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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호국의 달 6월이 지난지 한참이 되었네요..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버렸지만 제가 어렸을때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6.25 이벤트가 상당했지요.. 포스터 그리기에 땅꿀 견학에다… 타도 김일성웅변대회까지..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6.25일이 되면 웬지 그때의 흥분(?) 이 가라않지 않는답니다. 어릴적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예 라 할까요..?
원래 6월이 다가기전에 꼭 하고 싶었던 리뷰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 당시 이 강토를 유린하며 우리의 국군용사들이 육탄공격으로 이를 저지할 수밖에 없었던 악역의 T-34 전차 입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자료 모으느라 또 게으름 피우느라 이제서야 겨우 정리하게 되었네요..
T-34 전차는 2차대전전부터 소련이 야심차게 준비한 중전차로 공수의 균형이 놀랄만큼 잘맞아 2차대전 최고의 전차로 불리는 전차 입니다.
특히 철저하게 단순한 무기로 설계된 덕에 독일전차에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생산성과 단순함 그리고 방어력이 높은 경사장갑의 도입과 다른 전차들에 비해 한 단계 큰 구경의 화포를 장착하여 공격력 또한 우수하여 당시 가장 진보된 전차세력을 가진 독일군도 이들 전차에 대해 큰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 전차이기도 합니다.
우리와는 악연은 1950년 6.25 일 새벽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일당이 적극 남침을 시작 하면서 소련으로부터 공여받아 쳐몰고 들어온 전차가 바로 T34-85 형이였습니다.
이 타입은 T-34 의 거의 최종형이라 할 수 있는 타입으로 대형화된 포탑과 이에 따른 강력한 장갑과 85밀리에 달하는 대구경 주포를 장착한 그야말로 T-34 전차의 결정판이라 불리울 전차로 남침 당시 한반도에서 이를 상대할 전차는 없을 정도로 무적을 자랑했습니다.
UN군의 파견이 있은후에도 주력군인 미군은 이를 얕잡아보고 M4A3E8 당시로는 나름대로 최신형의 셔먼전차를 투입했지만 여지없이 깨지고 나서야 최신의 중전차인 M26 퍼싱과 그 개량형 M46 패튼전차를 투입하고 나서야 비로서 겨우 맞설수 있을 정도로 북한군이 장비한 T-34 전차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예전부터 꼭 T-34 전차를 정리해야지 했는데 이제서야 겨우 짬 을내서 정리해 봅니다.
요새 휴가철을 앞두고 다소 침체된 까페분위기를 이 리뷰를 통해 다시 띄워보려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T-34에 대해 소상히 정리해둔 블로그가 있더군요 심심한뽀송이님 의 블로그
( http://podor.egloos.com/1337698) 인데 주로 위키대백과 사전 영문판과 일문판을 번역해둔 내
용이지만 내용에 깊이가 있고 체계적이라 인용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다만 부분적으로 틀린 부분
은 제가 자료를 찾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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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의 역사] T-34 전차의 모든 것
예전부터 숙원이던 T-34에 대한 자료를 번역해 올립니다. 대부분 영어 자료에 일부 일본어 자료를 더했습니다. 오류 지적을 환영합니다.
자료
http://en.wikipedia.org/wiki/T-34
http://ja.wikipedia.org/wiki/T-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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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중전차 T-34
[T-34 전차 1940년형 제일 처음 생산된 T-34 타입으로 독특한 형태의 포방패와 짧은 포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T-34는 1940년에서 1958년에 걸쳐 생산된 소련의 중中전차이다. 소련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이래 세계 최우수 전차로 여겨졌다. 비록 장갑과 무장이 뒤에 나온 전차들에 밀렸으나, 종종 2차대전 당시 기준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영향력 있는 디자인으로 인정 받는다. 하르코프의 KhPZ 공장에서 첫 생산한 이래, 종전 시까지 소련 기갑 부대의 주력이었다. T-54/55 전차에 이어 사상 두번째 대량 생산 전차였다. 1996년에도 최소 27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T-34 는 BT고속전차로부터 개발되어 당시의 BT-5, BT-7 전차와 T-26 보병 전차를 대체할 예정이었다.
T-34는 등장 당시, 화력, 기동성, 방호, 내구성에서 최고의 균형을 갖춘 몇 안되는 전차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인체공학 상 열악한 승무원 공간, 무전기의 결여, 잘못된 전술 등으로 꽤 고전했다. 2인용 포탑에서 지휘관이 포수를 겸하는 것이 당시 소련 전차에선 일반적이었지만, 3인용 포탑보다 비효율적인 게 곧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대전 전 기간 내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디자인과 생산성이 다듬어져, 더욱 많은 수가 참전했다. 1944년 초 개량된 T-34-85가 배치돼, 더 강력한 85mm포와 3인용 포탑이 도입됐다. 1945년 종전 시까지 다용도의 경제적인 T-34는 많은 경전차와 중重전차를 대체해, 소련 전차 생산의 다수를 점했다. 종전 후 발전된 T-54/55의 개발로 이어져 1981년까지 생산된 T-54/55 시리즈는 현재도 많은 국가에서 사용 중이다.
