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 태후가 비록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과 반역을 꾀한 자들, 이씨 황족들에게는 극도로 가혹하게 대하고 그들 다수를 도륙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주 정직한 사람에게는 관대한 아량을 베풀 줄 알았던 것도 역시 사실이다.
일례로, 사법관 서유공徐有功은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관대한 판결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그는 무고誣告로 죽을 사람들도 진상을 밝혀 다수 살려냈다. 한번은, 그가 무 태후 앞에서 형옥刑獄에 관해 자신의 의로운 주장을 도도히 펼쳤다.
그러자 무 태후가 얼굴에 노기를 띠고 그를 크게 꾸짖었다.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벌벌 떨었으나, 그는 조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는 밀고와 무고가 판을 치며 간신배 혹리들이 정관가를 주름잡고, 무 태후가 걸핏하면 사람들을 도륙하는 세상이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조정의 인사들은 사적으로 서로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할 정도였다. 길에서 서로를 만나도 눈으로만 인사하고 지나쳤다.
어떤 관리는 출근해서 조정에 들어갔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당하기도 했다. 조정의 관리들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족과 작별할 때, 우리가 다시 만날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란다.
오죽했으면, 새로운 인물이 관직을 얻어 궐 안에 들어올 때마다, 궁궐 문을 지키는 관비官婢들이 “곧 귀신 될 인간 또 하나 왔네”라고 농담을 했을까.
이런 판국에 서유공이 목숨을 온전하게 부지한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나중에 내준신과 같은 부류의 혹리酷吏 주흥周興이 무 태후에게 서유공을 참소해 그는 면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훗날 무 태후는 그를 신뢰해 다시 복직시키고자 했다. 그 때 서유공은 땅에 엎드려 울면서 간청한다. “내가 이 관직 때문에 죽을 것”이니 명을 거두어 달라고. 그러나 무 태후는 거의 우격다짐으로 그에게 결국 관직을 수여했다<자치통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저승사자처럼 가혹했던 무 태후에게도, 따스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는 정직한 신하들이 그녀의 자애로운 본성에 호소할 때, 따스한 인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매우 관대하며 자비로운 군주임을 만인 앞에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조영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폐하, 그건 저의 불찰입니다.”
“고 장군이 대당에서 환대를 받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어떻소? 나도 장군을 환대한 것 같소?”
“이르다마다입니까?”
“그렇다면, 내게는 왜 그런 선물을 주지 않는지 궁금하오.”
“그렇잖아도, 제가 폐하께 드릴 선물을 한 점 가져왔습니다.”
“오, 그래요? 어서 보여주시오.”
조영이 품속에 간직한 커다란 봉투를 꺼내었다.
“폐하께서 친히 읽어보소서.”
무 태후는 미시아의 손으로부터 봉투를 건네받아 그 속에 든 종이를 펼쳤다. 고려의 명산품인 자지힐문금릉지紫地纈文錦綾紙에 아름다운 시가 한 수 적혀 있었다. 그것은 무 태후의 “여의랑”이었다.
무 태후는 시의 필체를 면밀히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하오. 훌륭해. 고 장군은 무공만 뛰어난 게 아니라 글재주도 탁월하군요.”
“황공하옵니다. 과찬입니다.”
무 태후는 그윽한 눈길로 고조영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고 장군은 이만 돌아가도 괜찮소. 오늘 비번인데 쉬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오.”
조영이 문밖으로 나갈 때 무 태후가 미시아에게 명했다.
“미시아는 고 장군을 현무문 밖까지 전송해다오.”
“네, 폐하.”
미시아가 고조영을 따라 나간 다음, 화기和氣가 서려있던 무 태후의 낯이 엄숙해졌다.
“극시아, 이리 가까이 와라.”
극시아가 속으로 떨며 다가갔다.
“네가 고조영과 미시아 앞에서 내게 한 짓을 알렷다? 내 체면을 아주 뭉개버렸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극시아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진동했다.
“내가 다시 한 번 묻겠다. 이 편지는 네가 자의로 쓴 거냐 아니면 내가 시켜서 쓴 것이냐?”
극시아가 떨면서 대답했다.
“제가 자의로 쓴 것입니다.”
“그럼 방금 전에는 왜 내가 시켰다고 거짓말을 했느냐?”
