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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의 국보와 보물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궁집(중요 민속자료 130호)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 궁집 내부 모습 |
몇 년 전에, 남양주 권역의 묘지 답사를 다니면서 평내동을 지나면 우측에 기와집이 있어서 항상 궁금했습니다. 한 번은 궁집 입구에 가 보았습니만,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주변은 철책으로 둘려져 있어서 뒷편에서 내려다 보기도 했었으며, 내부에 옛집이 여려채 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몇 명이 묘지 답사를 가다가 궁집 우측의 철책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드 들어가 보았습니다. 마침 관리인이 있으셔서 양해를 구하고 일부만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관리인께서 양녕군 묘까지 친절히 안내하여 주시기도 했습니다. |
▲ 안에서 바라 본 입구 대문 모습입니다. |
▲ 대문을 지나면 좌측에 보이는 건물입니다. |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구민화에게 시집가자 왕이 그를 위하여 지어준 집이다. 이 집은 북한강변에 위치한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 산이 둘러싸며 국(局)이 좁고 주밀(周密)하다. |
▲ 건물 입구에는 묘지에나 있는 석양과 동자석 그리고 향로석도 보입니다. |
산자락 한줄기가 집의 뒤를 감싸돌고 다른 줄기가 집 앞 50m쯤 거리에 조그만 동산을 만들었는데 이 동산이 바로 안산(案山)이며 여기에 집주인 옹주의 묘(墓)가 조성되어서 항상 사랑누마루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
▲ 내부의 건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사진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
평면은 전체적으로 기자(己字) 모양인데 꼬리가 거꾸로 돌아 앉았으며 건물이 한덩어리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문간채는 일찍이 헐린 듯 하며 담장이 공간의 구분을 대신하고 있다. |
안채는 안방과 대청을 일자로 두는 남도방식으로서 사대부집에서 가끔 쓰이는 ㅁ자집이다. 서북쪽에는 부엌, 안방, 대청을 일자로 배치하고 꺽어져서 양쪽 측면으로 동쪽에는 건넌방과 부엌, 서쪽은 아랫방과 사랑뒷마루가 놓였다. |
안마당 전면은 동쪽에서부터 대문간과 광, 책방의 차례이고 귀퉁이에 연결하여 커다란 사랑방이 시설된다. 사랑방 서쪽은 사랑대청이며 서쪽 끝에는 높다란 누마루가 사랑툇마루 앞으로 쑥 내밀었다. |
구조는 안방과 사랑부분을 모두 1고주5량으로 하여 보간을 2간 너비로 처리했고 기타 안채 날개와 중문간을 맞걸이3량으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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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모든 샛문과 전면문, 안대청의 샛문과 전면문이 모두 분합문(分閤門)으로 되었으며 특히 사랑채는 툇마루 앞에도 분합문을 달아서 공간을 구분짓고 있다. |
이 집은 산기슭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조경이 잘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 문간채가 있었음직한 자리에는 소나무 2그루가 있으며 사랑방 앞에도 정원수들이 심어졌다. |
▲ 궁집 중앙 쯤에도 묘지의 석물들이 여기 저기 있었습니다 ▼ |
뒤뜰에는 감나무와 앵두, 오동나무, 철쭉, 회양목, 호두나무 등이 자라며 뒷산은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정원 축조물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
궁집이라는 칭호는 나라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어 집을 지었기 때문에 생겼다. 이 집은 화길옹주가 시집가서 죽을 때까지(1765∼1772)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렇게 절대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
궁집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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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진으로 내려다 본 궁집의 모습입니다. 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4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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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항공사진의 하단 화살표 부분이 궁집입니다. 우측 상단의 평내호평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