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다(0131)
유 병 덕
바다가 조용하다. 오늘 바라본 해운대 바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예전에 그 바다가 아니다. 저 멀리 수평선 부근에 조그만 배가 보인다. 여객선인지 화물선이지 분간 할 수 없다. 창가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동백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해운대 백사장과 청초한 바다가 친구를 하고 있다. 남쪽으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오륙도가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린다. 바다는 다리미로 다려놓은 듯 판판하다. 평화롭다.
내가 10대였던 어린 시절 처음 와 보았다. 바다가 사나웠었다. 그 때 푼돈모아 겨우 차비를 마련해 가지고 큰맘 먹고 버스를 타고 왔다. 동화속의 ‘바다용궁’이 여기 있을까,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고 넓고 푸른 바다만 바라보았다. 돈이 떨어져 가야 했다. 그 당시 성난 파도만 기억난다.
고향에 돌아가서 산골 친구들에게 바다이야기를 해주었다. 관심이 대단했다. 하늘만 처다 보고 사는 두메산골이다. 바다를 못 본 것처럼 물어왔다.
“파도가 집체만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아?”
조금 꾸며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음, 집체만한 파도도 있고 저 앞산만한 큰 파도도 보았어,”
그 친구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 바다를 동경하면서 자랐다. 그 넓은 바다를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꿈도 키웠다. 비록 두메산골에 살았지만 말이다.
당시 바다를 다녀온 후 며칠 동안은 학교에 갈 때나 집에 올 때, 친구들이 졸졸 따라왔다. 그 친구들은 바다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다. 함께 걸어가다 쌕쌔기가 나타나면 신작로 옆에 숨었던 기억도 있다. 이 산등성에서 보였다하면 저 산 계곡으로 미끄러지듯이 빠져 나갔다. 그 굉음이 대단하다. 쌕쌔기가 사라지고 나면 ‘휴~’하고 졸였던 가슴을 펴고 집으로 달음박질했다.
그 곳은 새소리까지도 무서웠다. 해가 저물기 전에 집에 가려고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친구들이 없이 혼자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는데 모퉁이에 숨어 있던 숫꿩이 갑자기 나타난다. ‘꿔꺼 꺼거 꿩’ 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놀라서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줄행랑을 놓았던 때도 있었다. 그 두메산골에서는 바다가 보고 싶어도 자주 볼 수 없다.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바다를 그리워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해운대에 수없이 와 보았다. 정해놓은 장소에 일을 보고 다녀가는 것이 전부다. 일행과 함께 시간 맞추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횟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 경우는 운 좋은 날이다. 동료들이 소주를 많이 권하는 바람에 바다를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와 이야기하면 어린 아들은 눈빛이 빛나고 호기심을 보였다.
“아빠는 바다에 다녀와서 좋았겠네,”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매우 좋았지, 가슴이 뻥 뚤 린 기분이야”
하고 너스레를 떤다. 삶이 고단할 때 넒은 바다를 찾아가 마음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린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급하게 짬을 내어 언젠가 가족과 함께 해운대를 찾은 적이 있다. 경치 좋은 식당을 골랐다. 큰 횟집이다.
“가장 싱싱한 회로 3인분 만들어 주세요,”
식당주인은 신바람 나게 콧바람을 일으키며
“네, 알겠습니다. 3인분이요,”
얼마 후 큰 회 접시에 푸짐하게 담아왔다. 아내와 아들에게 권했다.
“우리 맛있게 많이 먹자,”
마침 그때는 저녁시간이 조금 지난지라 시장기가 돌았다. 세 식구가 급하게 회를 먹어 치웠다. 이어서 나온 매운탕과 식사를 하고 나니 부러울 것이 없다. 이내 바닷가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셋이서 뚜벅뚜벅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난리가 났다. 아내가 배탈이 난 것이다. 얼마 후 나도 토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무척 괴로워한다. 황급히 전화기를 꺼내 119에 신호를 보냈다.
“여보세요, 저녁에 회를 먹고 탈이 났어요, 급히 병원을 가도록 도와주세요,”
얼마 후 해운대 119구조구급차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여자소방관과 남자소방관이 들것을 들고 5층 숙소로 황급히 와서 묻는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일단 남자소방관과 함께 들것에 아내를 눕혀 구조구급차로 옮겨 실었다. 아내는 괴로운 표정과 신음을 한다. 구조구급대원은 응급조치를 하고 해운대 병원응급실까지 후송을 해주었다. 아내는 야간 응급실 의사의 처방과 수액주사를 맞으며 밤을 새웠다.
그동안 해운대 와서 편안한 시간을 즐긴 기억이 없다.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준비를 못한 것이다. 어린 시절은 돈이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시간에 쫓기었다.
얼마 전 다시 이곳을 찾았다. 같은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머무는 시간도 일주일 정도 길게 잡고 쾌적한 숙소로 높은 층을 미리 마련했다. 이곳에 머물면서 아침에 일어나 동백섬주변과 해운대 백사장을 여유 있게 산책했다. 함께 온 친구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도 나누었다. 숙소 앞의 영화의 거리도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올 때 못 본 그 꽃” 이라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또 남태평양 섬의 추장 투이비아의 ‘빠빠라기’ 글이 기억난다.
“지하철시간에 맞추어 뛰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 회의시간 지키느라 인파속에 허둥대는 문명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고 파리의 모습을 그렸다.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어린 시절 두메산골 살 때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을 바라보며 마음 설렜다. 이는 마음의 여유다. 오래 지켜본 해운대 바다는 전부를 드러내 날 품어준다. 해운대 바다는 내 마음의 평화를 주고 내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 같다. 언제 시간을 내어 가족이 함께 다시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