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복지에 대하여, 사회사업에 대하여 옳다고(좋다고) 생각하는 바 아는 바 믿는 바 사회사업 양심이 있어 그 양심대로 사회사업하려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사업 양심'의 범위(실체)를 명쾌하게 정리하지는 못했다 했습니다.
27쪽 사회사업 이상 편에서
'이상'이란 사회사업 인생을 바쳐서 또는 지금 하는 일로써,
- 이루고자 하는 바 - 나아가고자 하는 바
이렇게 '목표와 지향'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복지요결 서두에서 전제하기를 "복지요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회사업 문제를 ‘당사자와 지역사회’라는 열쇠로 풀어 갑니다." 했습니다.
사회사업 이상 또한 이와 같이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합니다.
당사자 쪽에 가까운 이상이 '약자도 살 만한 사회'이고 지역사회 쪽에 가까운 이상이 '이웃과 인정이 있는 사회'입니다.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복지요결 7쪽 '사회다움', 13쪽 '사회 관점 사회사업'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예고했듯이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의 모습은 복지요결에 여러 번 나오는 '그림'입니다. 사회사업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는
1) 사람들이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에서 약자를 만나고 배려하고 돕는 사회입니다. 2) 지역사회 공간.시설, 제도, 상품.서비스, 조직, 문화를 약자도 함께 이용하는 사회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복지사업의 '공생 모순'은 이런 그림이 없거나 희미한 데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복지야성 7쪽 '공생 모순'을 복지요결 27쪽 첫 번째 이상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의 그림과 대조해 가며 정독해 보십시오.
"더불어 사는 사회를 표방하는 복지사업이 사람을 따로 떼어 도움으로써 더불어 살지 못하게 합니다.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복지사업이 전문화를 내세워 사람을 분류. 분리함으로써 사회통합을 해칩니다."
* 약자도 살 만한 사회,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는 "사람들이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에서 약자를 만나고 배려하고 돕는 사회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9월 13일에 공부한 글이 있는데, 한 번 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복지요결 80쪽 '제 마당, 제 삶터,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 돕게 하는 이유'
도움.나눔은 지역주민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는 평소의 인간관계나 일상생활을 벗어나 따로 행하는 후원.봉사가 아닙니다. 자신의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돕는 행위, 자신의 삶이요 이웃으로서의 사람살이입니다.
따로 행하는 일, 후원.봉사는 곧 부담스러워지기 쉽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습니다. 쓰고 남는 물질, 쓰고 남는 시간, 쓰고 남는 힘, 부스러기로 돕기 쉽습니다. * 자기 일상 과업이 아니면 곧 부담스러워지기 쉽습니다. 한때 여력이 있어 의욕적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도움.나눔이 소중합니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처럼(김세진 선생이 이렇게 썼습니다.) 하는 김에 조금 보태는 편이 평안하고 오래갑니다. 따로 차려 주는 밥상도 고맙지만, 숟가락 하나 더 놓고 함께 먹는 밥상이 좋습니다. 제 마당 제 삶터 밖에서 행하는 후원.봉사보다 제 마당 제 삶터에서 행하는 나눔.도움이 좋습니다.
복지요결 121쪽 '지역사회 범위' (제 마당, 제 삶터는 어디까지인가?)
요컨대 당사자의 지역사회란 당사자가 만나는|만나야 하거나 만나면 좋을 공간.사람입니다.
돕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에서 돕게 하자 할 때 그 마당 그 삶터는 그 사람의 평소 인간관계와 일상생활 또는 관계해야 하거나 관계하면 좋을 공간.사람, 이 정도로 보면 어떨까요?
27쪽 [사회사업 이상] 두 번째 '이웃과 인정이 있는 사회'를 설명하는 가운데, 사회사업을 농사에 비유한 이야기를 짚어 보았습니다.
