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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점령군 해방군 논쟁, 역사학자에게 물어보니
★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의 ‘미(美) 점령군’ 발언을 두고 역사관 정쟁이 격화되고 있다. 2021년 07월 01일 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을 찾은 후, "대한민국이 친일(親日) 청산을 못하고, 친일(親日)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했다" 라고 발언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21년 07월 04일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21년 07월 05일 “국민 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하는 매우 얄팍한 술수이다” 라고 가세했다.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는 2021년 07월 01일 “1945년 해방 이후,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 라고 했다. 이후 야권에서 논란을 제기하자 “승전국인 미국이 일제를 무장 해제하고,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이 맞는 표현이다” 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재명 지사가 “셀프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미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문제삼으며, “이념에 편향된 역사관에 빠졌다”고 주장하디도 했다.
★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서 ‘태평양 미국육군 총사령부 포고 제1호’를 살펴보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장과 달랐다.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이라는 표현이 적시되어 있었다. ‘미 점령군’이라는 용어는 사료에 나온 역사적 사실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09월 09일 맥아더(MacArthur) 당시 태평양 미국육군 최고지휘관은 포고령 제1-4호를 발표했다. 포고령은 각각 국어 (한글. 한자 병기), 일본어, 영어로 작성됐다. 제1호를 보면, 국어로 “본일 북위 삼십팔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함”이라고 기재돼 있다. 같은 호 제3항에는 “점령군에 대해 반항 행동을 하거나 질서 보안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영어로도 “the occupying forces”라 명시돼 있다.
★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는 기자와 통화 등에서 “미군과 소련군 둘 다 점령군이 맞다. 모두 해방군을 자처하기도 했다. 미군과 소련군 모두 각각의 포고에서 점령의 목적을 일제로부터 식민지 조선을 해방·독립시킨다고 표방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고, 38선 이남만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지배적 정설이다” 라고 밝혔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군과 소련군 둘 다 점령군이고 해방군이다. 포고령뿐 아니라 모든 미국 공식 문건에 ‘점령군’이라 적혀 있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 특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 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8년에 설치됐다는 역사적 사실만 봐도 미 군정이 친일파 청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민특위’(反民族 특별조사 위원회)도 결국 이승만 친일 세력에 의해 해산됐다” 라고 말했다. ★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당시 한국이 아니라 일제를 점령하기 위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했기 때문에 점령군이 맞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 한국의 최고 통치자는 미(美) 점령군 하지(John Hodge) 중장이었다”고 말했다.
★ [역사학자 전우용] 유럽의 연합군은 전범국가 독일을 분할 점령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완전 달랐다. 전범국가 일본 열도를 분할 점령했어야 하는데, 조선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다. 그렇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의 책임도 없는 우리 한반도가 일본 대신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은 미소 양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했으나, 미소 양군은 스스로를 ‘점령군’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미군은 점령군이 아니었다’ 라고 역사 왜곡하는 것은 당시 미군이 공식 문서로 밝힌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미군이 스스로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이라고 했는데, 해방군으로 계속 역사 왜곡하는 것은 ‘몰역사적 발언’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미군이 해방군이지, 어떻게 점령군인가” 라고 썼다. 이 대목에서 조선일보는 사이비(似而非) 언론에 가깝다. 하지만, 해방군과 점령군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은 아니다. 연합군이 승리해서 해방됐으니 ‘해방군’이고, 미소가 분할 점령해서 분단으로 이어졌으니 ‘점령군’이다. 두 개념이 중첩될 수 있으며, 실제로 중첩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충격적인 역사관’이다. 또한, 해방군과 점령군 개념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유식과 무식을 기준으로 국민을 ‘편가르기’하려는 간교한 술책이다.
