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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우리집 대소사
1. 80톤 크레인 매각
2. 고은 차랼사고
3. 큰아들 인생 피크
4. 한달만에 10년 경험
5. 둘째 누이 사망
6. 집사람의 합창단
7. 12.3 계엄과 광화문 태극 집회
8. 장희 귀국
9. 해외여행
(1) 하문 고랑서
(2) 브루나이
(3) 베니스 돌로미티 밀라노
(4) 나트랑 달랏 동창 4명
2025년 우리집 대소사
1. 80톤 크레인 매각
12월에 수출업자가 80톤을 수출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수락을 하였다.
현재 국내 건설 상황은 불황이 계속되어 건설장비가 주차장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차주는 기사 급료도 못주는 상황이라 장비를 매각하려고 애를 써도 매입자가 없으니 장비 가격은 부르는 게 값으로 하락하고 있다.
다행히 건설현장이 나타나면 정상가격은 고사하고 덤핑으로 치고 들어간다.
톤수별로 가격이 있는데 이 가격표가 무너진 지 오래다.
건설현장은 장비 검사가 엄격하여 약간의 하자만 나타나도 교체를 해야 하고 수리를 해도 안전 점검에 합격하는 것도 큰일이다.
안전도 좋지만 문제도 안 되고 작업하는데 영향도 없는데 안전점검이라고 수리나 교체하라고 하면 건설현장의 맨 마지막 하도급업자인 장비 임대업자는 무조건 순응을 해야 한다.
이럴 때에 장비를 매입하겠다니 가격은 고사하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스미토모 80톤 크로라 크레인은 95년 일본에서 수입하여 잘 나가다가 별안간 IMF 환란이 닥처 850원에 산 딸라 환율이 1700원으로 뛰고 금융 연체이자가 18%에서 30%로 뛰니 리스료를 당해낼 장사가 없다.
이때가 사업을 하며 내 일생 최대의 고난의 세월이었다.
잘 나가던 우리나라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더니 민주 팔이 하면서 펀더멘탈이 강한 우리나라를 순식간에 부도위기에 몰아넣고 우리나라 알짜기업을 외국에 헐값으로 팔아넘기고 직원은 별안간 실업자가 되어 나라를 거지로 만든 갱제 갱제 하면서 경제대통령이라고 큰소리치던 김영삼의 치적이다.
2. 고은 차량사고
토론토에 사는 손녀 고은이가 작년에 자동차 면허증을 획득 하였다.
유난히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고은이는 면허증 딸 조건이 되자 즉시 자동차 면허시험을 보고 합격을 한 것이다.
카나다에서는 16세에 자동차 면허증을 딸 수가 있고 1년 동안은 보호자와 같이 타야 된단다.
금년 8원 8일 오후에 자기 엄마와 같이 엘란트라 자동차를 몰고 동네를 돌았다.
운전을 끝낼 즈음 골목에서 나오는 차를 피하기 위하여 피하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그것도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더 쎄게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급속으로 달려 앞에 정차해 있는 고급 suv 승용차를 뒤에서 받았다,
다행히 대형 승용차는 범퍼가 약간 높아 고은이 차는 그 차를 뒤에서 받으며 그 차 뒷범퍼 밑으로 들어갔다.
고은이 차는 앞 범퍼는 물론 본넷트 엔진룸까지 앞차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만 다행으로 고은이차의 에어빽이 작동하며 고은이와 엄마를 보호하여 커다란 상처를 막아 주었다.
엘란트라의 에어빽이 큰 사고를 막아주는 1등 공신이다.
엄마가 먼저 차에서 나와 고은이를 끄집어 냈다.
에어빽 터질 때의 연기로 차가 불날 것이 염려되어 고은이 부터 구해낸 것이다.
엄마가 다시 차에 들어가 후진으로 앞차에서 떼어낸 후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정차되어있는 고급승용차에 전화를 하여 사고 났다고 통보를 하고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였다,
보험사는 한국같이 빨리 움직이지는 않지만 정확하게 하는 모양이다.
보험사에서 차는 대차를 해 주고 엘란트라는 폐차 하기로 판정이 나왔단다.
고은이와 엄마는 병원 진단을 받고 고은이는 발의 타박상은 별것이 아니지만 충격에 의한 심리치료를 받아야 된단다.
큰 사고지만 조용하게 끝나는 게 참으로 감사하고 고맙다.
3. 큰아들 인생 피크
큰아들 혁진이가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가 캐나다에 취업형식으로 창업회사에 들어갔는데 날탕이다.
윈저에서 마음고생하다 토론토로 와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자리를 잡고 고급 샐러리맨이 되었다.
그 사이에 토론토대 출신 소영 이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았다.
며느리 소영 이는 늦게나마 법원에 취직하여 안주하게 되었다.
이들이 가정을 이루어 벌써 사십대 후반이다.
자식들은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성적도 좋지 사고도 안내고 말도 잘 들으니 좋고 부부는 회사에서 충분한 봉급을 받으니 가족이 화목하고 불편한 것이 없으니 지금 세상에 더 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상상을 했던 캠핑카로 캠핑을 하며 낚시를 하고 주택을 취향에 맞게 꾸며보는 것이다.
금년 7월에 아이오닉9 현대 전기차를 1억을 주고 샀다.
한국에는 아이오닉 5가 대세고 나는 아이오닉 9는 길거리에서 보지도 못했다.
전기차 중에서 최고급이고 출고를 시작한지 얼마도 되지 않았다.
현대 토론도 대리점에서 구입을 했는데 대리점 판매 1호라고 기념사진 까지 찍었다.
혁진 이는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탑재되어 있어서 값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마음에 들어 구입했단다.
이제 자기가 이런 고급차도 탈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고 자신을 하고 아주 만족해하고 있었다.
차를 구입하고 한 달 만인 9월 2일에 접촉사고가 났다.
앞지르기 하던 차가 혁진이 차를 앞 휀다에서 부터 앞문 뒷문을 글거 써비스 공장에 갔다,
새 차를 긁혔으니 얼마나 아깝고 안타까웠을가 하는 마음이 상상이 간다.
한국에서 부품이 오려면 3개월은 걸린다고 한다.
혁진이 차에 있는 블랙박스를 보험사가 보고 상대책임이라고 했단다.
아이오닉 급수의 미국 고급차로 대차해 주었는데 아이오닉9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차가 둔탁하고 세심한 디자인이 아니라 실망스럽다고 서운해 한다.
캐나다에는 대부분의 차가 블랙박스를 달지 않아 우리나라 같이 모두 블랙박스를 달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급차도 블랙박스가 옵숀이라 달지 않은 차가 대부분이다.
혁진 이를 받은 차도 블랙박스를 달지 않은 차라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욱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금년 여름 방학에 자기들이 꿈꾸어 왔던 캠핑카로 낚시를 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낚시 도구를 사고 낚싯줄 매는법을 배우고 8월 11일 캠핑카를 렌트하여 온 식구가 대망의 여름휴가를 떠났다.
캠핑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우려고 불을 피우려고 하니 이 캠핑장은 불이 금지되어 있으니 다른 캠핑장으로 가랜다.
가르쳐 주는 다른 캠핑장으로 옮겨 짐을 풀고 루어낚시를 하기 위하여 30여분을 울라가도 마땅한 장소도 못 찾고 고기는 한 마리도 못잡고 캠핑카로 돌아왔다.
캠핑카는 전기가 약하여 조리하기도 불편하고 모든 여건이 맞지 않아 온 집안 시구들의 의견을 모아 철수하기로 하였다.
희망찬 여름 버케이숀은 물 건너 갔다.
캠핑카는 운전을 하는 데도 핸들이 흔들려 덜덜 떠는 구형이다.
캠핑카를 반납하는데 일주일을 3일 만에 오니 하루를 탕감해 주었단다.
더 황당한 것은 고은이가 차량사고를 내고 다음날 떠났다는 일이다.
고은이는 타박상이 있는 다리가 걸어가는 데 힘들어 하고 충격에 의한 머리가 흔들리는 증상이 있는 상태서 캠핑에 참여한 것이다.
다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고은이도 충분하게 캠핑을 갔다올 수 있다고 자신을 하여 가긴 갔는데 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엄마도 머리가 어지어질 한다는 데 고은 이는 세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캠핑을 가긴 가야 되겠는데 꼭 가야 되는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준비도 열심히 한 캠핑이 실망스럽게 끝난 것 같다.
그래도 캐나다에 가서 자리 잡고 집안이 안정되고 부부금실 좋고 애들 말 잘 들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무었을 더 바랄게 있겠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는 지금이 인생살이의 피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4. 한 달 만에 10년 경험
혁진이 이야기다.
10년 동안에도 일어날까 말 가한 일이 한달 안에 다 발생했다.
현대 최신형 전기차 아이오닉9를 뱃장 좋게 1억을 주고 토론토 대리점에서 구매 1호로 매입하고 현대직원과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타고 다니던 소렌토는 즉시 팔았다.
차를 매입하고 한 달 만에 접촉 사고로 앞지르던 차에 앞뒷문이 다 글켜서 부품교체 하는데 한국에서 오려면 3개월이 걸려야 온단다.
새 차가 사고가 나서 안타깝지만 대신 동급의 미국 차를 대차해서 타고 다닌다.
혁진이 사고 나기 며칠 전인 8월 8일 고은이가 집의 엘란트라를 엄마를 동승시키고 운전을 하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악셀레이터를 밟아 앞에 정차해 있는 대형 승용차를 받아 그 차 뒷 범퍼 밑으로 엘란트라 엔진룸까지 빨려 들어갔다.
다행이도 에어백이 터져 고은 이와 엄마가 살아날 수 있었다.
에어백 덕분에 경상에 충격에 의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정도로 끝첬다.
엘란트라는 폐차처분이 내려지고 동급의 차를 대차 받았다.
집에는 자기 차는 없고 남의 차만 두 대가 있다.
혁진이의 일생 로망중 하나인 캠핑카를 끌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런 기회가 이번 여름방학에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고은이 사고 나고 바로 8월 11일 날 캠핑카를 렌트하여 온 식구가 룰루랄라 낚시여행을 떠난 것이다.
캠핑카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낚시 장소도 못마땅하여 온 식구 의견이 집에 가서 노는 것이 더 좋다고 삼일만에 캠핑카를 반납하였다.
낚시도구를 사고 낚싯바늘 매는 것을 배운 것이 허망스럽게 됐다.
5. 둘째누이 소천
둘째 누이의 딸 경란이 한 테서 전화가 와서 둘째누이가 11월 22일 새벽 1시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99세이니 백수를 한 것이다.
10년 전부터 치매가 와서 딸도 몰라보는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20대초에 풍덕내 면장의 아들인 국민학교 선생인 정하영 매형과 결혼을 하여 봉규를 낳고 유복자 경란이를 낳았다.
카이스트 기관실에 근무하는 봉규가 급성 폐렴으로 먼저 세상을 뜨는 불상사가 났다.
봉규가 죽기 전에 나보고 풍덕내 부동산이 17억 정도인데 신경 좀 써 달라고 했다.
이 부동산이 집안싸움이 되고 식구끼리 불화가 생겼다.
누이는 아파트 한 채를 사서 혼자 살며 경란이가 보호하고 죽으면 손자가 갖기로 했다.
