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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말한다
본 문 : 로마서 10 : 6 ~ 8
지난번에 나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즉 예수님의 몸입니다. 즉 우리와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과 나는 한 몸이다, 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러나 그냥 안다는 것과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믿어지는 것은 성령이 임해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교회에 나와는 있지만 성도는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왜 아닙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지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고는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갈 수 없는데도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하면서도 자기가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사실이 안 믿어지고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왜 믿어지지 않는지 스스로 정검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내게는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예수님과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아 있으면서도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예수님과 자기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로마서6장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 지내고 함께 살아났다는 것까지는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님과 한 몸이면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육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영적 해석을 따라 오셔야 합니다.
엡2:5-6절을 찾으십시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미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하늘에 벌써 갔다 앉혀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면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 놓고 하늘에 앉혀 놓았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눈과 귀로는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열리지 않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상한 말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세상은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육적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과 한 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말씀으로 들으면, 영적으로 하늘에 앉혀 있다는 말씀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했다는 것은 믿는데 하늘에 앉아 있다고 하는 말씀은 안 믿어집니까?
내 심령이 하늘나라입니다. 내 심령이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나는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나라에 올라간다 말인가?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었습니까? 그럼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늘에 앉아 있으면서도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늘에 앉아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하늘에 올라갈까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과 하늘에 함께 앉아 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하나님 의입니다.
로마서10: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이미 ‘의’에 이른 사람은 하늘나라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7절) 고 말씀하십니다.
잘못하면 지옥가지 않을까 그런 소리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이 지옥에는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면서, 네가 이곳에 오지 못하고, 여기 있는 사람이 그곳에도 가지 못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앉아 있으면 지옥에는 못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면 하늘에 가겠느냐 또 어떻게 하면 지옥에 가겠느냐 하는 따위의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마음으로도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혹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내게 이루어 놓으신 것을 마음으로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히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것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 있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지 못하면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증거가 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혹 지옥에 내려갈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의 갈등조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 마음을 생각하지도 않느냐 하면 믿음이 증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이미 증거하고 있은데 그런 마음을 갖고 말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증거가 못 되니까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누가 혹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증거가 되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는 못하지만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씀은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보지는 못하지만 성령께서 증거 해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일5:7절을 펴십시오. “증언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믿음이 있다는 말씀은 바로 성령이 내 안에 임재 하셔서 내가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하늘의 비밀을 믿을 수 있도록 감동하여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는 하늘의 것을 볼 수 없지만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시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믿을 수 있도록 증거를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혜사 성령께서 내게 임재 하셔서 믿음에 대한 증언을 해 주셔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늘에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내가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언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혹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는 생각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말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까? 이렇게 하다가 지옥에 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영적 해석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올바른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육적으로는 죄인인데, 영적으로는 의인입니다. 이런 영적 해석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구원에 있어서 큰 일이 나는 것입니다.
롬8:10절을 봅시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너희 몸은 죄 때문에 죽은 존재이지만 너희의 영은 의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바로 영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영적으로 한 몸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얻은 구원을 얻은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 숨을 쉬고 있고 밥을 먹고 있으니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몸은 벌써 죄로 인해 죽은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현재의 몸은 구원이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 후에 변화된 몸, 즉 변화체로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되었고 영원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문 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간다 말인가?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영적인 구원이 이루어져서 하늘에서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가겠느냐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면 나와 예수님은 한 몸인데 내가 머리이신 예수님을 땅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을 끌어 내리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신없는 짓이잖아요? 함께 천국에 앉아 있으니까 우리가 끌어 내리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지요...끌어 내리려고 하는 자는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입니다.
또한 본문7절에서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간단 말인가?' 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면 그 말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로부터 모셔 올리겠다는 뜻이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어려운 말씀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자기 마음에 혹 내가 지옥 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는 것은 무저갱에 있는 예수님을 자기가 끌어 오리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동안 무덤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인해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셨습니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 부활하기까지 삼일동안 어쩔 수 없이 죽음의 세계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물론 그 기간에도 주님은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벧전3:19).
어쨌든 예수님에게 있어서의 죽음의 세계의 경험은 분명히 지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릴 때 사도신경을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사도신경에 보면, 우리의 사도신경에 한 문장이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즉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내시고, 〔지옥에 내려가시고〕,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 즉 〔지옥에 내려가시고〕라는 문장이 생략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지옥에 내려 가셨든, 영원한 존재로서의 그분이 죽음의 세계의 경험을 지옥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7절의 말씀은 우리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는데, 어찌 너희가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내려가려면 예수님과 한 몸이니까 예수님도 함께 내려가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지옥에 같이 간다는 말씀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구원 받아 하늘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 내가 지옥에 갈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도 지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입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롬10:8절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30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신30:14절을 찾아봅시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둘 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에는 후반 절에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로마서에서는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사 제도를 통해 양을 잡아 내 죄를 양에게 전가 시켜서 제사 드리는 그 규례를 통해서 그들이 깨닫고 믿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믿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려고 행위에 의지하고 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깨닫기 보다는 조상의 유전으로 받아들이고 만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행위로는 이 모든 것을 잘 행하려고 노력 했지만 믿음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어렵지 않은 일인데, 제사는 드리면서 그 행위에 대한 거룩함은 가지고 있었지만 제사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말씀이 너무도 가까이 있었지만 그들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믿음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아주 쉬운 믿음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어려운 행위를 의지하는 길로 찾아 가고 말았습니다.
믿는 것이 어렵습니까? 그런데 이 믿는 것을 이상하게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행위에 의지하여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아주 쉽게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위에 의지하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의지하면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믿음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말씀이 되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지만 이스라엘은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 자기의 ‘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 를 거절하는 악을 행하고 만 것입니다.
율법은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한 사람이라도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킨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의지하다 보면, 그것이 결국 자기의 ‘의’가 되어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 악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행위를 의지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행한 모든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해도 그 ‘의’는 나의 ‘의’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열심만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하신 열심만이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다는 것은 내가 행한 모든 ‘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의’를 나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의로워지는 것이 쉽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 것을 내가 믿는 것이 쉽습니까?
자기는 행하는 것이 쉽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혹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마 거짓말을 잘하는 새빨간 거짓말쟁이입니다.
교회 안에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부류가 있기 마련인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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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말씀 설명으로 은혜 받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