지금부터 소련의 위대한 수호신으로 불리웠던 한 전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개발역사
혁명적 디자인
"우리에게 비교할 만한 게 없다" - Friedrich von Mellenthin (1956)
1차 세계대전중 영국군에 의해 세계최초로 실전투입된 전차는 참호전이라는 교착된 전선을 돌파하고 보병을 지원하는 중요한 병기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에 각국은 전후에도 새로운 전차전술의 개발과 동시에 전차개발에 힘을 쏟게 됩니다.
여기에는 1917년 혁명으로 수립된 신생 소비에트 연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과 동시에 내부적인 문제들과 서구열강들의 끈임없는 간섭을 받아왔던 소련은 당시 유럽의 다른 열강등에 비해 전차 개발이 늦어지게 이유가 되었습니다.
1920년대 ~30년대 초에 다른 열강들에 비해 늦어져버린 전차개발을 만회하기 위해 당시 전차기술의 선진국이였던 영국으로부터 수대의 전차를 수입되었는데.. 당시 소련육군의 고위관계자들에게는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는것보다는 수입된 전차들을 복제 대량생산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들 전차중 특히 관심을 끈 전차가 있었는데 이들 전차는 다름아닌 미국제 전차였다. 이 차량은
미국에서 1931년형 이라고 불리는 기종으로 미국의 천재 자동차 설계기사인 크리스티가 개발한
전차였다
크리스트가 설계한 전차는 그 당시 전차들이 가지지 못했던 고기동성에 중심을 두고 설계된 전차
였는데. 도로이외에는 궤도로 주행하고 도로에서는 궤도를 제거하고 보기륜으로만으로 주행할 수
있는 ‘장궤장륜주행구조’ 라는 특이한 방식을 쓰는 전차였습니다.
특히 크리스티가 개발한 전차는 보통의 장륜차가 주행할 수 없는 험지에서의 돌파력이 우수한 코
일스프링을 이용한 우수한 현가장치를 장착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였습니다.
일명’ 크리스티나 현가장치’ 라 불리는 이 현가장치는 훗날 소련군 전차의 기본 현가장치가 됩니
다.
또한 장갑방어력을 증가시키기 위해 큰 경사각을 가진 장갑을 채용하였는데 이는 피탄되더라도
큰 각도에 의해 포탑이 튀어나가도록 설계된 장갑을 가진 것이 특징이였습니다.
소련은 이 전차에 BT-1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대량생산을 하게 됩니다.
(1) 소련 최초의 전차 BT 전차 씨리즈
1931년 가을 BT-1 의 소련 라이센스판인 BT-2 가 완성되었고 같은해 11월 혁명기념식전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 BT 씨리즈는 두가지 모델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37밀리 주포를 장착한 차량이였고 다른 한 기
종은 주포 대신 7.62 밀리 기관총을 2정 장지한 차량이였습니다.
다음해인 1932년말에는 주포를 45밀리로 강화한 신형포탑의 BT-5 가 완성되었고 1935년에는 엔
진을 강화한 BT-7 이 완성됩니다.
이 BT-7 에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기 위하여 차체전면부의 형태가 바뀌게 됩니다. 또한 기존의
리벳접합 방식에서 용접방식의 제조공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후에 BT-7 씨리즈는 엔진을 V형 12기동 디젤엔진으로 교체하고 BT-7M (BT-8) 로 불리우게 됩니
다.
이로서 BT전차 씨리즈는 긴 항속거리와 함께 방어력이 탁월한 경사장갑 그리고 코일스프링 현가
장치 와 신뢰이 우수한 디젤엔진이라고 하는 소련전차 특유의 기본 사상을 확립하게 됩니다.
1936~39년 스페인내란이 일어나자 소련은 최신의 BT-5 전차를 지원합니다. 이곳에서 소련전차들
은 귀중한 실전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곳의 실전에서 얻어진 경험은 훗날 새로운 전차 개발
에 중요한 데이터가 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운영해본 결과 BT 시리즈 전차의 기동력은 충분하지만 방어력 문제라는게 부
각되어 쾌속성을 유지한채 장갑을 강화하게 됩니다.
(2) 새로운 전차 A-20 과 T-32
스페인 내전을 통해 BT전차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파악한 소련군부는 BT 전차를 이을 새로운
전차 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1937년 11월 하르코프 기관차 공장 (제183공장)에서 새로운 전차 개발을 위한 팀이 결성되게 됩
니다.
