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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특수부대
우리나라 특수부대원들은 가히.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유수의 특수부대들과 비교해봐서 개인전투수행의지, 근성, 임무수행능력, 체력 등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고 난 자부한다.
국방력은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한민족의 근성과 대한민국 남자들의 한 성깔은 세계 최고다.
나라가 돈이 없어 장비면에서 열악한 상황이라고 운운하는 비겁장이가 될 수 없다.
타국 특수부대인원들과 연합훈련이나 해외파견근무시 함께 훈련을 해보면 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은 참 인정할만하다. 임무종료 시각이 딱되면 자유로워지는 그들의 여건 또한 "임무수행 할 맛나겠다~"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감시장비와 개인화기, 통신장비, 기본 장구류에서 오는 도전감은 꾸욱~ 참아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위성통신장비와 콘크리트도 뚫어보는 열인식감시장비, 개인화기, 위치/온도/기상/습도/충격/식수 등의 측정장비, 복장의 용이성과 극서/ 극한/ 전천후성능 등이 참 좋았다. 하지만 우린 최강의 체력과 최선의 인내와 최고의 악으로 이를 모두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13만 북한 특작부대가 우리나라 특수부대원들을 세계 제일로 보는 이유이고, 우리나라 특수부대원들도 같은 한민족의 독종성을 알기에 북한 특수작전(특작)부대를 다른나라의 특수부대보다 우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본문으로 들어가자.
'특수부대'란 :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를 총괄한다.
'특수전'이란 정규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시행되는 비정규전을 말한다.
'비정규전'이란 적후방교란, 병참선차단, 요인납치/암살, 적지휘부파괴, 적통신시설파괴, 적주요군사시설파괴, 적주요전투장비파괴, 아군포로구출, 적후방강습, 적후속증원부대기습타격, 아통신지원, 주요표적획득, 첩보획득보고, 아군고립부대지원/탈출보장 등이 있다.
또한 특수부대는 비정규전이외 정규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정규전부대에 배속되어 운용될 수 있다.
그 외 대한민국이 원하고 국방부나 육군이 지시하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일명 '특수부대'라 한다.
여기서 잠깐,
그럼 특수전부대와 특수임무부대를 구분해 본다.
총괄하여 특수부대라고 말하지만 엄격히 그 임무에 따라 구분되어 진다.
특수전(특수작전의 줄임말이다 , 북한은 이를 특작부대라고 일컫는다)부대 체계와 규모가 연합사의 작전계획과
정규군의 임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사항에 대처하거나 사전 개입하거나 우발계획에 투입되는 부대를 말한다.
특수전부대는 특정한 예비대를 제외하고는 1차임무, 2차임무, 3차임무.. 그외 우발상황 조치계획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상/ 가상되는 상황에 대처하는 계획이 이미 수립되어 있다.
특수전부대를 움직이는 고급장교들의 전쟁/전투양상의 시나리오 작성은 거의 천재적이라 들었다.
일반부대 소위부터 올라가는 그들의 두되에는 그리고 그 마음에는 육해공군해병대, 연합군/ 우방국의 전투자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투부대의 전투지원와 전투근무지원계획이 들어가 있다.
여담이지만 특수부대원들 휴가시 초급장교를 보고 경례 안하고 가는 경우 많은데 한마디로 우수워 보였겠지만 그들의 두뇌에서 이 나라의 국방계획이 나온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우리나라 특수전부대
육군 : 육군 특수전사령부 공수특전단(SWC)
특수전사령부(이하 '특전사', 과거 공수부대로 통칭되었던 부대)
편성: 사령부,
1,3,5,7,9,11,13특전여단(이하 여단),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이하707특임대),
특수전교육단(이하 특교단)
사령부 : 서울 00지역에 위치
1여단 : 서울 00지역에 위치 (김포공항과 인근) 실작전 특전여단
3여단 : 서울 00지역에 위치 (서울공항과 인근) 실작전 특전여단
5특임단 : 경기도 00지역에 위치 (김포공항 인근)
예비여단이였으나 해외파병 등의 특수임무수행으로 특임단으로 재편
7여단 : 전북 00지역에 위치 (군산공항 인근)
9여단 : 인천 00지역에 위치 (인천공항 인근) 실작전 특전여단
11여단 : 전남 00지역에 위치 (광주공항 인근) 실작전 특전여단
13여단 : 충북 00지역에 위치 (청주공항 인근) 실작전 특전여단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 : 서울 00지역과 경기도 00지역에 주둔 및 교장운영
특수전교육단 : 경기도 00지역에 위치 (특전인의 요람/ 특수전교육의 메카)
특전사와 공항이 가까운 이유는 잘 알것이다.
1개여단에 4개대대와 직할대, 각 대대에 3개지역대, 각지역대에 5개중대가 있다.
중대를 팀이라고 부른다. 가히 가공할 전투력이 나오는 막강한 특수전요원들이다 2/12명
장교 : 팀장과 부팀장(정예요원으로 착출 선발된다), 부사관 : 소화기, 의무, 통신주특기로 편성
하지만 임무의 특성상 단 한명의 요원이 남아도 부여된 임무를 수행한다는 특전사의 명예로운 완수의지로
거의 모든 요원들이 각종 화기는 물론, 장비조작, 의무(외과수술시술수준), 각종통신장비조작, 정작,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다. 하늘, 땅, 물에서의 생존능력보유는 그들의 전투력의 기초이자 기본이다. 특전사요원들에게는 안되는 것이 없다 되게 하니까. 이 한목숨과 조국과 특전사의 명예를 위해 바친다. 특전사의 명예가 우선이다. 그래야 조국이 있다라는 의미이다. 특전사답다. 멋지다.
707특임대대 1고공지역대,3해상지역대,5/7특공지역대, 직할대
66부대, 606부대, 27과 47(707) 할이야기가 많으나 본 제목의 성격상 나중애 해야겠다.
