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22일 목요일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발굴지탐방
2010년 4월22일(목)
전중앙문화재연구원장과 고려대박물관장을 역임하신 윤세영선배님,
전 국립박물관경주박물관장이시고 현재 고려문화재연구원부원장이신
박영복선배님과 우영준 전 회장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의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문화재 시.발굴조사 구역을 탐방하러
09시에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강변북로를 지나 자유로를 타고
문산을 거처 연천군 군남면을 지나 민통선출입검문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발굴현장사무소 콘테이너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발굴조사면적은 1-1지점이 28,150m2((8530평),1-3지점이 1,147m2(347평),
1-4지점이 1,682m2(509평) 계 약 9386평의 면적을 발굴중이었다 그중 약857평에
해당하는 1-3,1-4지점은 시굴조사를 완료했고 1-1지점을 발굴조사중이다
조사단장은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지도위원은 지건길 전국립중앙박물관장,
최병현 숭실대교수, 배기동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조사원15명으로 구성되어
2009년3월19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굴중이다.
이 곳 연천지역은 구석기부터 인류가 거주한지역으로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많은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1978년 전곡리유적이 발견된 이후 남계리,동이리,
신답리,원당리, 고랑포리 등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견되었고,
삼거리,학곡리,우정리유적 등에서 신석기시대 토기들이, 차탄리,은대리,
전곡리에서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북방식 지석묘가,연천읍 상리유적에서는
마제석촉,왕징면 북삼리 유적에서는 마제석검이 발견되었다.
연천지역은 삼국시대 숨기쁜 각축전의 현장이었다.
특히 5세기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의 유적이 나타나는데 석실로 알려진
신답리고분과 호로고루성,은대리성,당포성 등이 나타난다.
27호(呂자형) 주거지의 일부 위 아래 사진 4매에서 보이는
탄화된 흔적에 대해 외부 적들의 침략에 의한 방화인지
전문 화재감식학자들에게 의뢰하여 조사중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주거지는 임진강과 안얼천이 합수되는 해발 30m 내외의 충적대지상에 위치한다.
주거지는 평면 형태에 따라 呂.凸자형 주거지와 방형 주거지,장방형 주거지로
구분되며 각각 呂자형 주거지는 2기,凸자형은 54기,방형 11기,장방형 8기,
부정형 7기로 총 82기를 조사했다. 주거지의 주실의 평면은 장방형,오.육각형등의
형태로 구분된다. 주거지 벽면은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였고 바닥면은 굴착이후
별도의 흑갈색점토를 깔고 정지하여 사용하였거나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주거지의 출입구는 모두 남향,또는 남동향이며,주실 바닥으로부터 높게 형성되어
주실로 들어 갈수록 완만해지거나 혹은 계단식으로 조성되었다.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안성민 조사2팀장과 경청하시면서 질문하시는 윤세영,박영복선배님
26호(凸자형)주거지 설명서
24호 주거지 발굴사항.
Felt(휄트)로 지붕을 잇고 철재 가설재로 만든 발굴현장, 발전된 발굴현장이 돋보인다
비록 수자원공사의 예산으로 발굴하지만 옛날 발굴시와 대비 國力이 신장했음을 느낀다.
거주지 내부시설로는 'ㄱ'자형 구들과 'ㅡ'자형 부뚜막,노지,기둥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ㄱ'자형 구들은 부뚜막과 고래부를 포함하고 있으며,주거지 주실의 중앙부나 중앙부에서
전벽으로 치우친 부분에서 부뚜막이 조성되고,고래열은 우측벽과 나란히 벽이 끝나는 지점
(출입구쪽)까지 이어진다.축조방식은 전면에 판석을 사용하거나,부뚜막 부분만 판석을
세우고 고래열은 점토를 쌓아 축조하는 복합식(혼합식)이 있다.
'ㅡ'자형 부뚜막은 연도부로 직접 연결되어,전벽의 좌우측에 직교하거나 우측모서리에
사선으로 축조되었다. 축조방식은 판석화된 할석,또는 천석을 이용하였으며,
주거지에 따라 길이의 차이가 관찰된다.
노지는 주실 중앙부에,기둥자리는 측벽을 따라 조성되었으며 확인된 유물로는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등의 토기류와 철도자,철부등의 철기류도 일부 출토되었다.
경작지면과 주거지면의 지층면의 단면을 조사하면서 토의하는 박영복부원장과 안성민연구원
경작지면(경작지 유구)
토론하시는 박영복부원장님과 안성민연구원 옆에서
열심히 듣고 계시는 윤세영님과 연구원
출토된 유구를 유심히 살피시는 윤세영박사님
고려문화재연구원장 김병모님과 현장사무실에서 서로 인사 통화를 하셨다.