소련군 전차 개발에 큰 영향이 끼친 크리스티 전차. 궤도 없이도 주행할 수 있었다.
1939년 당시 가장 많은 수의 소련 전차는 T-26 경전차와 BT 시리즈 고속 전차였다. T-26은 저속의 보병 전차로, 지상에서 병사들과 보조를 맞추게 설계됐다.
한편 BT 전차는 기병 전차로, 매우 빠른 경전차였으며, 일반 병사가 아닌 적 전차를 상대할 것이었다. 두 전차 모두 얇은 장갑이어서, 소화기는 막을 수 있으나, 대전차 라이플이나 37mm 대전차포는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전차가 장비한 가솔린 엔진은 피탄시 불 붙기 쉬웠다. 두 전차 모두 외국 디자인에 바탕한 것으로, T-26은 영국 비커스 6-톤 전차에, BT 시리즈는 미국 기술자 월터 크리스티의 설계에 바탕했다.
[T-26 보병 전차 당시 소련이 장비한 최신의 전차였지만 부족한 방어력과 공격력은 이내 새로운 전차의 필요성을 깨달게 해주었다]
1937년 붉은 군대 Red Army는 기술자, 미하일 코쉬킨 Mikhail Koshkin이 하르코프의 KhPZ( Kharkiv Komintern Locomotive Plant) 공장에서 BT 시리즈를 대체할 전차를 설계할 팀을 이끌게 했다.
A-20으로 제식 명칭이 부여된 원형 전차는 20mm의 장갑, 45mm 포, 불이 잘 안 붙는 디젤 유를 쓰는 신형 V-2엔진을 장비했다. BT 전차와 유사한 8x6 바퀴 전환식 구동 장치 wheel convertible drive 을 장비했는데 1930년대의 신뢰성이 낮은 전차 트랙을 감안, 무한궤도 없이도 달릴 수 있었다. 이 결과 도로 상에서 85 km/h의 경이적 속도를 냈으나 전투 상의 이점은 없었다. 설계자들은 공간과 중량만 낭비한다고 봤다. 앞선 연구를 반영해 경사 장갑을 채용했는데 사방이 기울어진 장갑은 대전차 무기를 더욱 쉽게 빗겨 나가게 할 목적이었다.
스페인 내전에 사령관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던 바브로프 장군은 이전차를 주목하여 군에서 즉시 채용할것을 강하게 주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코슈킨팀은 이 전차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궤장륜병용 주행에 대해서는 의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구조를 생략한다면 생산공정면에서 훨씬 간단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중량 역시 감소하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 입니다.
또한 당시 소련의 도로 포장률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장륜주행이 가능한 경우는 매우 한정되었다는 점도 이를 페지하려는 이유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장갑과 무장에 관해서도 타국의 대전차포와 전차의 개발상태와 비교하였을 때 충분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적어도 전면장갑 30밀리 주포로는 76밀리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서기장이였던 스탈린은 이런 주장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이미 개발된 전차인 A-20 시작차외에 이들팀이 주장한 전차에 대해서도 개발한 것을 지시하게 됩니다.
코슈킨 팀은 이 전차에 대해 A-30 (후에 T-32로 개칭) 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즉시 설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빠른 개발을 위해 작업은 분업화되었으며 변속기 계통은 모조로프 기사팀, 현가장치 팀에는 쿠체렌코 기사와 바실레프 기사팀이 그리고 장갑 부분은 다르시노프 기사팀이 각각 담당하였고 코슈킨 기사는 이들응 통합하여 관리하는 매니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A-20 와 T-32 두 시작차는 1937년 7월 완성되게 됩니다.
이 두대의 시작차는 곧 쿠빙카의 병기시험장으로 보내져 가혹한 성능실험을 하게 되었고 이 결과에 따라 좋은 성적을 받는 쪽을 양산하기로 결정합니다.
가혹한 테스트를 걸쳐 나온 결론은 A-20 의 부정지 주행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 빼고는 두 기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무장과 장갑면에서는 T-32가 월등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T-32 쪽으로 기우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 장갑군 이사회의 바브로프 장군은 신형전차의 무장은 45밀리 급이면 충분하며 장갑 역시 20미리 정도면 중분하며 장궤장륜식의 주행기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을 펴며 끝내 A-20 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1939년 11월 소련은 핀란드에 대해 대대적인 침공을 단행하게 되는 이른바 핀란드와의 겨울전쟁에 들어가게 됩니다.
핀란드와의 전투에서 바브로프 장군이 주장했던 부분들이 거의 허구임이 밝혀지게 되는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군이 장비한 37밀리 포보스 대전차포에 의해 소련군의 전차들은 전면장갑이 뚫리기 일쑤였으며 장비한 45밀리 주포 역시 적의 진지를 공격하기에는 공격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게 바로 증명되었으니까요.. 특히 BT 전차가 장비한 장궤식 장륜주행방식은 진흙탕이나 야지에서 비실용적임이 여지없이 밝혀진게 큰 실적이라면 실적이였습니다.