★ 미군정(美軍政) 3년(1945-1948) 동안, 친일파(親日派)들이 기득권을 재생산하고 친미파(親美派)로 변신했다는 ‘친일 청산론’이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지배적 학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모든 현대사를 친일 청산론으로만 재단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보수 진보 진영 논리로 역사를 바라봐선 안 된다. 당시 복잡한 여러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점령군. 해방군 단어 1-2개를 끄집어다가 약 80년 후에 그 시대의 역사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 1945년 09월 09월 맥아더 사령부 포고 제1호 전문
★ “일본 제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아래 여러 국가 군대 간에 오래 행해져 왔던 무력 투쟁을 끝나게 하였다.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 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 인민은 ‘점령’의 목적이 항복 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원조 협력하여야 한다. 본관(本官)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軍政)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1945.9.9. 맥아더 사령부 포고 제1호 전문)
■ 친일(親日)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
1945년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에서는 미군정(美軍政)이 3년(1945-1948)간 실시되었다. 이때, ‘맥아더(MacArthur)’는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고, ‘하지(John Hodge) 중장’이 미군정 책임자로 한국에 왔다. 이때, 일본에 있던 맥아더는 일제(日帝) 경험자들로부터 한국 통치에 필요한 조언을 듣기 위해 일본 정계의 원로들로 자문 위원회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거론되었던 것이 문서로 남아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게 되면 골치가 아프니, 친일파(親日派)들이 집권하도록 해야, 미군이 한국인들을 다루기에 용이하다는 내용이었다. 자문 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 정계의 원로들은 맥아더(MacArthur)에게 이렇게 자문했다. “남조선(南朝鮮)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양성해 놓은 친일파(親日派)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조선 사람들을 다룹니다. 그들이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왜 미국을 위해 충성을 안 하겠습니까? 그들이 있어야 미군이 남한을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친일(親日) 청산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맥아더가 미(美)국무성에 보고한 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맥아더(MacArthur)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친일 청산을 하면 안 된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미국에서 일본으로 데려오고, 하지(John Hodge) 중장을 일본으로 불러 동경에서 세 사람이 2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그 후, 이승만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1948년 대통령이 되었고, 친일(親日)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법’(反民族行爲處罰法)을 무려 5번이나 만들지 말라고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는 ‘반민특위법’(反民族行爲處罰法)을 만들어서 실제로 ‘반민특위’(反民族 특별조사 위원회)를 통하여 친일(親日) 청산에 착수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을 동원하여 총칼로써 반민특위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승만은 일본에서 맥아더로부터 친일 청산을 하지 말도록, 그리고 친일 세력들을 잘 활용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1948년 04월 03일 제주 4.3항쟁의 경우도 빨갱이들이 일으킨 것처럼 거짓 발표했다. 그 당시 미군정(美軍政)에서는 3.1절 기념식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이 1947년 03월 01일에 3.1절 기념식을 하려고 집회 신고를 하자, 미군정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해방 정국에서 미군이 이를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3.1절 기념식을 강행했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경찰을 동원하여 이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기마(騎馬) 경찰이 탄 말에 치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살인 당사자인 경찰이 그 아이를 놔두고 그냥 가버렸다. 이에 흥분한 재주 도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러 경찰서로 몰려가자, 경찰이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자비한 대량 양민 학살로 이어졌다.
맥아더(MacArthur)는 친일파(親日派)의 은인이자 미국의 애국자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은인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은 소련을 막기 위해 미일(美日) 동맹을 강화하고, 여기에 남한을 종속시켜 그들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전 세계 150곳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와 미국은 행정 협정을 맺고 있다. 그것을 소파(SOFA)라고 한다. 한미 소파, 미일 소파, 미독 소파 등등이 있다. 그런데 이 소파(SOFA)가 나라마다 내용이 다르다. 미국과 독일 간의 미독 소파(SOFA)에는 ‘미군 기지 내의 환경 오염 원상 복구 책임은 미군이 진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 소파(SOFA)에는 ‘미군 기지 내의 환경 오염은 미군이 책임지지 않는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독일 여성과 미군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양 책임은 미군이 진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 소파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러니까, 미군이 한국에서 애를 낳아 놓고 도망가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는 눈물겨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겪고 있을 힘들고 어려운 외교 전쟁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1965년에 박정희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韓日) 조약을 보면 어느 한 군데도 일본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구절이 없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받은 3억불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이었다. 그것이 일본 의회의 속기록에 기재되어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이다. 