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세시풍속
세시풍속의
개념과 특징
세시풍속이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반복해서 거행되는 주기전승의 의례적 행위로서 민간신앙, 민속놀이, 구비전승, 의식주 등 전통문화가 두루
포함된 복합적인 문화현상이다. 세시풍속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반복해서 행해지는 “주기성(週期性)”을 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세시풍속이
행해지는 시기는 평상시와는 구별된다. 세시라는 말은 해(年)와 때(時)의 합성어로서 사시절, 시절, 절후, 명절 등의 뜻을 지니기도 하지만 한자
문화권에서 “세(歲)”는 “년(年)” 또는 수확을 의미하고, “시(時)”는 지속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후자에 따르면 “세시(歲時)”란 곡식 알이
익어서 베는 시기, 곧 반복되는 수확의 시기를 일컫는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 어원풀이를 전면 수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시풍속은 농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농사는 해와 달의 움직임, 계절적인 변화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시풍속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가늠해 준다.
천체의
주기적인 운행을 시간단위로 구분하여 정한 방법을 우리는 역법(曆法)이라고 말한다. 지구의 자전주기는 하루이며, 지구의 공전주기는 일년이다.
그리고 달의 이지러짐과 참을 기본으로 하는 삭망(朔望)은 한 달을 주기로 하고 있다. 이러한 천체운동은 매우 규칙적이기 때문에 관찰가능하며
인간이 임의로 천체의 주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 한달, 일년 세 주기의 관계가 일정하지 않아서 서로 다른 역법이 등장하고 있다.
1태양년과 1삭망월이 1일의 정수배(正數倍)가 아니고, 1태양년이 1삭망월의 정수배가 아니기 때문에 이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역법은 한달,
일년의 주기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순태음력, 순태양력, 태양태음력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태양력으로 바꾸기 이전까지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태음력은 순태음력이 아니라 계절과 역일(曆日)의
조화를 고려하여 태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이었다. 순태음력이 계절의 변화에 관계없이 달의 삭망주기에 맞춰 역법을 만든 것이라면, 태양태음력은
순태음력에 29일 또는 30일의 윤달을 간간히 끼워넣어 계절의 변화를 맞춘 역법이다. 그래서 우리의 세시풍속에는 12월 외에 윤달의 풍속이
포함되는 것이다. 또 태양태음력은 태양의 황도상의 운행주기를 기준으로 24절기를 정해두어 역일과 계절이 일치하지 않는 태음력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사용되었던 태양태음력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1년의 시작을 언제로 잡는가에 따라서 역법은 달라진다. 고대 로마력과 인도력에서는
춘분을 세수(歲首)로 삼았고, 고대 중국 하나라에서는 정월을 세수로 삼았다. 그리고 은나라에서는 12월을 세수로, 주나라에서는 11월을 세수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고문헌에 등장하는 고대 제천의식의 시행시기도 이 역법의 세수에 따라 달라진다. 부여의 제천의식인 영고는 은정월에 치뤄졌다고
한다. 영고는 12월의 행사인 셈이다. 반면 고구려의 제천의식인 동맹은 10월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가 은나라의 역법을
사용했는지, 주나라의 역법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고구려의 독자적인 법을 사용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세수(歲首)는
어떤 역법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태양을 기준으로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를 세수로 삼을 수도 있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세수로 삼을 수도 있다. 실제로 ꡔ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ꡕ에 동지(冬至)는 아세(亞歲), 즉 작은 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달을 기준으로 한다면 달이 차기 시작하는 초하루를 세수로 잡을 수도 있고, 완전하게 차오른 보름을 세수로 잡을 수도 있다. 그래서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달이 완전하게 차오른 보름을 세수로 잡고 있어, 우리나라의 세수가 정월 초하루가 아니라 정월
보름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 1년을 시작하는 행사는 정월 초하루 뿐 아니라 정월 보름에서도 상당수
발견된다.
