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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그릇 명」(皿)자에 대하여 알아보았었죠? 그때 잠깐 언급한 글자가 거울을 나타내는 「살필 감」(監)자였습니다. 이번에는 거울과 관련 있는 「살필 감」(監)자에 대하여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으시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소개할 글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살펴보겠습니다. 밝은 거울과 잔잔한 물이라는 뜻인데, 나중에는 주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죠. 이 말은 『장자·덕충부(莊子·德充符)』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노나라의 왕태(王駘)라는 사람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원문을 잠깐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흐르는 물에 (자기 얼굴을) 비쳐볼 수 없다. 잔잔하게 가라앉은 물이어야 비쳐볼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여기에 감(鑑)자가 나오는데 동사로 쓰였죠. 이런 명경지수라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잘 비쳐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말이죠. 옛날 사람들은 위 『장자』의 인용문에서 말한 것처럼 요즘의 유리 뒷면에 수은을 바른 것 같은 좋은 거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으레 고요한 수면에다가 자기 얼굴을 비쳐보았습니다. 마치 아래의 나르키소스처럼 말이죠.
이 그림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가 1903년에 그린 「에코와 나르키소스」라는 그림입니다. 나르시시즘이란 말을 만들어낸 주인공답게 에코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고 수면에 열심히 자기 모습을 비추어보며 도취되는 모습입니다. 잔잔한 수면을 거울로 대신하였다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간 방향을 바꾸어 말하자면 이 소재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모양입니다. 다음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에코가 나오지 않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일까요. 뿐만 아니라 신화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의상 등으로 볼 때 당시 귀족의 인물을 그린 것 같습니다. 한편 실내에서는 수면을 거울의 용도로 사용하기가 한결 수월했을 것입니다. 커다란 세수대야 같은 기물에 물을 받기만 한다면 바람 등 외부적인 요소의 영향은 훨씬 적었을테니까요. 다음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입니다.
실내 같아 보이는 커다란 그릇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보는 모습입니다. 안타깝게도 수면에 비친 얼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얼굴을 비쳐보는 중임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자는 갑골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요즘도 수면이 잔잔하고 거울은 없는데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려면 아마 같은 방법을 썼을 것입니다. 아래의 사진처럼 말이죠. 꼬마가 수면 위로 넘어진 나뭇가지에 올라 자기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면 위로 자기의 모습을 비쳐보는 글자가 바로 「살필 감」(監)자입니다. 감(監)자의 옛 자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필 감」(監)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의 왼쪽의 글자는 그릇을 나타내는 명(皿)자입니다. 오른쪽에는 눈 밑에 그릇 쪽으로 몸을 굽힌 사람을 표현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신(臣)과 목(目)을 같이 썼습니다. 다만 신(臣)은 옆에서 본 눈이고, 목(目)은 정면에서 본 눈의 모습이라는 차이점만 있습니다. 그리고 금문(金文)에서는 위와 같이 그릇 위의 수면과 구부린 상체 위의 눈 모습을 더 확연하게 표현을 하였습니다. 측면에서 본 눈을 나타내는 신(臣)자가 훨씬 더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글자는 금문대전에서는 마침내 눈을 나타내는 신(臣)자를 몸과 분리하여 왼쪽으로 떼어놓게 됩니다. 회화와 문자가 구분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점차 세월이 흘러 거울을 대체할 만한 물건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료는 구리였고 그렇게 만든 거울이 바로 동경(銅鏡)입니다. 구리는 큰 범주로 보면 금속을 대표하는 금(金)이니까 감(監)자의 앞에 첨가하여 재료를 나타내었죠. 그리고 감(監)자는 본연의 뜻으로 돌아가 본다, 살핀다는 뜻으로만 쓰이게 되었습니다.
「거울 감」(鑑)자의 금문-소전 「거울 감」(鑑)자자가 의외로 금문부터 나온 것을 보면 금속제 거울이 만들어진 역사가 꽤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거울은 초창기에는 거북의 등껍질 같은 재료를 갈아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귀감(龜鑑)이라는 말에서 그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울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물론 사물을 비추어 보는 것이지요. 얼굴에 묻은 오물 따위는 거울을 보고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비추어볼 수가 있습니다. 거울 삼아야 할 은나라가 멀지 않다는 뜻의 성어 "은감불원(殷鑑不遠)"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과거가 자꾸만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역사를 거울로 삼는 데는 익숙지 않은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리고 「살필 감」(監)자가 거울을 보거나 외모를 살핀다는 뜻보다는 감독(監督), 감시(監視) 등의 뜻으로 쓰이다 보니 다시 본래의 뜻을 지닌 글자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볼 람」(覽)자입니다. 감(監)자 자체에도 눈으로 본다는 뜻을 나타내는 신(臣)자가 있는데 여기에 「볼 견」(見)자까지 추가를 한 것입니다. 「볼 람」(覽)자의 금문대전-소전 금문대전에서야 비로소 「볼 람」(覽)자가 보이는 것을 보니 만들어진 시기는 비교적 늦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나타내는 신(臣)과 본다는 뜻의 견(見)자까지 들어 있는 글자지만 뜻은 그냥 빙둘러보는 것을 말합니다. 한번 둘러본다는 뜻의 일람(一覽)이라든가, 전시 품목을 한번 쭉 둘러보는 전람(展覽) 등의 단어가 이를 말해줍니다. 실제로 꼼꼼히 따져서 상세히 살펴본다는 뜻을 가닌 한자로는 「볼 관」(觀)자와 「살필 찰」(察)자 등이 있습니다. 이 두 글자는 서로 호훈(互訓) 관계에 있으므로 함께 써서 관찰(觀察)이라고 하지요. 문자의 발전 단계가 상형(지사까지 포함)에서 회의, 그리고 형성을 거쳐 전주와 가차의 운용단계까지 갔다가 다음에는 단어인 자의 조합, 곧 복음사의 단계로 흐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첫댓글 오늘은 팔공산산행으로 다리가 아파서 파스붙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누워서 공부했습니다^-^ 스마트폰의 혜택이죠~ 동봉까지 산행을 해서 모두들 무사하신지 걱정입니다~
공부하시는데 자세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바로 선생 앞만 아니라면... 오늘은 로보캅Ⅱ를 찍었군요. 

질문입니다. 鴆 짐새짐인데요, 중국 광동성에 사는 毒鳥인거 아시지요. 이 새의 깃으로 담근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데, 실존하는 새가 맞는지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헌상으로는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실존한 새임은 분명한데 현재는 어떻게 생긴 새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도 어딘가 서식하고 있는 것인지 멸
을 한 것인지... 그리고 후대로 오면서 이 새의 깃털 독으로 남을 독살하였다는 기록이 점차 줄어들고요.
한자공부 이렇게 풀이 해주시니 참 새롭고 재밋습니다.
공부가 잘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沙月 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