그러므로, 일본은 사과할 의무가 있고, 축하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일본으로부터 3억불을 받음으로써 일제 36년간의 식민 지배가 합법적인 지배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될 여지가 생겨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것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에 대한 축하금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국제법에 의하면, 유네스코 문화재 협약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모든 문화재는 원래 소유국가에 되돌려 주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1965년 한일(韓日) 조약 가운데 문화재 협약 부분에 의하면, 일제가 약탈해간 수십만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해 일본의 소유를 인정해 버렸다. 이것은 아주 굴욕적인 조약인 것이다.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도 전후에 일본과 협약을 맺었다. 필리핀의 경우, 일본이 3년간 지배했는데, 협약의 제목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제목이 ‘한일(韓日) 조약’인데, 일본과 필리핀 사이에는 ‘배상 조약’이라고 명기되었다. 그리고 배상금도 5억 4천만불이나 받았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를 받고도 고작 3억불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돈을 1965년에 받았는데, 필리핀은 1956년에 받았다. 우리보다 9년이나 앞서 받았으니, 인플레를 생각하면, 그 액수는 우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미국 CIA 자료에 의하면,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뒷돈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지도자들 중 뒷돈을 받은 사람은 박정희 밖에 없다. 뒷돈을 받았으니까, 배상금을 적당히 깎아 준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전시의 여성 인권 해결에 대한 규범이 있는데, 박근혜가 2015년에 일본과 체결했던 ‘한일(韓日) 위안부 합의’는 그 규범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의 ‘한일(韓日) 위안부 합의’가 잘못되었으므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친일(親日) 반민족 세력들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이렇듯 불평등 조약들을 맺어 온 것이 일본에게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일본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 보복을 하게 되면, 민심이 이반되어 일본이 원하는 친일(親日) 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을 칠으킨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어 국군통수권자가 되자,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을 한국군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다. 1대부터 21대까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들은 모두 독립군을 토벌하던 친일파(親日派)들이었다. 일제(日帝) 시대에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가 있었다. 대장은 일본 사람이고, 그 밑에는 다 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들의 만행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부를 벗기는가 하면 여자들은 강간을 했다. 독립군들에게 식량을 대준 마을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에 몸담았던 사람이 백선엽(白善燁)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있는데,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천진군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죽였다. 그런데, 백선엽(白善燁)은 평소 이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백선엽(白善燁)은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創氏改名)까지 했다. 이승만 정권 때에 8.15 광복절이 되면, 단하에서 박수치고 있는 사람들은 광복군이고, 단상에서 박수 받고 있는 자들은 다 친일파였다. 그 당시에 이승만은 국민에게 단결하라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친일파를 상전으로 모시고 단결하라는 의미였다. 그것이 일제 (日帝) 때의 내선일치(內鮮一致)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살아있는 독립군들의 증언이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과거에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하면서 국제회의 등에서 일본인들을 만나면 “독일처럼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을 인정하라.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지 말라!” 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너희들의 국립묘지에 갔더니 거기엔 야스쿠니 신사의 졸개들이 잔뜩 묻혀있더라. 그곳에는 왜 참배를 하냐?” 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한일 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제일 많이 애독하는 신문이라던데, 과거 청산을 하려면 늬들이나 똑바로 해라!” 라고 말했다. 사실, 할 말이 없다. 우리가 그런 고민도 하면서 현 시국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1944년 중화민국 충칭市에서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45년 08월 15일 광복 후, 대전에서 정착하며 살았다. 대전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1964년 6.3항쟁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 점령군 발언 비판에 대해, 역사 지식부터 채우길
대권(大權)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2021년 07월 01일 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을 찾은 후, "대한민국이 친일(親日) 청산을 못하고, 친일(親日)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했다" 라고 발언했다. 대권주자인 이재명 후보 측은 2021년 06월 03일 '미(美) 점령군' 발언에 대한 야권의 비판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해석을 한다" 라고 반박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 대변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역사 인식 부재' 라고 질타하면서, ‘하마타도어(matador 흑색 선전)를 하기 전에, 본인들의 역사 지식 부재(不在)부터 채우는 것은 어떨지 제안한다" 라며 이같이 밝혔다. 대변인단은 "해당 발언은 1948년 0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방 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이다. 1945년 2차대전 승전국인 미국은 일제(日帝)를 무장 해제하고,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했으므로 '점령'이 맞는 표현이다. 이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고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점령군 주한 미군(美軍)을 몰아낼 것이냐는 황당무계한 마타도어(matador)마저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주한 미군(美軍)은 정통성 있는 합법 정부인 이승만 정부와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군대이다. 일본의 항복에 의해 주둔한 미군정(美軍政)의 점령군 군대와는 명백히 다르다"고 했다.