결국 이런 결과는 자연스럽게 차기 전차로 T-32 전차가 선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얻은 전훈을 교훈삼아 전면장갑을 45밀리 이상으로 강화하기로 합니다.
이런 개조를 거쳐 새로 설계된 전차는 T-34 로 불리게 됩니다. 바야흐로 명전차로 불리는 T-34 탄생은 이렇게 이루졌습니다.
2. 소련을 구할 전차 T-34
코쉬킨은 소련 지도자 스탈린에게 화력이 강화되고, T-26과 BT 시리즈 모두를 대체할 다용도의 두번째 원형 전차의 개발 필요성을 납득시켰다. A-32(훗날 T-32로 개칭) 로 명명된 두번째 원형은 전면 장갑 32mm를 자랑했다. 화력도 76.2mm포로 강화됐고, 엔진은 전과 같았다. 1939년 쿠빙카에서 두 모델 다 테스트한 결과, 더 무거운 A-32가 A-20만큼 기동성이 있었다. 전면 장갑을 45mm로 강화하고 더 넓은 트랙으로 개량한 A-32의 개량형이 T-34로 양산 승인을 받았다. 코쉬킨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한1934년을 따서 T-34로 명명했다.
[왼쪽부터 A-8 (BT-7M), A-20, T-34 1940년형, 1941년형]
코쉬킨 팀은 두 대의 원형 T-34를 1940년 완성했다. 4월과 5월에 크렘린 궁의 지도자들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하르코프부터 모스크바까지 2,000km에 달하는 강도 높은 테스트 주행을 마쳤다. 그 뒤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선까지 갔다가 민스크와 키예프를 거쳐 다시 하르코프로 복귀했디. 그 결과 일부 구동 장치의 문제가 드러나 수정됐다. 군 내부의 저항과 높은 생산 비용에 대한 우려는, 핀란드 전선에서 드러난 소련 전차의 낮은 성능과 프랑스 전선의 독일군 전격전의 영향으로 사라졌다. 첫 양산 전차는 1940년 9월에 생산돼, T-26, BT 그리고 T-28 다포탑(여러 개의 포탑을 가진 육상 전함 같은 전차) 전차의 생산을 완전히 대체했다.
하지만 코쉬킨은 그 달 말 하르코프-모스크바 간 무리한 주행으로 심해진 폐렴으로 사망했다. 뒤를 이어 T-34의 구동 장치 개발자, 알렉산드르 모로조프가 수석 설계자로 임명됐다.
[T-34 1940년형의 부위별 장갑 두께]
(1) T-34 의 구조
T-34는 BT의 코일-스프링 식 크리스티 현가 장치를 썼지만, 무겁고 비효율적인 전환식 구동 장치가 효과를 반감시켰다. 또한 잘 계산된 경사장갑을 갖추고, 상대적으로 강력한 엔진과 러시아의 진탕에 주행성이 우수한 폭이 넓은 트랙을 가졌습니다.
초기형은 76.2mm포를 장착해 종종 T-34/76으로 불렸는데, 이는 원래 독일군이 명명한 것이다. 1944년부터 생산된 두번째 주요 개량형인 T-34-85는 더 큰 포탑에 85mm포를 장비하기도 했습니다.
A. 특징
T-34 는 당시로는 전차설계사상중 획기적인 사상으로 이루어진 전차였는데 특히 생산성에 중점을 둔 간략화 그리고 철저하게 병기로서 단순하면서 신뢰성이 높은 기계적인 구성 과 경사장갑을 이용 다른 전차들에 비해 우수한 장어력 그리고 다른 전차들에 비해 한단계 구경이 높은 포의 도입 마지막으로 다른 전차들에 비교할수 없는 기동성 의 특징을 가진 전차였습니다.
생산 개시와 관리
"양은 그 자체가 질적 측면을 갖는다" - 스탈린
T-34는 소련 공업에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중中전차보다 무거운 장갑을 갖춘데다, 여러 공장에서 조립 파트를 분담해 생산했습니다:
하르코프 제75 디젤 공장은 V-2엔진을, 레닌그라드 키로프스키 공장은 L-11포를, 모스크바 디나모 공장은 전기 장비를 각각 맡았다.
KhPZ No. 183에서 초기 생산을 하고, 1941년에는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그리고 독일의 침공 직후 7월부터 고리키의 크라스노예 소르모포 Krasnoye Sormovo 제 112 공장에서 생산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장갑판에 문제가 발생하고, 신형 V-2 엔진의 부족으로 고리키에서 초기에 생산된 형은, BT-전차에 장비하던 MT-17 가솔린 엔진과 뒤떨어진 변속기와 클러치를 장착했다. 무전기가 비싸고 부족해서 중대 급 사령관의 전차에만 장비됐다.
