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1> 편집인 글-쉐어 하우스(2) 우진숙집사
쉐어 하우스 (2)
늦게 퇴근한 어느 날, 나는 무심코 큰 방 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펼쳐지는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이 강아지를 불룩한 배 위에 올려놓고 ‘룰루랄라~룰루랄라’라는 자작곡을 부르고 개의 두 발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 번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왔어?’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하던 노래를 계속했다. “룰루랄라~”. 누워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불룩한 그 배는 분명 개를 올리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을 텐데도, 강아지는 그 위에 아주 만족스럽게 누워 있었다.
딸이 개를 키우고 싶다고 몇 년을 조르게 되면서, 함께 동거(?)하게 된, 믹스견(토종견+말티즈)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온 지 일년 반이 다 되어 가고 있다. 평소에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던 우리 가족은 사춘기를 좀 중화(?)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나름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딸은 확실히 감정을 잘 표현하게 되었고, 개를 키우기 이전보다 가족들과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키우는 조건으로, 각서까지 써가며 약속했던 목욕 시키기, 산책 시키기는 잘 지켜지고 있었고, 매일 밥을 주는 것은 아빠가 조금씩 거들고 주고 있었다.
작은 강아지를 보기만 해도 무서워서 달음질을 쳤던 첫째 딸은,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금요일이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강아지를 제일 먼저 찾는다. 처음에 만질 때 물컹물컹한 것이 너무 공포스럽다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두 손으로 쓰다듬고, 여러 가지 일들을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로 대하게 되었다.
집안일에 몰두하다가, 강아지가 갑자기 지나가거나, 내 다리에 스치게 될 때면 깜짝 놀라기도 했던 나는, 이제 강아지가 나한테 오면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는 책도 읽고, 또 괜히 심심할 때는 괜히 강아지를 불러 옆에 두기도 하는 등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가족들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허락을 해주면서도, 한 그릇도 안 나오겠는 걸?하면서 식용(?)의 대상으로 강아지를 바라보았던 아빠였는데…, 요즘은 퇴근하고 오면, 중문 앞에 꼬리를 흔들고 가장 먼저 반겨주는 강아지와 아주 격하게 인사를 나누곤 한다. 바닥에 앉아 신은 양말을 집어 던지면, 강아지가 그것을 잽싸게 물어오면, 두 발을 잡고 춤을 추는 듯한 이상한 추임새의, 서로를 반기는 일종의 의식(?)을 하기도 한다. 식용에서 관상을 넘어, 그야말로 아주 친근해지는 반려 단계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보기에는 일단 아주 많이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가족들 각자에게 확실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개를 키우게 된 이후부터 가족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관심사가 생겼다.
서로가 너무 달라 끊어질 것 같았던, 사춘기와 갱년기가 다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애완동물을 심리.정서치료에 이용하기도 하고, 이것을‘펫테라피’라고 부른다. 병원, 요양원 및 재활 센터나 교도소 및 정신건강 시설과 같은 다른 환경에서도 사용되며, 반려 동물 치료는 스트레스, 불안 또는 우울증을 겪는 개인에게 차분하고 편안한 존재감을 준다고 알려졌다. 특히, 개와 함께 있으면 외로움과 고립감을 줄여주고, 쓰다듬기, 놀기, 걷기와 같은 개와의 상호 작용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고, 틍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함께 하는 활동이 우리 몸의 천연 화학 물질인 엔돌핀 생성을 많이 증가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가족들과 서로 얼굴을 붉히는 예민한 상황 후에라도, 강아지의 멍한 눈빛과 가까이 앉아서 뭔가를 다소곳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전의 언짢은 일이나, 마음 쓸 일도, 개를 쓰다듬거나, 혼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금씩 나와 멀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나는 유독 감정 표현하는 것이 내 마음만큼 잘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당장 내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고, 어려운 마음을 나누는 내담자의 그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 머물고 싶은데,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막상 표현하려고 할 때, 내 감정은 마냥 제자리에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분을 좀 더 훈련하고자, 작년에 감정 코칭 과정을 듣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나의 감정을 돌아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감정소통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는데, 부모가 하는 말들이 아무리 바르고 옳은 말이라 해도, 사춘기 자녀는 그 내용보다, 부모의 딱딱한 말투, 굳은 얼굴,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을 감각적으로 먼저 느끼게 되고, 그 이후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방문과 함께, 그들의 마음도 바로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자기 인식, 행동 계획, 정보를 통합, 감정, 충동, 욕구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데, 청소년기는 이 전두엽이 미성숙한 단계로 한참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감정적 반응 및 정서와 동기를 담당하는 변연계는 이 청소년 시기에 완공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변연계 중에서 편도체는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에 즉각적이고 강렬한 감정을 처리하는 곳이다.
성인이 되어 가면서 변연계는 전두엽의 통제를 받게 되지만, 전두엽이 성장하고 있는 동안, 의사결정은 오롯이 변연계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본능에 더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쉽게 좌절하게 된다고 한다.
나 또한 이러한 자녀들의 뇌 성장을 잘 인식하지 못한 채, 바로잡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할 말이 많아지고, 그래서 때로는 일방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편도체가 활성화된 자녀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마치 나에 대한 반항이고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었다. 부모가 된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직 나는 여전히 배워 갈 게 많은 엄마라는 것을 더 많이 깨닫게 된다.
신기하게도 감정에 대한 이러한 부분들을 개를 통해서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강아지가 배변 훈련을 할 때, 여기저기 실수가 잦았는데, 남편이 큰소리를 치며, 맴매하는 시늉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언성이 조금이라도 커지거나, 굳은 표정이 될 때는 강아지가 귀를 내리고, 남편을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혼내는 말(예를 들어, ‘너 자꾸 실수하면 맞는다.’, ‘너 집에서 쫒겨 나 볼래?’)을 윽박지르는 말투로 해보고, 동일한 내용을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전달했을 때, 강아지는 부정적인 말들이지만, 후자의 부드러운 표현에 더 다정하게 반응하며, 피하지 않고 계속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강아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것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자녀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지만,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생겨나고, 천진난만한 개를 앉혀놓고 감정 코칭을 시도하기(?)까지…. 어쩌면 개를 키우게 되면서 가장 많이 변화되고, 혜택을 누리는 것은 나인거 같다. 나는 아직 강아지에게 엄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기는 왠지 망설여지지만, 엄마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고, 제대로 된 간식을 잘 사주진 못하지만, 애완견의 약한 연골을 위해 연골 영양제를 사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이면 조금 열려진 큰 방 문이 삐그덕 열린다. 강아지가 쏜살같이 들어와서는 가볍게 침대 위로 뛰어올라, 네 다리를 쭉 펴고, 이내 곯아떨어진다. 몸을 아주 동그랗게 말고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개하고 같이 살게 되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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