“···.”
“미시아와 고조영 앞에서 분명하게 해명해라. 알겠느냐?”
“폐하, 명심하겠사옵니다.”
현무문을 나선 조영은 미시아에게 사의를 표하고 잠깐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일전에 제게 주신 선물은, 제게 너무 과분한 거라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미시아는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옥비녀는 제가 받기 어렵습니다. 다시 돌려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죠?”
미시아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돌려드린다 하더라도 상심하거나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향한 아가씨의 호의는 제가 감사히 받겠지만, 옥비녀는 아닙니다.”
미시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왜, 제가 싫은가요?”
‘이 여인이 바로, 영주 계성 밖에서 장미가 수놓인 흑의를 입고 냉엄한 표정으로 기백 있게 나를 대하던, 그 탁월한 무예의 소지자가 맞는가?’
조영은 미시아의 변화에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싫은 게 아닙니다. 다만, 옥비녀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럼, 쇠나 구리, 나무로 만든 비녀는 괜찮은가요?”
조영은 그녀의 순진한 말에 자칫 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랑은 사람을 이렇게 백치처럼 만들어 놓는가보다.
“아닙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조영은 작별을 고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럼 적당한 기회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멀어져가는 조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시아가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저 분은 나와 정혼한 낭군이 아닌가 보구나.”
자신이 어릴 적에 할아버지는, 만일 그 비녀를 받은 사람이 비녀를 되돌려 준다면, 그는 자신과 정혼한 남아가 아니라고 말해 준 바 있었다.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잠시 후 하늘의 찢어진 구멍으로 빗물이 쏟아지는 듯, 미시아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조영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평공주의 금비녀도 속히 돌려주리라 작심했다. 하지만 여미아가 준 옥비녀는, 막상 돌려주겠다고 작정하니 웬일인지 섭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영아, 조영아, 이게 무슨 망상이냐? 삼신상제 하나님께서 하사하신, 단군임금 조선의 고토는 아직 남의 땅이 되어 서럽게 울고 있는데, 네가 어찌 여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단 말이냐?”
나직한 목소리로 자책하며 방문을 들어서서 다시 세 개의 비녀를 꺼내보았다.
‘이 옥비녀들은 깊은 내력이 있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것들은 결코 내가 소유할 게 아니다. 속히 돌려드려야 한다.’
하지만, 마음에 가장 꺼림칙한 물건은 태평공주의 금비녀였다.
‘할아버지와 임장청 대인은 내가 태평공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녀와 혼인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난 그런 정략결혼에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가?’
‘아, 하늘이여, 하늘이여!’
‘장차 어찌 되든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 게 아니다. 그녀는 남편 있는 아낙네다. 그녀가 차후에 이혼한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그녀의 비녀를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게 옳지 않다.’
‘공주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이걸 어떻게 되돌려 드린다?’
갈등과 고민에 싸여있던 조영은 하인을 시켜 당장 태평공주의 집으로 금비녀를 되돌려 보내기로 결심하고 금비녀를 백단목 상자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조영은 이영월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시 한 수를 오색금화지에 정성스럽게 썼다. 바로 그 “별유진보”라는 시다.
血得天下揚世名 혈득천하양세명
喜見萬金似露生 희견만금사로생
千年光陰擧一杯 천년광음거일배
別有眞寶三七中 별유진보삼칠중
금비녀와 함께 조영의 친필시를 건네받은 태평공주는 불쾌하고도 쓰린 가슴에 혼자 울다가 중얼거렸다.
“흥, 별유진보가 있으니 이따위 금붙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시문과 함께 동봉한 편지를 펴보니, 금비녀를 받을 수 없다는, 그리고 공주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시 한 수를 친필로 써서 선사한다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 적혀있었다.
골이 난 이영월이 어떻게 하면, 고조영을 골려주고 치맛자락으로 사로잡을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을 때, 조영은 여미아의 비녀를 신속히 돌려줄 방도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비녀를 줄 때는 이루하 아가씨가 모르게 신 같은 솜씨로 비녀를 날렸는데, 나는 남의 이목을 피해 그런 재주를 펼칠 수 없을 것 같고, 하인들을 시켜 전달하자니 이루하가 알아차리겠고, 따로 불러내 단 둘이 만날 수도 없고···.’