또한 L-11포가 기대에 못 미치자, 고리키 제92공장의 가르빈설계국이 더 우수한 76.2mm포를 설계했다. 어느 관료도 생산 승인을 안 하려 했지만, 고리키와 PhPZ공장은 강행했다. 야전군이 새 전차포의 위력을 실증한 뒤에 스탈린의 국가 방위 위원회에서 공식 허가가 떨어졌다.
군 내부 보수파의 정치적 압력이 터져 나와 구형 T-26과 BT 전차의 생산에 자원을 되돌리고, 개량형 T-34M의 완성에 매달린 T-34의 생산을 취소시키려 했다. 이런 정치적 압력은 경쟁 관계인 KV-1과 IS-2 전차 개발자들이 가했다. 다른 전차를 생산하는 설계자와 공장 간의 정치적 압력은 종전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돼 T-55, T-64, T-72 T-80 등이 여러 공장에서 병행 생산됐는데 소련 고위층에 각각 다른 후원자들이 있었다. 1941년 6월 22일의 독일의 기습 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으로 더 이상의 개발을 멈추고 대량 생산에 매진했다.
[취소된 T-34M..T-34 전차는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서 독일의 소련침공이 시작되었고 전장에서의 어려움으로 더이상의 개발보다는 기존 개발한 형식을 간략화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T-34M과 같은 새로운 전차 개발은 중지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훗날 전후 이는 T-40 ..로 이어져 또하나의 걸작전차인 T-54/55 를 개발하는데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독일의 빠른 진격에 전차 공장을 전례없는 규모로 급히 우랄 산맥으로 이전해야 했다. KhPZ는 니즈닐 타길의 제르진스키 우랄 기차 공장 주위에 재건돼 스탈린 우랄 전차 제183 공장으로 개칭됐다.
키로프스키 공장은 레닌그라드 포위 수 주 전에 하르코프 디젤 공장과 함께 첼랴빈스크의 스탈린 트랙터 공장으로 이동했다. 첼랴빈스크는 곧 탕코그라드( 탱크 도시 Tank City )로 불렸다. 레닌그라드의 보로실로프 제 174 전차 공장은 우랄 공장과 새로운 옴스크 제 174 공장에 합쳐졌다.
스베르들로프스크의 오르트초니키체 우랄 중장비 작업소는 몇개의 작은 공장을 흡수했다. 이렇게 공장들이 기록적 속도로 이전되는 동안,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 주위의 공업단지는 T-34 전차 생산량의 40%를 점했다. 그 곳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는데, 자재 부족에 따라 제조 공정을 혁신해야 했다. 도장 painting도 안 한 전차들이 그 주위의 전장으로 출고됐다 . 스탈린그라드에서 생산은 1942년 9월까지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 라인에는 오로지 단순하고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개선안만 요구되었다. 철판의 자동용접과 담금질을 위한 신기술이, 예프게니 파톤 등에 의해 개발되었다.
1942년 형 F-34 76.2mm 포는 이전의 861개의 부품 대신 614 개의 부품만 필요했다. 2년만에 전차 생산 비용은 269,500 루블에서 193,000 루블로 떨어졌다. 1942년 말에 생산 소요 시간은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대부분의 숙련 노동자가 전선에 보내지고 절반이 여성, 15%가 소년, 나머지 15%가 노약자였는데도 달성한 것이다. 동시에 T-34는 기계적 신뢰성의 희생 없이, 훌륭하게 세공한 전차로서 우수한 외장 마감은 당시의 구미의 전차와 비교할 만하거나 더 우수했다.
1942년 앞서 취소된 T-34M에서 따온 새 육각형 포탑 디자인이 양산돼 협소한 내부 공간이 개선되고 전방위 관측이 가능한 지휘관용 큐폴라가 장비됐다. 고무 공급 부족으로 철로 테를 두른 주행륜이 더해지고 개선된 5단 변속기와 엔진에 새 클러치가 추가됐다.
1942년 독일전차가 우수한 75mm 장長포신 포를 장비하자, 모로조프 설계국은 진보된 T-43 전차의 설계 프로젝트를 개시, 장갑을 강화하고, 토숀 바 현가 장치, 3인용 포탑 등 현대적 특징을 더하려 했다. 기존의 85mm 대공포는 독일의 신형 전차에 효과적인 게 입증되고 전차에 장비 가능했다. 불행하게도 T-43의 중장갑도 타이거 전차의 88mm 포를 막을 수 없었으며 기동성은 85mm포를 장착 안 한 상태에서도 T-34에 뒤쳐졌다. T-34와 70% 이상의 부품을 공유했지만 생산 위원회는 생산을 대폭 지연시킬 것을 요구했다.