누이는 돌아가시고 서울 성모병원에 안치를 했는데 막내 누이가 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해도 올가 말가 망설이는데 경란이가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마지막 가는데 오지 않느냐고 핍박을 한다.
장례식장에 막내 누이가 와서 경란이가 마지막 가는 언니를 안보면 일생동안 얼마나 후회할거냐고 하니 정말 그래하며 자기가 머뭇거린 것에 미안함을 표현한다.
7남매 중 모두 저 세상으로 가고 막내 누이와 나만 남았다.
6. 집사람의 합창단
집사람이 국악 민요 장구에 심취해 있더니 2년 전부터 합창단의 가곡에 빠져있다.
자기 목소리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압구정 합창단 무학 합창단 양재 서초 합창단 한남동 합창단 을 열심히 나가고 있다.
대개 환갑에서 팔순까지의 노인 합창단으로 30여명에서 50명 정도의 인원이다.
즐겁게 잘 나가고 즐기며 구에서 초청되어 합창을 하기도 한다.
즐기고 잘 나가던 집사람이 양재합창단의 총무를 맡고부터 지휘자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지휘자도 봉사하는 마음이라 합창대원이 내는 한 달에 만원의 회비에서 교통비조로 약간씩 받고 있다.
합창단이 초청되어 갈 때는 지휘자에게 조금 더 주는데 이때 수고비조로 주는 금액에 차이가 난다고 갈등이 시작되었다.
지휘자가 직접 집사람과 대화를 했으면 즉시 풀릴 문제를 다른 합창 대원에게 말하면서 말이 이리저리 옮기면서 집사람은 분이 안 풀려 지휘자에게 전화를 하며 상황을 설명한다.
만치도 않은 금액이지만 집사람은 완전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조그만 차이도 용납을 못하고 자존심 싸움이 시작 되었다.
바로 해결될 것이지만 문제꺼리도 되지 않은 일을 참지 못하는 예민한 성질 탓에 혼자 애태우고 있는 형상이다.
7. 12. 3 계엄과 광화문 태극 집회
해병학교 35기 질풍과 노도 60년을 넘어 란 문집에 게제.
1. 2024년12월 3일
2.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 광화문 태극 집회
4. 한남동 집회
5. 2025년 1월 15일
6. 좌익의 재판 현황
7. 부정선거.
8. 떠오른 두 명의 영웅
9. 2025년 1월 18일 서부지법 파동
10. 2025년 3월 1일
11. 너는 너 나는 나
1. 2024년12월 3일
12월 3일 13시에 헌법 재판소 앞에 집합 하라고 해병 구국동지회에서 연락이 와서 빨간 모자를 쓰고 헌재 정문 앞에 갔다.
14시에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이 있는데 이때 원고인 국회 법사위원장인 정청래가 온다는 것이다.
이때 해병대를 모욕한 정청래를 붙잡겠다는 것이다.
해병 채상병 사망 국회 청문회 때에 정청래가 증인으로 나온 해병대 장군을 모욕을 준 것이 전체의 해병대를 모욕한 것이라고 해병대 전체가 일어난 것이다.
전 해병대 예비역이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하여 정청래 타도를 외치며 법사위원장 정청래를 잡겠다고 결의를 하고 국회로 진입하려는데 전경에 막혀 불발이 되고 해병대 집행위원회에서 정청래에게 항의 문서를 전달하겠다는 것으로 이날은 끝났다.
해병대 구국 동지회에서는 다음날부터 정청래 집 앞에서 항의집회를 조를 짜서 매일 했다.
그래도 나타나지를 않아 정청래 지역구 사무실 앞에로 집회를 옮겨 계속했는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2일 밖에 근무를 안했는데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을 앞세워 탄핵을 강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만 여당은 이를 막을 힘이 아예 없다.
헌재에서 방통위원장 탄핵을 심판하는데 원고인 정청래가 헌재 재판에 참석한다고 하여 헌재 정문 앞에서 해병대 구국동지회 대원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헌재로 들어가는 것은 확인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정청래는 보이지 않아 오늘도 헛걸음을 하였다.
2.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점심에 헌재에 갔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자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10시에 비상계엄을 발표하였다.
나는 야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임을 앞세워 탄핵 남발과 국정운영에 발목 잡기만 하고 국가를 위하여 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민주당의 행패를 뿌리 뽑아 정상인 국가로 되돌려 놓는 일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민주당은 탄핵을 남발하다 보니 민주당대표 이재명을 재판하는 부장검사들 까지 탄핵을 하였다.
선진국으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십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자유 민주국가에서 비상계엄이라는 후진국형 계엄을 했다는 것이 칭찬할만한 일이 아니지만 민주당의 국헌 문란의 행패를 보면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반국가 세력을 척결 하겠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비상계엄이 발동되고 두 시간이 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국회에서 결의하여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결의를 한다면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박정희때 같이 국회를 장악하고 방송 신문을 장악하고 반국가 행위자를 일망타진하는 줄로 알았더니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두 시간이 지난 자정이 조금 지나니 정말로 비상계엄을 해제한다고 하니 허탈하기 짝이 없다.
비상계엄 출동 인원은 국회에 국회의원수보다 적은 병력을 실탄도 없이 출동시키고 대신 선거관리 위원회에 3백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선관위 서버를 포렌식 처리하고 주재하고 있는 중국인 60여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선관위 서버 포레식한 것이 비상계엄의 다란다.
비상계엄 출동인원이 몇 개 사단을 출동시킨 것도 아니고 이게 다이니 어린이 장난하듯이 한 계엄이 납득이 안 간다.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걸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실탄도 없는 계엄군을 출동시킨 것은 아무래도 뒤에 무슨 큰 이유가 있을 터인데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거대 야당은 계엄을 미리 눈치 채고 비상계엄 선포하자마자 국회에 들어가서 비상계엄 을 해제하여 버렸다.
연이어 대통령 계엄은 내란행위라며 대통령을 탄핵해 버렸다.
내란수괴 윤석렬 대통령을 탄핵하고 형사책임까지 져야한다고 공수처 검찰 경찰 모두 윤대통령을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윤대통령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법적인 아무 하자도 없다고 항변하였다.
이미 피의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덤벼드는 거대 야당세력은 총에 맞더라도 대통령 관저에 쳐들어가 대통령을 잡어오라고 명령을 한다.
3. 광화문 태극 집회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마자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때 간첩 일을 감사한다고 감사원장을 탄핵, 대통령대행인 국무총리를 탄핵, 계엄관련해서 국방부 장관 탄핵, 법무부 장관 탄핵, 경찰총장 탄핵, 육군참모총장 탄핵, 방첩사령관 탄핵, 수방사령관 탄핵, 특전사령관 탄핵, 정보사령관 탄핵 등 29건의 탄핵을 남발 하였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민주당이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행정을 마비시키려고 있는 힘을 다 하는 것 같다.
3백 명 국회의원 중 190석을 차지하여 국회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여 얼마던지 자기들 마음대로 법을 쥐락 펴락 할 수 있는데 국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망하라고 있는 힘을 다 하는 것 같다.
국가 예산을 보더라도 문재인 시절 완전히 망가트려놓은 원전을 간신히 윤대통령이 복구해 놓으니 이번 예산에서 원전예산을 대폭 감액하여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았다.
대통령 활동비는 제로로 만들어 놓아 이게 무슨 짓인가 과연 민주당 의원들이 제 정신이 있나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아건 아니다 싶으니 국민이 윤 대통령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 광화문 광장으로 태극기를 들고 뛰처 나가게 만들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연금되어 있는 윤 대통령은 국정을 흔드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부정선거를 바로 잡기위하여 계엄을 했다고 하며 대 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이 선관위 하나 감사를 못해 계엄을 선포해야 할 만큼 모든 정부 조직 안에 좌익 세력이 포진하고 있어 대통령의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를 든 광화문 집회는 날이 갈수록 인파가 몰려 지하철이 광화문 역은 무정차로 달리기도 한다.
광화문에는 각기 급히 조직된 애국단체들이 모여 한데뭉치니 그 인원이 무시 못 할 정도로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 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이 모였다.
추운 겨울에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소리 높여 탄핵무효를 외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월이 지나 1월이 되니 노인들만 나오던 광화문 광장 태극 집회에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시간이 가면서 좌파와 더불어 민주당이 여태껏 해온 해악을 젊은이 들이 알기 시작을 한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 하였다.
이것은 우익 유투버 들의 공이 큰 것이다.
이때 계엄령이 국민에 대한 계몽령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우익 유투버 들이 좌파가 저지른 불공정한 일을 미주알고주알 캐내기 시작한 것을 청년들이 알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청년들의 정보능력과 활동 영역은 지금까지 노인들이 해온 똑같은 방식의 집회와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반대인 탄핵찬성 좌파들도 맞불집회를 강행하나 우익의 태극집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매주 광화문 광장을 꽉 채운 그 많은 우익단체가 태극기 집회를 하고 시가행진을 해도 중앙매체인 조 중 동 메인 신문에는 사진하나 없고 집회했다는 글자하나 없다.
좌익단체가 대통령 실을 처 들어간다는 정보가 있어 삼군 사관학교와 해병대는 삼각지에 진을 치고 있어 나는 광화문 보다 삼각지 쪽에도 많이 참석을 하였다.
좌익단체가 경운기 까지 끌고 대통령 관저로 처 들어간다고 하여 삼각지 역에서 한강진 역으로 이동하여 대기하고 저지할 준비를 갖추고 기다렸다.
이들은 우리가 대처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사라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4. 한남동 집회
문재인 시절 급히 만든 공수처가 대통령을 체포하겠다고 체포영장을 중앙지법에 청구하였으나 기각당하니 서부지법에 청구하여 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서부지법은 좌파단체인 우리법 연구회가 장악하고 있어 법을 고처가면서 까지 영장을 발부하였다.
우익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24시간 아무 때나 와서 대통령을 구속하여 끌고 가면 만사가 끝이다.
법사위에서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경찰 2, 3천명을 동원하여 끌고 오라고 한다.
1차 영장 집행은 대통령 경호실 1차 저지선을 통과하였으나 2차 저지선에서 막혀 돌아갔다.
2차 체포영장을 또 서부지원에서 발부받아 공수처가 대통령 관저에 들어가서 변호인단과 옥신각신한 모양이다.
공수처는 내란죄를 조사할 권한이 없는데 내란죄로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공수처가 법을 어기는 것이라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공수처는 체포의 권한이 없고 경찰에만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의 불법인 것을 알지만 지금 태극집회 국민과 경찰이 충돌을 하면 불상사로 인명피해가 난다.
시위국민과 경찰 모두 우리나라 백성인데 피를 흘리면 안 된다며 내가 공수처의 불법인 것을 알지만 체포에 응하고 법적인 대항을 하겠다며 스스로 체포당했다는 소식이다.
아직까지도 대통령은 좌파들의 막무가네식 밀어붙이기와 안하무인식 처리방식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금년 늦겨울은 유난히 춥다.
엄동설한에 태극기 집회는 광화문에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주력부대가 이동을 하고 한남동에서는 주야로 24시간을 계속 하는 것이니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한남동 태극집회는 한남대교 북단 네거리에서 이태원과 버티고개로 가는 삼거리 까지 태극기 부대가 꽉 찼다.
