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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기로운 여인'의 구약적 의미인 '현숙한 여인'에 한동안 빠져 지냈습니다.
참으로 구약은 깊고도 오묘하며 놀라운 영적인 보고(寶庫)입니다.
오늘 신약교회가 이것의 깊이를 알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폐하는 자가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는 분'(마5:17)이십니다.
'완전케 하다'는 헬라어로 '플레루', ''채우다'(to fill up)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역사와 진리, 그 길은 구약과 신약이 하나 됨으로 온전히 채워집니다.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잠31:17.18
이 구절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풍경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탐구하며 글을 쓰긴 했는데 이상하게 한동안 멈추었습니다.
과연 리브가는 이삭(그리스도의 모형)의 아내, 신부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스라엘의 혼인예식은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에서 그 형식들을 많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혼인예식의 배경에서 혼인잔치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이야기에는 '슬기로운 여인'이란 무엇인가가 깊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삭의 신부를 찾아 나선 신실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그 신부의 조건으로
아주 특이한 것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우물가에 섰을 때에 물을 깃는 소녀가 와서 자기에게 물을 권하고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권하면 그녀를 이삭의 신부로 믿겠습니다(창24:17-)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묘하고도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양자로 여겨진 사람입니다.
그것은 '양자의 영'(롬8:14,15)이신 성령님을 연상케 합니다.
그는 '양쟈 되게 하는 영', '양자를 삼는 영'이신 성령님의 그림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모형'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런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찾고 계십니다.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갈망을 따라 이삭의 신부감을 찾기 위해 가나안에서 갈데아 우르 땅까지
찾아간 거리는 무려 800키로미터가 넘습니다.
그렇게 성령님은 열방 가운데서 주님의 진정한 신부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엘리에셀이 제시한 신부의 조건이 자신과 같은 지친 나그네에게
물을 머시우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낙타라는 짐승에게도 그 갈증과 굶주림을 헤아리 쏟는
긍휼을 가진 여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열처녀의 비유' 와 같은 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연상케 합니다.
마지막 보좌 앞에서 우리 모두가 심판을 받을 때에 그 근거가,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4-36
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을 받은 자들은 언제 우리가 주님을 그렇게 섬겼느냐고 묻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그렇게 섬긴 것이 곧 예수님께 섬긴 것(마25:40)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보잘것 없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같은 연약한 자들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진정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신부들은 이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엘리에셀이 신부로서 조건으로 내건 그것은 역시 이 작은 자를 섬기는 것과 연결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하고도 두려운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그 기도를 마쳤을 때에 마침 리브가가 그 우물가에 왔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물을 동이에 길더니 엘리에셀에게 권합니다.
그것은 당시의 나그네를 섬기는 풍습이어서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려 10마리의 지친 낙타를 보고 그들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면 어떤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힘겹게 물을 길어서 낙타들에게도 모두 먹입니다.
엘리에셀은 묵묵히 그것을 지켜 봅니다.
그리고 이 '평탄한 길'을 주신 것과 이삭의 신부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오늘도 성령님은 주님의 신부들을 찾아서 이렇게 잠잠히
지켜보고 계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내 삶을...나의 헌신을...주를 사랑한다며,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고 하며 치달아 가는
나의 모든 것을 잠잠히 보고 계시겠구나...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 졌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풍경을 천착해 왔습니다.
그 작디 작은 충성이 축복을 받아서 이렇게 성령님을 만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갈망하는
삶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한 섬김이 여전히 너무나 부족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꿈꾸고 신부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열망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찾으시는 그 조건입니다.
결단코 리브가의 이 풍경은 신부의 아름다운 조건입니다.
가장 작은 자, 심지어 말못하는 짐승에게까지 그 목마름과 상함과 갈망의 이면을
생각하는 긍휼...그리스도의 마음...
이것은 진정 자기를 낮추고 어린 아이같이 된자의 삶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18:3-5
이 말씀을 묵상 할 때에 열어 주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를 가지고 주님께 물었을 때에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전에도 수없이 읽었던 이 말씀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라는 구절은 마치 '천국의 보좌' 가운데 세운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가운데'라는 말은 핼라어로 '메소스'인데, 이것은 '보좌 가운데'(계4:6)라는 것으로
연결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기에 그 행동, 말씀 하나 하나가 다 깊은 천국의 비밀과
영적인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재림의 때에 천국 잔치에 그 중심에 세우는 자는 '자기를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와 같으며 그것은 '하늘의 본질과 의', '아버지의 말씀'으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사40:3,4
이것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가장 중요한 예언입니다.
