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푸아그라
첫 귤
은행나무
30년 넘게 사용 중인 다리미 / 정온 직찍
줄을 잡지 않으면 우주로 날아갈 것 같은 몰리 넥스 전기다리미의 미세한 주둥이에 물을 강제로 먹이며 생각했다. 난 나만의 푸아그라를 키우고 있었다. 실패한 종이학처럼 구겨진 내 전 생애도 펼 수 있는지를 곧 뜨거운 입김으로 답할 너에게 묻는다.
파란색 블라우스를 다리며 궂은 하늘을 펴고 싶다는 생각과 검은 롱스커트를 다림질하며 뱁새처럼 짧고 점점 가늘어지는 내 가여운 다리 길이도 떠올렸다. 강제로 무화과를 먹여 간땡이가 부은 거위로 살아야 하는 더러운 경험을 난 지금 당하고 있다. 밤마다 호스를 입에 넣고 물을 쏟아붓는다. 고비 사막이 내 삶의 고비고비마다 그늘집처럼 있다.
어차피 구겨질 옷, 남들보다 적어도 한뼘이상 작은 내 키를 보면서, 평생 미인대회 나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무조건 커야 한다는 것은 누구의 천재적인 발상일까? 천동설보다는 적어도 오래오래 군림할 것 같다. 과학계의 순교자 "부르노" 같은 강적들이 나타나
"키 작은 호빗들도 미인대회에 나갈 자격을 달라."라고 외치길 기대해 본다.
올해 첫 귤과 한 번에 귤 까기
내 삶에는 그런 행운이 오진 않을 것 같다. 키작녀들을 위한 구호 단체는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적어도 170센티미터를 넘어야 미인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우승하려면 180센티미터 키에 10센티 넘는 살인무기 같은 하이힐을 더해 온 세상을 군림할 것처럼 내려다보아야 한다. 세상을 압사 시킬 것 같은 숨 막히는 월드컵 가슴과 거침없이 죽죽 그은듯한 눈코입과 하얀 치아들을 억지로 드러내고 웃어야 한다. 타이탄들의 세계이다.
옆에 앉은 남자 1은 자신을 탐정소설 작가라고 했다. 앞에 앉은 여자 1은 왼쪽 치맛자락이 거의 엉덩이 선까지 절개되어 있었다. 보여줄게 겨우 다리 한쪽인가 보다. 그녀가 내세우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읽었다. 남자 2는 바람이 분당에서 왔다. 여자 2는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자식한테 못해줘서 한이라고 말하며 울었다. 계속 울었다.
사전 배경이 없으면 한 사람의 생애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장 영악하게 속이고 있는 자는 나다. 수시로 꽉 잡았다가 버리는 동아줄, 삶이 궁색하다. 변명은 없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심지어 숟가락도 무겁다. 지금의 고통이 신이 잠시 주는 이벤트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철이 조금 들려나 보다.
단체로 트랜스 젠더 바에 갔다. 연례행사이다. 열심히 사는 음지 식물들의 가슴에 엉덩이에 나무젓가락에 만 원짜리를 꽂아 주었다. 난 그들을 응원한다. 나보다 훨씬 더 노력하는 여자(?) 들이다. 교태 작렬이다. 노력 충이다. 여자의 애교는 인생의 양념이다. 남편은 모자란 애교 저능아랑 함께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베일 것 같은 말투, 혀에 면도 칼을 달고 사는 자들, 자기를 지키려는 자와 자기를 과시하려는 자들, 한 번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자들! 성공을 누군가를 안다는 이름으로 덮어 씌우려는 자들,
일주일만 서로에게 존댓말 쓰기라는 극약이 처방되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1665년 경 / 진주 다래끼의 소년 ㅅㅈㅇ
진주 귀고리 소녀 대신 진주 다래끼 소년은 중학교 졸업사진 찍기 1주일 전이다. 안과에 가서 찢으라니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포경수술보다 3배 이상 아프다고 홀로 항생제 먹으면서 투쟁 중이다. 고통의 정점에서도 의연했던 "최동원"선수가 생각난다.
타인이랑 사는 게 지옥이다. 첫 귤을 까는 희고 하얀 손을 가진 넌 대한민국의 남자이다. 한 번에 돌려 깐 귤은 상당히 섹시하다. 언젠가는 다 버려야 할 오늘의 삶을 살기 위해 난 안갯속을 걷는다.
오늘, 길가 은행나무들이 전기톱에 잘려 나갔다. 누구의 결정일까? 하루 종일 머리가 먹먹했다. 어르신이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응원의 소리를 더하고 싶었다.
가여운 은행나무들, 천년의 시간을 도난당했다. 난 살해 현장을 보고도 아무 말 못 했다. 한글날, 공무원들이 쉬는 날이었다. 왜 오늘, 저 많은 나무들은 모가지가 뎅강뎅강 잘린 것인지? 격하게 대들고 싶어진다. 미리 계획하고 정한 특수 살해 현장이다. 산산 조각난 그들의 잔해들을 본다.
아낌없이 주었던 나무!
태양은 수시로 간지럽히던 친구들을 잃었다. 먼 미래의 슬픔을 끌어와 오늘 하루를 애도한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기톱으로 친구가 아내가 가족이 죽어가는 소리를 은행나무는 들었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가 마르크스도 뛰어나 혁명가 체 게바라도 발명왕 에디슨조차도 지구는 바란 적이 없었다. 슬프게도 없어서 안되는 인간은 지구에 없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