늦은 밤이면 노인들은 집에 가라고 하고 젊은 청년들이 지킨다.
낮의 집회와 밤의 집회는 강도가 다르다.
낮에는 겨울 등산정도의 옷만 입으면 버틸 수 있으나 겨울밤에는 내복은 필수이지만 하의도 내복을 하나 더 입고 바지도 걷바지로 두개의 바지를 입어도 깔개 위에 앉아 있으면 어느 결에 몸이 얼어 온다.
이 추운 겨울에 대통령 지키겠다고 밤에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대견스러움을 넘어 경이스럽게 보인다.
눈까지 올 때는 정말로 대책이 안 슨다.
누가 스폰으로 오뎅 2천그릇을 보냈다 누가 저녁을 몇 백 그릇 보냈다고 하여 밥 먹는데 바쁘지도 않으니 길게 줄을 서서 국물을 먹는데 우리 부부는 집이 가까우니 집으로 갔다.
집사람은 한남동에 매일 개근을 한다.
처제 부부도 친구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서 한밤자고 새벽에 한남동으로 가기도 했다.
집사람은 집회 쫓아다니며 구호 외치다 입이 부르트기도 했다.
구국 충정도 좋지만 나이든 사람은 건강을 생각해 몸도 추슬러야 한다.
공수처가 서부지법에서 대통령을 내란수괴 죄로 2차 구속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한다.
한남동 태극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비상한 각오를 하고 대통령 잡혀가는 것을 몸으로 저지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주관한 신의한수는 통로를 열어놓고 대통령 잡혀가는 것을 모르고 평화집회소리만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신의한수가 아니라 신의 똥수를 두고 말았다.
아무리 많은 인파가 태극집회를 하더라도 좌익들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너희들은 해볼 테면 해 보라 우리는 우리대로 간다며 저희 마음 맞는 대로 판결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5. 2025년 1월 15일
집사람은 새벽에 유투브를 보다가 한남동이 위태하다며 택시를 타고 한남동 집회장으로 갔다.
나는 영등포가다가 긴급뉴스로 10시 33분에 대통령이 잡혀갔다고 하여 한남동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집사람에게 전화 연락을 하니 현장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잡혀갔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행사 집행부는 무능력한 거다.
잡혀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모여든 사람을 우롱한 거나 마찬가지다.
조금 있으니 전 국무총리이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황교안이 집사람 옆에 나타났다고 한다.
관저에서 잡혀가는 것을 보고 나오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집사람이 황교안을 붙잡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48시간 내에 풀려 날거라고 말했다.
48시간 내에 풀려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그것은 자기 소관 밖이라고 한다.
경험을 해 봤으면서 참으로 순진한 소리를 한다.
좌익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만 오면 자기들 잣대로 요리할 것인데 박근혜때 그렇게 경험을 하고도 모르니 순진한 건지 미욱한 건지 황교안을 잘못 본 것 같다.
6. 좌익의 재판 현황
헌재에서 방통 위원장 이진숙이 4;4로 판결이 났다.
이틀 근무를 하고 탄핵을 당했는데 이틀 근무한 방통 위원장을 탄핵한 국회도 미쳤지만 이를 판결한 헌재가 4;4라는 판결을 내렸으니 승소를 했지만 헌재도 미친것은 마찬가지다.
헌재 재판관 4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윤 대통령을 탄핵 기각을 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판검사들이 썩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나라 최고의 자리에 있고 전 국민이 우러러 보는 헌법재판관은 청렴결백하고 정의로운 사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정치에 휘둘리는 썩은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윤 대통령은 아무리 대통령 권한을 행사했더라도 이 썩은 인간들이 제멋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조국은 재판을 5년 동안 끌어 징역형이 선고 되었는데도 구속을 안 시키고 유예하여 정당을 창당하고 국회에 입성하여 목에 힘을 주고 있다.
이재명은 선거법위반, 대장동 사건, 백현동 사건, 불법 딸라 송금 등 하도 죄가 많아 열거하기도 힘든데 담당 판사는 휴가 가거나 도망가고 한건은 2년 만에 간신히 1심 구속 판결이 나도 2심은 열지도 않고 법정 기간을 넘겼다.
이재명의 다른 재판은 언제 열릴지도 모른다.
윤석열은 속전속결로 구속 2개월 만에 결심을 하려고 한다.
그래야 대선을 치루고 이재명이 출마하여 이재명의 재판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판사가 이렇게 썩은 줄은 몰랐다.
정부기관 경찰 군 판검사 국회 등 등 에 좌익들이 이렇게 많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 계엄 사태로 이 좌파 세력들이 수면위로 나와 온 국민이 알아 버렸다.
그리고 좌익 세력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소란한 정국 속에 계엄전의 윤대통령 지지도가 10% 미만이었는데 계엄 후에 매주 상승하여 30%를 넘더니 50%를 돌파하였다.
구속되어 재판받는 윤 대통령이 갈수록 지지도가 올라가니 민주당은 여론조사 기관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7. 부정선거.
부정선거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공병오 티브이는 확률로 계산을 하니 부재자 투표에서 전면적으로 부정이 저질러져 민주당의 51명의 낙선자가 당선자로 둔갑을 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구는 유권자수보다 투표수가 더 많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51명의 낙선자가 국민의 힘으로 바뀌면 현재의 여소야대가 반대로 여대 야소로 되어 더불어 민주당이 야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같이 탄핵을 남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선거에 대한 소송을 그렇게 많이 해도 기각을 하던지 소송을 미루어 한건도 결정이 난 것이 없으니 우리나라 선거관련 판사들과 선관위의 힘이 얼마나 쎈지 알게 되었다.
배춧잎 투표지가 나오던지 도장이 틀린 투표지가 나오던지 소송에서는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다.
광화문 집회의 최대 구호는 유석열 탄핵 반대와 부정선거 다.
국민들은 비상계엄시 선관위에서 자료를 채취하여가서 그 결과를 발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묵묵부답이라 답답하기 그지없다.
선거관리 위원회 건물에서 잡아간 중국인 60명은 평택을 거처 오키나와까지 갔다고 하더니 미국이 조사 결과를 보내 주었다는 말도 없어 궁금하기 그지없다.
이 중국인들이 선관위 내에서 전 세계 부정선거를 조작했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미국이나 콩고 키르키스탄 선거에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국인 해커들을 우리가 잡아 간첩죄로 응징을 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외국인은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법을 제정하여 간첩도 취조를 못해 미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스카이 데일리에서 미국의 특수요원이 중국인 해커들을 취조하여 부정선거 개입을 알고 있는데 미국 측이 엠바고를 통보하여 알고 있는 것을 발표할 수 없어 엠바고가 해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미국 트럼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월 20일 취임하였다.
본인이 전번 선거에 부정선거로 낙선되었다고 부정선거에 대해 강하게 강조하는 트럼트가 취임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부정선거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크다.
특히 선관위의 중국 해커들을 미국이 취조했으니 미국의 취조 결과를 발표하여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의 부정선거에 개입하는 것 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답이다.
단지 미국이 중국인 조사한 것은 속속들이 우리에게 넘겨주어야 하고 정부는 현재 조사한 자료를 국민들이 알게 발표를 해 주어야 한다.
미국이 지금까지 중국인 해커를 잡아가고는 취조결과를 묵묵부답하는 것은 우방에 대한 결례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투표에 대해 국민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다.
8. 떠오른 두 명의 영웅
광화문 태극집회는 여러 단체들이 모여 행사를 하더니 지금은 전광훈목사 주관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매주 토요일은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탄핵 반대 부정선거를 외치는데 갈수록 인파가 많아지고 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까지 꽉 찬 시민의 수는 동원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이렇게 많이 모인다는 것은 민의가 무섭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위정자들은 이 민의를 파악하여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데 아스팔트의 노땅들이 응석부리는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
광화문 태극집회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전광훈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별안간 또 하나의 영웅이 나타났다
일타강사 전한길이 야당의 부패와 헌재 재판관들의 좌편향 상식을 넘는 판결에 대하여 역설하며 목소리 높여 심금을 울리는 강연을 한다.
특히 2030 세대들에게 호소하며 이 청년들의 호응이 불같이 일어나 그 세가 엄청나고 이 청년들은 IT 정보력이 뛰어나 좌익의 흠결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유투브에 올린다.
전한길은 부산 역에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과 민주당의 하는 행패를 조리 있고 명확하게 소리 지르며 설파를 하는데 부산역에 모인 인파가 맞는다고 함성을 지른다.
부산 역에서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부산역사이래 처음이란다.
다음 주는 대구 시에서 세이브 코리아주관 태극집회에 시민이 동대구역 광장에 구름같이 모여 대구의 역사상 최고의 인파가 모였다니 전한길의 인기는 천정부지다.
그 다음 주는 좌파의 성지 전라도 광주 금란로에서 태극집회가 열렸다.
광주 시장을 비롯하여 좌파들은 집회 반대를 위하여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금란로에서 열기로 하였다.
온 국민이 광주 집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우익은 광주에서 집회를 할 엄두도 못 내고 해봤자 실패의 연속이라 아예 포기한 지역인데 전한길이 탄핵반대 집회를 한다는 것이다.
좌익의 탄핵찬성집회도 518광장에서 대대적으로 연다고 맞불을 질렀다.
광주의 토요일 금남로의 태극집회는 깜작 놀랄 정도로 금남로를 꽉 채웠다.
518광주 시위 때보다도 많은 인파가 몰리고 광주 시민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전한길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판정을 받았다.
인파의 사진을 보니 시가를 꽉 채웠는데 더 놀란 것은 자칭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 금남로의 건물을 보니 미개발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 도시다.
518보상을 그렇게 많이 받고 후원을 해주었는데 누가 다 횡령을 한 것인지 발전된 우리나라도시가 아닌 것 같다.
맞불을 지른 좌익의 광장집회는 금남로 태극집회에 눌려 인원도 매우 작을 뿐 아니라 사기도 식어버렸다,
다음 주는 대전에서 태극집회가 열렸는데 넓은 보라매공원이 꽉 채워져 대전 경찰서가 생긴 이후에 최대의 인파라며 놀래버렸다.
전한길의 전국순회는 모든 기록을 갈아 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금 태극집회는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민의가 이런대도 법원의 태도는 변한 것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음 주인 삼일절에는 광화문 광장과 시청관장을 꽉 채우는 영웅 전광훈의 태극집회와 새로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태극집회를 열겠다는 전한길 세이브코리아가 같이 집회를 하는데 광화문 태극팀에서 인원이 분산될 까봐 신경전을 벌리는 것 같다.
광화문에는 토요일 마다 단골로 나오는 노인층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새로운 장소로 지정된 여의도는 전한길의 2030 젊은 층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많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좌익이 지금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많은 수의 유트버가 정보를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박근혜 때는 유투버가 미약해서 좌익에 휘둘리는 매스컴에 국민의 민심이 좌우되어 죄가 없어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윤석열 때는 많은 시민이 매스컴을 보지 않고 봐도 믿지 않으며 유투브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좌익이 국민들을 자기들 의사대로 움직이지 못하여 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좌익들이 잘못한 것이 유투부에 올라와 자기들의 치부가 드러나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9. 2025년 1월 18일 서부지법 파동
공수처가 체포 영장을 중앙지법에서 서부지법으로 섭렵을 하듯 나도 집회를 시청 앞에서 광화문을 거처 4시에 집사람과 서부지법으로 섭렵을 했다.
