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란 무엇인가
큐레이터 이대형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2004년 서울 컬러 엑스포에서 있었던 색과 마케팅 사이의 연관관계에 관한 설문조사결과가 흥미롭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의 92%가 상품을 구매할 때 시각적인 요소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고 5.6%가 촉감을, 1%가 샘새를 중요한 구매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시각적인 요인 중 84.7%가 색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색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가? 뉴턴에게 물었다. “색이란 무엇인가요?” 뉴턴이 삼각기둥 형상의 투명한 도구(프리즘)을 가져오더니 색과 빛의 정체를 하얀색 빛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으로 분리된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색은 결코 빛과 시지각이 만들어내는 환영이 아니다. 색은 빛이고, 빛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온도를 가지고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래서 뉴턴 대신 오늘의 주인공으로 색을 선택했다. 색이 우리 눈에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크기 때문이다.
팬톤 칼라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의 78%가 흑백 종이보다 컬러 종이 위에 쓰여진 단어나 문구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인간의 눈은 색에 반응한다. 문자가 좌뇌를 자극하는 동안 색은 우뇌를 자극한다. 이런 이유로 색과 문자가 효과적으로 결합될 때 그 시너지 효과는 배가 되고 기억과 관심도 역시 상승한다. 특히 옥외광고의 경우 과감하게 원색을 쓰고 문자는 최소화했을 때 사람들의 눈을 끌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콥스 페인트의 옥외광고는 색이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끌고 관심을 보이게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주차된 차량까지 색을 부어 광고현수막과 실제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재치는 ‘Life in Full Colors’ 라는 짧은 광고문구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특히 현수막의 검은색과 주차장의 어두운 회색 배경을 생각하고 선택한 노란색은 강한 명도 대비현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현수막 광고판과 실제 공간을 이어 붙이는 재미있는 발상 역시 무지막지하게 흘러내린 노란색의 폭포가 없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색은 빛이고 에너지다. 청바지 광고 두 편을 통해 패션업계에서 색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리바이스 쿠퍼 진은 청바지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엑스레이로 촬영했다. ‘청바지의 오리지널을 다시 만든다(An Original Reconstructed)’는 광고문구와 청바지의 질감이나 색보다는 엑스레이에 찍힌 여성의 몸 사진을 통해 청바지가 얼마나 피부에 잘 밀착해 몸매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의 뼈 구조까지 노출시키며 시도한 방사능 실험이 신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기에는 이 흑백 엑스레이 사진은 어딘가 부족하다. 색을 흑백의 빛으로 환원해 오리지널한 리바이스의 정통성을 재발견한다는 취지와 마케팅 전략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몸에 착 들어맞는 옷은 얼마든지 있다. 필요한 건 어떤 감성을 자극하냐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이 물에 잠겼다. 자동차 대신 수상보트가 사람들을 나르고 있는 모습이 저 아래 내려다 보인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머리부분만 수면 위에 떠 있다. 그 옆 건물 옥상에선 젊은 남녀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Global Warming Ready’라는 광고문구가 이 한 여름의 물난리가 홍수가 아닌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버렸음을 암시한다. 팔등신의 미녀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는 듯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남자가 입고 있는 청바지가 바로 디젤이다. 디젤은 색을 선택했다. 그리고 색에 온도를 부여했다. 옥상 위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과 대비되며 디젤 청바지는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결국 색의 선택은 이미지를 현실과 얼마나 가깝게 배치시킬 수 있을까의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 콥스 페인트가 페인트의 속성을 잘 살려 노란색 물감을 광고판과 현실 속 주차장까지 연결시켰다면, 리바이스는 엑스레이 빛을 통해 실험실과 빛이 지닌 근원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반면 디젤은 지구온난화라는 배경을 이용해 색에 온도를 입혔다. 그럼 이제 어떤 연상작용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콥스 페인트는 길거리를 지나가다 노란색을 볼 때마다, 주차장을 지나갈 때마다, 세로로 길게 내려진 옥외 대형 현수막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반면 리바이스 청바지는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마다, 흑백서부영화를 볼 때마다, 혹은 뒷모습이 예쁜 사람을 볼 때마다 뼈까지 노출시킨 리바이스 광고를 떠올릴 거다. 그리고 디젤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를 바라볼 때마다, 짙은 청록색의 바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 싶을 때마다, 피서지에서 연인과 한가한 데이트를 상상할 때마다 갈증처럼 생각날 거다.
이처럼 색은 다양한 심리작용을 일으키는 촉매제다. 색이 없는 미술은 단조롭고, 색이 빠진 패션은 초라하다. 바나나색만 봐도 향기가 나는 것 같고, 오렌지색을 보면 군침이 돈다. 굳이 뉴턴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색은 만유인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뇌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전자기력이다. 파란색에도, 빨강색 안에도 너무나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빨간색 티셔츠 한 장도 잘 팔리는 게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었다. 색의 선택이 80%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