따라서
역사상 우리가 어떠한 역법을 사용했으며, 그 역법에서 세수를 언제로 설정했는가에 따라 세시풍속의 시행 시기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의 세시풍속에도 역사상 존재했던 역법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세로서의 동지와 24절기, 초하루의 설과 보름설의 흔적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세시풍속의 가장 큰 특징으로 손꼽히는 “주기성”의 문제는 이와 같은 역법의 문제와 연관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이상의
설명은 설과 마찬가지로 대보름에 왜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으며, 윤달과 24절기가 세시풍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덧붙힌 것이다. 안동 세시풍속의 지역적인 특징을 기술하기에 앞서 이와 같은 세시풍속의 일반적인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활용될 안동의 세시풍속 자료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꾸준히 모아진 것이다. 안동시 송천동의 경우 1985년 3월, 1987년
4월, 1988년 9월, 1997년 11월 등 4차례에 걸쳐 조사된 바 있다. 이 밖에도 몇몇 마을의 경우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2~3차례
추가조사를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마을은 한 번의 조사에 그쳤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시대에 따른 세시풍속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이다.
더구나 1980년대 초에 조사된 자료라 할 지라도 20~30여년 전에 중단된 항목을 재구한 것이 많아 세시풍속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여기에서
소개될 자료는 그동안 조사된 것을 바탕으로 세시풍속이 삶의 한 부분으로서 중요하게 작용하던 때의 상황을 되도록 자세하게 구성한 것이다. 민속지적
현재는 대부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이다. 1990년대 변화된 모습이나 새롭게 대두된 세시풍속은 단락을 바꿔 달리 기술하기로 한다.
조사된 내용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하되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내용은 마을을 구체적으로 밝혀
서술한다. 조사 지역은 안동시군 10개읍면 39개 마을이다.
안
동 의 세 시 풍 속
1.
봄철의 세시풍속
1)
정월의 세시
(1)
정월 초하루와 정초의 세시
①
정초차례
설날
아침 일찍 음식을 마련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일반적으로 정초차례라고 말한다. 종가에는 사당이 있어서 사대조까지의 조상을 이곳에서
모신다. 종가 사당에서 차례를 지낸 후 이대 장손집, 삼대 장손집 등 각각 지손들은 또 한 번의 차례를 지낸다. 정초차례의 대표적인 음식은
떡국이다. 하지만 차례상에 떡국을 올리지 않는 집도 있어 사용하는 제물에서 가가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안동군 서후면 저전동의 경우 생떡국을
해먹었다. 생쌀을 빻아 반죽한 것을 끓는 물에 뚝뚝 떼어넣고 어느 정도 익으면 국수를 넣어 삶는다. 떡 건더기는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국수는 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넣은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차례상에 올리는 제물은 떡국, 떡, 탕, 식혜, 산적 등이다. 차례 때 올리는 팥시루떡은 팥을 깨끗이 거피해서 얹은 떡으로 “봄편”이라고 한다.
가장 어른 떡이라는 뜻이다. 제상에 떡을 놓을 때에는 여러 그릇에 따로 놓지 않고 한 접시에 같이 놓는다. 맨 밑에 봄편을 놓고 그 위에
우찌(うち. 우찌는 일본어로 내부, 속이라는 뜻이다)라 해서 절편을 놓고 그 위에 찰떡, 그리고 부편을 놓는다. 생선은 전부 산적을 해서 꼬치에
낀다. 적은 배추적을 사용한다. 산적은 한 꼬치에 같이 끼는데 맨 밑에 고등어를 놓고 다음에 방어, 문어, 쇠고기 순으로 끼어 놓는다.
안동식혜는 고춧가루를 넣어서 맵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상에는 찹쌀과 대추만을 넣은 식혜를 올린다.
가신(家神)을
모시는 가정에서는 정초차례를 지낸 후 성주, 용단지 등의 주요 가신에게도 제를 올린다. 먼저 새벽 일찍 우물에 가서 길어 온 정화수를 용단지
앞에 올린다. 그리고 성주 앞에는 제일 먼저 뜬 밥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성주에는 집의 대주가 제를 올리며, 용단지에는 주부가 빈다. 성주
제사에는 과일과 고기를 제물로 마련하는데, 청어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고등어는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올린다. 성주와 용단지에 대한 제사가
끝나면 음식은 가족끼리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성주와 용단지 이
외의
다른 가신에게 제를 지내기도 한다. 특별히 정월 초하루에 삼신에게 제를 올리는 가정도 있는데 이 때 제물로 백편, 미역국을
쓴다.