내가 서부지법을 가니 태극 집회인파가 온 도로를 점령하여 먼저 와 있다는 처제부부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만났다.
전철은 애오개역은 무정차 통과를 해 버렸다.
경찰버스가 양옆에 차벽을 세우고 집회 주최 측은 대형스크린에 스피커로 윤석렬을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서부지법에서도 깜작 놀랐을 것이다.
조용하던 서부지법에 정문 앞의 대로가 인파로 꽉 메워지고 탄핵반대 윤석렬 석방하라고 스피커에서는 울려 퍼지고 영장판사 사퇴하라고 아우성을 치니 직원들은 혼비박산을 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6시에 취조 받고 교도소로 간다고 하여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다 가자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밤샘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저녁 식사하러 가자고 인파를 뚫고 공덕동 로타리까지 와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열성 시위 꾼이 아직 대통령이 안 갔는데 왜 가느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공덕동 로터리에서 서부지법 가는 동쪽대로는 인파로 폐쇄되어 동쪽길 신호등 근처에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몸이 늙어서인지 겨울 밤 추위라 그런지 온몸이 추워오기 시작하여 참기 힘들 지경에 왔다.
집사람과 처제는 전경이 통제를 하면 큰소리로 야단을 친다.
신호등 옆에 있던 부녀가 무어라고 이야기 하더니 딸이 벤스 승용차를 끌고 와서 서부지법에서 나오는 길을 옆으로 막아버렸다.
전경이 몰려와 나오라고 하여도 차속에 앉아있다.
전경이 차를 빼라고 하니 시민들이 빼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결국은 경찰이 견인차로 끌고 갔는데 그 어머니가 딸에게 경찰서에 가서 묵비권 행사를 하라고 하며 변호사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해프닝이 끝나고 난 뒤에 마포 갈비 집에 처제부부와 4명이 들어가니 추운 몸이 풀리며 술 한잔하니 살만했다.
다음날 보니 태극시위 젊은이들이 새벽에 서부지원 담을 넘어 건물에 진입하여 기물을 파손하였다고 한다.
이때다 하고 시위자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야당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는데 여당에서는 옹호해주는 발언도 없다.
10. 2025년 3월 1일
독립 운동을 한 3.1절이다.
정부의 공식 삼일절 행사는 어디에서 열리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매년 3.1절에는 광화문 집회에 태극 전사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오늘 탄핵반대집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전광훈이 여의도에서는 전한길이 세몰이를 할 것이고 서울역에는 조원진이 대학로에는 대학생들이 모인다.
좌익의 탄핵 찬성집회는 경복궁 옆과 안국동에서 열린다.
나는 2시에 경복궁역에서 학교 운동장만한데서 좌익 탄핵찬성 집회 장소를 보았는데 집회인원이 하나도 없고 스피커만 소리 내고 있다.
광화문 태극집회는 2시에서 4시까지가 절정인데 여기 좌익 집회는 언제 사람이 모일지 궁금하다.
나는 2시에 경복궁역에서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으로 가는데 인파가 어찌나 많은지 앞으로 갈수가 없다.
차도와 인도가 꽉 차니 경찰은 건물 뒤편골목으로 회전을 시키니 뒷골목도 꽉 차서 밀려서 앞으로 간다.
종로 구청 앞에서 이순신 동상까지는 갔는데 스크린 쪽으로 꽉 찬 인원에 내가 설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아예 3시 반에 해병대가 시청에 모여 4시 시가행진에 선두부대라고 하여 계속 시청 앞으로 가기로 하였다.
광화문 네거리는 경찰이 차벽을 하고 건너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종각 쪽으로 내려가다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사 쪽으로 다시 향하고 있는데 내가 걸어가는 게 아니라 밀려서 간다.
광화문 우체국과 붙어있는 동아일보사 옆 보도에서는 인파에 끼여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서 있으며 앞사람 머리만 보이고 스피커 소리만 들린다.
스피커에서는 광화문역 지하철이 무정차로 통과하고 경찰에게는 차벽을 치워 사람이 지나 갈수 있게 하라고 일갈한다.
20M 거리를 20분 만에 빠져나와 광화문 네거리에 나오니 경복궁에서 광화문 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다.
동화 면세점이나 시의회 앞에서 연설을 들을 시간이 없어 대한문 시청 앞까지 계속 가니 3시 반이 되었다.
박근혜 때부터 윤석열 때까지 광화문 태극 집회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이다.
서울 역사상 최대의 인파가 모인 기록을 세울 것이다.
서울은 서울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태극 집회가 성황을 이루어 전국이 집회에 몸살을 알은 모양이다.
시청 옆에는 해병대 삼군 사관학교와 그외 집단이 행진을 하기 위하여 모여 있다.
해병대는 얼룩무늬 군복과 발간 모자로 나뉘었다.
나는 빨간 모자에 빨간 잠바를 입고 해병대 깃발을 들고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을 했다.
종각에서 한국은행을 돌아 남대문에서 시청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우리 동기생은 반은 구국동지회 팀으로 반은 씨니어 마린 팀으로 참석하여 행진을 하게 되었다.
서울역의 조원진 태극모임은 박근혜 때의 실력이 나와 조직적이고 악대와 제복으로 이목을 끌었다.
여의도의 전한길은 여의대로를 꽉 찬 인원을 동원하여 광화문에 버금가는 인원이 태극 모임에 참여를 하였다.
젊은이들이 주축으로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모양이다.
광화문에 모여든 인파 외에 새로운 여의도에 이렇게 많은 인파를 모이게 한 것은 전한길의 공로다.
11. 너는 너 나는 나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려 탄핵 반대 부정선거 타파를 외처대도 장외에서 국민들의 외침일 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이 헌법재판관 이다.
국회를 장악한 좌익과 군 경 검찰 고위공무원등 깊이 뿌리내린 좌파의 응어리는 쉽게 풀려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헌재의 정치적인 편향 판단은 국민의 외침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대로 떠들어라 나는 나대로 간다 하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헌재의 대법관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기다리는 것은 이번에 접어 버렸다.
대통령 탄핵은 좌익5 대 우익 3으로 기각되는 것으로 예상해 본다.
제발 모든 것이 잘 해결되어 태극집회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탄핵이 되면 사회 혼란이 극에 달할 것인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8. 장희 귀국
큰 누이의 둘째아들 임장희가 나의 국민학교 1년 선배다.
머리가 좋은데다 열심히 공부를 해 서울 중 고등학교 서울 공대를 나와 충주비료에 입사했다 바로 미국 MIT 공대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우 케미컬에 들어가 동양인으로 서는 처음으로 공장장을 하고 텍사스 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있다 지금은 집에서 쉰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에 와서 친척을 보고 미국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내가 혁범이 하고 이태리 돌로미티 여행을 하는데 트레치매 트래킹코스를 도는데 장희 한 테서 전화가 왔다.
미국이냐고 물으니 한국이란다.
나는 지금 밀라노 가는 중이라고 하니 소매치기 조심하라며 10월 14일 한국에서 만나자고 한다.
여행을 끝내고 서울 신사동 중식 집에서 우리부부와 막내 누이를 대동하고 가니 경희네 삼남매가 와 있다.
장희 부부는 예상외로 건강하게 보인다.
한국에서 지지궁상으로 사는 삼남매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미국에 있는 큰 누이의 큰아들 광희는 요양병원에 있고 그 와이프는 문병을 왔다 가는 중에 문에서 넘어져 치료하다 먼저 죽었다고 한다.
나는 죽은 사람에게는 안됐지만 광희 와이프는 너머 이기주의적이고 정이 안 간다고 했다.
광희는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촌에서 썩을 번한 나를 서울로 끌어올려 중학교를 다니게 한 장본인이다.
9. 해외여행
(1) 하문 고랑서
2025년은 설 명절이 1월 29일 수요일이다.
31일 하루만 회사에서 휴가를 내면 연휴일이 1/25 부터 2/2일 까지 8일이 된다.
여행사는 황금연휴에 여행객을 모집하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금액도 같은 여행 장소가 하루가 틀리게 가격이 올라간다.
작은애가 23일 롯데에서 3박4일로 하문여행이 싸게 나왔는데 같이 가잔다.
설 명절 전에 갔다가 오는 것이라 같이 가자고 하였다.
우리부부 작은 아들부부와 손자 총 5명이다.
대한항공 출발시간이 10시인데 공항에 사람이 많아서 꼭 3시간 전에는 와서 출국 수속을 해야 된다고 한다.
패키지여행인데 예약인원이 우리 다섯 명뿐이다.
공항에는 여행사에서는 나타나지도 않고 이 티켓을 갖고 출국하여 하문에 가면 현지 가이드가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도 롯데 여행사 직원이 나오지 않으니 서운한 감이 든다.
- 하문 -
중국은 비자 없이 갈수가 있어 하문 공항에 내리니 길림성 출신 조선족 남자가 가이드로 나왔다.
관광버스를 타는데 48인승 대형 버스다,
우린 다섯 명인데 이 버스로 계속 다닐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대형 버스로 5명이 계속 타고 다닌다고 하니 버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황제 대우받는 기분이 좋기도 하고 여행사가 적자가 나지 않나 근심도 된다.
하문(廈門 샤먼 xiamen)은 중국 푸첸성 (福建省) 남동부 항구도시다.
샤먼 섬을 가로지르는 산해건강도로 7번 출구에서 바다를 보니 대만의 금문도가 바로 앞에 보인다.
백령도에서 이북의 장산곶 앞에 있는 월례도를 보는 것 같다.
먹거리로 유명하다는 증조안 거리에서 굴전을 먹어보았다.
굴전이 달콤한 것이 내 입맛에 맞았다.
남보타사를 들어가니 비위에 커다랗게 佛자를 금색으로 새겨 놓았다.
제법 큰 절에 조형물도 잘 갖추어 놓았는데 우리나라는 법당을 대웅전이라고 현판을 달았는데 남보타사는 법당 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북쪽에 보타사가 있어 여기는 남보타사라고 이름을 지은 오래된 절이고 규모도 크다.
용수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보통 150년 이상 된 나무가 많다.
맹그로브 나무같이 뿌리가 땅에 닿아 같은 종인줄 알았더니 용수나무는 나무 중간이나 가지에서 수염같이 뿌리가 나와 땅에 닿으면 새끼 나무가 된다.
하문은 아열대성 기후에다 겨울이 없으니 나무가 한번 뿌리를 박으면 1년 내내 자랄 수 있어 나무로서는 호조건이다.
겨울의 눈보라를 맞지 않아 나무의 강도는 약할 것 같다.
증산로 거리를 가는데 럭킨 커피(Luckin coffee)점이 있다.
하문에는 중국의 럭킨 커피점이 290여개로 미국의 스타벅스 보다 많다고 하며 젊은이들이 커피를 즐긴다고 한다.
