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했던 해외여행길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된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맞는 말인 것 같다. 2017년 올해는 나와 아내가 함께 산수(傘壽)를 맞은 해여서, 다소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해였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봄, 가족들과 함께 1박을 하면서 팬숀에서 추억을 낚긴 했지만 훌훌 털고 해외로 나가고픈 충동이 골똘히 일었다. 그런데 문제는 건강문제였다.
계획하고 있는 여행지가 동남아 같은 가까운 거리가 아닌 미국 쪽이어서, 원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웠다. 인터넷을 통해 여행정보를 체크한 나머지 행선지를 하와이로 결정했다. 덜컹 예약부터 하고 봤다. 그러니까, 용기를 내어 일부터 저지르고 본 것이다. 한 달이란 여유를 두고 예약은 했지만, 어쩐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아내는 척추협착증이란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는 터이고 나도 어쩐지 잘 다녀올 수 있을까 하고, 걱정부터 앞섰다. 전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일이었다. 회갑 땐 북유럽을 다녀왔고 칠순 땐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왔지만, 당시는 여행을 떠나기 전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그런데 이번 팔순 여행의 경우는 딴판이었다. 이것이 다 나이 탓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내외는 나름대로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인지 주위에서 나이보다 젊게들 봐주긴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져 여행 일주일을 앞두곤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포기까지 할까, 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고심 끝에 용기를 냈다. 우선 각종 영양제와 복용하는 약부터 꼼꼼히 챙기고 두 사람 다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링거주사까지 맞고서야 결국 용기백배 해외여행길에 나섰다.
여행은 이외로 출발부터가 순조로웠다. 당초 계획은 인천국제공항까지 전철을 이용하려고 했었는데 막내아들의 승용차를 이용해 손쉽게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7시에 출발하는 비행편이기에 잠을 기내에서 자야하는데 잠이 쉽사리 올 리 만무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하와이 호놀룰루공항에 도착하니 시차관계로 그곳은 오전시간이었다. 어렵잖게 가이드와 미팅을 하고 점심식사 후엔 시내관광길에 올랐다. 그리고 나흘 동안 묵을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와이키키호텔(Holliday in Express Waikiki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하와이의 9월은 우리나라 이른 여름 수준의 기온이었다. 날씨도 관광을 즐기기에 큰 부담이 없을 정도로 쾌적해 다행이었다. 하와이는 비가 자주 내린다는 소식에 미리 우산을 챙겨갔지만, 날씨가 좋아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을 정도로 화창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다음날 관광은 해변도로를 따라 하와이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였다. 특히 하와이 바다는 참으로 산뜻하고 푸르렀다. 어디를 가나 부유물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바다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감정마저 솟구친다. 마음은 벌써 바다에 뛰어들어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어디론가 휘저어간다. 동쪽으로 무한히 가면 우리나라에 닿을 것이고 서쪽으로 가면 미국 땅에 당도하지 않겠는가.
셋째 날은 선택관광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우아이’라는 섬으로 떠나는 날이다. 호놀룰루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40분정도 가는 거리에 있는 섬이다. 이 섬은 하와이제도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섬으로,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때묻지 않은 신비의 자연을 담고 있어 ‘가든 아일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신비의 가까운 섬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하나페이 전망대’와 ‘와일루아 폭포’ 그리고 ‘칼라라우 전망대’ 와 태평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와이메아캐니언’까지 둘러보는 호기를 잡았다. 그런데 어쩌랴. 차로 한 시간이나 걸려 올라간 ‘칼라라우 전망대’는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다. 잠시 안개가 거치는듯하면서 저 멀리 멋스런 계곡과 바다가 아련히 나타나는 가 했는데 다시 안개가 위력을 발휘해 그마저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원망스러웠다. 오전 시간이 아닌 정오를 지난 시간인데도, 안개는 우리의 시선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한사람 당 350달러나 주고 간 선택 관광인데 가장 멋진 장면을 사진에 담아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지막 날은 자유 시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어디에서 멋진 추억 하나를 더 낚을까 생각하다가, 하와이하면 가장 잘 알려진 와이키키 해변을 찾기로 했다. 수영은 못하지만, 그 모레사장만이라도 밟아보고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호텔로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봐, 지도를 그리면서까지 와이키키해변을 찾았다. 남녀모두 온몸에 모레찜질을 하느라 여염이 없었다. 그런가하면 배를 타고 즐기는 일행도 눈에 띈다. 마침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앞 맞은편엔 돛단배가 띄어져 있었고 한국인 듯한 청년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기꺼이 이에 일원이 돼 이 배에 오르고 말았다.
한 시간여에 걸친 돛단배 승선은 그런대로 기분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배에서 일하는 청년은 한국말을 제법 잘도 구사했을 뿐 아니라 꼭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보니, 어머니는 한국인이며 아버지가 미국인인데 부모들은 이혼을 했고 자신의 나이는 스물한 살로 이곳에서 일하며 자립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청년, 참으로 티 없이 밝고 구김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가 틀림없을 정도로 선량하고 당당해 보였다. 여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 청년은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잊으면 안 된다며 철저히 교육을 시킨 결과 아무런 불편 없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대견스럽기 한이 없었다. 헤어지면서 꿋꿋이 당당하게 살아가라며 손을 맞잡고 약간의 팁을 쥐어줬다.
그리고 저녁엔 배를 타고 하와이 해변을 돌며 만찬을 하는 역시 선택관광 일정이었다. 두 시간 동안 3층짜리 거대한 배가 하와이 해안가를 누비면서 디너쇼를 즐기는 ‘선셋 알라카이 디너 쿠르즈’ 관광이었다. 특히 관광객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원을 그리며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시간은 하이라이트 중에 하이라이트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하와이 하늘아래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날렸다.
당초 큰 부담을 안고 떠났던 하와이여행은 별 탈 없이 마무리가 되고 보니 아직은 다리의 떨림보다는 가슴이 더 떨렸던 것 같다. 떠나기 전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홀가분히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역시나 막내아들이 차를 갖고 나와 아무런 불편 없이 귀가할 수가 있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이키키해변이나 신비의 섬인 ‘카우아이’보다는 지금도 돛단배의 조수로 일하고 있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미국 청년의 해맑은 모습이 더 눈에 밟히고 아른거린다. 이 청년은 지금도 그 해변에서 돛단배를 펴고 접는 일에 열중하며 누구도 탓하지 않은 채 생업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이 청년의 앞날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픈 마음은 무슨 연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