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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림茶林 원문보기 글쓴이: 다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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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먼저, 우유가 먼저? - 차냐 우유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은 가볍고 재미있는 홍차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드릴까 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에서 사랑받는 기호식품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을지 갑론을박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논쟁들도 있답니다. 예전에 미국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007영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라, 대화 중에 이 친구에게 영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매번 마티니를 시킬 때마다 꼭 ‘STIRRED, NOT SHAKEN’ (흔들지 말고 저어서)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코미디 갔다고 했더니, 이 친구 정색을 하면서 어떻게 두 가지 방법이 전혀 다른 맛을 내는지 설명을 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속으로 ‘섞으면 그게 그거지…’라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는 물론 차를 하다 보니 물의 온도와 양, 그리고 차를 우리는 시간 등을 비롯해 같은 재료라도 참으로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요.
그와 비슷한 예로 차 업계 쪽에서, 특히 홍차의 전통이 강한 영국을 중심으로 중요하진 않지만 대단히 오랫동안 끊임없이 지속되는 토론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홍차에 우유를 넣을 때 잔에 우유를 먼저 넣느냐 아니면 차를 먼저 넣느냐 하는 문제랍니다. 물론 중국의 경우 홍차에 우유를 넣어 먹는 서양인들을 보고 차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예외로 치겠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를 먼저 넣고 우유를 첨가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반론도 제법 많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인 조지 오웰은 차 애호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지론은 항상 차를 먼저 넣고 우유를 넣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했답니다. 1946년에 조지 오웰이 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보면 차를 먼저 따른 후 한 번에 살짝 돌려 가면서 우유를 넣어줘야 적정한 양의 우유가 섞이게 되지, 그 반대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우유가 들어가서 차 맛이 떨어지는 우를 범한다고 주장했답니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자들까지 논쟁에 끌어들이게 되는데요. 영국 왕립 화학자 소사이어티는 우유가 뜨거운 물에 닿으면 우유의 프로틴이 손상되기 때문에 찻잔에 먼저 우유를 일정량 따른 후 차를 넣어야 영양을 보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유를 먼저 넣는 것을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물리학자 소사이어티는 화학자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순서와 상관없이 물의 온도가 중요한 것인 만큼 순서를 따지는 것이 우습다는 반응을 보여서 화학자들과 반목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런 내용을 읽으면, 영화에서 자기 분야에 몰두한 과학자들이 차 한 잔 놓고 어린애 같이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논쟁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설명이 있답니다. 예전의 유럽에서는 도자기가 매우 귀한 물건이었고 이에 귀족이나 부자들만이 제대로 된 도자기 잔을 사용할 수 있었구요, 나머지 일반인들은 싸구려 진흙으로 대강 초벌구이 한 잔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도자기는 뜨거운 차를 그냥 담아도 상관없지만, 서민들이 쓰던 싸구려 잔은 뜨거운 차를 부으면 왕왕 깨지곤 했답니다. 이러다 보니, 서민들은 싸구려 잔에 우유를 밑에 깔고 거기다 차를 부어서 잔이 깨지는 것을 막는 서민적인 지혜(?)를 활용하게 된 거구요. 이후 사회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우유를 깔고 차를 넣는 서민적인 방식보다는 차를 넣고 여기에 우유를 넣는 귀족적인 방법이 더욱 대세가 됐다는 설명이 다른 과학적인 설명들보다 제게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우유에 차를 넣어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차에 우유를 넣어 드시겠습니까?
글: 송일형
사진제공: 리쉬티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