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다시 잡으며
아내의 직장 동료가 언제인가 수백자루의 연필을 주고 간적이 있었다. 아는 분이 연필 공장을 하다 폐업을 하면서 공장을 비워 주어야 해서 만들던 제품과 완성된 제품이 아이들에겐 요긴한 도구가 되어 좋긴 했지만 무척이나 씁쓸했다.
어릴적 중동근로자로 가거나 일본에 여행을 다녀 오면 사오던 잠자리가 각인된 돔보 연필을 자랑하던 때도 있었고 향나무 냄새가 좋았던 연필이 집에 여러 자루 있으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특히 고무지우개가 달린 금속 부분에 빨간 띠가 있던 피노키오 연필이라든가 낙타가 각인되어 있던 문화연필 ( 전주에 공장이 있었음 )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쯤 잠시 나왔던 화랑연필...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 쓰던 모나미 연필등이 기억난다.
그러다 80년대 샤프펜슬을 많이 쓰면서 나에게 연필은 미술시간에 소묘용으로 쓰던 연필이 전부였을까? 그나마 0.7mm는 사라지고 0.5mm가 대세인 샤프연필을 규정된 노트필기 이외의 시간에 사용했었다.
그러다 군대를 갔는데 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이동한 광주의 포병학교에서 총은 잡아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가자마자 육중한 대포를 조작하는 훈련도 아니고 독도법 부터 시작하여 포의 조준(전문용어로 방열이라 한다.)을 위해 동원되는 관련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골치 아픈 교육과정에 임하게 된다.
문과 출신에 수리능력이 떨어지는 내게 공부와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했던 군입대 8교시의 수업과 일과 후 벌어지는 자습은 몸으로 만 때울거라는 생각으로 간 사람들에게 고3시절을 다시 반복하는 착각과 문제는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가방가득 나눠준 교범(군대에선 교과서를 그렇게 부름) 과 전지크기의 사격도판지. 그리고 각종 공책. 스라이드식 계산척. 색연필과 일반연필등 내가 공대생인지 공고생인지 착각을 했었다.
연필을 깍고 심을 벼르는 과정은 나의 생활이 되었고 무사가 칼을 갈듯 그 이후 군생활은 늘 연필을 깍아 준비를 하고 어느 때라도 상황이 발생하면 연필을 꺼내 들고 선을 긋고 숫자를 기록하는데 써야 했다.
워낙 악필인데다가 시간을 다투던 업무탓에 글씨체는 더 엉망이 되었고 연필을 통해 뭔가 수련하는 느낌으로 생활을 했었다.
몸엔 늘 연필을 지니고 다녔고 나의 후임자도 교육이 시작되면 연필을 가지런히 깍아 정리하고 교육을 시작했다. 편리한 샤프도 있었지만 심이 부러지거나 고장이 날 수도 있어 늘 깍아논 연필을 선호했었다.
그리고 다시 제대 후엔 연필을 놓았었다.
그리고 다시 샤프나 볼펜을 잡았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연필을 제조하는 공장이 없고 외국으로 이전한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감소했다.
예전에 우주공간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을 만든다며 수없는 실험과 많은 돈을 투입했다고 한다. 결국은 실패 했다.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주공간에서 써지는 연필이 있는데 너무 앞서 간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제기 된 적이 있었다.
휴대하기 약간 불편하고 잘 부러지지만 궁극의 악조건에서도 어느 첨단 필기구 보다 먼저 채택되는 연필을 보면서 단순하고 오래된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뭔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카페 게시글
군생활의 기억들
연필을 잡으며
fdc
추천 0
조회 130
21.08.15 14:1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