1) 사람과 사회는, 농사의 씨앗과 땅에 해당하는, 사회사업 핵심 원소입니다. (요결 4쪽)
2) 이웃과 인정은, (모든 작물의 생장.결실에 필요한) 물과 공기와 햇볕처럼, 누구에게나 필요한 복지 밑천이요 사회사업이 감담해야 할 복지 간접자본입니다. (요결 27쪽)
3) 복지농사 (야성 13쪽) "제초제.살충제 같은 복지기계, 화학비료 같은 복지기계, 하우스 같은 복지기계"
4) 복지 자원 유통 실태와 농산물 유통 실태 "우리 지역 농산물이 대도시 도매시장에 갔다 온다는 농산물 유통실태 비판이 남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 복지 자원이 복지재단, 복지기관에 갔다 오는 게 안타깝고 멀리 오가는 후원 봉사도 그러합니다." (야성 157쪽)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는데 사회사업가로서 우리는 뭐라 할까요?
"그래도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살 만한 세상" "그래도 혼자는 아닌 세상"
요결 28쪽을 강독했습니다.
'문제 없는 세상'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사회사업 이상이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1) 문제를 없애는 일이 꼭 좋은 일이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2) 문제를 없앨 자신이 없습니다. 3) 문제를 없애는 일은 소극적 목표라, 사회사업 이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짧아 보입니다.
그래서 사회사업가로서 꿈꾸는 세상은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니라, 그래도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살 만한 곳,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하며 사람 사는 듯 사는 곳, ‘사람 냄새’ 나는 곳, 인간적인 세상입니다.
이와 같이 약자와 공생하며 약자의 복지를 이루는 사람살이 생태, 이웃 관계가 살아 있고 인정이 소통되는 사회 생태를 '복지생태'라 합니다.
흔히 말하는 복지사회는 복지생태와 사뭇 다릅니다.
복지제도, 복지시설, 복지사업이 이웃 간 상부상조를 대체할수록,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에서 멀어질수록, 선진 복지사회라 하는 것 같습니다.
참조 :
1) 복지야성 157~158쪽 '생태복지와 복지생태'를 강독했습니다.
"복지전용체계 중심으로 하는 한 생태적이기는 어렵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생태복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복지전용시설을 짓고 유지하는 데 많은 자원을 쓰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용 시설.예산으로 하는 복지사업은 욕구를 만들거나 확대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가는 ‘복지생태’를 이루는 데 힘쓰면 됩니다. 자연.환경 이런 거 따로 챙기지 않아도, 복지생태 중심으로 사회사업하면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생태복지가 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생태적 복지사업이 복지생태에 꼭 좋은 건 아닙니다. 아무리 생태적이라도 전용 시설.예산.인력 중심으로 하는 복지사업은 지역사회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을 해치고 복지 자연력을 파괴.퇴화.고사시킬 수 있습니다. 생태적이라는 방식 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2) 복지야성 118쪽 '전문가주의와 자연주의'를 강독했습니다.
"전문가주의는 복지가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에서 멀어질수록 선진 복지사회라 하고, 자연주의는 복지가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에 가까울수록 좋은 복지생태라 합니다."
사회사업 이상 편에서 '자주'는 왜 빠졌는가?
여태까지 자주와 공생을 같이 다루어 왔는데, 사회사업 이상 편에 와서 '자주'는 빠지고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 이웃과 인정이 있는 사회 - 이렇게 '공생'만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 :
1) 복지야성 144~145쪽 '자주를 사회사업 목표라 할 수 있는가?'
"자주를 이렇게 당면 과업, 현재 활동에 ‘원칙’으로 적용합니다. 사회사업 목표.이상 또는 사회사업가 본분.책무.사명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전 생애, 전 생활에 걸쳐 자주하는 목표까지 사회사업 소관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는 당사자를 종합 대상자로 보지 않는 시각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2) 복지야성 146쪽 '사회사업 이상과 그 이상을 구분하기'
자주와 자주성이 그 때 그 일 그 과정의 원칙이요 가치임에 반해 공생과 공생성은 여기에서 더 나아갑니다.
공생과 공생성은 그 때 그 일 그 과정의 원칙이요 가치일 뿐 아니라, 사회사업가라면 언제 어떤 일로든 추구할 목표요 궁극적 이상이며 감당해야 할 책무입니다.
사회사업 개념뿐 아니라 사회사업 이상도 공생, 사회사업 본분도 공생입니다. 사회사업은 사회의 공생을 담당하는 직업이요 사회사업가는 사회의 공생을 담당하는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
약자와 공생하는 사회, 이웃 관계와 인정이 있는 공생 사회, 이는 사회사업 이상입니다. 사회사업가는 이런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사회사업 이상과 책무를 이로써 한정함이 좋겠습니다.