정예 중에 정예라고 한다만 그 정예가 나온 특전여단이야말로 특전사의 모체다.
707의 대테러임무수행능력은 정말 가공할 만한다, 미국 그린베레 중의 정예부대인 델타포스도 혀를 내두른다는 그런 부대가 바로 707특임대이다.
고공전담지역대, 해상전담지역대, 대테러임무수행최고 능력을 보유한 특공작전요원으로 뭉쳐진 5/7특공지역대
팀의 편성은 2/12로 특전여단의 팀편성과 같다.
축구잘하고 운동잘하고 고공, 해상, 특수전전문, 사격, 무도등에 특출난 인원들로 모여 있다, 최초 그렇게 착출되었고 현재는 특별한 선발기준이 있는 장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특교단 특전 부사관후보생중에서 선발된다, 각 여단의 특임대가 해체되면서 여단 정찰대로 개편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서 707로 흡수된 인원들도 있다. 과거 606부대가 해체되며 각여단에서 선발된 인원들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영웅이 된다. 27과 707의 경쟁은 27부대의 해체직전까지 대단했고 707은 27에 견줄만한 능력을 지녔음에 틀림이 없지만 그들보다 월등했다고 감히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특전인은 과묵하고 신중하며 나서지 않는다. 명예를 먹고 사는 이들은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늘 우리가 있을 뿐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특교단 모든 특수전교육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공수(기본. 강하조장. 고공HALO/HAHO) 수쿠바, 특전문, 특수전, 이라크파병교육까지... 변산반도 해상훈련교장과 송추오봉산 특전문교장, UDT교육파견.... 그 외 다수의 교장관리 및 교관/ 교육계획 등 모두 여기서 나온다
특수전담당교관들은 거의 신이다. 최고이지 않으면 결코 설 수 없다는 특교단 교관단.
그들은 오늘도 최고 최강 최선의 특전요원들을 배출해 낸다.
내가 예전에 올릴 글들을 찾아보면 특수전예하의 모든 특수부대마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보통 UDT라 통칭, UDT/SEAL/EOD/대테러지역대로 세분화 편성
1개팀 7명
육군이 자랑하는 특전사에 비해 일반에게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는다.
규모가 적을뿐더러 나서기를 꺼려한다. 해군특수전여단은 이름 그대로 수중파괴임무(Underwater Demolition Team)와 전천후(Sea Air Land) 작전 능력을 갖춘 정예 중의 정예다.
육군특전사가 육,해,공을 이용하여 후방교란·첩보수집·대테러 등 임무별로 세분화돼 있다면 해군특수전여단도 전천후 특수타격·수중파괴·폭발물 처리·해상 대테러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해군특수전여단은 육군 특전사와 같은 대규모 비정규전 작전 능력은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훨씬 더 소수·정예화한 전력으로 어떠한 고난도 임무라도 즉각 수행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1954년 7월 최초의 해군장교 7인이 태평양 전쟁 당시 큰 공훈을 세운 미 해군 UDT 과정을 교육받고 이듬해 300명의 지원자 중 25명의 정예 요원을 선발, 양성·배출하면서 해군특수전부대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미 54년 6월23일 창설된 해군상륙전대 예하 해안대 수중파괴대 전력을 흡수하고 전력 재정비 후 55년 11월25일 해군 UDT로 창설, 71년 SEAL 개념을 도입하고 전천후 특수 타격 임무를 추가했다. 부대 창설 이후 68년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당시 미 해군 특수부대와 함께 레드폭스 작전 등에 참가했고 83년 1월1일 특공작전대에서 25특전전대로 전력을 강화한 이후 86년 2월1일 56특전전대로 개편됐다. 93년 12월1일 해상 대테러 임무를 전담하는 UDT / SEAL 대테러부대가 새로 창설됐으며 이후 96년과 98년 잇따라 벌어진 잠수정 침투 사건 당시 그 모습이 언론에 공개돼 주목받았다. 2000년 현재의 해군특수전여단으로 전력이 확대·재편성됐고 부대 임무를 UDT·SEAL·EOD·대테러 등 네 가지로 정의하고 국가안보의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 UDT/ SEAL
- 체력과 근성, 해상 수중 임무수행 능력 세계적 수준
- 미군 SEAL요원이 장비로 승부를 건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 UDT는 그 장비로 세계를 정복한다는 전설이 있을정도
- 세계 각국의 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인정하는 정예부대
- 소수선발, 최강 교육, 최상의 전투임무 수행능력 보유
특수임무부대
국방부 : 정보사령부 예하 정보부대
육군 방첩대:AIU(HID), 공군 첩보대:니꼴라스부대/2325전대/OSI, 해군 공작대:UDU, 해병대 정보부대:MIU 가 이들의 전신이다. 첩보작전을 시행하는 국가정보부대인만큼 훈련사항, 활동등 대부분이 기밀로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HID는 벌써 해체된지 15년쯤 되었다, 아직도 실존하는 부대로 잘못 알고 계신 분이 많다
육군첩보사령부의 이니셜이 HID
현재는 정보사령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특수부대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 임무가 첩보수집이기에 적진에서 활동한다
즉 공작임무..