증산로 거리를 보니 유럽의 중심거리같이 건물들이 유럽풍이며 고풍스런 디자인으로 지어진 빌딩들이 줄지어 들어섰는데 거리도 깨끗하고 보기도 멋있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은 40여층의 고층에다 유선형을 살려 깔끔하게 지었는데 똑같은 건물이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성냥갑 쌓아 놓은 것 같이 천편일률적이라 삭막한데 하문의 새로 지은 건물은 미관도 보기 좋아 자꾸만 시선이 간다.
중국에 왔는데 하문은 중국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고 유럽의 선진 도시에온 느낌이다.
중국의 여러 도시를 가서 봐도 중국의 냄새가 나고 중국 특유의 느낌이 있고 문화가 있는데 하문은 예외다.
홍콩같이 영국이 오랫동안 자치를 하고 무역을 해서인지 중국에 와서 중국 같지 않은 도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시민들도 세련된 선진국 스타일 이다.
시장거리를 갔다.
명품 옷가게가 들어선 빌딩같이 계속 이어지는 시장은 명품상점이 아니고 주로 과자나 선물가게다.
여기에서 과자나 초콜릿 술 등을 살만큼 샀다.
한보다리를 들고 호텔에 와서 보니 중국산이 아니고 대만 술 과자 식품이고 소련 초콜릿 사탕이다.
중국산이 싸다고 여기서 충분히 샀더니 대만 소련제품이라 의아하고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소련사탕은 먹어보니 단맛이 내 마음에 들고 포장지도 호화로워 기분이 좋았다.
소련에서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을 한다니 새롭게 소련의 제품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사탕은 많이 보았으나 소련제품은 본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대만이 적대관계에 있어서 서로 일촉즉발의 전쟁상태라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전혀 아니다.
대만사람들이 여기 하문에 많이 와 있고 또 왕래를 하고 있고 무역을 활발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과 대만이 전쟁상태가 되면 미국이 개입을 하여 대만을 보호해주겠다고 생각하며 대만과 중국이 긴장관계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나 막상 하문에 와보니 사람들은 그런 긴장관계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호텔은 메리어트에서 3일간 연속 숙박을 한다니 매일 짐싸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지 않아도 되서 아주 좋았다.
- 고랑서 -
이틀째 고랑서 섬을 갔다.
이 섬이 관광의 하이 라이트다.
이 섬에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다.
전동 카트가 관광객을 나르고 있다.
옛날 영국의 조계지라 섬에는 시청 청사부터 일반 주택에 이르기 까지 영국풍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고랑서에 숙장화원이 있는데 대만의 대 부호 린얼자가 대만에 있는 자기 집 화원을 생각하며 꾸민 화원인데 환상적으로 잘 꾸며져 있다.
세계에 다니면서 구입한 각종의 피아노도 한곳에 모아놓아 피아노 박물관도 있다.
정원에 12지신 상을 꾸며 놓았는데 12지신 상을 한군데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경사도에 돌을 붙이고 동굴도 만들어 놓고 12지신 상을 여기저기 숨겨놓아 찾아다나는 재미를 보도록 하였다.
이런 정원을 꾸미고 거기서 살았다는 부자는 보통부자로서는 생각도 못할 대 부호다.
고랑서 산 최고봉에 일광암이 있는데 일광암에 올라가 보면 고랑서 섬 전체를 볼 수가 있고 하문시 까지 보이는데 경치가 참 아름답다.
고랑서의 집들이나 정원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어 한 번에 전망을 다 볼수가 있어 최고의 전망대라고 볼 수가 있다.
관광객이 많아 전망대 까지 오르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라고 볼 수 있다.
집들이 거의 고급주택들이라 보기만 해도 멋있다.
- 옵션 -
옵션은 추천하는 대로 다 해주니 가이드가 좋아한다.
1) 서커스는 추천할만했고 주로 러시아인이 주연이다.
2) 유람선 야경은 하문의 빌딩들을 무늬를 놓아 조명을 하는데 특히 쌍둥이 빌딩이 멋있다.
3) 낮에는 쌍둥이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일광암 전망보다 못했다.
4) 일월곡 온천은 아예 오후 전체로 시간을 잡고 놀았다.
일월곡 온천은 온천공원이라 규모가 매우 크고 야외수영장을 비롯해서 각종 약탕이 10여개가 넘는다.
각양각색의 야외 약탕을 돌아다니다 보니 오후가 다 지나갔다.
제8시장에 가니 주로 해산물이 넘처나고 성게나 불가사리도 부처서 판다.
불가사리를 부처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맛을 볼겸 사서 호텔로 가지고 왔다.
시장에서 물건을 보고 선택하고 구입하는 것은 아들 부부가 아주 잘한다.
시가지에는 가로수나 일반 나무에 빨간색의 연등을 달아놓았는데 낮에도 보기 좋았는데 밤에는 불을 켜니 미관상 보기도 좋고 가로등 역할을 하니 굿 아이디어다.
호텔로 가기위해 택시를 타는데 didi 콜택시를 부르니 지금 어디쯤 가고 금액은 얼마고 몇 명이 탈수 있다고 안내가 되는데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되어 있는 것에 놀랐다.
우리나라는 타다 콜택시가 국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택시시장이 자유롭게 발전하지 않아 중국에까지 뒤지는 상태가 되었다.
더 놀란 것은 슈퍼마켓에 가서 계산을 하는데 신용카드보다는 카카오페이 같이 중국의 전자화페인 위쳇과 알리 페이를 쓴다는 사실이다.
물건을 사고 큐알코드에 알리를 갔다 대면 결제가 된다.
길거리의 거지도 깡통에 위쳇과 알리 규알코드를 붙처놓고 구걸을 한다.
전 국민이 핸드폰에 위쳇과 알리 앱을 깔고 큐알코드로 모든 것을 결재하니 현금이 필요없게 됐다.
내가 핸드폰에 알리 앱을 깔고 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콜택시를 탈수 있는 것은 아들 덕분이다.
나 혼자 하문에 갔다면 알리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편하다고 가르쳐 주어도 신용카드를 고집했을 것이다.
중국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실증적으로 느껴진다.
- 토루 -
토루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옛날에 1m 넓이의 흙으로 원형 담장을 쌓아 복합주거지를 지은 것으로 현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원형으로 지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남정 토루는 3층까지는 창문이 없고 위의 두개 층에는 창문이 화장실 창문같이 나 있다.
대형으로 지은 원형 건물인데 대문은 하나고 지붕은 검은 개와 지붕인데 접시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산에서 보면 4개의 원형 토루와 하나의 네모 토루가 모여 있는데 보기도 좋거니와 희한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난다.
인공위성에서 보니 미사일 기지 같아 미국 국방장관이 직접 찾아와 확인을 했다는 특이구조의 건물이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고 같은 씨족이 모여 집단생활을 하는 것으로 작은 성의 역할을 하는 자기 종족 보존의식에서 나온 당시의 혁신적인 주거형태인 것이다.
관광 안내판에는 한국말도 있는데 “우렁이 구덩이 토루군” 이라고 우리도 모르는 말이 쓰여 있다.
남정 토루군의 지붕만 보고 버스로 한참을 달려 유창루 토루로 갔다.
원형 유창루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관광객을 위하여 안에 1층은 상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토루 안의 상점은 우리나라 옛날 시골장터 좌판상점 같다.
이 1층상점자리가 옛날에는 곡식이나 무거운 농경구를 두는 창고였다고 한다.
정문을 들어가니 가운데 신당이 있고 하늘을 보니 하늘이 동그랗게 보인다.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으니 토루의 하늘이 동그랗게 보이는 것이 사진 찍는 새로운 맛이 난다
중국 관광명소 A 다섯 개로 최고등급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이 유창루 토루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음식을 만들고 차려놓는데 토루안이 매우 부산하다.
음식은 해산물에다 잔칫상을 차리는데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눈길이 갈만하게 잘 차린다.
우리는 유창루 안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숙박과 음식을 파는 호텔형식의 목재로 지은 네모 토루에 가서 현지식 점심을 했다.
우리의 음식과 비슷하고 정갈하다.
토루에서 나오며 자몽을 하나 샀는데 크기가 수박만 한 것이 맛은 사과만한 자몽과 차이가 없다.
식사를 하고 탑하촌에 가서 산책을 하였다.
가운데 개울을 끼고 양쪽으로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집의 형태들이 원형이나 네모 토루로 지은 소규모의 토루들이 많고 여기서 장사나 숙박도 한다.
마을은 시골집으로 옛날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며 살고 있는데 경치도 좋고 옛날의 사당이나 토루군 등 볼거리도 있고 청정지역이라 산책하는데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번여행은 아들내외 덕분에 마음편안하게 잘 다녀왔다.
패키지여행인데 우리 다섯 식구뿐이고 버스는 48인승 대형을 계속 타고 다니고 스케줄은 가이드와 시간 조절하고 길림성 출신의 중국 가이드는 우리를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고 입출국은 무리 없이 하고 체력은 쫓아다닐 수 있을 만 하여 이번 여행은 즐거웠다.
(2) 브루나이
보르네오 북서연안에 슐탄국인 부루나이 국이 있다.
인구 50만 명도 되지 않고 면적은 충청북도보다도 작은 소국이지만 GDP 세계 4위의 부국이다.
이슬람의 왕국이며 전제군주 국가로 왕의 권력이 막강하다.
부루나이의 정식 국명은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lussalam) 이고 다루살람의 뜻은 평화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수도는 반다르 스리브가완 (반다르 세리 베가완 Bandar Seri Begawan) 이다.
왕궁인 이스티나 누눌이만은 여의도의 90%정도의 면적에 규모가 큰 왕궁이며 1788개의 방과 256개의 화장실이 있는 왕궁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도로에서는 왕궁 건물이 보이지도 않고 왕궁 정문에서 보아도 왕궁 건물이 보이지 않는 부자 나라의 왕궁이 신비롭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국장의 초승달에는 국가 모토인 언제나 신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라 라고 적혀있다.
황금 돔인 오마알리사이프딘 모스크는 52m의 높이에 돔을 황금으로 칠하였으며 극동에서 제일 큰 모스크다.
내부를 전부 공개하지를 않고 무슬림만 입장을 허락한다.
1984년 1월 1일 영국령에서 독립을 하였고 싱가폴과는 형제국가다.
싱가포르가 한참 발전을 할 때 브루나이에서 자본을 많이 대주어 싱가포르에 많은 보템이 되었다.
화패도 싱가포르 딸라와 브루나이 딸라가 1 ; 1 이며 브루나이에서는 브루나이 딸라와 싱가포르 딸라만 통용이 되고 다른 나라 화페는 시장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원화와는 1000;1이라 계산하기 편하다.
미국 딸라도 통용이 안 된다.
기름 값도 원유국 답게 500;1/L 이다.
병원비도 입원을 하던 수술을 하던 더퍼놓고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다.
자동차도 한집에 4대까지 보조해 준다.
행복주택도 월 30만원만 내면 30년 같은 집에서 산다.
행복주택을 외관으로 보니 중산층 가옥이고 굉장히 많은 숫자다.
워터빌리지라는 수상가옥은 세계 최대의 수상도시다.
수상가옥에 학교도 있고 공공시설도 있다.
수상가옥이 500년의 역사를 가졌다니 우리나라 조선 건국 때와 맞먹는다.
브루나이 정부에서는 지금 정책적으로 수상 빌리지를 짖지 못하게 하고 하나하나 철거중이다.
