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시다. -- 榮(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광’이나 ‘영화’라는 단어를 유난히 즐겨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榮華(영화)나 榮光(영광)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고귀한 형상 내지는 속성을 형용하는 데 가장 많이 쓰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하나인 榮光(영광)이라는 글자 자체의 참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榮(영화 영)자를 보면, 그 자훈에 영광, 빛, 영화, 나타나다, 피, 꽃답다 등이 있으며, 용례로는 榮光(영광), 榮華(영화), 榮譽(영예) 등이 있습니다. 파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榮 = 火火 + 冖 + 木
1. 火(불 화)는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용한 글자로 불, 불타다, 빛나다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2. 冖(덮을 멱)은 어떤 사물을 덮어 씌우는 보자기나 휘장 같은 것의 형상을 본 뜬 것으로 덮다, 가리다, 덮는 것 등의 뜻을 가지며, 부수로서의 명칭은 ‘민갓머리’입니다.
3. 木(나무 목)은 나무를 본뜬 글자로 나무, 나무로 만든 기구, 널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파자식에 의하면 榮(영화 영)은 ‘나무(木)를 뒤덮은(冖) 불꽃의 형상(火火)’을 표현한 글자로 나타납니다.
참고로 글자의 윗부분에 火를 연이은 형상(火火)으로 붙여 쓴 것으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또한 冖은 덤불이나 잔 나뭇가지로 뒤덮인 모습의 관목(灌木) 곧 떨기나무를 표현함과 동시에 불꽃이 나무를 온통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한편 성경에는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 3:1~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귀한 신분에서 졸지에 살인자의 오명을 쓰고 애굽 땅에서 황급히 도망하여 나온 후,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치기가 된 지 사십년 만의 일(행 7:30)입니다. 그때에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보게 된 그 놀라운 광경 곧 ‘잔가지로 뒤덮인 모습(冖)의 떨기나무(木)를 에워싸듯 휘감고(冖) 활활 타오르는 불꽃(火火)’의 형상을 문자로써 묘사해 보면 바로 그것이 榮자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榮자는 성경에 기록된 바, 호렙산에 이르른 모세에게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영화로운 모습의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한 글자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인들은 이로써 그때의 정경과 같은 영광, 빛, 나타나다, 영화 등의 뜻을 표현하는 글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불로서 자기의 사자를 삼으시고 (출 3:2, 시 104:4) 영화로운 빛으로 영광 중에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불(the fire)과 그 빛(the light)은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삼차원의 물리적 불과 빛이 아닙니다. 그 불은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태울 수도 있지만(왕상 18:38, 대하 7:1),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같이 아무것도 태우지 아니하면서도 타오를 수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초월적 차원의 기이한 불(참조; 막 9:48)입니다. 또한 그 빛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분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우리 마음의 눈이나 심지어는 육안으로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으며(행 9:3~7), 어떠한 종류의 물체일지라도 그 물체의 투명도와 상관없이 투과할 수도 있고 투과하지 아니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자재의 경이로운 빛입니다. 진실로 이 초월적 차원의 그 불(히 12:29)과 그 빛(요일 1:5)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이로써 사람에게 자기의 형상으로 나타내 보이시기도 하지만 사람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허락하신 그 이상의 무엇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하심에 따라 영적으로만 우리의 마음에 체험(고후 4:6)되는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 가운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고 낙망치 아니하면 어느 때엔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어 이러한 놀라운 초월적 차원의 그 불로 세례를 받거나,(마 3:11, 눅 3:16) 거룩한 그 빛의 비췸을 받는 등,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는 것(히 6:4)입니다. 그리되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크고 담대한 믿음(히 11:38)의 소유자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당한 모든 영적 전투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이 기이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불과 빛을 사모하며 늘 기도에 힘써야만 합니다.
관련성구 (행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이병구 저 "그리스도와 한자"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