인간정보요원이 되기까지의 훈련은 공개된 것이 없다
영화 실미도는 그 실제 훈련강도의 1/10도 않된다는 것이 정설
(여기서 참고로 '실미도부대(684 부대 / 정식 명칭 '2325 전대 209 파견대)' 실미도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무인도로, 1968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북파공작원을 양성시키기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었던 곳이다. 1968년 1월21일 밤10시경, 북한특수부대 124군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입했다.이들 공비들은 우리 군경과의 격렬한 전투끝에 공비 30명이 사살되었고, 이들 중 생포된 김신조는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라고 말해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박정희 정부는 평양의 주석궁을 습격하기로 하고, 31명의 청년을 불러모았다. 이들이 격리, 수용돼 지옥 훈련을 받았던 곳이 인천 앞바다의 외딴 섬 실미도이다. 실미도 부대(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로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리기도 함)는 전과자와 민간인으로 꾸려졌으며, 3년여 동안 가혹한 훈련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3년4개월 동안 출동 명령만을 기다리다가 1970년대초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파 임무가 취소됐으며 이들의 존재가 외부에 공개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기간병들에게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같은 부대에 있던 기간병 24명 가운데 18명이 훈련병들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훈련 중 사망한 7명을 제외한 훈련병 24명은 인천에서 버스를 빼앗아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총격전 끝에 수류탄을 터뜨려,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생존자 4명도 1972년 3월 사형당했으며 정부는 이 사건을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규정했고 30여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이상 참고)
각군의 정보부 산하 특수임무 수행부대이다
과거 HID는 육군을 위한 정보를 수집
산하에 북한으로 침투하기 위한 특수요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HID(Headqua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1954년대부터 1994년 12월 31일까지 특수임무의 수행을 위해, 북에 파견된 무장 첩보원, 이와 관련한 교육을 받은 이들을 "특수임무수행자"라 부릅니다. "특수임무자"란 한국전쟁인
1950년대부터 북한에 파견되어, 적 생포 및, 사살, 적군 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및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이 주요 임무였다.또한, 인민군 복장으로 위장 착용하고, 육해공군의 물적 보급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여 임무 수행 중 부상이나 임무수행불가능상태에서는 자결이나 자폭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임무에 투입되었다가 임무수행완수 후에 무사히 귀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무장공작원을 훈련시키고 담당했던 부대가 "육군첩보부대" HID 이다.
정보담당부서는 1946년 군정청 국방총사령부 정보과로 발족
▶1948년 조선 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으로 변경 그해 11월 육군본부 정보국으로 개편
▶1950년 7월 육군본부 정보국내 공작과 편성
▶1950년 7월말 영문표기 HID(Headqua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1951년 3월 육군첩보부대 창설 첩보업무담당
▶1954년 6월 서부 첩보대 창설
▶1961년 7월 영문표기 HID→AIU(Army Intelligence Unit)으로 변경
▶1972년 정보대를 통합해 육군정보사(AIU)가 된다.
▶1990년 육해공군 정보부대가 통합 국군정보사령부[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
50년대에는 전란을 겪으면서 사회생활이 크게 안정되지 못하게 됨에 따라 포섭하는 물색관도 비교적 쉽게 다가와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권유하며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포섭하여 북파공작원으로 채용 이북의 지리를 잘 알고 북에 연고가 있는 사람을 채용하기도 하였고 포섭대상자는 1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하게 포섭되었으며 남,여 또한 제한하지 않았다. 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체계적으로 물색관이 포섭하게 되었고 가정 및 사회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을 포섭 선별하였으며 군 입대 전에 포섭되어 공작원 생활 후 사회에 나와서 다시 군에 가야하는 경우도 70년대까지도 이어졌고 포섭되는 조건은 물색관에 의해 조금씩 달랐으나 90년대까지 물색관이 제시하는 조건에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을뿐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50년대에는 주로 3~5명이 침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6~70년대 들어서면서는 단독침투를 하였으며 임무에 따라 2~3명이 침투하는 경우도 있었다. 0년대 전시에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침투를 하였으며 휴전이후에는 해상 및 육상으로 침투하였고 우회 공작원이라 하여 제 3국을 통하여 침투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북침투 및 공작활동에 필요한 교육은 6~70년대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하였으나 전사자는 줄어들지는 않았다. 1972년 7. 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후 남과 북은 서로 공작활동을 중지한다는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대북 대남 공작활동은 비밀리에 행하여졌으며 1972년 이후의 공작활동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대북임무를 한 사실이 있음을 입증시키는 자료가 있으며 이는 단독임무수행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전국 각지에서 훈련을 실시하였다. 현행 전사자 명단을 볼 때 1972년 이후의 전사자명단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해군의 UDU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54년 만들어진 이 부대의 전신은 이미 48년 9월에 마련되고 있었다. 원래 방첩대였던 미국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가 은밀히 가동하고 있었던 대북공작대가 바로 그것. UDU란 명칭으로 처음 선발한 것은 55년 4월이었다. 신원이 확실한 방첩부대에서 차출된 1기, 2기요원들은 미국령 모 처에서 훈련을 받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 수영만에 1차 집결한 뒤 미국 수송기에 탑승, 오키나와를 거쳐 훈련장소에 도착했지만 비행하는 동안 내내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착한 곳은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3기부터는 훈련장소를 국내로 옮겨 서해 모 기지에서 훈련을 받기에 이른다. 이들이 수행한 임무는 주로 요인납치 및 암살, 폭파, 기습, 잔류공작원 보급 및 접수, 수송, 철로폭파, 적 통신시설 감지 등이었다.