[T-43(오른쪽)과 T-34 1943년형]
결국 T-43이 취소되고, 소련 지휘부는 포탑 링을 기존의 1,425mm에서 1,600mm로 늘린 새 모델의 T-34를 생산하도록 공장 설비를 바꾸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T-43의 포탑은 급히 크라스노예 소르모포 공장에서 케리초프에 의해 T-34에 맞게 개조됐다. 그 결과물인 T-34-85 전차는 우수한 전차포와 무전기가 장비된 3인용 포탑( 그 전 형은 동체에 무전기를 장비 )을 갖췄다. 이제 지휘관은 지휘에만 전념, 포의 운용은 사수와 장전수에게 맡겨졌다. 또 하나, 매우 중대한 전술 장비는 Mk.4 관측 전망경인데 대전 전의 영국과 폴란드 장비를 카피한 것으로 포탑 상판에 장비돼 지휘관이 전방위 관측을 할 수 있었다.
T-34-85는 간단히 말해 익숙하고 성공적인 토대가 된 T-34의 화력 강화형이다. 더욱 강력한 85mm포는 독일 75mm포 및 88mm포에 대적할 무기였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5단 변속기와 신형 포탑 디자인을 도입했다. 초기 설계안은 충분한 기동성에 중장갑 관통력을 가진 전차포를 장비하는 것이었다. 속도는 화력과 승무원 방호에 비해서는 덜 중요했다. 붉은 군대는 독일 판터와 티거 전차에 직접 맞설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찾았던 것이다. 85mm 대공포는 이미 KV-85 등에서 실증되어 주포 선택은 쉬웠다. 자위용으로 2정의 기관총을 포탑에 주포와 동축으로 1정, 차체 전면에 1정을 장비했다.
신형 전차가 양산을 개시하는 동안 전체 생산량은 약간 떨어졌다. T-34-85도 판터 전차의 상대는 못 됐지만 개선된 화력은 전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새 것을 만들기보다 기존 설계를 개선하는 결정은 소련이 대량의 탱크를 생산케 했는데, 질적인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1944년 3월 독일 육군은 고작 304량의 판터를 동부 전선에서 운용한 반면, 소련은 T-34-85의 월 생산만 1,200 량에 달했다.
B. 경제성
T-34-85의 생산 비용은 1943년 형보다 원래 30% 높은 164,000루블이었다. 그러나 1945년까지 142,000 루블로 낮아졌다. 전쟁 기간을 통해, 1941년의 270,000 루블에서 생산 비용은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지만 최고 속도는 거의 같고, 주포의 장갑 관통력과 포탑의 전면 장갑의 두께는 거의 두배가 되었다.
C. 생산량
1945년 말까지, 57,000 량 이상의 T-34가 생산됐다: 34,780량의 원조 T-34/76형이 1940-44년에 생산되고 22,599량의 85mm포 장비형 T-34-85가 1944-45년에 생산됐다. 단일 최대 생산 공장은 제 183 공장의 28,952량의 T-34/76형과 T-34-85형이 1941-45년에 생산됐다. 2번째는 고리키의 제 112 공장으로 동 시기에 12,604량을 생산했다. 1946년 종전후 2,701 량의 T-34가 생산되면서 대량 생산은 종료됐다. 폴란드(1951-55)와 체코슬로바키아(1951-58)에서 라이센스 생산으로 1956년까지 각각 1,380량과 3,185량의 T-34-85를 생산했다. 뒤에 T-54/55와 T-72도 소련 위성국에서 생산됐다. 1960년대 말 소련의 T-34-85는 수출과 예비용으로 현대화 프로그램을 받아(T-34-85M), T-54/55의 구동 장치로 교체, 강화됐다.
총 84,070량의 T-34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T-34 차체를 이용한 13,170의 자주포도 생산됐다. 이들 중 일부는 전 세계에 걸친 냉전 시기의 여러 분쟁 중에 파괴되었다.
D. 전투에서의 T-34 의 평가
T-34 는 장비면에서 모두 독일에 열세였던 소련군의 무기체계에 유일하게 독일제 무기를 압도할수 있는 기적과 같은 무기시스템 이였습니다.
1941년 소련의 침공 이후 처음 T-34를 본 독일군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상대해왔던 BT전차나 T-26 전차 같은 형태만 비슷한 전차같지도 않은 전차라 생각했지만 이내 직접 전투를 치루어본 후 그야말로 T-34 쇼크상태에 빠집니다.
