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강해(5장1-9절)
율법은 문자적인 의문의 법 앞에 낑낑 대는 것이며 자유는 하나님의 영광의 성취를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끌려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표는 내가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하나가 되고 아버지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와 하나가 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그 안에 있는 의와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진리가 그리스도인 것처럼 자유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요 자유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미숙한 자들은 자유의 나라 안에서도 많은 도움과 간섭을 받습니다. 그래서 굳세게 서라 똑바로 직립하라 구부정하지마라 합니다. 바울에게 면박을 당한 베드로처럼 엉거주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고 여론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자존하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존재(being)가 변화된 다음에 일(doing)을 해야 합니다(요15장)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려면 그 일 자체가 또 멍에가 됩니다.
2절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율법 준수를 서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의무감을 표시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선서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할례를 받는 각 사람’ 계속 잘라내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고물 자동차를 수리하듯 자신을 계속 고쳐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이요 할례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3절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할례의 의식처럼 계속 잘라냅니다. 자신도 잘라내고 남도 잘라냅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다 보면 나중에 자기 혼자만 남습니다.
4절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끊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닙니다. 믿음은 열심보다 소속이 중요한데 그만 소속이 다른 겁니다. 율법 안에는 의가 없습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될 자는 해 아래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 의가 임한 곳에 하나님은 행차하십니다. 율법 안에서는 죄만 있고 사망만 있으므로 하나님이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을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합니다.
5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립니다. 학수고대하는 겁니다. 믿음은 반드시 소망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드디어 사랑을 이룹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한 세트입니다(고전13:13)
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그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혈과 육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 믿음의 내적인 역사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소망으로 소망이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믿음의 역사 곧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의 역사뿐입니다. 믿음에 의하여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7절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진리를 틀어막으면 이 믿음이 없어집니다. 순종치 못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합니다.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를 순종할 때에 말씀이 스며듭니다. 그래서 생각과 생각이 화합을 이룹니다. 영의 생각에 의해 생명과 평안을 얻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중요성입니다(롬8:6) 그러나 진리를 막아버리면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때에 진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신음합니다. 성경에 포도주가 두 가지인데 참 포도주와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생각 속에 스며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진리는 아들의 영과 생명이 스며들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세상의 초등학문 곧 철학과 지식은 육체의 생각만 하도록 합니다. 바로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아마 현실 속에서 진리를 틀어막고 서서 말도 안 되는 허무한 것에 굴복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나 조직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겁니다.
8절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 권면은 스며듭니다. 에덴동산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결국 뱀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게 하니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로 못가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가고 맙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막고 서서 율법의 가르침으로 권면하면 모든 인간이 다 그리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는 자들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시고 유대종교를 거짓말하는 사단의 회이며 살인 집단으로 규정하셨습니다(요8:44, 계3:9) 문제는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전혀 하자가 없는 윤리요 도덕이기 때문에 땅에서 난 자들에게는 철석같은 금과옥조의 인문학입니다.
다만 성경만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을 주시고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고 그 안에 끌려가고 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입니다.
9절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데 이것 참 골치 아픕니다. 누룩은 스며듭니다. 율법적인 설교를 듣다 보면 생각이 장악되고 맙니다.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고 난 얼마 후에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면 또 법 정신으로 살고 있음을 봅니다. 진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를 적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율법의 행위에 감염이 된 겁니다. 문제는 전하는 자도 모르고 듣는 자도 모르는 미혹에 걸려 있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땅이 옛 뱀 마귀 곧 사탄의 입의 물을 흠뻑 들어 마시고 있는 지금의 상황입니다(계12장) 거짓선지자는 자신이 거짓을 전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틀렸다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말세도 그렇습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어둠의 자식들은 깨닫지 못할 겁니다. 그 때가서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때는 늦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묵은 누룩이나 괴악한 누룩이 아니라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입니다(고전 5:8) 천국의 특성도 온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13:33)
▲김 요한 선교사
첫댓글 10월24일 병원 합병증 검사를 받고 말일날 약을 타야 하는데
인슐린 하루 5번 주사약값에 돈이 많이 드는데 통장잔고는 없습니다
그렇게 도와달라고 글을 올려도 치료비 도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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