이들의 북파공작은 71년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부대는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대북공작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UDU 부대가 초창기의 반양성. 반음성적 성격에서 완전한 음성부대로 전환되면서부터는 현역 군인에서 차출하던 요원을 민간인 입영대상자에서 뽑게 됐다. 한번에 40~50명 선발했고 이들이 안전가옥에서 실시하는 기본교육 6개월의 과정은 상상외로 혹독해 대부분은 탈락하고 채용계약을 맺게 되는 훈련병들은 대략 10명 안팎이라고 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UDU 출신들은 훈련과정에 대해서만큼은 말하기 꺼려했지만 자신들이 하는 훈련은 상대방과의 격투에 대비한 `일반 특공무술`이 아닌 효과적인 살상을 위한 `특수살상무술`이라고 밝혀 특전사나 UDT, 해병대, 특수 수색대와는 다른 훈련과정을 거쳤음을 암시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부대가 군의 체제가 아닌 일반 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 이를테면,소대장은 대리, 중대장은 계장, 부대장은 사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부대의 노출을 얼마나 기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현재 이부대 출신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일단 생존자들의 경우 그들이 목숨을 바쳐 국가를 위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후 그에 따르는 합당한 보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부분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현재 공공연하게 실체가 인정되고 보상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HID와는 달리 최근의 북파공작원중 실종 처리되고 있는 5.16 이전 공작원들의 생사확인 또한 시급하다. 지금도 북한내에 살아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상당수의 UDU요원들은 지난달 2일 북송된 대다수의 비전향 장기수와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정부는 이들의 생사확인과 송환문제를 외면해선 안된다. 한편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북파공작원,UDU)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부분이고 특수보안에 관한 사항이라 확인조차 힘들다.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이 있다면 군은 이런 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적법한 절차에 의거해 보상해 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후 1950년 해군첩보대원은 한국전쟁으로 비체계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전지역의 소규모 게릴라전과 서해의 수많은 도서지방에 요원들을 침투시켜 지역주민들을 특수교육시키고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여 적의 정규군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당시 북한의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후퇴한 한국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반격을 시도한다. 당시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있기 까지는 해군 첩보부대의 특수요원들의 희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인천지역 인근 주요 도서지방은 북한군에 점령당해 있는 상태였으며, 특히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군 상륙함 함대 및 상륙부대가 이동하는 주요거점 확보는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이곳을 탈환하려는 비정규군의 노력은 해군 첩보부대 특수요원들이 아니였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러한 정규군의 유명한 업적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첩보부대 특수요원들의 숨은 전공이 많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후 연합군의 북진으로 한반도 최북단인 압록강까지 이르러 통일을 눈앞에 둔것처럼 할 때 갑작스런 중공군의 대대적인 개입으로 아군은 전면 후퇴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군은 북한지역에서 후퇴후 적지역에 대한 첩보수집과 게릴라전으로 적 후방을 교란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북한군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기습타격을 가할 수 있는 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미군 정보기관은 인천상륙작전에 한국 해군첩보부대원들이 벌인 첩보활동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던 터였다. 따라서 비정규전에 첩보부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미 정보기관은 한국군 정보기관과 협의하여 1954년 해군정보감 겸 정보부대 777부대장 김세원 대령의 중계로 대북 해상첩보공작부대를 발족하게 되었다.
공군의 특무20전대, 2325전대, OSI, AISO, 스미스부대, 니꼴라스부대(가장 정교하고 가장 대단한 첩보수집능력은 물론 1명의 특임요원이 갖는 임무수행 능력이 최고였다고 한다 김신조사건 후 김일성 목따가지고 오라는 임무를 공군 첩보부대에게 맡긴 이유도 그것때문이다 것이 정설이다)
23첩보대와 25정보대가 각기 따로 활동했다. 23전대에서 한예로 북한 원산반도 호도 등지에서 첩보르 획득하면 25전대에서 이를 분석했다. 그 명성 또한 대단하다. 실미도의 모체부대가 바로 23전대와 25전대가 통합된 2325전대의 209파견대이다. 육군 위주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현 국정사에서도 OSI와 혼돈을 하지만 엄격하게 다르다.
대한민국 공군첩보부대 20특무전대
우리군은 과거 육·해·공군별로 첩보부대를 따로 운영했다. 육군 첩보부대는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해군 첩보부대는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 첩보부대는 20특무전대 등으로 불려졌고 바로 이곳에서 북파공작원이 양성됐습니다.
육군의 HID(1951년 3월 창설)는 규모면에서 가장 컸고, 해군의 UDU는 6·25전쟁 전인 1949년 6월 창설돼 가장 오래된 북파공작대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군의 특무전대는 북한지역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는 가장 강력한 북파공작을 하였습니다.
1954년 9월 극동공군이 일본으로 철수함으로서 6006부대가 사라지게 되자 한국 공군의 20특무전대가 6006부대의 임무를 떠맡았다. 이런 이유로 서해상에 있던 많은 섬들이 공군 관할로 넘어왔는데 이중 하나가 실미도였던 것이다. 20특무전대는 대북정보활동을 하던 23첩보대와 25정보대, 그리고 국내에서 대공수사를 주로 하는 26특수수사대로 구성돼 있었다. 26수사대는 대공분야라고 하는 특수수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로 불렸는데, OSI의 명성이 커지다 보니 OSI를 공군의 대북정보부대로 잘못 안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20특무전대가 대북공작 임무를 떠맡으면서 26수사대는 오류동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옮겨갔다. 이로써 23첩보대와 25정보대만 남게 되자 20특무전대는 2325부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325부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 대북공작부대를 유지하며 유사시 공군 작전에 필요한 대북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그런 와중인 1968년 북한군의 대남공작부대인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는 1·21사태가 일어났다. 그러자 가장 강력한 대북공작부대인 2325부대에 똑같은 방법으로 김일성이 거주하는 주석궁을 폭파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북한의 124군부대가 31명으로 편성되었으므로 김일성을 죽이러 갈 북파공작대도 31명으로 구성됐다. 2325부대는 과거 실미도에 이 공작대를 배치해 훈련시켰는데 이때 실미도 부대에게 부여된 명칭은 2325부대 209파견대였다. 1971년 8월23일 209파견대에서 훈련받던 에이전트(북파공작원)들은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 노량진까지 진출했다가 폭사했다. 그후 2325부대는 6546부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0년대 육·해·공군의 대북공작부대가 통합되면서 국군정보사령부로 출범했는데, 91년 국군정보사는 오류동에 있던 부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땅을 매각함으로써 지금은 교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육·해·공군의 대북공작부대가 국군정보사로 통합되었다고 해서 해군과 공군이 대북침투부대를 전혀 갖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국군정보사는 육군적 성격이 강한 부대이다 보니 해군과 공군은 그들 작전에 맞는 대북침투부대를 소규모로 유지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북한으로 날아간다. 이때 몇몇 공군기는 북한군의 포화를 맞아 격추되고 조종사들은 비상탈출하게 된다. 이 조종사를 구출하는 일은 육군의 특전사나 해군의 UDT가 수행해내기 어렵다. 이 임무는 공군 사정에 밝은 공군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어, 공군은 헬기를 타고 적진으로 침투해 조종사를 구출해내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전대급 특수부대를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해병대가 MID였다.
