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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정취가 그득한 정관 병산골의 송예원에서 시사랑시낭송회 회원들이 연못의 수련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창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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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명 화백·박옥위 시조시인
- 자연 속 예술의 장 '송예원' 운영
- 행사 열릴땐 '문화공간-숲' 변신
- 무대와 객석이라는 구분 벗어나
- 지역주민·예술인 한데 어우러져
- 노래·시낭송 등 문화향기에 흠뻑
- 작은 연못엔 수련이 피어 오르고
- 석류나무와 새들의 속삭임 황홀
- 이곳 정원은 자연의 축소판 같아
- 자연취향 작품활동 닮은 부부
- 천생 예술 동지이자 조력자
- 부담없이 즐기는 문화판 꿈꿔
신도시로 변모한 기장 정관의 병산골에 들어갔다가 한참을 헤맸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병산(屛山)을 찾을 수 없었다. 좌광천 발원지를 따라 호젓한 저수지며, 금동(錦洞)이라 불린 수려한 계곡이며, 산자락의 당집 등 자연스러운 것이면 무엇이든 어울릴 것 같은 병산골에 병산이 없다! 같은 이름을 쓰는 안동 하회마을 옆의 병산서원에는 낙동강을 끼고 깎아지른 병산이 우뚝 서 있질 않던가.
궁금증은 병산 저수지 지나 삼거리 짬에 들어선 '송예원'(일명 버섯집)에서 풀렸다. 송예원 2층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크고 작은 산들과 계곡이 그대로 병풍이었다. 그러니까 병산골 자체가 병산이자 병풍이었던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병풍!
#별 내리는 병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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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명 화백과 박옥위 시인이 운영하는 이색 문화공간 '송예원' 2층에서 시사랑시낭송회 회원들이 토론하는 모습. |
송예원은 예술인 부부로 잘 알려진 송영명(72·현 부산예총 이사장) 화백과 박옥위(74) 시조시인이 운영하는 자연 속 이색 문화공간이다. 가 본 사람들은 놀란다. 식당이나 카페를 하면 딱 좋을 곳을 문화공간으로 돌린 것이 그렇고, 여기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이 웬만한 지역 문화회관 못지않다는 사실이 그렇다.
지난달 27일 저녁 7시 송예원에서 '문화가 있는 날: 군민과 함께 하는 문화 예술 즐기기' 행사가 열렸다. 부제가 다소 촌스러워 보였지만 내용은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노래와 연주, 시낭송, 동화구연, 드레스 코드 이야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지역주민과 예술인 등 1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시낭송 순서에선 꼬마손님인 강경민(정관초등 5) 양이 초등 교과서에 실린 '바다'라는 동시조를 들고 나와 또박또박 낭송했다. '바다는 엄마처럼/ 가슴이 넓습니다/ 온갖 물고기와/ 조개들을 품에 안고/ 파도가/ 칭얼거려도/ 다독도독 달랩니다…'. 낭송이 끝나자 이 동시조를 쓴 박필상 시조시인이 무대로 나와 "바다는 우리 모두의 굳건한 믿음이자 사랑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라며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박 시인은 준비해온 자신의 책을 아이에게 선물로 건넸다.
지난 6일 저녁에는 '시사랑시낭송회'의 월례 모임이 있었다. 시인과 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주로 자작시를 낭송하고 격의 없이 품평하는 모임이다. 자리를 함께 한 권유리야 부산외국어대 교수(문학평론가)는 "고담준론이 아니라 생활 주변의 소재로 시를 써 토론하기 때문에 피부에 와닿는다. 이런 게 곧 풀뿌리 지역문학이 아닐까"라고 했다.
송예원은 2300㎡의 꽤 넓은 부지에 버섯 모양의 3층 구조로 돼 있다. 1층은 그냥 집이고 2층은 콘서트홀로, 3층은 자료실로 각각 활용한다. 정원에는 작은 연못과 소담한 오솔길이 있고, 담장을 따라 각종 유실수와 야생화가 심어져 있다. 정원 한쪽에는 개집과 새집까지 입주해 있다. 자연과 사람, 동식물이 교감·공존하는 공간인 셈이다.
문화행사가 열리는 날엔 송예원이 '문화공간-숲'으로 변신한다. 송예원은 송영명 화백이, 문화공간-숲은 박옥위 시인이 대표로 돼 있는데, 알고 보면 같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연 2회 상설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예술인 문예강좌와 시낭송회 등이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가장 비중있는 '문화의 날' 행사가 열리면 송예원 전체가 장터처럼 북적댄다. 이 행사는 2010년부터 거의 매월 열렸다. 초청인사들을 보니 지휘자 오충근, 테너 장원상, 소프라노 신진범, 피아니스트 고정화, 시인 박정애 김예강 등 내로라는 예술인들이 즐비하다. 지난 4월에는 오규석 기장군수가 참석해 시를 낭송했다. 이밖에도 지역에서, 동네에서 '한 가닥' 한다는 꾼들이 수두둑하다.