대변인단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친일(親日)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 것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마타도어(matador)성 공세를 하는 분이 속한 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과거 ‘친일(親日) 재산 환수법’에 대해 전원 반대했던 사실이 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속담이 떠오른다"고 비꼬았다.
대권(大權)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2021년 07월 01일 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을 찾은 후, "대한민국이 친일(親日) 청산을 못하고, 친일(親日) 세력들이 미(美) 점령군과 합작했다" 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 광복회, 한국인 개무시한 맥아더 비판이 왜 문제냐?
광복회(光復會)는 법정 국가유공자 단체이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2021년 06월 21일 경기 양주 백석고 학생을 상대로 영상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그는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 북쪽을 점령한 소련군 치스차코프(Chischakov) 포고문에는 ’조선 해방 만세'라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그런 뒤, 곧바로 “미군 맥아더(MacArthur) 장군이 남한을 점령하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 내 말을 안 들을 경우에는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처벌하겠다. 그리고, 모든 공용어는 영어(English)이다’. 이런 포고문을 곳곳에 붙였다”고 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1945년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다” 라고 발언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광복회는 2021년 07월 01일 공식 보도 자료 내고, 김원웅 광복회장을 두둔했다. 그 공식 자료에는 맥아더(MacArthur)가 한국인을 ’개무시'했다는 표현이 담겼다. 광복회는 2021년 07월 01일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인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지!, 포고령 내용을 밝힌 김원웅 회장 비난,납득 안돼!’ 라는 제목의 김원웅 광복회장 명의 보도 자료를 걸었다.
특히 광복회는 자료에서 “해방 후 한반도에 진입한 미군과 소련군은 각각 포고령을 발표했다. 소련군 치스차코프(Chischakov)는 스스로 ‘해방군’임을 표방했지만, 미군 맥아더(MacArthur)는 스스로 ‘점령군’임을 밝혔다. 그리고, 포고령 내용도 굉장히 고압적이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런 ‘역사적 진실’을 말한 것뿐이다. 한국 국민이라면, 마땅히 한국인을 무시한 맥아더를 비판해야 한다. 맥아더가 한국인을 무시했었던 이런 사실을 밝힌 김원웅 광복회장을 비난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라고 적혔다. 이어 “반민족 친일 기득권 세력에게는 맥아더가 ‘은인’이다. 그들은 맥아더의 진실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1945년 맥아더의 포고문이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라고 했다. 광복회가 이 자료를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김원웅 회장 개인의 강연 발언이 광복회 공식 의견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보면,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 뒤에 곧바로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군이) 명심하고”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 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 라고 적시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38선 남쪽은 미군이 점령했고,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군의 맥아더 포고문이 철저한 행정 문서였다. 그런데, 소련군의 치스차코프 포고문은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이 북한 역사책에만 나와 있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물)였기 때문에 비교 대상은 아니다. 같은 시기 미국 트루먼(Truman) 대통령은 ‘한국인의 해방을 축하한다' 라는 문서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당시 미국의 입장을 더 잘 반영할 수도 있다.
■ 김원웅 '아버지 광복군 맞다! 일부 사람들이 모함하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2020년 10월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인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근거 자료나 기록이 없다는 일부 지적에 대하여, “보훈처로부터 2020년 10월 13일 자료를 요구해서 받았는데, 아버지에 대한 자료는 독립운동사, 광복군 명단 등 총 21매가 와 있었다” 라고 했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와 1939년에 충칭에서 조선의용대 군복 입은 사진에서 둘째 줄 왼쪽 여덟 번째에 저희 어머니 사진이 있었다” 라며, 독립운동 유공자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광복회원 중 일부가 ‘김원웅 회장 부모는 독립지사가 아니다’ 라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린 것에 대해 “아니면 말고식의 흠집내기 주장이다” 라고 분명히 말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자료라는 일부 주장에 대하여, 김원웅 회장은 “독립운동상은 광복회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든 자료이다. 국사편찬회가 작성했고, 여기에 집필진 중에 광복회원들 일부 생존하신 분들이 참여해서 만들었고. 그래서이 더 확실한 자료이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자료이다” 라고 말했다.
