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상 수시인 poem essay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작가마을)을 출간했습니다.
◉출판사 서평
김수상 시인이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시인의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작가마을)를 출간했다. 이번에 펴낸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는 김수상 시인이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독서와 사유로 채워온 자신만의 시작노트이자,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에 다름아니다.
새벽녘 문득 깨어나 잠을 설치거나 여행 중에 얻은 단상들이며 타인의 한 줄 싯귀에서도 시인의 감성은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감성들을 잘 녹여내어 10여 년간 묵히고 삭혀서 365개의 단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쓰여진 시인의 단상에는 무수한 생각의 가지들이 우후죽순 자라나 세상을 덮는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은 온통 詩의 세상이다. 시의 세상이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광활한 역사이고 우주가 된다.
무엇보다 시인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화하고 토해놓는지 이번 산문집에 고스란히 담았다. 미사여구가 없는 진솔한 감성의 고백인 셈이다. 하여 김수상의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는 모든 시인들의 사유이자 시적 멘토이고 창작의 씨앗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이 풀어놓는 시에 대한 상상은 찰지고 야무지다.
또한 김수상 시인의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에는 저자의 감성적 산문에 맞는 다양한 사진들이 담겨 있다. 문인수 시인이 평소 즐겨 쓰던 모자며 강원도 철원의 정춘근 시인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통일시계, 피란기 근대문학의 공간역할을 했던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 용두산, 이중섭 화가가 쭈그려 앉아 담뱃갑에 그림을 그렸다는 골목길, 강진의 갯벌바다, 경주, 구미, 대구 등 다양한 곳의 사진들이 시인의 아포리즘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시인의 감성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사진에는 아무런 설명을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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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서문
잠이 안 오는 새벽에, 한밤중에 쓴 단상(斷想)들을 10여 년 정도 모으고 버릴 것은 버리니 365개가 남았습니다. 1년은 365일이니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독자분들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또 실패인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어떤 문장은 이미 시에서 써먹었고 또 다른 문장은 지나간 괴로움이기도 합니다. 기쁜 일과 슬픈 일에도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허비하지 않기로 다짐도 해봅니다.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입니다. 솔숲의 좁은 산책길과 밤과 새벽의 막막한 시간들, 아직까지 저를 거두어주고 있는 모든 인연들께도 큰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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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약력
김수상 시인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3년 《시와표현》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 『편향의 곧은 나무』, 『다친 새는 어디로 갔나』, 『물구라는 나무』가 있다. 제4회 박영근 작품상과 제7회 작가정신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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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김수상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
■작가의 말
■껍질은 이성이고 과육은 감상이다
■불면이라는 면빨!
■희망은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을 통해서 생긴다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깡통은 비어야 비로소 깡통이다
■나는 내 죄업의 가여운 상속자
■절뚝거리는 봄 사랑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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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아포리즘 엿보기
5
대부분의 과일은 껍질이 과육을 보호한다. 껍질은 이성이고 과육은 감성이다. 이성이 보호하기 때문에 감성의 즙은 달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성은 분별하는 마음인데 이성을 내려놓아야 존재의 바탕에 도달할 수 있다. 이성도 감성도 그 바탕이 아니면 드러날 수 없다.
8
넘어간다. 사멸하는 해가 안간힘을 다해 황금빛을 뿌려놓았다. 살아야 한다. 다시 악착같이.
11
불안은 육체에 깃들지 않는다. 불안은 영혼의 표정이다. 육체가 아픈 것을 고통이라 하고, 영혼이 아픈 것을 불안이라 하자. 고통은 치유될 수 있지만 불안은 죽음까지 함께 간다. 불안은 영혼을 ‘장식’한다.
15
청어를 먹은 적 있다. 가시가 많았다. 하늘 한 모서리가 신경다발을 당겨 감기 시작했다. 햇살이 가시처럼 튕겨 나왔다. 늦가을이었다.
17
프루스트 당신의 문체는 절제가 있고, 고전적 기품을 지녔다. 장황함을 버리고 나는 당신에게서 침묵을 배우고 싶다. 표현되지 않고 희생당한 것들이 오히려 당신의 문체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표현할 것이 없으니 희생시킬 것도 없다. 내 문장은 완전 거덜 나서 너덜너덜한 걸레가 다 되어간다.
25
아버지 돌아가신 날, 신발이 떡이 되었다. 봉분이 올라갈 무렵부터 봄비가 제대로 내렸고, 황토가 달라붙은 신발도 밑창의 살이 올라 슬픔의 두께를 제대로 이룩했다. 신발이, 슬픔이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
36
친구 어머니의 문상을 다녀왔다. 장맛비는 내리다 그치고 다시 내리고, 아내가 없는 나는 옛 친구와 그의 아내들 앞에서 죽음과 노후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연설했다. 집에 돌아와서 개처럼 엎드려 생각하니, 나의 노후는 오래된 하수구의 배관처럼 낡디낡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괜히 오버한 것이다.
46
누에는 뽕잎을 먹고 뽕잎을 그대로 싸지 않고 비단을 만든다. 뽕잎에서 비단은 얼마나 먼 은유인가. 작가는 누에다. 말의 고치에 갇혀서 마침내 비단을 만드는 운명. 그러나 말을 먹고 말을 싸면 벌레밖에 안 된다.
49
꿀벌은 일생에 단 한 번 침을 쏘는데 침을 쏠 때, 내장까지 빠져 나와 죽는다고 한다. 시여, 시시한 내 시여. 너는 언제 내장까지 따라 나와 단 한 번 죽고 말 것인가.
56
청춘의 어느 때, 대구백화점 뒷골목 술집에서 친구가 자기 애인의 토사물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아내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시인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도 그러해야 한다.
73
명품은 낡으면 빈티지가 되지만, 짝퉁은 낡으면 빈티가 난다. 지식의 자기 내면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지혜가 된다.
83
자원은 유한하고 욕망은 무한하다. 경제학의 대전제다. 경제적인 시란 무엇인가. 자음과 모음은 유한하지만 언어의 조합은 무한하다. 시는 언어를 비틀고 조합하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언어를 비튼다는 것은 인식을 비트는 일이다. 인식을 비틀지 않고서 새로운 삶은 얻어지지 않는다. 시에 이르는 길은 새로운 삶에 이르는 길이다. 언어를 날것으로 포획하려는 시인의 이기심이야말로 시의 동력이다. 시인은 언어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다.
90
희망은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을 통해서 생긴다.
102
어느 참한 저녁, 벼르고 벼르던 시에 달려들었더니 시가 송곳니로 나를 콱, 물어버렸다.
138
불안은 육체에 깃들지 않는다. 불안은 영혼의 표정이다. 육체가 아픈 것이 고통이라면 영혼이 아픈 것은 불안이다. 고통은 치유될 수 있지만 불안은 죽음까지 함께 간다.
187
나의 언어는 오래된 빵조각처럼 굳어버렸다. 가스통 바슐라르여, 내 몽상을 회복해다오. 매우 멀리까지 꿈꾸어 하나의 물건이 어떻게 이름을 만날 수 있었는지 알려다오. 아니면 자폭할 가스통이라도 좀 주든지.
첫댓글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