결국은 이루하와 여미아를 식사에 초대해 적당한 기회를 봐서 슬쩍 넘겨주는 방도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영은 이루하의 집에 하인을 보내, 근황을 물으며 오랜 동안 보지 못했으니 집에 한 번 오셔서 식사나 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구두 답변을 하인이 가져왔다.
이래저래 울적한 가슴을 달래며 조영은 비번일 경우, 두문불출하며 임가삼교任家三嬌 미시아, 여미아, 극시아 자매의 조부가 전해준 책 <삼극팔괘검학정해三極八卦劍學精解>와 열여덟 살 때 스승에게서 받은 <행심록의해>를 연구하는 한편, 환웅임금의 <삼일신고>와 고양원 대덕이 준 <예수메시아경> 같은 책을 탐독했다.
특별히 <삼일신고>는 배달겨레 전통 신교神敎의 경전이므로, 고조영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즐겨 읽던 책이다.
조영이 경교의 경전들에 접한 후, <삼일신고>에서 특히 조영에게 가슴 깊게 다가오기 시작한 부분은, 간략한 신론神論과 천궁론天宮論(천국론)이다. 신론에서는 창조주 신이 어떤 분인가, 그리고 그 신과 어떻게 교통할 수 있는가가 대단히 짧게 서술되어 있고, 천궁론은, 지극히 단순한 진술로 천국이 어떤 곳인가, 어떻게 하면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조영은 경교(기독교)의 경전들을 탐독하면서, 신론이나 천국론, 덕행론에 관한 경교의 가르침 가운데, 조상 전래의 <삼일신고>나 <삼백육십육사>와 너무나 흡사한 것들이 있음에 몹시 놀라곤 했다.
말하자면, 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삼일신고>의 난해하고 압축적인 문구들이, 기이하게도 경교의 가르침을 통해 손쉽게 납득되고 풀어지는 것이었다. 경전 자구字句의 참뜻을 발견해 가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교의 경전에서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관해서는, 고양원 대덕에게 서신을 보내 해석을 요청하곤 했다.
조영은 이렇게 해서 예컨대, <삼일신고> “천궁론”에 나오는 “성통공완자性通功完者 조영득쾌락朝永得快樂” 등이 무슨 뜻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또 어떤 경지인가를 조금씩 맛보기 시작한다.
이 문구를 직해하면, 성통공완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뵈옵고 영원히 쾌락을 누린다는 뜻이다.
고양원 대덕의 설명에 따르면, “조朝”라는 글자 뒤에는 “천일신天一神”이라는 글자가 생략되어 있다고 한다. 그건 “하나님을 뵈옵고”라는 의미다. <삼일신고> 한문판은, 글자 수를 366자로 맞추려다 보니, 압축적이고 생략적인 문구들이 등장한다.
성통공완에 대해, 고양원 대덕에게 자문을 구하자, 전통 신교와 경교 양자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고양원 대덕이 장문長文의 편지로 매우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던 것이다.
그 편지에서, “성통공완”이란, “성품이 (하나님과) 통해, 공력을 완성한다” 즉 삶으로 인격을 완성한다는 뜻이라고 고양원은 말했다. 이에 덧붙여, 고양원은 경교에서 어떻게 성통공완을 이루는지 부언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부단한 교통 즉 기도를 통해,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인격 완성의 목표지점은, 바로 이 땅에 오셔서 친히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보여주신 세존世尊 메시아 예수님, 신교 태일太一 하나님의 성품과 삶을 닮는 것이라고 고양원은 말했다.
이런 얘기는 작년에, 유주 남서쪽의 십자사十字寺에서 고양원 대덕에게 들은 바가 있었지만, 다시 편지로 읽으니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이어서 고양원 대덕은 “조영득쾌락朝永得快樂”에 대해 하나님을 “뵈옵는 것朝” 자체가 가장 큰 쾌락이라고 설명했다.
성통공완을 이룬 사람은 천궁에서 영원히 살며 한없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 모든 쾌락의 근원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을 뵈옵는 순간, 신의 한없는 사랑과 쾌락이 온 영혼을 감싸, 마치 무궁한 행복의 대양 속에 잠기는 것처럼 형언할 수 없이 황홀해진다고 고양원은 강조했다.
