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을 몰고 영수형의 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콩이 얼마나 올라왔나 궁금했다. 밭에 도착하니 비둘기 두 마리가 푸드득 날았다.
“뭐야. 동수농원 사장이 모두 잡았다고 하더니 그 지겨운 녀석들이 아직도 있었군. 이크.”
깜짝 놀랐다. 꾼의 걸음 사이로 지나가는 지게작대기 같은 물체가 쏜살같이 도망치고 있었다. 꽃뱀이었다.
“망할 것, 잘못했으면 밟을 뻔 했네.”
무늬는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뱀이었다. 그 놈은 등골이 시려 오싹한 동물이었다.
동력분무기에 물을 가득 넣고 목초액을 조금 탔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비둘기를 보았으니 밭주변에 목초액을 살포하지 않으면 여린 콩싹을 비둘기 뱃속에 채워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뿌려주고 싶었다. 석유를 묻혀 심어서인지 콩을 파먹지는 못했지만 싹이 올라오니 비둘기가 뽑아놓은 것이 보였다.
<괘씸한 것, 하지만 넘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조금은 내 주어야겠지.>
두 통으로 밭주변과 안쪽으로 목초액을 살포할 수 있었다.
<이거 보통일이 넘는구먼.>
처음에는 한 포씩 들어올리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물먹은 포대는 금새 터졌고 주체할 수 없었다.
“안되겠다. 삽으로 퍼 올려야겠다. 에이 쒸. 이거 사서 고생이구만. 이 동네사람들은 신청해 놓고선 왜 안가져가는 거야?”
괜히 동네사람들을 원망했다. 처음에는 고토석회가 탐났었다. 콩밭에 갈아넣으면 아주 요긴한 토양개량제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동네반장에게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었다.
“형님, 거저 준대도 내 힘으로는 가져갈 수가 없수.”
동수농원 사장을 언젠가부터 호형하고 있었다.
“안 가져가길래 트랙터로 퍼다 버리려고 했었지. 내가 모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트랙터 바가지로 모아주었다. 꾼은 수월하게 소석회와 고토석회가 비닐포대와 섞인 것을 삽으로 퍼 실어 세 번이나 왕복했다. 백 푸대나 되는 것을 영수형의 밭 한켠에 쌓아 놓으니 웬만한 언덕이 생겼다.
“고맙습니다. 형님 막걸리 한잔 대접할게요.”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합시다.”
띠리링
“허사장님이시죠? 저는 영수형의 밭을 빌린 사람입니다.”
“그래서요?”
전화받는 상대방의 퉁명스런 말투가 단답형으로 물었다.
“가능하시면 영수씨 밭 옆에 있는 묵전을 임차했으면 하고 전화드렸습니다.”
<공짜라면 더 좋구.>
얼씨구, 꾼이 김칫국부터 마셨다.
“안돼요.”
“옛?”
“그 땅은 내가 자경해야 하는 땅이에요.”
“하지만 여러 해 묵었잖습니까?”
“글세 안 됩니다.”
뚝하고 전화가 끊겼다. 공짜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꾼의 바램이 무위로 끝났다. 공짜를 좋아하는 꾼이 대머리 안 벗겨진 걸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보기좋게 거절당했습니다. 하하”
“그러게 내가 뭐랬수? 하지만 그 땅을 빌리지 못한 것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몸이 아프거나 미치거나 하는 것을 내가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라오.”
“글세 전 그런 이야기 믿지 않아요. 어르신.”
“그렇다면 내가 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지. 밭 중간에 육이오 피난민과 군인들의 시신들을 파묻은 동산묘가 있지요. 이 동네도 육이오 당시에 격전지였다오. 많이도 죽었지. 아군과 적군도 죽었고 피난민들도 무수히 죽어 이곳저곳에 시신들을 동그랗게 파묻었지요. 육이오가 지나 십오년 후인가 물난리가 났을 때 동산묘가 쓸려내려갔지. 대충 유골을 주워모아 다시 동산묘를 만들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건천에 드러난 것만 주워 모았기에 어디 깨끗하게 했나요. 그때 떠내려간 시체 유골들이 많아 동네 애들도 멋모르고 차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지금도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면 여기저기서 유골이 발견되기도 하지요. ”
문제의 밭이 끝나는 곳부터 야산이 이어져 있고 그 뒤에는 높은 산들이 이어졌다. 60년대 시절에 나무가 우거졌고 산판을 했다고 했다. 꾼이 들어오는 초입의 마을이 지금은 별 볼일없지만 그 때만 해도 호수가 많았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제무시 트럭을 모는 사람들이 그 마을에 기거했다.
“내가 열다섯살 때였을까? 분가루 파는 여자가 있었어요. 지금은 화장품이라고 하지만 그 때는 구루모나 분가루를 팔았는데 어찌나 얼굴 하얗게 하고 다녔는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주 예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 여자가 한달에 한번씩 나타나면 동네 총각들이 침을 흘렸다니까요. 아니 총각들 뿐이 아니고 꼬부랑 할애비도 흘렸고 동네 멍멍이들도 그랬을 거요. 그 정도로 이뻤지.”