#나는 수련, 당신은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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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정관에 '문화공간-숲'을 만들어가고 있는 송영명(왼쪽) 화백과 박옥위 시인. |
송예원의 작은 연못에 수련이 피고 있었다. 수련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에서 자라고 낮에는 꽃이 활짝 피고 밤에는 오므라든다. 수련은 박옥위 시인이 좋아하는 꽃이다. "꽃말이 '청순한 마음'이라고 해요. '지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꽃'이기도 하죠. 피고 오므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면서 시심이 돋아요."
'장독을 비워내고 수련을 심은 그녀/ 수련이 피는 동안 남자도 펴올랐다/ 한 십년 호수가 된 생각 아직도 젖었다…'(박옥위 시조 '수련 심는 여자' 중) 문단에서는 박 시인을 '수련을 닮은 시인'이라 부른다. 분위기나 정감이 그리 통하는 모양이다. 송예원을 한 바퀴 돌면서 박 시인의 자연취향과 애호가 끈덕지고 섬세하다는 걸 알았다. 감 대추 살구 석류 호도 포도 매화 박태기 배롱나무 따위가 군데군데 뿌리를 내리고 있고, 담장을 따라 백합 도라지 능소화 보리수가, 또 텃밭에는 고추 오이 가지 상추 옥수수 등이 탱탱히 자라고 있었다. 자연을 불러 모아 만물정원처럼 가꾸려면 그만한 거름이 필요한 법. "일 구덩이예요. 땅 일구고, 거름 주고, 씨 뿌리고, 물 주고, 풀 뽑고, 따는 일들이 모두 일이죠. 일 못하는 사람은 절대 이 일 못할 겁니다." 박 시인은 투덜대면서도 내심 행복해 하는 표정이다.
어디선가 휘바람처럼 '휘휘~' 하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가니 큼직한 새장이 있다. 왕관앵무와 잉꼬, 십자매가 한쌍씩 들앉아 놀고 있다. 박 시인은 "얼마 전 병아리 한쌍을 새장에 넣었더니 싸우기는커녕 재미있게 잘 놀더라. 저게 평화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수련이 핀 연못가에 석류나무가 씩씩하게 서 있다. 석류는 송 화백이 특히 좋아하는 유실수다. 40년 가까이 석류를 그려 '석류 화가'란 별칭까지 붙었다. "석류는 붉고 밝고 맑은 열매예요. 모양과 색깔, 선이 다 달라 조형성이 있어요. 적나라(赤裸裸)한 의미가 있고, 순혈의 처녀성을 상징하며 여자들이 먹으면 좋다는 말도 있지요."
박 시인이 석류를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햇살이 부서지는/ 그대 잇속 싱그럽다/ 불꽃으로 담금질해 사리로 익은 사랑/ 별은 또 별을 불러내려/ 오지그릇 터지겠다'(박옥위 '석류2' 중)
박 시인과 송화백은 시, 그림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지역에선 보기 드문 예술인 부부다. 부부는 닮는다지만 이들처럼 닮은 데가 많은 부부도 드물다. 말이 조근조근 하고, 성품이 부드러우며, 자연 취향의 작품활동을 한다는 점이 모두 닮았다. '시와 그림의 만남'이라는 부부시화전도 두 번을 열었다고 한다. 천생 예술 동지이자 조력자다.
#정관에 번지는 문화향기
기장 정관은 파천황의 변화를 겪고 있는 신도시다. 면(面)이지만 인구는 구(군)급이다. 2008년 5100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지난달 7만 명을 돌파했다. 경이로운 증가세다. 박정애 시인의 표현대로 '창대비 내리는 靑(청)대밭 죽순처럼 일어서는 신흥도시'가 정관이다. 주민 평균 나이가 34세로 젊다. 천마 백운 함박 매남산이 빙 둘러 싸 솥뚜껑(鼎冠)처럼 기운이 모여 사람이 모여드는가 싶다.
문화가 형성될 틈조차 없었던 신흥 아파트 숲 속에 송예원이란 문화예술의 거점이 생긴 건 정관의 행운이다. 변화를 예상한 것도, 당국의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애초 누군가 식당을 하려고 지어지던 건물이 매물로 나온 것을 사들인 것이 계기였다. 한 예술인 부부의 자연애와 문화사랑이 누구도 예상못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송예원은 문화가 고급하고 거창한 게 아니라, 마을에서 부담없이 즐기고 누리는 생활임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정관에 사는 화가가 40명에 달하고, 각 장르의 문화예술인을 합치면 100명은 족히 될 것이라니 머지 않아 정관에도 새로운 문화판이 형성될 분위기다.
송 화백은 이곳 정관 출신이다. "내겐 50년만의 귀향인데 어찌 하다 보니 고향에 문화공간을 만든 셈이 됐습니다. 이곳 개울(좌광천)은 내가 어릴 적엔 병천(屛川)이라 불렀어요. 이제 고향에 돌아온만큼 옛 이름도 찾아야겠지요."
이 얘기를 듣고 송예원에서 병산골을 다시 보자, 주변의 병산이 웅긋중긋 일어나 위세당당한 병풍을 형성했다. 병풍 속에 지즐대며 흐르는 소하천은 분명 병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