수상가옥이 물위에 있을 뿐이지 내부시설은 전기 수도가 모두 갖추어져 있고 일반 주택의 생활상과 대동소이하다.
교각의 비어같이 숫자로 이어지는 선착장이 줄지어 있고 수상주택에서 선착장까지 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조그만 보트가 쉴 새 없이 움직여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브루나이는 관광을 개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인 관광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며 대중교통이 필요 없는 나라라 버스를 볼 수가 없다.
자기들이 필요한 것을 정부가 다 해주는 입장이니 절박함이 없고 경쟁심이 없는 것 같다.
부자 나라의 단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브루나이를 관광하는 사람은 대부분 각 나라들을 여행을 하고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브루나이를 선택한 사람이 많다.
나는 처음 롯데관광에 예약을 했는데 예약 후에 추가요금을 요구하여 기분이 나빠 참좋은 여행사로 변경하게 되었다.
일 정중 하루의 자유 일정이 있어 우리부부가 하루를 소화할 능력이 없고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작은 아들한테 같이 여행가겠느냐고 물어보니 같이 가겠단다.
여행일정을 다시 짜서 2025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간 우리부부와 작은아들 부부 손자 까지 5명이 가기로 하였다.
브루나이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조우하고 저녁을 씨푸드로 잘 먹었다.
여행팀이 우리 식구 5명밖에 없어 가이드와 일정 시간표를 우리 의사대로 조율할 수가 있어 마음 편한 여행이 되었다.
저녁에 호텔에 체크인을 하였는데 엠파이어 브루나이 리조트로 7성급 호텔이다.
7성급 호텔은 두바이에 하나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에도 있다.
해안을 끼고 있는 엠파이어 호텔은 내부가 화려하고 골프장까지 있어 호텔이라는 느낌보다는 리조트로 느껴진다.
각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7성급 호텔에 숙박하기는 처음이다.
국립호텔이라 종업원이 공무원이고 호텔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으나 아직 선진 관광국의 호텔 종업원 같이 서비스를 하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잘 하려고 하는 모습은 보인다.
메인 리셉션에서 밑의 식당 그 밑의 수영장으로 가는 건물 구조를 보고 감탄할 만큼 규모도 크고 왕궁 같은 느낌도 난다,
외벽은 5층 정도의 높이를 유리로 치장하고 원형기둥은 중간에 황금을 칠하고 메인 리셉션에서 내려다보면 화려하고 규모가 큰것에 놀랄만 하다.
7성급 호텔에 숙박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아침에 일어나 시뷰에서 동쪽 끝에 있는 정자까지 가서 집사람은 태극권의 운동동작을 나는 집사람이 일러준 태극권 기초 운동을 내가 변형하여 매일 아침에 하는 동작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아침에 엠파이어 호텔에서 작은아들 식구와 뷔페를 하였다.
오늘 오후가 우리 일정중 제일 바쁜 날이다.
점심은 시내에 있는 레디슨 호텔에서 뷔페를 하고 왕궁 두개의 모스크 국립 박물관에 호주에서 선물로 주었다는 바오밥 나무 코주부 원숭이에 수상가옥 야시장이다.
맹그로브나무 잎만 먹고산다는 코가 유난히 큰 코주부 원숭이는 서식지가 여기밖에 없다고 한다.
브루나이 강을 따라 보드를 타고 계속 가며 원숭이를 보는데 코주부 원숭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서 이리저리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는데 감질나서 볼 맛이 없다.
강에 악어가 있다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수상가옥에서 차 한 잔 마시고 호텔로 왔다.
이슬람 국가라 술을 팔지 않아 미리 집에서 혁범이가 양주 한 병 가지고 와서 어제와 오늘 우리방에서 한잔하며 여행이야기를 하며 한 병을 다 먹었다.
덕분에 7성급 호텔에 묵게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손자는 뒷켠에 앉아 열심히 게임을 한다.
우리는 돌아다니며 하도 잘 먹어 시장에서 산 열대 과일은 그렇게 좋아 하는데도 다 먹긴 글렀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로 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다 집사람과 헤어지게 됐다.
물청소 하는데 입구에 물 떨어진다고 하고 나는 괜찮다고 우기다 서로 다른 길로 호텔방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내가 방에 와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한참을 기다려도 집사람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불안하지만 방을 못 찾아오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건물이 여기저기 크게 지어있는 호텔이라 착각을 하기 쉽고 물어볼 사람도 만나기 힘들어 집사람은 더운데 땀 흘리며 딴 건물에서 헤매고 있었다.
집사람이 전화가 와서 호실을 알려주고 밖에서 데려왔다.
자기가 우기다 고생한 것은 생각 안하고 방에 들어오니 자기는 수영장에 안 간다며 내가 이기주의자라며 강짜가 시작됐다.
한참을 지나 같이 수영장갈 차림으로 숙소 앞에서 카트를 불러 메인건물 앞에 있는 수영장을 가니 혁범이네 식구들은 잘 놀고 있다.
점심식사 시간을 좀 늦추게 하고 우리도 정식으로 수영을 시작하였다.
이 호텔에서는 아침 외에는 식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시내 리즈군 호텔에서 뷔페로 점심을 하고 여자들이 선호하는 쇼핑몰을 빼 놓을 수가 없어 가동 몰을 들렸다.
브루나이의 다리를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건설하여 브루나이에서는 한국하면 대림산업을 떠 올리는 모양이다.
이른 저녁으로는 엠파이어 호텔 수영장 옆에 있는 대형 펜타이 레스토랑에서 첫손님으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에 이른 저녁이니 배가 불러 나온 음식을 처다만 보고 있다.
식당 종업원이 하도 많이 남아 있으니 팩킹해 주랴고 하여도 그만두라고 하였다.
식당에는 손님보다도 종업원이 더 많으니 영업이익이 날지 의문이 든다.
식당뿐만 아니라 커다란 부속건물들에도 손님이 한산해 손익분기점에 한참 모자랄 것 같다.
식당에서 브루나이의 선셑을 즐기다 카트를 불러 리조트 끝에 있는 골프장 건물의 부속시설인 당구장과 볼링장을 들렸다.
온 집안 식구가 당구나 볼링이 초보중의 초보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도 당구대도 만져보고 볼링공도 던져 보는 경험을 해 보았다.
나는 젊었을 때 당구장이나 볼링장은 가 보았는데 그때의 실력이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잘 놀았으니 내일 귀국할 짐이나 싸자고 호텔방으로 왔다.
귀국하는 브루나이 국영항공은 중형기라 좌석이 좁은 편이다.
일곱 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있으니 무릎이 저려 장거리 여행할 때 제일 싫은 것 중의 하나다.
출국해서 귀국할 때까지 혁범이와 같이 가니 모든 사사로운 일을 보좌해 주어 편하고 여유로워 마음이 흡족하다.
식구끼리 브루나이 여행을 잘 갔다 왔다.
(3) 베니스 돌로미티 밀라노
2025년 9월 말에 예정에 없던 알프스 산맥 남쪽 이태리 알프스인 돌로미티 산맥을 관광하게 되었다.
돌로미티는 2026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이다.
돌로미티 코르티나에서 개막을 하고 밀라노에서 폐막을 하는데 거리가 천리가 넘는다.
비행기도 없고 기차도 없는데 코르티나에서 험준한 산맥을 넘어 밀라노를 간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코르티나 산맥의 봉우리들을 지그재그로 곤돌라 리프트 451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곤돌라에서 내려 슬로프를 보면 급경사로 스키 중급자가 탈수 있는 슬로프는 몇 개 되지 않고 거의다 최 상급자 코스의 슬로프 들이다.
총 리프트 거리가 1220 km 나 되니 한라산에서 백두산 까지 가는 거리다.
용평 스키장이 크다고 생각을 했는데 코르티나에 갖다 놓으면 어데 있는지 찾기도 힘들겠다.
이태리 북부가 이렇게 넓고 험준한지를 새삼 체험을 했다.
작은 아들 혁범이가 전화를 걸어 이태리 돌로미티를 갔다 왔느냐고 물어 밀라노 까지만 가고 그 이상 북쪽은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기가 이번에 20년 근속 휴가를 받았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금년은 추석 연휴가 10월 1일부터 12일 까지 2일만 연차를 쓰면 12일을 쉴 수 있는 봉급쟁이로서는 최대의 여행 호기다.
작은 아들은 9월 25일 부터 1개월간 이태리만 풀로 가족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우리부부는 같이 출발을 하여 10일간 베니스 돌로미티 밀라노에서 10월 4일 우리는 귀국을 하고 작은 아들은 밀라노에서 이태리 남부를 세 식구가 구석구석 렌트카로 자유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10월 6일이 추석이라 조카들이 떠난 자리를 우리라도 조상 산소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우리부부는 10월 4일 귀국하기로 계획을 짠 것이다.
작은 아들도 이런 황금연휴를 잡아서 여행을 가는데 추석이 끼어 있어 성묘를 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우리를 데리고 갔다 와서 추석 성묘를 못한다는 면피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식이 이런 생각이라도 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9월 24일 자정에 우리부부와 작은아들 세 식구와 5명이 자유여행으로 아랍에미레이트 A300에 몸을 실었다.
두바이 까지 8시간 반 베니스 까지 6시간 총 14시간의 장거리 비행이다.
두바이에서 트랜스퍼 하여 베니스 공항에 가는 것이다.
아랍에미레이트 에어는 칼 못지않게 써비스도 좋고 좌석도 넓다.
두바이에서 대기 시간에 라운지에서 샤워도 하고 식사도 무료로 하였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생각도 못한 대접을 라운지 이용 티켓을 활용하는 것이다.
유럽과 시차가 7시간이나 되어 시차 적응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 캐리어에는 수면제 대신 먹으려고 팩 소주를 준비 하였다.
5시간 이상의 비행은 우리 노인들에게는 무리인데 14시간을 비행기내에서 흔들리니 생각만 해도 곤욕스럽다.
물의 도시 베니스 ( 베네치아 Venice Venezia Venesia Venetia ) 에 가니 산마르코 광장은 그대로고 손자 순우는 광장의 비둘기가 자기 팔에 앉으니 매우 기뻐한다.
전에 보나 지금 보나 산마르코 광장은 멋있다.
전에는 산마르코 대성당 외관만 보다 이번에는 입장료 내고 내부까지 보는데 들어가니 칸을 막고 황금의 제단 입장료를 또 받는다.
종탑 엘리베이터 입장료 두칼레궁전 입장료를 받는데 예약을 했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 입장을 하는데 아무래도 이 입장료 수입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
곤돌라도 타보고 유리공예가 유명한 무라노 섬과 섬유 레이스가 유명한 부라노 섬까지 갔는데 부라노섬은 건물에 색칠을 하여 눈요기를 할만하다.
베니스는 물과 운하의 도시라 고층 빌딩은 없다.
마르코 폴로 국제공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기차로 산타 루치아 역에서 내려 베니스 시내 본 관광은 시작된다.
중심가에는 버스가 못 들어가고 배로 가는데 일반교통 표를 사면 버스나 배나 상관없이 탑승할 수가 있고 운하도시답게 배가 많아 운항코스를 잘 보고 타야한다.
