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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관련소식 스크랩 통일교 문선명 총재와 인물 "발레가 나의 신앙이었습니다"(문훈숙 단장)
miho 추천 0 조회 709 09.02.11 18:5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발레가 나의 신앙이었습니다” (문훈숙 단장)

 
우선 얼마 전에 명예신학박사 받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용학 박사를 주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겠는데, 자격도 안 되는데 신학박사를 주셔서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로 주셨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떻게 감히 신학박사를 받겠어요 .(^^*) 너무도 부족한데, 박사학위를 주신 참부모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명예신학박사 학위 수여 장면

 

 

▲ 가족과 함께
 
혹시 예술 관련해서 학위를 받으신 적은 있으신가요?
러시아와 한국 양국 간에 발레교류가 많았는데, 그러한 교류에 공헌한 공로가 인정되어 모스크바 대학에서 무용학 명예박사를 받았습니다. 
 

 

 

▲ 명예대사 임명장수여. 모스크바민족회의 빨루닌의장

 

 

▲ 명예박사학위와 명예대사 임명 후
 
 
<발레인생에 대해……>
 
발레를 시작하시게 된 기연(機緣)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어요. 7살 때 어머니께서 쇼핑가게에 붙어있는 광고를 보고 저와 여동생을 동네 발레학교로 데리고 가셨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죠.

 

 

제가 다닌 발레 학교는 목조 건물의 오래된 교회였는데, 예배용 의자를 다 빼고 발레 바(bar)를 쭉 달았고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단상에서 발레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정말 허름하고 먼지도 많았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제게는 참 의미가 깊습니다. 신앙이 아니었다면 발레를 계속 할 수 없었을 제게 발레 인생의 시작이 교회였다는 것은 제게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음에, 그리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환경과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신 참부모님 그리고 많은 분들에 대해 너무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서든 “저는 발레리나입니다”(I'm ballernia)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있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을 지라도 훈숙님께서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 특권을 누리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좋은 불씨가 있더라도 젖은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듯이, 훈숙님의 의지와 노력과 땀이 있었기 때문에 그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발레를 할 수 있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참부모님께 너무도 감사 하고 있습니다.

발레계의 현실은 정말 열악합니다.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후원금, 정부 기금등, 스폰서를 찾아야 하는데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수준 이상으로 발레단을 지원해주시고 정성을 드려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역에서 한창 춤을 추었을 때는 발레리나로서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바라시는 세계적인 수준에 견주어 제 자신을 냉철히 바라보았을 때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고 가야할 길이 멀었기 때문에 너무도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눈물로 지새운 날도 많았어요. 그래서 복에 겨운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무용계에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 할 때 ‘차라리 발레단이 없었으면’하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참부모님을 생각 할 때 마다 실망을 드릴 수 없었고, 부모님의 고생을 생각하면 우리 중에 어느 누가 힘들다고 불평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나와의 싸움에서 정성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어요. 타고난 실력보다 정성과 노력으로 이 길을 걸었어요. 흥진님을 위해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적인 길 이었어요. 그래서 종종 발레 이야기를 할 때면 발레와 “애증(愛憎)의 관계”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사심 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해주시며 믿어주시고 정성을 쌓아주신 참부모님께 그리고 흥진님께 너무도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발레와 신앙과의 공통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수준 높은 예술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일종의 도(道)를 닦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 올랐을 때 ‘나’(我)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오직 흘러나오는 소리의 진동과 몸짓의 일체감(一體感)만이 있죠. 결국 발레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펼쳐지는 향연(饗宴)입니다. 따라서 발레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하는 수행의 과정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도(道)를 닦는 과정이 끊임없이 ‘나’를 비워가는 과정인 것처럼 발레 역시 ‘나’를 비워가는 과정입니다. ‘지젤’이면 지젤, ‘백조’면 백조 그 역할과 움직임 속에 ‘나’는 없습니다. ‘나’를 비워야 보다 큰 ‘나’가 들어와 더욱 빛나는 것 같아요. 발레는 그래서 직업이라기보다도 ‘천직, vocation’이라 생각합니다. 발레 공연에 집중해 있을 때의 상태와 깊은 명상에 들어갔을 때의 상태가 일치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경지까지 가기가 쉽지는 않죠.(^^*) 이런 점에서 발레는 신앙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영원한 지젤" 훈숙님. 지젤 공연 후
 