제60호(呂자형)주거지 설명서
트렌치(trench) -윗사진은 왼쪽 부분 아래사진은 오른쪽 부분-
동서남북 十자형 트렌치
발굴지와 임진강 상류에서 바라 본 군남홍수조정지(군남댐)의 원경
임진강 하류에서 바라 본 군남댐
임진강 옆에서 바라 본 발굴지와 마침 점심시간으로 오전 일을 마친 발굴요원들
멋진 우영준 전회장님
고구려 석실분 입구 연도부분과 입구에 포즈를 취한 박영복님
석실분 바닥에서 출토된 은팔찌(복제품)
석실분은 우편재의 횡혈식 석실분으로,장축방향은 모두 북동-남서 방향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며, 현재 잔존상태가 양호한 7호,8호 석실의 경우
벽석의 축조형태는 할석을 이용하여 비교적 정연하게 쌓아 올렸으며,
할석사이의 공간은 점토를 이용하여 마감하였다.
연도는 안쪽 묘실에서부터 약간 경사지게 올라오게 조성하였으며 천석을 이용하여
2열을 깔아 바깥으로 내어쌓기를 하였다.고구려 석실분은 총 9기 조사되었다.
고구려 석실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는 박영복부원장님
고구려 무덤양식의 하나인 모줄임천정(抹角藻井式)
모줄임천정이란?
천정 네귀에 삼각형으로 받침대를 놓아 그 공간을 점차 좁혀 올리고
맨위에 판돌 한장을 덮는 형식을 말한다.
천정부는 잔존하는 개석으로 보아 편평한 석재를 3~4매 가량 이용하여 마무리
한 것으로 추정된다.출토유물로는 관정과 관고리,흑색마연호,금제구슬,유리제구슬,
은제팔찌 한쌍,철제품들이 나왔다.연도는 동벽의 남쪽 모서리부분에 설치하였으며
바닥시설은 벽체를 조성한후 불다짐을 하여 비교적 평탄하게 조성하였으나,
관대를 따로 마련하지는 않았다
관정과 관고리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2기의 관이 매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이라 조용한 발굴현장
석실분의 입구 이모저모
석실분입구에서 좌로부터 권진순,우영준,윤세영,박영복,안성민연구원님
아래사진에는 여성인 박성남연구원님
발굴지와 임진강(군남댐에서 상류쪽)
석실분 발굴지역 전경
十자 트렌치
작년 임진강 홍수피해로 인하여 공사기간이 앞당겨 졌다-이것도 安保
북한의 水攻에 대비한 水公의 早期完工
탐방후기
(재)고려문화재연구원과 저희들에게 열심히 발굴현장을 설명해주신 두 분 안성민,박성남
연구원님께 감사드리오며 모든 글은 저희들에게 주신 자료집에 의해서 작성했읍니다
안내해 주신 박영복선배님,보충설명해주신 윤세영박사님,우리를 끝까지
차량으로 인도해 주신 연구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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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경사입니다. 사학과 카페답게 실제 발굴현장을 다녀오시고 좋은 사진과 함께 글을 오려주셨네요. 다음엔 우리가 발굴현장에 투입되기를 바라면서
글과 사진을 올려 주신 답사대장님 감사합니다. 다녀오신 선배님들 축하드립니다.
호~~ 벌써 올라왔네요.... 하여간 그 열의가 대단하십니다~~~~ 저도 가보고 싶었는데..여건이 허락치 않아서... 그런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윤세영 박사님을 뵙습니다. 호기심과 학구열이 불탔던 재학시 암사동 발굴 때가 기억됩니다. 선배님들 동참했으면 좋았겠다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사학과 학생이라면 유적 발굴을 해봐야한다고 생각했었죠... 기회가 없어서 못해봤는데....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선배님들 좋으셨겠어요 부러워요
학구열이 대단하세요.
안길주님,정용하님,정창래님,황영순님,정성모님 댓글 감사합니다.학창시절에 못해 본 발굴을 다시 시작하는 묘미가 정말 희열이지만 발굴은 건설 토건공사에서도 가장 인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것입니다.훌륭하신 선배님과 후배님들이 노력으로 한번 참가해 보는 모험도 했으면 합니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겠지요
r권진순대형 정말로 애쓰셨습니다
글에 박스를 넣고 글자를 새로 배열하니 보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시랑을 갖은 사람의 작품은 다르구먼 동기지만 언제나 따라간담.... 옆에서 집사람왈 ..... 왜안트러 ..한번다시트러..트러 하네....
완석님 저의 글에 안사람이 박스와 배경음악을 넣으니 더욱 보고 듣기가 좋군요 -오 데니 보이- 의 경음악과 같이 아 목동처럼 목가적인 삶으로 살아갈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