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회개' 에 관한 세상교회의 흔한 설교를 요약해 올려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나는 회개 할 것이 별로 없다' 는 라는 생각이 드시면,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거에 지었던 죄들이 생각나게 하시고, 떠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에 지었던 죄들이, 생각이 나고 밖으로 드러나게 되면, 그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 하나 죄가 생각나거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시고,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이 회개 입니다.
회개는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기 까지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 이 회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 치더라도, 죄를 안 지을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니다. 죄를 안 짓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죄를 안 짓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합니까? 그럴 수 는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싸 잡아서, 왕창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날마다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냐면, 내 안에서 죄 짓고 싶은 마음이 사라 질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 하는, 그 순간 부터 일하십니다. 구원도 '회개' 하는 그때부터 구원이 시작 되는 거예요.
이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큰 딜렘마를 가져다 줄 뿐입니다.
자기의 잘못한 것들을 떠올리고 그 때마다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줄 것을 기도함으로 용서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가르침입니다.
첫째로 우리의 죄는 우리의 기억력의 한계 훨씬 그 이상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태에서 잉태될 때 부터 죄인'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의 죄들을 모두 기억해 낼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식의 막연한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죄책감 속에서 사는 날이 더 많게 할 뿐입니다. 자신도 할 수 없을 뿐더러 마치 교인들에게 수도승 처럼 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로... 생각이 날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전혀 올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못 읽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예수 그리스도
를 믿는 자들을 '영 단번'에 깨끗케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깨끗케 하셨음을 '믿게 된 날'
이후로 이런식의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사람(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죄사함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죄사함 그 이상의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면 이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온전한 죄사함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수명이 백년 이백년 일천년 연장이 되더라도 그렇습니다. '죄' 중에 잉태되어 태어난 사람은 그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죄' 가운데 죽습니다.
저 설교자는 '구원은 회개하는 그 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때마다 회개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멋있어 보이지만 중대한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다른 책은 다 읽었어도 성경은 아지 읽지 못한 것 같아 보입니다.
세상의 종교들 수도승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회개를 강조 하고 있고 또 얼마나 수행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가르침은 성경적 가르침, 초기 기독교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날마다 때마다 구원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가를 반복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란 말입니까?
저것은 성경도 모르고 '복음' 도 모르는 자의 설교입니다. 믿음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이런 분에게 이렇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오늘 몇번 구원 받으셨습니까?"
자기가 저질러 왔던 어떤 잘못한 일들에 대한 자복과 통회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가 '회개'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자기의 잘못에 대해 자복하고 통회하며 뉘우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상 앞에서나 마리아상 앞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게 생각나는 어떤 죄들'이 아니라 그야 말로 총체적인 '죄' 를 깨닫는 것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지난날 저지른 어떤 죄책감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아 갔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갔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몇가지 죄들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 이라고 울며 불며 넋두리같이 털어 놓기도 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는것입니다. 바로 그의 본질 자체가 죄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어 왔던 것입니다.
자기의 총체적인 죄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비로서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입니다.
자신은 ...죄들을 범할 수 밖에 없던 '본질상 진노의 존재' 였음을 비로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을때 그는 십자가의 은혜와 효력 곧 영원한 속죄를 알게 될 것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죄사함' 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는 '완전한 용서, 영원한 죄사함' 을 얻게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로 부터의 '완전한 자유' 를 알게 되었을때라야 그는 진정으로 '회개' 한 것이고 그것은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회개는 절대 '반복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백하는 회개는 단지 어떤 잘못에 대한 '죄책감' 을 털어 버린것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총체적인 '죄' 를 깨닫고 회개했다면 그의 태도는 이 후 겸손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삶의 모양이 달라졌을 것이고 모든 일상에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했을 것이고 성경도 읽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어찌 은혜롭게 변해가지 않을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목이 곧고 태도가 뻣뻣해 진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기의 어떤 죄책감만 털어버린 것에 불과했던 결과일
뿐입니다.
성경을 알지도 못하고 믿음도 없으며 복음에 관해 전혀 무지한 설교자들은 '회개' 를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회개' 한 사람이라면 그는 사람들(교인들)에게 종교적 강박관념이 아니라 '죄사함' 과 함께 '자유하는 법'
을 가르쳐 왔을 것입니다. 짐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게 하는 것이요 해방이 아니라 속박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단' 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믿음' 으로 연결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복음을 들어 알았다면...)