매일매일 연습하는 것도 매일매일 정성을 쌓아야 하는 신앙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발레는 중노동이예요.(^^*) 예전 <시사저널>에서 운동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많은 스포츠에 대해 조사했는데, 1위가 미식축구 2위가 발레와 축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에서 발레리나가 ‘백조의 호수’와 같은 전막 발레를 하는 것은 축구 선수가 전반전, 후반전, 그리고 연장전을 교체 없이 뛰는 것과 같은 운동에너지 소비량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축구선수들은 경기를 하면서 ‘욱’, ‘욱’하면서 힘들면 인상을 쓰면서 어떤 표정도 지어도 되지만, 발레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 중노동을 하면서도 표정은 언제나 우아하게 지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발레는 최고의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음악성, 연기력, 시적감수성 모두를 합한 것입니다.
 
발레리나는 지구력, 스테미너, 유연성, 근력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백조의 호수’ 4막까지 가면 나중에는 팔 하나 들어 올릴 힘이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겨우 공연을 마쳐요. 매번 그렇습니다. 발레는 정말 힘든 예술입니다. 그래서 'religiously dedicated'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발레를 하려면 신앙적인 헌신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장이 뛰듯이 연습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해 주신 러시아 선생님이 있는데, 심장은 쉬지 않고 뛰잖아요, 무용수도 쉬지 않고 연습해야 한다는 말이고 심장이 멈추는 날에는 생애를 마감 하듯이 무용수가 연습을 멈추면 무용수로서의 생애를 마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과 더욱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처음에 가졌던 마음(初心)을 가지고 끝까지 매일매일 정성을 쌓아나가는 과정. 중간에 그만두는 일 없이…
사실 발레를 하면서 슬럼프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공연 5분전,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정말 그때는 심장이 튀어 나올 만큼 뛰고, 조그만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긴장이 됩니다. ‘아휴~ 이런 것을 내가 왜 했지?’, ‘이 공연을 끝으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 매 공연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해요. 너무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무대에 올라 수백 명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그 부담감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인 파파로티에게 한 기자가 “지금도 무대에 서면 떨리십니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파파로티가 한 대답에 너무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  ‘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바로티도 저렇게 힘들구나.’ 파파로티가 뭐라고 답변한지 아세요?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의 그 순간은 나의 최고의 적에게도 그 순간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무대라는 곳은 용서가 없는 곳이거든요. ‘제가 어제 연습을 조금 못해서 조금 실수를 했습니다.’ 이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곳이 무대이거든요. 무대는 아름다움으로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줘야 합니다. 그래서 무용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매일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가 은퇴 뒤에 어떤 느낌이었는가 하면, 마치 어떤 쇠사슬을 벗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9살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정시에 나와 연습을 했어요. 은퇴 후 한 동안 이따금 연습시간에 내가 연습실에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 할 때가 있었어요. (^^*)
 

사실 저도 발레리나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발레를 왜 시작했나?’(^^*) 이런 생각을 할때가 종종 있었죠. 그런데 이것은 발레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분야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까지 가는 데는 이러한 어려움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다가올 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야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포기 하지 않고 지금까지 나올 수 있게 한 힘의 원동력은 참부모님이었습니다.

 

원문보기 cheonil.tongil.or.kr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통일교, 문선명, 문형진, 원리강론, 생명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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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2 12:46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대단하십니다.

  • 09.02.12 12:49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09.02.12 12:52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09.02.12 12:55

    퍼가요~

  • 09.02.12 15:07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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