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_ 내 동무 을평
어반 스케치를 하면서 나의 동무 을평이 자꾸 떠오른다.
작년 9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그와는 고교 시절부터 군입대 전까지 수백 통의 엽서를 주고받았다.
아니, 적확히는 서로 보내기만 했다.
이를테면 이렇게 받고 이렇게 보내는 식이다.
엽서 한 장이 10원이었던 시절(나중에는 20원이었나?), 그냥 그렇게 주고받으면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나는 베끼는 수준의 그림을, 또는 짧은 이야기로(길면 엽서 2장을 덧대어 써서) 보내는 편이고, 을평은 한 컷의 그림으로도 큰울림으로 남게 하는 그림을 주로 보내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내게 보냈던 엽서는 내가 군입대한 사이, 어머니가 처분(^^)하셨고, 내가 그에게 보냈던 엽서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다^^
(우리 둘 사이에 존재했던 ‘여사친’이 엽서 따먹기 카드 게임에서 거의 다 따 갔단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 일찍 하늘의 공주가 되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에게는 고통이었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책 삽화를 부탁했었다.
을평은 내가 준비하였던 색연필 삽화가 더 정감 있다고 했지만, 그림 자체가 이야기인 을평의 그림을 우리 손자에게도 남기고 싶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모두 <그림판>으로 그렸다고 했다.
긴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그렸을까....
더구나 그 기간중에 미국에 사는 누이동생이 암 투병중이라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나는 50개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스스로 만족해 했지만, 나의 동무 을평은 결국 그림을 채 마무리 하기 전, 누이를 잃었다.
그리고 나의 동무는 두문불출로 슬픔을 대신했다.
을평이 먼 여행을 떠난 날 딸과 함게 만든 노래
우리는 같은 군인 가족이었고, 나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았었다.
나도 을평의 가족 모두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나는 을평에게 늘 그렇게 이기적이고 일방적이었고, 을평은 그러한 내게,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떤 때는 형처럼 느끼며 대했다고 어느 편지에서인가 썼다.
나의 동업자 을평,
지금도 어반스케치를 할 때, 그의 흉내를 내는 것 같다.
곁에 있다면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망통, 넌 미리 만족해 해. 아닌 걸 알면서도 너의 판단을 정당화해.”
곁에서 함께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고...
진짜 둘이서 책 하나는 만들어 나누어 가졌을텐데... 곧 1주기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