부대 마크
슬기롭고 지혜롭기를 Snake(뱀)과 같이 하라.
은밀히 침투해서 임무수행하는데는 총보다 칼이다.
우리는 대검 하나를 무기삼아 슬기롭고 지혜롭게 온 지구를 누빈다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창설 배경
1968년 3월 중앙정보부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아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집행하여 동년 11월 최초 장기하사관 11명과사병2명을 차출하여 강화도 마니산 서남쪽에 텐트를 치고 합숙 훈련을 시작한다. 2년후 하사관15명 사병14명을선발하여 2진으로 오게된다, 본부대의 목적은 적 특수 8군단 같은 특수 부대를 일격에 격퇴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갖춰 유사시 언제 어떤 명령하에서도 목적지에 투입하여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부대로 탄생한다,<본부대는국가극비에속했으며 비편제부대이였다,> 우수하고 강인한 해병중의 해병만을 선발하였으며, 선발 기준도 장남과 외아들은 제외되었으며,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과 특히 운동 주 특기자를 우선해서 선발하였던 것이다. 특히 타 부대 특수임무자들하고 다른점은 HID는 육상으로 UDU부대는 해상으로 주로 훈련을 많이 하였으며,영화 실미도로 잘알려진부대는 공군첩보부대였으며, 우리 해병북파공작대는 육, 해, 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즉각 침투하여 임무 완수를 하기 위하여 산악훈련은 물론 공수교육과 설한지훈련을 물론 여름 해양 훈련까지도 다 이수하여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최 막강 전천후 부대로 유명하다. 평상시 임무수행요원수는 40~50명을 항상 유지하였으며,훈련중 부상을입거나 사망하는 결손인원이 생길때마다 인원을 보충하여 꼭 같은 능력과 힘을 유지해 왔으며,모든요원들은 매 훈련시 유서를 쓰게하였으며, 타 부대로 전출이나 전역시 이부대에서 있었던 모든일을 죽을때까지 말하지 않겠다는 (보안서약)이라는것을 쓰게 하였다, 1973년 10월 해병대가 해군으로 합병함에 따라 부대의 명칭을 해군첩보부대 503기지로 명, 되었으며, 이 때부터 모든 지휘권이 중앙정보부에서 해군 첩보대로 이관 관리 통제하게 된다. 1975년 12월경 해군 첩보부대 부부대장 이관철님이 부대를 방문하여 "북한과의 화해무드"를 이야기 하면서 더 이상의 특수부대 존재 이유가 없다며 부대를 해체할 것을 명령하게 되고 이 명령에 따라 만 7년 동안 비밀에 쌓여 악명을 떨치던 해병 북파 특수공작대(해군 첩보부대503기지)는 붉은 막을 겉고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병대 북파 특수공작대
강화 마니산 훈련교장 흔적 그대로 남아있어 7년간 존재·(일명 ‘까치’부대)는 육, 해, 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즉각 침투해 임무를 완수하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천후 부대로 알려져있다.
까치부대가 주둔하던 강화도 마니산 정수사 부근 일대는 현재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혀 있지만 부대의 흔적들은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다. 내무실이 있던 축대, 탄약고, 하강 훈련장의 로프매던 지주대, 유격장이었던 암벽교장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에 알려질 날을 기다리며 침묵하고 있다. 이곳 암벽교장은 떡갈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암벽에 올라가면 강화도 남단 갯벌과 인천 영종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MIU부대’(일명 까치부대·해병대 북파공작대)는 ‘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직후 실미도 부대와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병대에서 창설한 비편제 특수부대다. 1968년 11월 중앙정보부는 최초 장기하사관 11명과 사병 2명을 차출해 마니산 서남쪽 정수사 아래 텐트를 치고 합숙훈련을 시작하면서 MIU부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2년후 하사관 15명 사병 15명을 선발해 2진으로 투입시켰으며 현재까지 밝혀진 총인원은 장교(공작관) 13명, 요원 158명이며 현재 연락이 가능한 요원은 공작관 5명, 요원 114명이다. 그중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거나 혹독한 훈련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요원이 13명,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요원이 4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MIU부대’의 목적은 북한 8군단같은 특수부대를 일격에 격퇴하고 주석궁에 침투할 수 있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선발은 해병대원중에서 우수하고 강인한 자를 중심으로 선발했으며 선발기준은 장남과 외아들은 제외하고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과 특히 운동 주특기자를 대상으로 했다. 선발과정에서 외아들과 장남을 제외한 것은 훈련과 작전 중 사망해도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함이며 당시 고교졸업자 이상을 선택한 것은 북한의 모든 사항을 암기해야 하는 지적능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선발은 야구선수의 경우 100M 떨어진 곳에서 달려가는 사람을 상대로 돌을 던져 쓰러뜨릴 수 있냐고 질문한 뒤 있다고 하면 확인과정을 거쳐 입대를 결정했다.