여기서 예비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나'인데 그것은 '돌이키다'라는 말입니다.
누가 주님의 그 길을 예비하고 천국 잔치의 중심에 서는 자일까요?
돌이켜서 자신을 낮추고 어린 아이처럼 된 자입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하는 그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낮추다'란 말의 원문을 찾아 보니 '타페이노오'였습니다.
그것은 '낮추다'란 의미 외에도 '평평하게 하다', '평탄케 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사야40장의 그 주의 길을 훼방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예비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타페이노오는 예수님의 마음을 의미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여기서 '겸손'이란 단어가 바로 '타페이노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낯주고 어린 아이같이 지극히 작은 자, 잃어버린 양 하나를 품는
그 마음을 가진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리브가가 말못하는 짐승들의 그 갈증을 헤아리는 그 깊은 연민과 긍휼이 곧
주님의 마음에 가닿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 애정이 없이 신앙적 열광주의에 사로잡히거나 무정하고 삭막하며
자기(단체)의 유익, 논리, 지식, 필요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그리스도의 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 '자기를 낮추시고'가 바로 '타페이노오'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낮추시고 연약한 자들, 작은 자들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예수님처럼 되지 못하면 진정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합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5:5
베드로는 환난 날을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고 하고나서 다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합니다.
잠언31장의 현숙한 여인의 중요한 이미지가 ...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잠31:17.18
입니다.
허리를 묶는다는 말이 곧 '동이다'인데, 이것은 유월절의 그 밤에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심판의 때에 가져야할 자세를 의미하지요.
'리브가'라는 이름의 뜻이 '끈' '고리'입니다.
그녀는 굳센 팔로서 무려 80키로를 걸어 온 열마리 낙타에게도 물을 먹이는 섬김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잇는 고리가 되었습니다.
낙타들은 떠날 때에 물을 마시고 체내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마시고 채워야 하기에 엄청난 물을 먹습니다.
저도 촬영을 위해 하란 땅에 간적이 있지만 그 당시 우물은 매우 깊이 파서 계단을 타고
내려 가야 합니다.
리브가는 낙타를 먹이기 위해서 수없이 그 우물을 오르내린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런 소녀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삶에서 나타난 충성과 겸손입니다.
그녀의 삶을 탐구하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 '겸손'이 '타페이노오'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소유 하는 것이 심판 날을 예비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나그네 되며, 옥에 갇힌 자를 섬기는
그 긍휼과 사랑의 충성으로 하늘의 상을 받습니다.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잠31:20,21
이것을 깊이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들,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집사람들에게 반드시 '홍색 옷'(어린 양의 피)로
채움을 입혀야 합니다.
어린 아이 하나(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함으로 천국의 큰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 삶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이들의 가장 취약점이
그 삶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지식과 논리와 구호, 고백, 계획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겸비하여 작은 영혼과 익숙한 풍경 너머 상한갈대를 예수님의 마음,
하늘의 긍휼로서 품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의 본질적인 감각과 마음을 소유한 영혼들...
잠잠히 그런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이것을 상실하면 참으로 억울한 지경에 처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후에 깊이 나누겠지만 그것은 지식, 고백, 확신을 넘어 섭니다.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함을 추구합니다.
2.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13-17
이것은 바울이 '악한 날'에 능히 서서 원수를 대적하고 이기는 것에 대하여 권고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입은 이들이 우리의 싸움이 치열한
'영적 전쟁'임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알았다고 해도 그 전쟁의 실제, 그리고 전신갑주의 본질로 무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리라
행14:22
바울의 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진정으로 그 날을 사모하는 자들은 환난과 핍박, 강렬한 전투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깨어 그 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대비하는 무장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영적 전쟁과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이들이 이것을 흔히 놓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최근에 더욱 더 하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 지혜와 총명, 진리의 본질을 열어 달라고 날마다 구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사도 야고보는 환난 날에 대하여 나누면서 무엇보다 지혜를 구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 날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혼인잔치에 들어 가는 자들은
'지혜를 소유한 자들'(슬기로운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진정한 지혜,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망합니다(호4:6).