명심하십시오. 구원은 여러분의 '회개' 자체에 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 당신의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믿음' 으로 취해야만 합니다.
날마다 회개를 해야만 하는 당신은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믿지' 못하는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도 모호한 ...그 한계도, 해법도 없는 막연한 '회개' 의 남발로 얼마나 많은 우매한 교인들을 자기의 목회 안에
가둬두고 있는지요. 여러분은 이런 집단 안에서 그들의 이단적 교훈들을 격려하면서 여전히 남아 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교회의 동료들, 지도자한테 이 진리를 한번이라도 권면해 보셨습니까?
진리를 아는 사람의 입장은 두가지 뿐입니다.
그 속에서 '권고' 하거나(또는 그럴 기회를 찾거나) 아니면 그 곳으로 부터 나오거나 이지요.
2014.5.10
바위섬
첫댓글 와~~! 제가 일번으로 읽었군요.ㅎ~
"자기의 총체적인 죄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비로서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십자가' 앞에서의 회개입니다.
자신은 ...죄들을 범할 수 밖에 없던 '본질상 진노의 존재' 였음을 비로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을때 그는 십자가의 은혜와 효력 곧 영원한 속죄를 알게 될 것이고, 완전하고 영원한 '죄사함' 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는 '완전한 용서, 영원한 죄사함' 을 얻게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로 부터의 '완전한 자유' 를 알게 되었을때라야 그는 진정으로 '회개' 한 것이고 그것은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회개는 절대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은 죄와 회개와 구원에 관해 핵심입니다.
@풀꽃향기 박스안에 있는 설교문은 죄를 기껏해서 도덕적인 범죄와 죄책감 정도로 여기고 있군요.
죄가 생각날때마다 회개하여 조금씩 깨끗해지면 점차적으로 깨끗해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점진적 구원론??? ("점진적구원론"이란 말은 제가 지금막 만들었는데 멋지죠~!)
죽는 순간에 죄를 짓고 그 죄를 미처 회개할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거죠?
이런 말도 안되는 점진적 구원론은 종교적 발상이며 민주주의적, 인본주의적 발상이라생각합니다.
예... 종교, 곧 인본주의적 발상인 겁니다.
사람은 일생을 통털어 하나님 앞에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곧 '회개' 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 설교자들은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보입니다.
생각나는 것 , 필요한 것만 털어놓는 정도일 뿐이죠.
이건 '생색내기' 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핑계로 자기의 문제를 얼른 덮고 정상화 시키는 행위려는 작전일 뿐입니다.
아까 회개하고서는 오늘 저녁 새로 회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회개가 아니라 '미개' 입니다. 가짜인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로 돌아 가겠노라...고 하는 사람들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일생에 단 한번의 결단입니다.
날마다 무너져 버리는 그런 '회개' 는 배설물을 닦아내는 종잇짝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번 회개는 영원한 회개'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만 종종 이 말을 반박하는 사람들과
부딪히곤 합니다. 하지만 내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전 오히려 그 분들에게 이렇게 되묻고싶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오늘 몇 번 구원 받으셨습니까???"
내 힘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이 저에게는 '회개' 거리였나봅니다.
그래서 주님! 이제는 주님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하면서 결단을 하고나니 그때부터 주님께서 날 사랑하심이 어찌나 놀랍던지요.
회개 구원 보혈 죄사함...모든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짐을 체험 했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도 끊임없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놀라고 내가 번민하는 것 들 말입니다.
내가 아직 건강하고 내 아이들이 순조로우며 내 주변이 평탄할 때에는 주님께서 내 삶을 주장하는
것 같이 느껴지다가도
그렇지 못한 상황들을 계속해서 감당해 내야 하는 저는 그것을 '인정' 하기가 참 어렵군요.
@바위섬 네 그렇겠네요...바위섬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멘입니다.
주님을 영접한후 살아오면서 여러가지 나의 육신의 모든것들이 죄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될때 단 한번의 구속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주신 주님께 더욱 감사했습니다.세월이 더 흐른후 저의 큰언니도 주님을 영접하고 지금은 지방에서 모임에 영접되어 그곳 성도들과 함께 주님 섬기고 계시는데 언니를 생각 할때마다 주님의 놀라우심에 감사가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