교통표는 단수도 있지만 1일권 2일권 등 원하는 대로 구입할 수가 있어 편하다.
그렇게 많은 배가 손님에게 구명조끼 입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틀간의 베니스관광을 끝내고 suv 렌트카를 빌려 베니스에서 두 시간 거리의 돌로미티로 향했다.
돌로미티 (Dolomiti)는 15,942 평방 km 로 서울의 26배 크기로 산악지대다.
돌로미티 초입의 아우론조 호수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호수의 멋있는 광경에 도취해 한참을 쉬었다.
혁범이는 이태리는 도둑이 많다고 핸드폰은 줄을 연결해 목에다 걸게 하고 차는 안을 보지 못하게 검은 천으로 모든 짐을 감싸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했다.
너머 과민하게 처리하는 것 같아 처다 보니 작은 유리창을 깨고 문을 열어 안의 물건을 흠처 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로 승용차의 작은 유리가 깨져있는 차가 보였다.
두꺼운 이태리 여행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여 갔다 온 사람보다 더 주위환경을 알고 Gemini Ai 를 활용하여 물어보며 조금도 불편 없이 여행을 한다.
트레치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트레킹에 들어갔다.
추위에 대비한 옷으로 무장을 하고 트레킹을 시작하는데 날씨는 흐리고 등성에 오르니 9월 하순인데 눈이 쌓여 있다.
안개가 내려와 트레치매 정상이 보이지도 않는다.
손자는 눈 위에 손바닥 도장을 찍으며 장난을 친다.
눈을 밟고 계속 걷다가 트레치매 한 바퀴 도는 것은 포기하고 뒤돌아서 첫 번째 휴게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집사람과 합류했다.
맥주한잔하고 대망의 코르티나로 향했다.
코르티나(Cortina) 담페초 마을에서 1박을 하는데 산속에 호텔은 기대하지 않지만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선진국에서 캐리어를 3층까지 들어 올린다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
개인 주택을 빌려 임대하는 것 같다.
식당을 들어갔는데 메뉴가 거의 다 피자다.
동양인은 우리식구 뿐이다.
베니스에서도 피자가 주로였는데 피자 스타일은 틀리지만 우리나라 김치찌게 처럼 식당마다 피자다.
코르티나에서 본격적인 케이블카 섭력이 시작되었다.
토파나(Tofana) 케이블 카로 정상까지 3191m 를 3번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비수기라 2번 갈아타고 2300m 까지 올랐다.
여기는 눈이 쌓이지 않고 빈 스로프만 보이고 올림픽 준비하는 공사가 아래에 보인다.
친퀘도리(Cinquetori) 케이블카로 정상구경을 하고 라가주오이(Laga Zuoi) 케이블카로 바꿔타고 2733m 정상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였다.
이렇게 높은 정상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기록에 남을 것 같다.
코르바라에 있는 보애(Boe) 케이블 카를 탔다.
여기서는 케이블 카(Cable car)를 케빈리프트(Cabin lift) 체어리프트(Chair lift) 후니쿠라 (Funicula)로 세분한다.
9월 말인데 2000m 이상에는 눈이 있고 그 이하는 초록색 들과 나무가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보면 등산객과 바이크족이 많이 보인다.
이 높은 고지까지 길을 닦아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았다.
밑에서는 스키 렌탈 같이 자전거를 렌탈하여 누구나 탈수 있게 만들었다.
등산길은 별도로 또 있는 곳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케이블 카를 타고온 손님이 가장 많고 등산이나 바이크로 온 손님으로 뒤섞여 있다.
겨울에 리프트 타고 스키를 타는 것이 주이지만 비수기인 여름에는 등산 바이크를 동시에 즐길수 있게 관광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등산은 1시간짜리부터 5시간짜리로 구분하여 놓았다.
스키 슬로프는 가파른 직벽이 많아 스키를 좀 탄다 하는 나도 저기서 탈수 있을까 하고 유심히 본다.
환갑 스키여행에 작은 아들하고 일본 하꼬네 하꼬바의 모든 슬로프를 돈 기억이 있지만 여기는 거기와 종류가 다르다.
다음 숙박지 오르티세이로 가는데 케이블 카에서 내려 승용차로 산 고지를 넘어야 하는데 길도 좁고 높기도 하고 꼬블 꼬블 고개를 넘어가는데 밑에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혁범이의 운전 실력은 놀란만 하게 강원도 운전수 보다 잘한다.
이런 계곡에 예쁜 집들이 스위스 산속에 있는 집같이 계속 있다.
나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곳에만 이런 집이 있는 줄 알았더니 유럽 산 계곡엔 어디나 있는 풍경이다.
오르티세이(Ortisei)로 가니 조그만 도시가 건물이 조그마하게 언덕배기에 아주 예쁘게 지어져 있어 도시 전체가 아름답게 보인다.
슈퍼에 가니 한국 사람이 여럿 보인다.
내가 돌로미티 초코렛을 사고 계산하는데 키오스크에서 반복을 하니 와서 도와준다.
그들이 노인네라 별수업군 하는 눈치다.
세체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니 십자가가 있고 산봉우리가 멋있어 사진을 찍으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알메디 시우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니 돌로미티의 최대로 넓은 평야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평야가 아니고 얕은 산과 구릉이 계속 이어져 있을 뿐이다.
모처럼 여기서 산보를 하고 왔다.
사소롱고(Sassolungo) 케이블카를 타는데 이 케이블 카는 특이하게도 2인용이다.
2인용이기 때문에 2655m 높이 까지 올라간다.
올라가서 사방을 보니 확 트인게 앞으로는 멀리 산자락이 그림처럼 보이고 뒤로는 깊은 계곡의 마을이 아스라히 보이며 양 옆으로는 3천 메터의 고봉이 우뚝 서 있다.
이 고봉을 케이블카도 타지 않고 등정하는 등산객이 보인다.
바로 밑을 보니 나무하나 없는 푸석한 암석에 삭막하게 케이블카만 움직인다.
카나제이 마을에 호텔을 잡았는데 산악지대의 조그만 호텔이라 일반도시의 번쩍거리는 호텔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르티세이 마을에 비해 도시 건물이 멋있지는 못하다.
이 넓은 돌로미티 산맥의 계곡마다 마을과 비탈에 예쁜 집들이 줄지어 있는데 보기는 좋은데 저기서 어떻게 사나, 저 큰집에서 혼자 살면 외롭거나 산속에서 불편해 어떻게 사나, 하고 궁금증이 많았다.
이제 보니 산속 비탈에 예쁜 집 하나만 있으면 부자다.
주인이 직접 살고 있는 집 보다 거의 집을 렌트하고 있다.
방 하나 일박 하는데 평균 삼십만원인데 빈 방이 없어 방을 잡기가 쉽지를 않고 시즌에는 방이 없어 부르는 것이 값이다.
방이 열개만 있어도 공과잡비를 빼고 월 천만원은 거뜬하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데 예약하기가 만만치 않다.
계곡의 도시나 마을은 거의 다 숙박이나 음식점 선물상점으로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다.
집 내부를 보면 일반 가정용품이 있기도 하나 호텔방 같이 손색이 없고 잘 정돈되어 있다.
방 열쇠는 주인하고 직접 주고받지도 않고 서로 비밀번호를 주고받으면 끝이다.
키오스크도 쩔절매는 나는 혼지 렌탈하기는 글렀고 아들부부의 익숙한 핸드폰 손놀림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아침에 또 케이블카를 타러갈가 하고 묻기에 케이블카 실컷 탓으니 이제 케이블카는 그만 타자고 했다.
그래서 베로나로 가기로 했다.
세계최고의 화장실을 자랑하는 우리는 유럽 선진국에 와서 1$주고 화장실을 들어갈 때는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화장실을 갈 때는 1층 화장실에 1$를 내야 한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면 식당이나 휴게소에 화장실을 이용하면 무료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화장실 가야 할 때에는 케이블카를 탈때 좀 참았다가 케이블카를 산에서 내려 아무 화장실이나 찾아 해결하면 된다.
베로나를 가며 까레짜(Carezza) 호수를 관광하며 돌로미티를 뒤로 하고 한참을 달려 베로나 아레나 경기장에 도착했다.
아레나 경기장 안에 입장을 하려고 하니 올림픽 공사중이라 입장 금지다.
아레나 경기장은 로마 시절의 경기장인데 현대에도 변형시켜 활용하고 있다.
로미오와 쥬리엣의 본 고장 베로나. 쥬리앳의 2층 베란다를 보며 여기 애들은 열댓살의 젊은 애들이 조숙하게 연애도 불같이 하는구나 하고 키가 큰 서양 애들을 다시 보았다.
화단에 세워진 쥬리엣의 동상 유방이나 만저 주고 오려다 고만 두었다.
신곡의 단테를 기념하는 단테 광장 로마시절의 아레나 경기장 베로나의 중심가 람베르티의 탑을 보며 베로나가 옛날에 화려한 역사를 가졌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웨스턴베로나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밀라노로 가기 전에 세라발레 아웃렛(Serravalle outlet)을 들리기로 했다
대형 아웃렛을 꼭 사야할 것도 없는데 구경만 하는 것을 우리는 시간 낭비로 아는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트레킹 할 때 혁범이 운동화가 나간 것을 보고 집사람이 운동화를 사 주었다.
아웃렛에서 밀라노로 달리는데 180이나 190Km 로 달린다.
나보다도 더 거칠게 모는 것 같다.
고속도로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마음 놓고 달리는데 우리나라는 쓸데없이 카메라가 너머 많이 달려있는 것 같다.
밀라노에서 렌트카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밀라노를 대표하는 두오모(Duomo) 성당, 450년 공사 끝에 19세기 초에 완성됐다는 고딕양식의 두오모 성당은 유럽에서 4번째로 크다는 것이다
옥상에 올라가 보면 135개의 뾰족탑이 압권이다.
성당앞 광장에서 보더라도 잘 지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인데 안으로 들어가 바닥이나 기둥을 보면 정성을 들여 지은 성당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티켓을 사서 내부와 옥상으로 올라 갈수록 내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옥상이 나타난다.
그 큰 성당을 돌아서 올라 갈 때 마다 조각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고 격자무늬의 난간 성인들의 상이 걸려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수많은 높은 첨탑이 나란히 빙 둘러 있는데 어떻게 저 많은 첨탑을 높이 세웠을까 상상을 해 봐도 옛날기술로 세웠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성당을 지어야 신도들이 많이 오고 기도가 잘 듣는지는 모르겠다.
모두 대리석으로 지은 이 성당은 건축비가 천문학적일 터인데 어떻게 조달을 했는지 카톨릭의 권위를 위하여 신도들을 쥐어짰는지 대 부호가 연쇄적으로 댔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는 대단한 작품이다.
밀라노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주로 전철을 이용하는데 목표를 정하면 인터넷으로 찾아 골목골목을 헤비는데 며누리가 찾아주면 아들이 잘 찾아 간다.
둘이 죽이 맞아 처음 가는 길도 당황하지 않고 갔다 온 사람같이 잘 찾아간다.
산타마리아 텔레그라치에 성당을 찾아갔다.
제법 큰 규모의 성당인데 두오모 성당을 보다 보니 초라하게 보인다.
이 성당에 그 유명한 레오날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 있다.