저는 말씀을 깨달으면 즉시 구하는 아이가 되고자 합니다.
'어린 아이같은 자'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말씀에 즉각 순종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 내 눈의 수건을 벗겨서 아버지의 뜻, 하늘의 지혜를 열어 달라고
다니엘처럼, 바울처럼 구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예기치 않은 말씀들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보내어 자극을 주고, 성경에서 열쇠를 주시고, 책들과 자료들을 알게 하시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그 말씀에 거의 빠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9-42
저는 요즘 이 풍경 속에 거하는 기분입니다.
한동안 여러 작업과 나눔으로 이리저리 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리아처럼 '주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합니다.
주님은 이것이 '좋은 편'이라 하십니다.
저는 이 빼앗기지 않는 풍경에 들어 가고자 하였습니다.
어떻게 제가 최근에 깨닫는 것들을 나눌지 고민 중입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이것은 마지막 때의 영적인 전쟁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 날에는 모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은 자들'이 사단을 대항하여 싸웁니다.
'남은 자'란 원어의 의미가 '두루마리의 처음과 같은 끝 부분'을 의미하는 것임을 이미 나누었습니다.
하나로 연결된 두루마리의 마지막 부분은 처음 부분과 같은 본질을 소유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자들인가를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그전에도 여러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혜를 구하는 과정에서 진리의 성령님께서 이것의 수건을 열어 내 영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거의 2주 정도를 이 말씀에 붙들려 성경을 탐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깊이 연결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남은자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이 말씀의 여정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제 안에 부어진 것들을 글로써 표현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도전해 보려 합니다.
출처 : http://www.3-rd.net
첫댓글 그리스도의 마음을 극명하게 나타낸 '자기를 낮추시고'가 바로 '타페이노오'입니다.이것이 진정으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비우고 낮추시고 연약한 자들, 작은 자들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예수님처럼 되지 못하면 진정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합니다. 아멘!
어쩌면 오늘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이들의 가장 취약점이 그 삶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지식과 논리와 구호, 고백, 계획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겸비하여 작은 영혼과 익숙한 풍경 너머 상한갈대를 예수님의 마음, 하늘의 긍휼로서 품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의 본질적인 감각과 마음을 소유한 영혼들...잠잠히 그런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리브가가 목마른 낙타들을 먹인 것처럼... 참으로 저의 메마른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생수같은 말씀입니다. 프린트해서 여러번 읽어야겠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샬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의 증거와 전신갑주를 입고 환난날의 영적 전쟁을 위해 깨어 준비 하겠습니다.리브가가 목마른 낙타에게 힘들게 물을 먹여 생명을 구하는 심정으로 ...마라나타!!
리브가를통해 은혜받았습니다.
리브가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의 자격을 날마다 만들어가기를 기도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모든분들에게 오늘도 승리의삶이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 이것이 천국의 모형이며 예수님의 신부의 모습...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옷은 거룩하고 순결한 신부의 옷을 입고 발은 영적 군사의 군화를 신은 모습 이것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이겠죠
생수은혜~감사~또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하리라 행 14: 22 불평했던 제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타페이노 오 주님의마음을 구하며 부어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렵니다
'누군가를 보내어 자극을 주고, 성경에서 열쇠를 주시고, 책들과 자료들을 알게 하시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할렐루야!... 제게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시는 성령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말씀으로 전신갑주 입게 해달라고 간절히 원하며 자나 깨나 성경을 놓치않고 읽는 동안 이러한 방법 저러한 방법으로 저를 흔들어 깨우시며 깨닫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글을 보게 하신 주님의 손길 또한 큰 은혜입니다. 날마다 저의 온 영과 마음과 골수로 생수를 흘려주시고 정결한 신부가 될수있도록 다듬고 빚어가시는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영광을 올립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되시는 나의 형제와 자매분들께도 축복하여주소서
감독님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글로 잘 써주시어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지막 때라 부르는 지금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또한 너무도 중요합니다. 삶의 습관을 바꾸어야하는 중요한....부디 이 글을 많은 분들이 읽고 고민하며 재다짐하고 행동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감사 감사~!!1 저도 도전히러고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