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은 세계 현대미술의 1번지다. 뉴욕이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자리 잡고 있다. MoMA는 현대미술가라면 누구나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다. 하지만 세계적 명성에 걸맞게 MoMA는 까다롭다. 웬만한 작가는 좀처럼 그 문턱을 넘기 힘들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MoMA가 전시장을 내주며 초대한 작가가 있다. 바로 중국 출신의 송동(宋東)이다.
송동은 장샤오강, 웨민준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2005년 동경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베이징 798의 동경화랑에서 열린 ‘버릴 것이 없다’라는 전시에서 일반적인 중국인의 생활 철학과 태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2009년 MoMA와 201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 대규모 설치작품을 출품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송동이 MoMA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는 사실은 현대미술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개념 미술가로 손꼽히는 송동이 계명대학교를 졸업한 김길후 작가에게 공동 전시를 제안했다. 그 결과, 서울 송원아트센터에서 1부와 2부로 나눠 송동`김길후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사실 김 작가는 지명도가 높지 않다. 그런 그가 송동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김 작가를 만났다.
◆작품이 맺어준 인연
김 작가는 대구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4년 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계미술의 신천지로 부상하고 있는 베이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모험을 단행했다.
현재 김 작가는 베이징 송장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그가 송장에 작업실을 차린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300호 대작을 끊임없이 제작하는 것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1만여 명의 작가들이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송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작가가 교류에 신경을 쓰는 동안 그는 역으로 은둔을 선택했다. 김 작가는 일체의 교류를 끊은 채 1년 동안 작품 활동에만 매달렸다. 그러자 작가들 사이에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작가로 소문이 났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선택한 역발상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2012년 베이징 798예술제에 초대됐다.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베이징에서 798예술제는 가장 큰 예술행사다. 그런 만큼 송동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초청됐다. 김 작가는 798예술제에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웅’을 출품했다.
이 작품을 본 송동이 김 작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송동 입장에서는 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김 작가에게 전시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당시 송동은 회화의 일반적인 틀을 깬 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매료되어 자신과 공동 전시를 할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며 김 작가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 24일부터 2부 전시 ‘달의 현자’
송원아트센트에서 열리고 있는 송동·김길후 릴레이 2인전의 주제는 ‘Doomsday vault’(최후적 수장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장욱 씨는 ‘만일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이를 대비하기 위한 최후의 수장고가 만들어진다면?’ 등과 같은 공상을 바탕으로 작가에게 ‘최후의 수장고’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를 통해 기획자는 후세를 위해 보존할 가치는 무엇이며 반성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8일까지 진행된 1부 전시에서 송동은 60개의 침대를 이용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침대는 탄생과 안식의 장소인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특히 60이라는 숫자는 1갑자(60년), 즉 사람의 일생을 의미한다. 송동은 전시장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관람객들에게 살아 있음을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또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최후의 수장고’에 남길 것이 없음을 암시했다.
24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열리는 2부 전시에서 김 작가는 기획자의 물음에 ‘달의 현자’라는 주제로 답한다. 달은 동양적 정신세계를 상징하며 현자는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한다. 그는 현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영웅을 내세운다. 그는 송동의 60개 침대에 맞추어 60점의 영웅 드로잉 작품을 출품했으며 중국에서 가져온 영웅 페인팅 작품 10여 점도 선보인다.
김 작가가 말하는 영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웅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작품 속 영웅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평안을 유지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김 작가가 ‘최후의 수장고’에 남길 것으로 현자를 제시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인간에게 위기가 닥치면 이는 인간이 사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악몽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현자가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후세를 위해 현자를 남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최후의 수장고’에 남길 현자는 결국 인간에게 던지는 교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