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 방향으로만 갈까
김낙효
단양에 있는 민물고기 수족관, ‘다누리아쿠아리움’을 2018년 2월에 찾아갔다. 도담삼봉이나 고수동굴만 떠오르는 충청북도 단양에 국내 최대 규모의 민물고기 수족관이 생겼다고 해서 고향에 간 김에 관광차 갔다.
해양수족관이야 여기저기 있어서 관람할 기회가 많았지만, 민물고기 수족관은 처음이었다. 민물고기를 지역별, 종류별로 알기 쉽게 분류해놓아 특징이 잘 나타났다.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각양각색이었다.
전시관 중간에 서 있는 큰 원통형 수조를 만났다. 그 원통형 수조는 유난히 물이 맑고 투명했는데 노란빛이 도는 뽀얗고 길쭉한 비단잉어같이 생긴 고기들이 멋지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알비노 송어’라는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가고 있었다.
잠시 바라보는 사이에 희한한 현상을 발견했다.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원통 속에서 모든 물고기가 일사불란하게 오른쪽으로만 몰려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위아래를 샅샅이 훑어보아도 거슬러 가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다른 수족관의 물고기들이 상하좌우 자유롭게 유영(遊泳)하는 것과는 너무 달랐다. ‘알비노 송어, 너희들마저 편을 가르는 거니?’ 주변의 누구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쪽으로만 몰려가는 것이 신기하여 잠시 동영상도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 알비노 송어가 왜 일사불란하게 오른쪽으로만 도는지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봐도 시원한 답이 없어서, 단양 다누리아쿠아리움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물어보았다.
송어는 연어과 동물로서, 연어처럼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송어도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하고 알은 강으로 올라와 낳는 회귀성 어류였다. 오른쪽으로만 도는 것은, 물의 흐름을 왼쪽으로 흐르게 해놓아서 송어들이 한결같이 오른쪽으로만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연어도 죽을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일생을 마감한다는데, 송어도 그 길을 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유영은 온 힘을 다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나오는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떠올랐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은 시베리아의 광활한 벌판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란다. 매일 밭에 나가서 사방을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동서남북 지평선만 있고.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에 나가 일하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오는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더는 견딜 수가 없을 때 곡괭이를 내던지고 태양이 넘어가는 서쪽으로, 먹지도 않고 며칠씩이나 걷다가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추는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 병이란다.
알비노 송어도, 시베리아 농부도 계속 그 길을 갈까 봐 얼마 동안 속을 끓였다. 문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질타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을 탈피하라는 강렬함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그동안은 살기 바빠 나를 돌아볼 생각조차 못 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로 했는데 코로나가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보기로 했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첫댓글 김낙효의 수필집 『나야, 문 열어』에서 <왜 한 방향으로만 갈까>가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7월 28일 목요일 오전 9시 40분경 낭송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9매 이하 짧은수필이거든요.
조 위의 녹음을 같이 들어 보실까요
축하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김낙효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방송까지 타시고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