"조(천일신) 朝(天一神), 영득쾌락 永得快樂," 이 두 문구가 함께 붙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의미란다.
조영이 고양원의 편지를 읽고 있다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바로 그거다! 내가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을까?”
조영은 중얼거리며 다시 하인을 이루하의 집에 보냈다.
이루하의 집에 당도한 조영의 하인은 조영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저희 주인나리께서 경교에 대해 몹시 알고 싶어 하십니다. 이루하 아씨께서 여미아와 함께 집에 오셔서 의문 좀 풀어주실 수 없느냐고 부탁하셨습니다.”
이루하가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아니라 여미아를 부른 게 아닌가?”
“아닙니다. 우리 공자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르셨습니다. 아씨가 여미아 아가씨와 함께 오시면, 식사도 나누며 경교에 관한 것도 물어보고 싶다고.”
이루하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지난번에는 제가 바쁜 일도 있고 심사도 편치 못해 식사초대에 응하지 못했다고 전해주세요.”
조영은 여미아가 이루하와 함께 자기 집에 오면 그녀에게 경교의 가르침에 관해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옥비녀를 되돌려줄 심산이었다.
옥비녀를 되돌려 주려니, 마음 한 비탈로는 무언가를 잃은 듯 너무나 허전하고 착잡했지만, 어쩐지 미시아의 옥비녀와 이영월의 금비녀만을 돌려주고 그것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여미아를 맘에 두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용납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어릴 적에 정혼한 여인이 따로 있다고 할아버지가 누차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녀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할아버지 대답은 아직 알 필요가 없고 때가 되면 자연히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태평공주는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임장청의 손녀들인 미시아, 여미아 등도 자신과 정혼한 여인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작년 계성 남쪽의 임가장원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방에 걸린 대부여 설이매 공주의 “연정도” 그림이 그곳의 어느 규수 방에도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혹시 미시아가 자신과의 정혼녀인가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 면밀히 숙고해 보니, 자신의 추측이 틀린 것 같았다. 자신은 후고려국의 태자이고, 그녀들은 말갈의 여인이 아닌가?
말갈이 비록 진조선 숙신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고구려 당시에 고구려의 부여계 황족들과 말갈계 백성은, 신분상 천양지차를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미시아 여미아를 만났을 때도 자신의 조부 고승이나 그녀들의 조부 임장청은 그들의 관계에 관해 털끝만큼의 암시도 주지 않았다. 미시아나 여미아는 자신과 정혼한 여인이 아닐 것이라는 게, 다각도로 사색한 후에 얻은 조영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고조영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훗날에 밝혀지겠지만, 이 때 고조영이 여미아의 옥비녀를 돌려주고자 한 것은, 아주 합당한 처사라고 스스로가 단정했다. 돌려주기로 결심했을 때, 가슴은 몹시 아팠으나, 그와 동시에 이상하게도 마음 한 비탈이 아주 상쾌해졌다.
평상시에는 잊어버렸다가도 가끔씩 여미아의 옥비녀가 상기되면, 기이하게도 그의 마음은 조금 불편했었다. 옥비녀가 까닭없이 그의 마음을 아리게 했던 것이다. 이제 돌려주려고 하자, 마치 무언가 자신의 몸뚱이를 얽어맨 것이 풀어진 듯, 매우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조영은 고양원 대덕에게 옥비녀 이야기는 숨긴 채, 가슴의 이런 느낌 즉 어떤 사고나 행동을 했을 경우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불안 혹은 평온함에 대해 질문을 보냈다. 그에 대한 고양원의 답변은 이러했다.
양심의 불안감은 자신도 모르게 양심을 거스르는데서 오며, 내적인 평온함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양심에 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심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주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면 우리 주 하나님께서도 그에 대해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양심은 하나님이 천부적으로 심어놓으신 하늘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이 악을 자행하다보면 양심이 마비되어 악을 저지르면서도 전혀 불안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선을 행하는 가운데, 양심을 예민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어떤 행동과 사고에서 양심과 가슴의 평온을 잃지 않을 때, 그것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앞길이 형통하게 열린다.
고양원의 말은 대충 이와 같았다.
(다음 회로 계속)
********************
샬롬.
2024. 10. 4.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