김원웅 회장은 광복회 일부 회원이 ‘김원웅 회장 부모가 독립지사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 까닭은 광복회장 선거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2019년 05월 이종찬 전 국회의원(전 국정원장)이 같이 입후보를 했었다. 선거 공약으로 저는 친일 청산에 나서겠다. 국립 묘지에 있는 친일파 묘역도 정리하고, 친일 찬양 금지법도 만들겠다 이런 얘기를 해서 압도적인 다수로 이종찬 후보를 꺾고 당선 됐다” 라고 했다. 김원웅 회장은 “그 이후, 이종찬 쪽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왜 김원웅이는 친일 청산을 주장해?’ 라며, 1인 피켓 시위를 하는데, 어떻게 광복회 회원이 친일 청산을 반대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 상당수가 개혁 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번에 청원서를 올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라고 했다. 이어 김원웅 회장은 “최근 이종찬 의원이 ‘김원웅의 친일 청산 정도가 과도하다’ 라며 비난하는 강연을 했다. 이번 청와대 청원 건 역시 그런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라고 주장했다.
■ 윤석열 망언은 일본 보수 극우(極右)와 같은 역사 인식
★ ‘죽창가’(竹槍歌)는 김남주 시인이 작사하고, 안치환 가수가 불렀던 노래이다. 1894년 동학(東學) 혁명 때에 죽창을 들고 사실상 맨몸으로 최첨단 무기로 완전 무장한 일본군에 대항하여 척양척왜(斥洋斥倭)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내세우며, 정의를 위해 싸운 것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1980년 5.18때 시민군이 불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 사람들에게는 피맺힌 한이 서린 노래이다.
★ 2021년 06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통령 선거 출정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竹槍歌)를 부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런 문재인 정부가 정권 말기에 수습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021년 한일(韓日) 관계 악화에 대해 ‘죽창가’(竹槍歌) 얘기를 꺼내면서 비꼬았다. 한마디로 망언(妄言)이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韓日) 무역 전쟁은 우리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강화의 계기가 되었고,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촉발하였다.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공장을 한국으로 옮기는 등 사실상 일본이 패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일본 보수 극우(極右)들의 시각으로 한국을 비판하면서 ‘죽창가’(竹槍歌)를 들고 나왔다. 죽창가를 들고 나온 진짜 의도는 뭘까? 일본 극우들은 한국이 죽창가 운운하는 것을 보고 한국을 비꼴 것이다. ‘죽창가’(竹槍歌)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파온다.
★ ‘죽창가’(竹槍歌) 운운하는 것은 1894년 동학 혁명과 1980년 5.18 민주 항쟁에 대한 폄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금 친일 보수들의 지지를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친일 보수들은 지금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북한과 합세한 폭동이라고 거짓 조작 주장하고 있다.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다. 자신과 친일 보수들의 동질감 형성을 위해 보수가 싫어하는 5.18을 건드려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죽창가’(竹槍歌)를 다시 꺼내어 호남 사람들이 주도했던 1894년 동학 혁명과 1980년 5.18 민주 항쟁의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렸다.
★ 2021년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며, 한류. 한복. 한식. 한국 가요. 한국 드라마 등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그리고, 반도체. 조선. 가전 제품 등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경제에 활력을 잃고 있다. 특히, 일본은 코로나19 방역도 엉망이고,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수도 많아서 아시아에서 꼴찌 방역 상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말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말했던 죽창가는 한일(韓日) 관계의 현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권력이 좋아도 지역 감정과 다른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도 될까? 일국의 대통령을 할 생각이 있다면, 죽창가(竹槍歌)를 끄집어 낸데 대해 정중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죽창가(竹槍歌)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 죽창가(竹槍歌) (안치환 노래. 김남주 작사)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 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아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고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아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