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고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전쟁에 반대하며 ‘침대 시위’를 벌였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전성기였고 히피 문화가 세상을 휩쓸었다. 아폴로 11호는 달 착륙에 성공했다.자유와 평화, 혁명의 기운이 넘치는 1969년, 까르띠에는 사랑과 열정의 상징이 된 주얼리를 발표했다. 디자이너 알도 키풀러(Aldo Cipullo)가 디자인한 ‘러브 브레이슬릿’이다. 18K 골드로 만들어진 팔찌엔 나사 2개가 양쪽으로 박혀 있다. 드라이버를 이용해야 착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컨셉트다. 키풀러는 중세 유럽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남편이 아내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채운 정조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사로 조이고 푸는 잠금 장치를 따라 팔찌 이름인 ‘LOVE’도 ‘LΘVE’가 됐다.
아이디어의 원천에 대한 논쟁이 다소 있었지만 팔찌는 사랑의 맹세, 아름다운 구속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다. 단순한 디자인이 담아낸 욕망과 열정, 헌신과 소유욕은 사랑이 빚어내는 복잡하고도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닌가. 사랑에 빠졌을 때 누구나 경험하는 내밀한 감정은 연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까르띠에는 이에 걸맞은 이벤트도 펼쳤다. 제품 출시에 맞춰 뉴욕 맨해튼 5번가 매장에서 행사를 열고 셀레브리티 커플 25쌍을 초청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턴, 윈저 공과 심프슨 부인, 소피아 로렌과 카를로 몬티, 캐리 그랜트와 다이언 캐넌, 알리 맥그로와 스티브 매퀸 등 세기의 커플이 서로의 팔목에 팔찌를 채웠다.
또 까르띠에는 한때 커플에게만 팔찌를 판매했다. 고객들은 ‘나’를 위해 팔찌를 살 수 없었다. 내 취향과 기분에 따라 선택하는 액세서리의 본질을 뒤집고, 사랑의 표현이란 메시지에 충실한 마케팅 전략이었다.손목에 까르띠에 팔찌를 착용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진이 매체를 도배했다. 팔찌를 구매하려는 길고 긴 ‘웨이팅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팔찌는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 됐다. “까르띠에 팔찌를 채워줄 만큼 나를 사랑하는 거야?” 애교 섞인 투정이 연인들 사이에 오갔다.
세월을 초월하는 시그너처 아이템이 그렇듯 까르띠에의 팔찌도 이베이에서 활발하게 거래된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것이 있다. ‘찰스 레브슨 까르띠에 러브 브레이슬릿’이다. 까르띠에와 똑같이 생겼다. 다만 금도금이고, 팔찌 안쪽에 찰스 레브슨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사는 한쪽에만 박혀 있고, 다른 쪽은 경첩이다. 이베이 가이드에 따르면 이 제품은 ‘짝퉁’이 아니다. 1970년대 미국 화장품 회사 레블론의 창업주인 찰스 레브슨이 까르띠에의 허락을 받아 저렴하게 제작한 복제품이다. 비싼 까르띠에를 살 수 없는 연인들은 찰스 레브슨의 팔찌를 샀다. 현재 이 복제품은 300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까르띠에는 팔찌에서 모티브를 얻은 다른 제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1979년엔 다이아몬드를 박은 팔찌를 내놓은 데 이어 1983년엔 ‘러브 링’, 1984년엔 ‘러브 커프링크스’, 1985년엔 ‘러브 이어링’이 나왔다. 이것들은 팔찌와 함께 ‘러브 컬렉션’이 됐다.
매년 6월의 하루는 ‘LOVE DAY’로 정해 ‘러브 컬렉션’을 기념한다. “당신의 사랑은 어디까지입니까?(How far would your love go for love?)” 사랑을 인류애로 확장한 러브 데이의 캐치 프레이즈다. 이 행사에서 까르띠에는 자선 팔찌를 판매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국제백신연구소(IVI)에 전달한다. 까르띠에 코리아도 매장에서 판매된 러브 컬렉션 수익금 일부를 IVI에 전달한다. 자선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까르띠에 메종에서는 지금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러브 브레이슬릿을 착용한 송승헌·이영애·전지현·차승원·TOP 등 톱스타의 사진을 이달 말까지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