T-34 는 당시 독일군이 장비하고 있었던 3호전차나 4호전차의 50밀리급 포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든든한 중장갑을 자랑했고 반대로 T-34가 장비한 포는 원거리에서도 충분하게 독일군의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T-34 의 기동성으로 크리스티 현가장치의 특징인 노지에서의 높은 최고속도도 속도였지만 독일군 전차들이 결코 통과할수 없는 진흙밭이나 눈내린 설원지대에서도 놀라운 기동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T-34가 장비한 폭이 넓은 궤도덕에 가능했지만 이런 사실을 몰랐던 독일군은 이런 T-34의 경이적인 운동성에 다시 한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는것이죠
더구나 T-34는 철저하게 높은 생산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된 전차이다 보니 독일군 전차 1대가 생생산될 때 T-34는 4대를 생산할 수 있었고 이런 양적인 문제는 결국 독일전차가 성능상으로 아무리 우세했다고 하나 수적으로 불리한지라 독일의 패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독일군은 노획한 T-34 을 역설계하여 카피할 생각까지도 했다고 합니다.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파괴된 T-34 초기형]
E. 놀라운 활약에도 불구하고 밝혀진 T-34의 단점들
전쟁 초기 T-34의 전투 효과는 장갑, 화력, 기동성의 '하드' 팩터와 승무원 거주성, 관측 도구, 승무원 업무 레이아웃 같은 '소프트' 팩터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T-34는 하드 팩터가 걸출하고 소프트 팩터가 형편없었다.
1941년 두껍고 경사진 장갑의 T-34는 견인되는 88mm 대공포를 제외한 모든 독일 대전차 병기를, 일반 전투거리 안에서 파괴할 수 있었다. 1942년 중반부터 개선된 독일 병기에 취약해져 대전 내내 그런 상태였지만 미군 M4 셔먼이나 독일 4호 전차 등의 동급 전차보다 장갑 방호는 동등하거나 우세했다.
화력 면에서 T-34의 76mm포는 대전차 포탄을 쏠 경우, 1941년 시점의 모든 독일 전차를 쉽게 관통했다. 이 포는 또한 적당한 고폭탄high explosive round을 쏠 수 있었다. 1943년이 되자 76mm포는 판터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으며 판터의 장포신 75mm포와 티거의 88mm포의 유효 사거리보다 떨어졌다. 1944년의 85mm포의 도입에도 T-34-85의 화력의 열세였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판터나 티거를 관통할 수 있었다.
기동성 면에서 T-34의 넓은 트랙과 훌륭한 현가장치와 큰 엔진은 비교할 수 없는 야지 野地 기동성을 부여했다. 1세대의 독일 전차는 따라 잡을 수 없었다.
[T-34-85형의 포탑. 후기형에 와서야 비로서 차장 장전수 포수등 3명이 포탑에 탈수 있어 전투 효울이 다소 높아였으며 특히 전 방위 관측이 가능한 지휘관 용 큐폴라가 장비됐다.]
인간 공학 측면에서 T-34는 전쟁 기간 중의 몇가지 개선에도 불구하고 형편없었다. 76mm포 장비 형은 전부 다 비좁은 2인용 포탑 배치 때문에 크게 시달렸다. 지휘관의 전장 시야도 엉망이었다; 앞으로 열리는 햇치 때문에 지휘관은 좁은 관측구와 전망경으로 관측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주포 사격도 해야 해서 업무가 과다했다.
대조적으로 당시의 대부분의 독일, 영국, 미국의 중中전차는 훨씬 뛰어난 3인용 포탑을 가져 지휘관, 사수, 장전수가 배치됐다. 3인용 포탑은 지휘관이 포의 장전 같은 개별 임무를 할 필요 없이 승무원들을 이끌고 협동시키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점이 승무원의 효율을 엄청나게 높였다. 종전 전에 이런 문제가 인식돼 T-34-85에서 교정됐다. 많은 독일 지휘관들은 좌석을 올려 전 방위 시야를 확보하여 헤드업head-up으로 싸우길 선호했다. 76mm포 장비 T-34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T-34-85의 포탑은 지휘관의 큐폴라( T-34 1943년형을 통해 일부 먼저 도입됐다)로 전방위 관측이 가능했다.
[소련군 T-34-85 이는 1943년부터 등장한 T-34의 후기 버젼으로 대형화된 3인용의 포탑의 장착과 85밀리 급의 대구경 포의 장착으로 덩시 무적이라 불리던 독일의 킹타이거에 맞설수 있는 전차중 하나였다. 훗날 이전차는 한국전쟁에서도 참전하여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다]
운전병의 시야도 불량했다. 전술적으로 운전병이 지형을 유리하게 이용할 능력을 저하시켰는데 지형의 굴곡을 잘 볼 수 없고 다른 일부 전차들이 제공하는 넓은 시야가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전수도 포탑 바스킷( 포탑이 돌 때 따라 도는 회전 판의 일종)이 없어서 고역을 치뤘다. 이런 문제는 다른 많은 전차에도 있었는데, 미군 M3 스튜어트 경전차도 마찬가지다. T-34의 포탑 밑의 바닥은, 작은 금속 상자에 넣은 탄약이 쌓여 고무 매트로 덮였다. 전투 구획 측면의 선반에 9발의 미리 준비된 포탄이 채워졌다. 전투 중에 이 9발이 다 소진되면, 마루 상자에서 추가 탄약을 끄집어내야 했는데 그 결과 쓰레기와 깔개가 마루 바닥을 어지럽혔다. 이런 환경이 승무원을 괴롭히고 전투 수행 능력을 깎아먹었다.
