정의 정치’는 과거 18세기 루소와 칸트가 지적한 것이며 헤겔도 인정했다. 심지어 헤겔은 “인류 역사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까지 주장했는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결국에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가 있다.
물론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을 ‘명예’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명예를 권력으로 치환하면 인류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리바이어던」에서 “권력은 쉬지 않고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 경향이며, 이러한 권력욕은 오직 죽어서만 멈춘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러한 권력욕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표현하면서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구를 확장시키기도 했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가 비단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권력이나 명예욕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또한 성공에 대한 집착이나 타인에 대한 지배적 우월감 그리고 돈에 대한 욕심만도 아니라고 했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권력을 쫓고 권력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쾌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분명히 강조했다.
니체에 따르면 “권력은 오직 더 많은 권력일 때만 만족을 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권력에 집착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권력론에 대해서 미국의 정치학자 윌 듀랜트(1885-1981)는 “권력을 향한 열망 앞에서는 이성도 도덕도 무력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성과 도덕은 권력을 향한 무기이자 꼭두각시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또 다른 정치학자 라인홀드 니부어(1892-1971)도 “개인이 공동체에 헌신, 봉사하기 위해 모든 걸 바칠 때조차도 권력을 향한 의지는 여전히 갖고 있다” 고 말한다.
그렇다고 권력욕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권력에의 의지는 어떤 긍정적 사회 행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권력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며, 또 그래야만 ’인정의 정치학‘ 처럼 타인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는 것이다. 문제는 한 개인의 끊임없는 권력 욕구가 공동체주의 측면에서는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역설이다.
지난달 명륜동 성균관 컨벤션 웨딩홀에서는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로구 협의회가 출범식을 가졌다. 종로 사회 주도 세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변모된 것을 실감케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지난 10년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구청장이 득세하던 시절에는 뒷자리로 물러나 볼 수 없었던 인사들이 종로구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1991년 종로구 지방자치가 30년 만에 부활되어 종로 사회 전통적 토호 세력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명실공히 종로 주도 세력으로 군림(?)하던 인사들이 또다시 전면에 등장한 셈이다. 이미 30년 넘게 종로 사회 유력인사로 불리던 사람들이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나온 것인데, 아마도 종로 주도 세력이 바뀐 것을 계기로 다시 또 ‘권력에의 의지’를 갈망하는 모습들로 비춰진다. 어느덧 나이 90세를 바라보는 노익장부터 시작해서 80대 후반에 이르는 인사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른바 ‘올드 보이들의 귀환’을 연상케 했는데, 한마디로 종로의 숙원 과제가 다시 한번 발현되는 양태다.
후배 안 키우는 종로의 주도 세력들, 그래서 잃어버린 종로 12년을 만들어 놓고 아직도 학습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올드 보이들의 귀환‘ 모습은 역동성없이 시들어가는 오늘날의 종로의 현실, 그대로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