공생하는 사회는 자주할 수 있는 터전이요 또한 정의와 평화의 토대이기도 하니, 공생하는 사회 그 위에 자주.정의.평화 같은 목표를 세울 수 있으나, 사회사업은 '공생'을 목표로 하자는 겁니다. 자주.정의.평화는 모든 사람의 꿈이요 과제이지만 사회사업 목표나 책무로 삼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 이상과 그 이상의 이상을 구분하자는 말입니다.
요결 32쪽 [사회사업 철학] 편
복지를 이루는 데도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뜻이 좋다고 수단까지 정당화하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목표.결과가 좋으면 방법.과정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회사업 정도正道를 생각하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복지는 보이지 않게 소통시켜야 합니다.
1) 사회복지사가 복지를 이루어 줄 때 2) 복지전용체계에서 할 때 3) 복지전용 시설.예산으로써 할 때 복지사업으로 드러나 보입니다.
그러므로 복지사업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게 하려면
1) 사회복지사가 복지를 이루어 주지 말고,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하여금 복지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2) 복지전용체계에서 하지 말고,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에서 스스로 돕고 또한 서로 돕게 해야 합니다. 3) 복지전용 시설.예산으로써 하지 말고, 되도록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역량.자원으로써 이루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회복지사와 복지기관의 '복지사업'으로 보이지 않고, 당사자 본인의 삶 지역사회 이웃 간의 사람살이가 되는 겁니다.
*
"예전에는 복지가 평범한 이웃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게 소통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격과 자존심을 지켜 호혜적 관계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게 일상의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였을 뿐 특별한 복지활동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운 예로 품앗이, 마당쓸이, 된장서리, 걸립(乞粒)을 설명했습니다.
요결 34쪽 '우물과 시내' 비유를 강독했습니다.
요결 36쪽 '약자 전용으로 따로 만든 서비스'에 대한 비판을 강독했습니다.
약자를 불가촉 천민, 전염병자, 사회 흉악범 다루듯 분리하는 복지기계를 비판했습니다. 약자를 투명인간화하는 복지기계를 비판했습니다. "불가촉 천민인가? 전염병자인가? 사회 흉악범인가? 왜 떼어 놓는가? 왜 따로 떼어 돕는가?" 비판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이전 복지요결에 있었으나 지금 복지요결에는 없습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따로 장애인 축제를 하기보다, 지역 축제를 장애인도 누리도록, 지역 축제의 기획.준비.진행 과정에 참여하도록, 주선하고 거들면 어떨까요? 장애인 축제가 따로 필요할 수도 있고, 장애인 축제를 지역주민과 함께 즐기게 함도 좋지만, 일반 지역 축제에 주민으로서 참여하고 주민으로서 누리게 하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①주민으로서, ②주민과 더불어
주민과 더불어 살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좋겠지만, 주민으로서 살게 하기를 우선할 일입니다.
주민과 더불어 살게 하기보다 그냥 주민으로 살게 돕는 일이 복지를 보편적이게 합니다. 장애인의 축제 욕구, 우선 지역사회에서, 지역사회로써, 지역주민의 축제 속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첫댓글 한덕연선생님 숙제확인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선생님 추석 잘쇠세요.
확인했습니다. 강독회 회원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네, 저도 잘 읽었습니다. 숙제 올리겠습니다.
확인 하였습니다. 숙제하고 편한 마음으로 명절 쇠러 가도록 해야겠습니다^^*
네 선생님~ 확인하였습니다. ^^
네 숙제 올리겠습니다 . 편안하고 넉넉한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추석보내세요 ^^
네. 확인하였습니다.
선생님 머릿속에 녹음기가, 제 머릿속엔 지우개가...^^;; 그래도 듣고 또 읽으니 이해는 술술~
추석 잘 쇠십시오~
네 확인했습니다.
즐거운 추석 쇠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풍성하고 평화로운 추석되세요.
저도 확인했습니다. 여러번 감동했습니다. 교수님
참 염치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매번 이렇게 좋은 만남을 준비해주시니...
네 확인했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뒤 늦게야 과제를 하느냐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