복싱선수 출신으로 중1에서 고3까지 6년을 선수 생활한 이진범(해병대북파공작원 회장) 씨의 경우 “같은 덩치 3명과 싸워 몇 분내 쓰러뜨릴 수 있냐”고 질문받고 “30분내 자신있다”고 답하자 실제 경기후 입대가 결정됐다. 입대후 요원들은 위장을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른 상태였으며 북한군 복장에 무기조립, 북한상황을 숙지·암기하며 혹독한 훈련에 임했다.평상시 임무수행 요원은 40~50명을 항상 유지했으며 훈련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해 결손인원이 생길 때마다 인원을 보충해 동일한 능력과 힘을 유지했으며 모든 요원들은 훈련시 “나라는 위해 몸바치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유서를 쓰게 했다. 훈련은 계절별로 내용을 달리했는데 봄에는 강화도내 하수구를 대상으로 생존훈련을 했으며 1주일은 하구수내에서 생활했다. 하수구훈련은 평양시내에 잠입했을 경우 피신과 생존을 위한 훈련으로 실시됐다.여름에는 고무보트(IBS)를 이용한 해상침투훈련, 가을에는 공군첩보부대에서 공수훈련을 받았으며 겨울에는 대관령에서 스키훈련을 받았다.그리고 담력훈련을 위해 비오는 날 공동묘지 밑을 파서 관위에서 취침하는 훈련도 병행됐다. 침투를 위한 훈련은 대형 애드벌룬에 수소가스를 넣어 부공하고 3000M 상공을 유지한 체 북풍을 이용, 잠입하는 훈련으로 애드벌룬 2개를 연결하기도 했다. 치악산 정상에서 훈련했을 당시 단양 논에 떨어졌는데 간첩으로 오인, 영주경찰서에 연행돼 중앙정보부 확인을 거쳐 풀려나기도 했다. 모든 부대의 훈련, 특히 북파공작대 훈련에는 침투와 복귀를 위한 기안계획이 있으나 ‘MIU부대’는 투입작전계획은 있으나 돌아오는 계획은 없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75년10월 부대내에서 사병이 당직사관을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군첩보부대 이관철부부대장이 ‘MIU부대’ 김기태 회장을 찾아와 ‘북한과의 화해무드’를 말하며 더 이상 특수부대 존재이유가 없다며 해체시킬 것을 명령함에 따라 7년 동안 비밀리에 악명을 떨치던 해병북파특수공작대(해군첩보부대 503기지)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군별 첩보부대가 통합되어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 재편
당시 공군 해군의 첩보부대는 미군의 각군별 정보부대의 지원하 소수 정예 요원만을 선발/ 교육 시켜 관리하였으며 임무수행능력은 세계최강이였으나 통합 후 육군 위주의 기록만이 존재. 그 최강요원의 정보와 기록은 극히 일부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수적으로 다수였던 육군도 그 수준이 월등했다
현재, 국정사 예하에는 UDU, 900, 901.... 등 정보여단이 현존하며 그중에서도 일명 설악단, 광탄정보부대...그 정보요원들은 산적이나 돼지 등의 별칭이나 암호명으로 불려지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식 군개통으로 확인된 바 없다.
해군 : SSU(심해잠수부대)
정확히 말하면 해군 제 55군수지원대다. 세계 심해잠수사들이 기적이라 말하는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 최고중 최고다. 해난구조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장교는 착출/ 선발되며 그외 부대원 전원 모병제이고 잠수교육 수료자들이다.
- 임무상 전투요원은 아니나 그 이상의 체력과 인내, 집중력과 책임감, 임무수행 능력이 요구되는 최소, 최강의 요원
- 타국의 심해잠수/ 해난 구조부대가 포기해도 대한 해군 SSU는 한다
- 그 임무수행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
공군 : 탐색구조전대(search and rescue), 공정통제사(CCT)
파일럿 구출을 담당하는 RESCUE와 항공기 유도 및 통제를 행하는 CCT가 있다.
전술비행단 공정통제팀(CCT)
적 지역에서 아군의 항공기 활동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항로를 선도하는 부대. 이 부대는 무전기가 총보다고 중요하다고 할 만큼 전원 항공관제 및 기상 특기를 이수해서 작전지역에서 바로 관제 할 수 있다. 공군의 특수부대는 모병제가 아닌, 즉 인원을 자체 병력에서 뽑기 때문에 극소수이지만 실력은 다른 특수부대 못지않다. 오히려 소수이기 때문에 특수교욱을 받을 기회가 많고, 타부대와 합동으로 작전을 나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다. 공군 특수부대는 전범위의 특수전 부대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부분임무가 특화된 정예 부대라고 할 수 있다. 전문분야에 정통한 장교지휘관 휘하에 팀장(준사관이나 노련한 고참 부사관)과 부사관으로 구성. 특수부대는 보통 작전시 휴대가 간편해 기동성이 좋고, 시야확보가 잘되며, 상징적인 의미를 주는 ‘베레’를 쓰고 다니는데, 각 부대마다 베레모와 베레모에 붙어있는 모표가 다르다. 육군의 경우 특전사/ 국군 정보사가 검은 베레모, 해군 특수전여단이 국방색 얼루무늬베레모, 해병대특수수색대가 녹색베레모를 쓴다. 공군 CCT는 붉은색, 항공구조대는 자주색을 착용한다.
탐색구조전대
보통 RESCUE라고 불린다. 아군 전투조종사들이 불시착 했을 때 그곳이 어디건 구하러 가는 것이 주요 임무인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작전을 펼치는 만큼 의무훈련에 중점을 두어 대원 전원이 왠만한 외과수술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다. 여타의 특수부대와는 다르게 파괴목적이 아닌 구조 목적의 부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군을 구출할 때 방해되는 적 요소는 제거하기에 전투수행능력은 UDT/ 특전사수준이다. 여기도 CCT와 같이 부사관이 작전대원이며, 119구조대에서도 배워갈 만큼의 구조기술과 최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구조기술 못지않게 각종 침투 및 전술, 특히 생존, 회피 전술을 많이 익힌다. 함께 고공을 받았는데, 멋진 친구들이다.