"설마 그럴리가요. 얼마나 절색이길래 그랬을까요?"
“호저쪽으로 나가려면 큰길로 나가는 것보다 산을 두개 넘어가는 게 반절은 빠르거든요. 여자가 분가루 값으로 받은 곡식을 머리에 이고 갔는데 제무시 트럭을 가진 자가 여자를 태웠다더군요. 둘이 수작하더니 산중턱에 차를 대고 그 짓을 한 거에요. 그런데 한참 즐기고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친구녀석이 그걸 발견하고 마음이 동해서 다시 그 여자에게 올라탔어요. 여자가 싫다고 반항하다가 그 친구녀석의 음낭을 잡아 비틀었다네요.”
"정말 그 곳을 잡히면 아무리 힘센 남자도 고꾸라지죠."
꾼은 짐짓 그걸 잡힌 모양으로 허리가 앞으로 굽어졌다.
“급소를 잡혔으니 아파서 눈이 뒤집어졌어요. 기절할 지경으로 아파하는 친구를 본 먼젓번의 운전기사가 쇠뭉치를 음낭잡힌 친구의 손에 쥐어주었지요. 친구는 쇠뭉치로 여자의 머리를 깨버렸지. 둘이 여자의 시체를 근처에 육이오 동란때 피난민들이 죽은 동산묘에 암매장했어요. 미결사건으로 끝날 뻔 했는데 여자의 실종으로 탐문하던 경찰이 일년 후 두 운전사들을 잡아가고 여자의 시체를 파갔다고 했어요. 그런데 운전사들의 진술이 엇갈리는데다 토막을 내어 여기 저기 파묻어 정확히 어느 게 여자의 유골인지 몰라 대충 수습해 갔다고 했어요. 그 후부터 여인의 울음소리 아니면 애기우는 소리도 들었다는 사람이 종종 생겨났어요. 어쩌면 암수 고양이가 내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처량맞게 울부짖는 어미와 아기의 울음소리 같다고도 하더군요. 그게 무서워서 해가 떨어지면 호저 쪽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저 앞길로 돌아갔을 정도라오."
“죽은 여자가 애를 밴 여자였나 보군요.”
“어떤 사람들은 머리 풀어헤친 여자가 아이를 안고 어르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그 밭이 내 과수원과 붙어 있어서 기분나쁘단 말이야. 하지만 내가 밤새 과수원 지키고 있어도 그런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는데 꾼이 생각하는 것처럼 허깨비인지도 몰라요.”
어둑할 때까지 일할 때면 등골이 시린 경험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게 괜한 기운이 아닌 것 같았다. 훗날 허풍이란 사람이 샀다는 밭 중간에 놓인 동산묘에 있을 여자귀신 생각은 밤작업을 못하도록 가로 막았다.
<꾼아,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래. 하핫>
<서양은 남녀가 드라큐라로 히트를 쳤지요. 중국은 펄쩍펄쩍 뛰는 강시가 주로 히트를 쳤구요. 한국은 한국답게 하얀 소복 입은 여인네가 귀신의 대세를 이루지요. 그러나 이제는 특수촬영효과 덕택으로 갖가지 귀신들이 많이 등장해요.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소리와 바람 사물의 흔들림 같은 것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귀신이 진짜 귀신 아닐까 모르겠어요. 막연한 공포가 환상을 자아내게 되니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히 허깨비지요. 느낌을 받아 오늘은 귀신론을 전개해 보네요.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행복하세요 <꾼>
66부에 계속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34/23_cafe_2007_07_03_15_54_4689f29292424)
주인의 시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밭 한켠에 심은 큰범의 꼬리가 자태를 뽐내며
각종나비가 분주히 날아다닙니다. 색깔과 향이 진합니다.
작은 새만한 호랑나비를 카메라로 잡으려고 하는데 힘드네요.
할수없이 멀리서 찍었더랬습니다. 호랑나비 한마리가... 아싸~~~
첫댓글![헉](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3.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귀신이 진짜 있는지 그런건 모르지만 ![그냥](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3.gif)
무섭다고 생각하면 무섭지요.밤가지 일 못한거 잘한일이지요. 아님 골병들텐데.![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차라리 안들었으면 좋았을텐데.........아는게 병이다.66부에 그 땅빌렸을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궁금해집니다.
하나님이 있으니 저급령인 귀신도 있지요. 성경에 보면 귀신(사탄)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귀신을 보는 사람들은 민감한 사람들이지요. 우리의 주인공 꾼은 귀신은 무서워하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느끼지 못한 영적으로는 둔한 사람입니다.
젤밑에 왜 제 꼬리가 있을까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저거씨![앗](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5.gif)
좀 주세요. 심어보게요.
꽃 관리를 잘못해서 멸종했어요 삼년만 빨랐더라도 어찌 해 볼텐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