[운전수 햇치로 들여다 본 T-34-85 전차의 내부. 탄약 상자가 바닥에 쌓여 있고 포탑 바스킷이 없어 장전수가 서서 작업해야 했다. 앞은 운전석이다.]
전장에서 T-34의 초기 충격 효과를 떨어뜨린 다른 중요 요소는 스탈린의 1930년대 장교 대숙청의 결과인 리더십, 전차 전술, 승무원 훈련도의 불량이었으며 1941년의 붉은 군대의 참패 와중에 손실된 최고 숙련 인원의 손실에 의해 더욱 악화됐다. 많은 승무원들이 기초 군사 훈련과 72시간의 강의만 받고 전투에 투입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T-34의 열악한 인체 공학 측면과 개전 초기 무전 장비의 결여에 의해 더욱 악화되어 특히 전장에서 전차 협동 전술이 불가능했다. 독일 전차 승무원들은 소련 전차 부대가 경직된 대형으로 공격하고 지형의 잇점을 거의 살리지 못하는 걸 알아챘다. 1943-44년 사이에 이런 문제점은 크게 개선됐지만, 독일의 숙련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T-34 는 전투병기란 관점에서는 우수한 전차였으나 이를 조종하고 다룰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는 편 이였습니다.
대전초기에는 당시 기술의 부족으로 3인용 포탑 제작이 어려워서 유난히 작은 포탑을 장착했는데 이는 2명이서 3명의 역할을 했어야 하므로 전투능력이나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에 속했습니다.
특히 전장에서 적을 살피고 명령을 내려야 할 차장이 포수 역할을 대신 해야했으므로 제대로 된 관측이나 지휘를 할수 없었고 무전기 역시 장착되지 않아서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공격력을 보여주기 힘들었습니다.
이는 후기형에 이르러 드디어 3인용의 대형포탑의 개발과 무전기의 보급으로 어느정도 해소되지만 그렇다하다라도 크고작은 문제점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특히 T-34 에 있어 기어변속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중 하나였는데. 트랜스미션의 문제로 인해 기어 변속이 상당히 어려웠으며 심지어는 망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리쳐서 기어변속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거주성의 문제였는데.. T-34의 차체는 너무나 좁아 승무원들이 오랫동안 효율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피폭시 탈출 역시 배려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내려오는 소련전차의 특징중 하나로 비록 크기가 작아 피탄면적은 적다고 하나 내부가 협소하고 인간적인 배려를 하지 않은 설계는 소련전차의 고질적인 문제점 이기도 합니다.
다음 파트에서는 복잡하기라면 셔먼전차를 능가할 정도라 할 수 있는 T-34 전차의 분류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싸이트 및 실기체 자료출처
하비보스 홈페이지 (http://www.hobbyboss.com/)
위키대백과 사전 영문판
http://en.wikipedia.org/wiki/T-34
http://ja.wikipedia.org/wiki/T-34
유용원의 군사세계(http://bemil.chosun.com/)
비겐님의 블로그
(http://kr.blog.yahoo.com/shinecommerce/2227.html?p=1&t=3)
심심한뽀송이님 의 블로그
( http://podor.egloos.com/1337698)
참고서적
세계의 전차 (주식회사 군사정보 2000.9.1)
98 전차연감 (주식회사 군사정보 1998.5.1)
세계의 전차 1946~2000 (주식회사 군사정보 2000.9.1 )
컴뱃암즈 21~23호 (주식회사 군사정보 1998년 6,7,8 월호 특집기사중)
ㅇ 한상철, 한기상, CD 롬 : 세계 각국 전차 소개, 현대정공 기술연구소, 1999
ㅇ 유승식, 21세기의 주력병기, (주)군사정보, 1998, pp206~207
* Wrighten By Mirageknight (2009.7.24 ver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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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재미있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갑자기 봉인해놓은 1/16 t-34(트럼페터제)의 봉인을 뜯고 싶습니다 ㅠㅠ
곧 수집해둔 각 메이커별 t-34 제품 리뷰가 올라갈겁니다~` 여태 자료모으느라...
전차를볼때마다 괘도없이도 주행할수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는데...이미 실현된기술이였군요 ㅎㅎㅎㅎ
T-34 명품이죠. 전 그래도 베스트는 판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