그외 특수작전부대
육군 701,702,703,705,706,707,708,700특공연대, 2작전사령부 201, 203, 205특공여단, 35특공대대
북한의 특작부대에 대응하기 위해 82년 창설된 특공정예부대
특전사 및 특임대등에서 정예요원이 착출되어 창설
* 특전사의 11여단과 13여단에서 1개대대씩 착출되어 702,705가 창설
일명 가리산 특공대로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부대 등장
- 연대예하 특공대대 특공지역대 특공팀으로 편성되어진 일명 '특공대'이다. 정예요원이다.
- 편성은 1/13명 특공,폭파,의무, 통신,화기, 적후방침투 적후방교란 첩보획득 표적획득 요인암살및 납치 병참선차단 적지휘소타격 등이 임무이다.
* 특수전, 특공작전, 공수, 해상, 산악, 레펠, 유격, 무술 등 그 훈련의 수준은 살인적이다. 부사관체제가 아니므로 특공요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클
것이다,
- 705특공연대 최초 창설(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00지역 13공수 흑표범부대)에서,
- 702특공연대(경기도 화천군 00지역 11공수부대) 같은날 창설, 특수임무수행 능력 최상으로 극찬을 받음.
* 그 정예요원(1개대대 혹은 수개중대)들이 701, 703, 706, 707, 708, 700특공연대의 창설 모체부대가 됨.
* 육본 명령이 705가 빨라서 전군최초임
* 13공수는 충북 증평 00지역으로, 11공수는 전남 담양 00지역으로 이전함
- 705는 처음에 6개대대에서 701과 706창설에 1개대대씩 창설 모체부대가 됨.
- 추후, 708특공연대의 창설모체부대로도 투입되고,
- 707특공연대에도 705에서 2개중대가, 타특공연대에서도 몇개중대씩 투입되어 창설모체부대가 됨.
* 702특공연대의 1개대대가 모체부대 투입되어 강원도 가리산에 703특공대가 창설됨
- 가히 가리산특공대라고 일컬어지는 705특공대의 아성은 93년 전 특수부대를 통틀어서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전군 특수임무수행능력 / 전투력 1위
선정이란 평가를 받았다는 특수부대 중의 최고, 특공요원들이였음을 기억해야 할 중요한 특공역사중 하나이다.
- 705특공연대의 특공종합교장 위치한 '가리산',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돌산으로 거칠고 험하기 그지없고 특공교장과
유격교장의 암벽훈련이 이 일대에서 행해진다. 703의 '가리산'과 동일지역명이여서 현재 많은 사람이 703을 가리산
특공으로 혼돈하나 705특공연대 최초 창설당시 창설시범이 있었던 곳이 바로 가리산일대였다. 그 시범을 본 모든
관람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는 가리산 특공의 악명신화가 가리산 특공이라 일컬어 지는
원조가 된 것이다. 특공요원의 우수성과 존재 가치성, 임무완수 확신이 시작된 첫발이였다.
- 702특공의 역사는 특공부대의 그 유명한 703특공연대의 전투력 평가에서 역사적으로 인정 받게 된다.
* 702, 703 불사조특공부대의 명성도 진실로 하늘을 찌를듯하다.
* 동해안 무장공비침투사건시 토벌작전에서 보인 그들의 용맹성과 산악극복/ 산악작전수행능력은 특전3여단을 능가한다고 평가 받기도 했다.
* 이들은 군단의 적종심 깊숙히 침투하여 군단의 정규전을 승리로 이끄는 특공부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를 놓고 평가해 볼때 비정규전 임무수행부대
로서 극한 산악위주의 작전지역을 가진 702특공과 703특공의 특공작전수행 능력은 한마디로 1+1 이상의 전투력을 요구한다.
특전사가 인정하는 산악임무수행 능력 최고의 부대이다.
- 그후 정규전시 적후방의 기습/ 강습타격의 임무에 중요성대두 기계화 군단 위주로 특공대를 강습대대로 재편
- 적 특작부대의 아 후방교란 및 침투를 방지 및 색출 격멸 임무를 위해 적 특수부대를 잡는 특수부대로 후방
특공여단이 창설 (201, 203 205 특공여단)
- 그후 203여단은 항공작전사령부 예하의 강습여단으로 재편
* 특공여단은 한마디로 군단특공이 적지역으로 침투해 싸운다면 특공여단은 아군지역으로 침투한 적 특작부대를 섬멸시키는 임무르 수행한다,
* 한마디로 뛰는 놈들이 위에 나는 놈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전투력 알만 할 것이다
수도방위사령부 35특공대대, 55경비대대
- 특공대대는 수방사 예하의 35특공대대가 있으며 임무수행능력은 도시지역 특수임무수행 위주이다.
* 수도서울에서 발생되는 대테러진압에 선봉장의 역할을 한다, 일명 독거미부대. 정예요원들이다
* 병체제이며 신체가 뛰어난 요원들을 선발하여 공수, 특수전, 레펠, 사격, 무술 등 특수요원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게 하고
무엇보다 서울의 지상,지하, 지리적인 특성에 잘 맞게 훈련되어져 있기에 신출귀몰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대로서 즉각
임무수행 태세를 늘 견비하고 있다.
- 특전사의 707특임대의 성격처럼 대테러임무 수행, 특공작전 임무수행위주로 훈련을 받으며 레펠과 특공무술, 시가지 전투시 특수임무, 요인경호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 특전사령부의 707특임대대와 견주려는 수방사 특유의 자존심이 저변에 깔린 정예부대
* 도심내에서의 특수임무 수행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전사 707특임대와 유사하게 여군중대가 있으며 남군 수준의 전투력을
지녔으며 당당하게 임무를 완수한다.