이 그림방에 들어가려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줄을 서는 것뿐 아니라 몇명 인원이 되야 입장을 시키는데 방은 그림의 손상을 막기 위하여 조명이 흐릿하다.
조명이 흐리니 촛점 맞지 않은 그림을 보는 기분이다.
보았다 하면 방에 있는 손님은 모두 나가야 하고 다음 팀이 대기했다 들어온다.
나는 그림에 조예가 없어서 인지 과연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하게 잘 그렸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감흥을 못느낀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볼 때 같은 기분이다.
스포르첸트성에 갔다.
동양의 성하고는 축성 방법이 다르지만 들어가서 돌아다니는 곳마다 우선 조경이 잘 되어 있고 시민들이 휴식장소로는 최고급 공원이다.
밀라노 중심가로 가서 몽크레어 패딩을 샀다.
오지게 비싼데 한푼도 안 깍아 준다.
나는 상표도 모르는데 며늘아이가 최고급 상표란다.
우리부부는 아들식구와 여기서 헤어져 공항으로 가고 아들 세식구는 본격적인 이태리 남부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렌터카를 빌리는데 일반 승용차를 렌트했다.
이 조그만 차에 온 가족이 타고 캐리어를 다 싣고 우리를 공항에 내려주고 이 차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암만 봐도 다섯 식구가 타면 만원인데 캐리어를 어떻게 실을지 내가보기엔 난감하다.
뒷 트렁크에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꽉 채우고 사람을 태우고는 무릅 위에 캐리어를 논는다.
의자와 의자 사이에 캐리어를 또놓고 조수석에 앉은 무릅위에 캐리어를 또 놓는다.
공항까지는 두시간 밖에 안걸리니 아프더라도 참으란다.
용케도 그 많은 짐을 승용차에 다 실었다.
어떻게 이렇게 짐을 싦켔다고 구상을 했는지 생각도 참 가상하다.
경찰이 보면 바로 잡아가면서도 아연하게 생각할거다.
어쨌거나 공항가서 우리 부부캐리어를 내려놓으니 승용차가 제 모습을 찾았다.
우리 부부로서는 이런 자유여행을 꿈도 못 꾸는데 아들부부 덕분에 제대로 여행한번 잘 해봤다.
(4) 나트랑 달랏 동창 4명
팔십대 중반의 국민학교 동기동창들 모임인 생우회에서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다 헤어지고 7명만 남았는데 남은 회비가 천만 원이 넘어 개인당 2십만원만 부담하고 모든 경비는 회비에서 충당하가로 하였다.
막상가려고 하니 3명이 부인간병 자기 건강으로 불참을 하게 되어 4명만 가기로 하였다.
팔십 사오 세에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장인 내가 나트랑 달랏을 선정하고 하나투어에 선 결재를 하였다.
하나투어에서 2025/12/15 21;50 - 12/19 19;05 로 5일여행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지 3박에 비행기에서 2박 이다.
개인당 569,000원 으로 결재를 하였는데 출발일의 금액을 보니 개인당 1,059,000 으로 표기되어 있다.
출발 3시간 전에 공항 미팅이라고 하여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하니 총무를 보는 이선기로부터 sos 전화가 왔다.
자기 여권과 공동경비 딸라가 든 배낭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보통일이 아니다.
본인도 황당하여 어찌해야 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위치를 물으니 공항철도에서 내려 개찰구에 있단다.
승무원이나 공항직원이 보이면 해결방법을 빨리 물어보라고 하였다.
공동경비는 신용카드로 대신할 수는 있으나 여권이 없는 총무는 출발을 못 하겠지만 친구들 끼리 좋다고 하는 여행을 정말로 한명을 빼고 세 명만 가야하는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공항 안내소가 개찰구 옆에 있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다.
티켓을 보자고 하여 보여주니 어데서 타고 어데서 환승을 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환승지에 연락하여 분실물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니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분실물을 찾았다고 연락이 오고 25분후에 개찰구 안내소에 도착해 주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이렇게 신속정확한지는 깜작 놀랄만한 일이다.
나는 공항 내 출국장 미팅장소에서 여행사 직원에게서 출발서류를 받고 한사람이 여권을 잊어버렸다고 알리고는 총무가 있다는 공항철도 개찰구로 캐리어를 끌고 부리나케 갔다.
인천공항이 넓다고는 하지만 공항 출국장에서 공항철도 개찰구 까지가 그렇게 먼 거리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땀을 흘리며 철도 개찰구에 도착하니 유윤선 이원길이 모두 다 와있다.
그리고 20분후에 분실물을 찾을 수 있다며 얼굴들이 화색이 돌아와 있었다.
왜 이렇게 20분이 길어하며 조바심을 하고 있는데 분실된 배낭이 도착 했단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윤선이가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된 국가가 됐다며 대한민국 만세다 하고 외치니 안내소 여직원이 나한테 해야지 왜 대한민국 이예요 하여 다 함께 웃었다.
여권분실의 1막이 끝나고 분실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 출국장으로 갔다.
온라인으로 e-ticket 에서 티켓 팅을 하는데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계속 실패를 하였다.
승무원이 하는 티케팅 장소로 가서 하기로 하고 조금 가다가 생각을 하니 내가 키오스크에 여권을 놓고 그냥 온 것이다.
부리나케 뛰어가서 보니 다행이도 여권이 그대로 있다.
한숨을 돌리며 생각하니 팔십대 중반의 이 노인네들이 여행을 하며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할지 가늠하기 힘들게 생겼다.
나트랑에 내리니 날씨가 열대일줄 알았더니 초가을 날씨다.
포나가 사원은 힌두사원이라고 하는데 옛날 호이안의 참파왕국 때의 사원과 같다.
불교 사원인 롱손사를 가 보니 14m 의 하얀 좌 불상이 있는데 날신하지 않고 연화 좌대위에 듬직한 불상이 하예서 보기가 좋다.
담 시장은 남대문 시장과 같은데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잘 통한다.
베트남 화페인 동의 계산법칙인 0을 하나 빼고 1/2 을 하면 물건값이 나온다.
베트남 200,000 동이면 0을 하나빼면 20,000 여기서 1/2이면 10,000원이 한화다.
요즈음 환화 환율이 벼란간 높이 뛰어 이 간단한 법칙이 무너저 상인이나 구매자 모두 계산에 혼동을 준다.
나트랑(나짱 Nhatrang)에서 점심을 하고 4시간 반을 달려 달랏(Dalat)에 도착하였다.
베트남 마지막황제인 바오다이의 여름별장이라고 하는데 소박하고 건물도 단순하여 황제의 별장 기분이 안 난다.
열대의 베트남에 달랏은 고지대라 기온이 낮아 부자들의 별장이 많이 눈에 띈다.
여성건축가 당비엣 응아이가 건축한 크레이지 하우스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작은 장소도 독특하게 설계하고 계단이나 지붕이고 기묘한 설계를 하여 아름답게 조형물도 붙이고 일반 건축물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설계를 하여 숙박 건물을 지었다.
숙박업소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입장료로 버는 돈이 무척 많을 것 같다.
스페인의 가우디 마을 보다 오밀조밀 꾸민 것이 이채롭긴 하나 복잡한 느낌이 든다.
호텔 데스크는 영어도 서툴고 크레디트카드도 안 되고 베트남 동으로 계산을 하란다.
달랏에서 하룻밤을 자고 쑤엉흐엉호수를 지나 기차역으로 갔다.
장난감 같은 조그만 기차를 보며 입장료를 내란다.
고지에 있는 달랏을 다니다 보면 산 비알이나 계곡에 비닐하우스가 굉장히 많다.
우리나라 같이 추워서 조기재배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우기가 많아 비를 피하기 위한 비닐하우스란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 김교수 부부가 와서 시작을 하고 보급을 하여 가난하던 달랏 농민이 삼모작 하는 채소를 수출을 하게 되고 소득이 올라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린푸욱 사원에 가서 황홀함에 놀랐다.
유리와 도자기 조각을 활용하여 사원 전체를 화려하게 덮었다.
백년도 안 된 사원이 달랏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을 만 하다.
47m 길이의 용 조각 17m 높이의 관세움 보살 10m 가 넘는 통나무 탁자
어느 사원에서보다 많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나는 2층의 종각에서 가족 건강의 메모를 남기고 세 번의 타종을 하고 내려왔다.
베트남의 음식은 우리에게 별 부담을 안주고 나름대로 고급스럽게 잘 먹었다.
식당에서 우리 옆에 일행 중 부녀가 앉아 있는데 딸이 젓가락 잡는 식이 이상하여 우리나라 젓가락솜씨가 세계를 제패하는 손놀림인데 젓가락질도 할 줄 모르느냐며 목소리를 크게 내니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내가 시범을 보이며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일주일이면 익숙해진다고 고치라고 하였다.
일행 중에 고창에서 온 7명의 장정중 하나가 자기아들도 잘못해 고치라고 하니 말을 안 듣는다고 한다.
오후에 다딴라(Datanla) 폭포를 가는데 레일 바이크를 타고 가야한다.
발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전후를 조정하는 것으로 폭포를 보려면 옵션인 이 바이크를 안탈 수 없다.
폭포도 높은데서 떨어지는 낙차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숲속에 가려져 여러 갈래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시를 보는 것으로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을 억지로 갔다 붙이기도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불교사원인 죽림사를 갔는데 달랏에서 제일 큰 사원이라고 하여 기대를 했는데 불교사원의 중후한 맛이 없고 가벼우며 1994년에 완공하여 역사적 기념물도 못된다.
죽림사에서 내려와 예상외로 큰 투옌람 호수를 건너 진흙터널공원으로 갔다.
이 진흙공원은 달랏의 유명한 랜드 마크 들을 한데 모아 재현을 했는데 공원 전체를 공을 들여 잘 만들어 놓았다.
호수위의 마주보고 있는 두 얼굴은 랑과 비엔의 상으로 최상의 포토죤이다.
진흙 점토로 공원의 조형물은 모두 만들었다는데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하고 궁금하지만 칭찬할만 하다.
달랏의 마지막 날에 달랏에서 제일 높은 랑비엔 고원을 갔다.
달랏의 안내판에는 베트남어 영어 한국어로 간판이 되어 있다.
어디를 가든지 중국어 일본어는 여행안내판에 꼭 있고 한국어는 빠지는데 가 많은데 여기는 반대로 중국어 일본어를 볼 수가 없다.
여행하며 보아도 한국인이 90% 이상이다.
달랏의 랑비엔 최고봉은 해발 2167m 이나 우리는 SUV 를 타고 1929m 의 라다힐에 올랐다.
봉우리에는 애를 쓰고 치장을 하였으나 아직 어설픈 게 많다.
베트남이 전쟁 후에 이렇게 빨리 발전하고 관광객을 이렇게 많이 받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국가정책을 잘 했다는 결과이고 전쟁 후에 뭐어이뭐이 정책이 성공했다는 증명이다.
이제는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달랏에서 나트랑까지 4시간 나트랑에서 밤에 마사지나 하며 기다리다 새벽 3시비행기로 5시간 반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가야 한다.
그래도 팔순 노인네들이 아무사고 없이 여행일정에 잘 쫓아다니며 다른 일행에게 불편 없이 건강하게 귀국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