- 필요시, 특전사 707부대와 함께 대통령 경호실의 작전통제부대로 편성되기도 한다.
* 청와대, 수도 서울 방호에 따른 특수임무 수행
- 군단, 여단 특공대와 전투력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특공작전의 대상과 지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 개인임무수행 능력은 여느 특공대원 못지 않으며 건물침투, 권총사격, 특공무술 수행능력은 탁월한 요망수준에 도달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 또한 대단한 특공부대임이 틀림없다.
- 55경비대대 : 일명 엘리트부대, 최고 인재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을만큼
그 임무가 각별한 부대, 우리나라 대통령님께서 계시는 곳의 경호경비를 맡는다
그외 803,805정찰대와 1.21보병사단의 수색대대, 28보병사단의 정찰대
군단 전방의 적 상황을 종심깊게 침투하여 가장 신속하고 은밀하게 보고하는 귀신같은 박쥐부대들이다. 805는 독수리를 상징한다, 그들의 침투기술과 무성무기 사용능력, 산악극복능력은 최고수준이다. 소수인원으로 편성된 반 또는 팀으로 운영되며 각종화기 모든통신장비를 조작할 수있는 능력을 보유(수집한 첩보를 어떻게든 보고해야 한다)하였고 특히 도피탈출의 기본인 체력과 개인탈출능력 등 그 전투력이 특전사 수준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특히 수색대대의 간판이자 역사인 1사단수색대대는 특전9여단이나 705특공대에게 결코 주눅들지 않는다고 한다. 9특전여단, 705 3특공중대의 실제 작전지역인 1사단수색대대 점령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는 155마일 휴전선일대 중 가장 민감한 곳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하늘을 찌를듯한 1사단 수색대대의 명예와 전투력때문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체계와 전통과 근성이 육군 최초 창설부대 1사단의 자부심이 만든 가장 수색대대다운 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다. 예전 특전사나 특공대라는 부대명이 없을때에도 수색대라는 특수부대가 있었으며 그 역사의 모체가 바로 1사단 독수리수색대대라는 것이다. 또한 21사단, 28사단의 수색대대나 정찰대는 사단전방 적후방종심작전 수행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그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날아다닌다는 명성(산악극복능력/ 산악작전임무수행능력/ 산악지형침투능력 등)을 얻기도 했다. 그 임무수행 능력은 그들만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육군 전투력 측정결과를 보면 그 수준의 탁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사단 전투력에 없어서는 않될 핵심 전력임에 틀림없다.
* 물론 거론되지 않았지 군단 정찰대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이곳에 거론된 정찰대와 수색대는 정예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전투력이 우수한 부대를 특별히 거론해 본것이다.
해병대 : 해병대 특수수색대 (Force Recorn)
- 일명 바다의 그린베레, 바다의 백상어
- 명령과 복종에 죽고 사는 악과 깡의 부대
-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신화와 전설에 가장 어울리는 정예부대
- 해병대를 보면 모두 특수부대라고 생각하는 것도 바로 특수수색대의 악명때문..
- 일반 해병대는 육군 보병과 같은 것임
- 사실상 병사가 근무할 수 있는 특수부대중에서는 육군의 특공대와 해병대 특수수색대가 있다
-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위해 해안정찰, 해안장애물 제거, 위협요소 제거임무
- 특수수색팀은 수색정찰 및 직접 타격의 임무를 뛰고 있음
-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침투되는 죽음을 삼키는 부대
상륙전시 선견부대작전과 적 주요표적 파괴등 적지 종심지작전을 수행하는 부대.
해병대는 자체가 국가전략기동부대로 전략부대라는 점에서 특수전부대와 비슷하다. 전략부대란 한마디로 전쟁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부대란 것이다(인천륙작전 같이). 그러나 임무가 다르다. 해병대는 상륙전을 수행한다. 해병대도 상륙 임무에 따라 또 제대가 나눠진다. 그 임무에 관련된 것들은 전부 마스터한다. 철인과 같은 체력과 해병대만의 특유의 자신감이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상륙작전 전에 해병대의 길을 열어주는 부대, 즉 상륙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그것이 물체건 사람이건 다른 특수부대들 하고 같이 제거하는 부대다. 죽음도 이들이 무서워 도망간다는 부대가 바로 해병대 특수수색대이다. 임무수행 내용은 해군 특수전 여단과 비슷하지만 작전 범위가 해병대 작전지역이다. 공수, UDT, IBS, 고등산악, 레펠, 강습, 폭파, 특수전 등 땅.하늘.바다 모두가 다 이들의 것이다.
참고사항
여기서부터는 경찰청과 해양경찰청, 그리고 소방방재청에서 특수임무에 맞는 공무원의 지원자격을 제한하는 제한경쟁 특별채용의 특수부대의 범주다. 참고바람.
경찰청 경찰특공대 모집요강의 특수부대
▶ 국군정보사
▶ 육군 : 특전사·특공여단·특공연대·경호실작전부대·35특공대·헌병특경대
▶ 해군 : 정보부대(UDU)·특수전여단(UDT)·제55군수지원전대(SSU)
▶ 공군 : 탐색구조전대
▶ 해병대 : 해병대전체
▶ 경찰특공대
해양경찰청 특수기동대 모집요강의 특수부대
▶ 정보사(HID)
▶ 육군특전사, 특공연대, 수방사35특공대
▶ 해군(SSU, UDT, UDU, 해병특수수색대)
▶ 공군탐색구조전대
소방방재청 119특수구조대 모집요강의 특수부대
▶ 특전사, 특공연대
▶ HID, UDU, MIU
▶ UDT, SSU
▶ EOD
▶ 해병특수수색대
단, 소방방재청 구조대 지원자격은 위 부대들의 부사관계급부터 적용이 됩니다.
특수부대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예)육군소령 홍광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