②
설빔
설빔이란
설에 입는 새 옷을 말한다. 예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집안 살림에 따라 설빔을 해 입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혹은 부인이 지은 설빔차림으로
대보름까지 세배를 다녔던 것이다. 남자들은 주로 목화에서 뽑아낸 무명으로 지은 솜겹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여자는 명주로 지은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 또는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색동저고리에 붉은 옷을 입고 주머니를 매달았다. 이 설빔은 정월 보름까지
입는다.
안동에서는
옛부터 길쌈을 많이 했다. 삼베의 경우 새벽에 풀을 썰어 빗불을 피우고, 그 빗불 연기에 여덟 가닥의 긴 줄을 말렸다. 이 때 좁쌀과 된장 섞은
것을 실에 발라 색깔을 곱게 해서 단오와 같은 여름 명절의 설빔을 지었다고 한다. 예전에 설빔은 보통 검정색이나 붉은색 물을 들인 면으로 옷을
지었다.
③
세배와 덕담
종가집
혹은 장손집에 형제 자손들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다. 어른에게 세배를 올릴 때에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만수무강 하십시오.”라는 덕담도 함께 한다. 그러면 세배를 받은 웃어른 역시 아랫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던가 한 해를
잘 보내라는 등의 덕담을 해준다. 원래 덕담은 웃어른이 손아래 사람에게 예축(豫祝)하는 내용으로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손아래 사람이 올리는
것인데 요즘은 정초에 친지끼리 으레 주고받는 “인사말”이 되었다.
집안
내에서의 세배가 끝나면 친척이나 이웃 어른을 찾아 뵙고 세배를 올린다. 아이들이 세배를 오면 예전에는 과자나 떡 등의 음식을 주었으나 요즈음에는
세뱃돈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경우에는 찾아가서 세배를 드려야 하므로 정월 보름까지 이어지지만 대개
정초 세배는 3~4일간 계속된다. 남자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세배를 다니고 여자들은 정월 초이튿날부터 세배를 다닌다. 또 정초에는 여자들의 출입을
금하기도 하였다.
④
정초 십이지일
정월
초하루부터 열이틀까지 십이간지에 따라 일진(日辰)을 정하는 것을 정초 십이지일이라고 한다. 이 기간동안에는 특별히 해서는 안되는 일들, 즉
“금기”가 많은데 이 금기들은 보통 열두 동물의 모양, 습성과 연관되어 있다.
첫
쥐날에는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이 날 바느질을 하면 가시에 손이 찔리거나 탈이 난다고 한다. 쥐는 자꾸 뚫고 들어가는 속성이 있어서 이 날
바느질을 하다 찔리면 바늘이 쥐처럼 자꾸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쥐날에는 길쌈을 하거나 의복을 짓지 않는다. 또 첫 쥐날에는
농가의 소중한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기 위한 방책(예방)을 쓰기도 한다. 칼로 도마를 치며 “쥐 주둥이 쫒자.”를 세 번 외우거나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놓아 쥐를 잡는다.
첫
소날은 소의 명절날이다. 그래서 이 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 쇠죽에 귀한 콩을 듬뿍 넣어준다. 그 뿐만 아니라 외양간에 콩과
보리, 수수 볶은 것을 넣어 주기도 한다. 볶은 콩을 주면 소가 건강하게 잘 큰다고 한다. 콩을 볶을 때 “잔 볶자, 잔 볶자, 용잔 볶자,
대잔 볶자, 소잔 볶자.”라고 주언을 한다. 이 날은 연장을 만지지도 않고 부엌에서 칼질도 하지 않는다. 연장을 만지면 소의 눈에 갈가시라는
벌레가 생긴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첫 소날 소금을 녹여서 장(醬)단지에 붓기도 하였으며,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아예 빨래를 널지
않았다고 한다.
첫
호랑이날에는 산에 가지 않았으며, 일 날이라고 하여 일을 하지 않는다. 또 첫 호랑이날은 털 날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호랑이날은 짐승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외출을 삼갔다. 호환을 염려한 까닭이다. 특히 여자들의 출입을 삼갔다. 첫 호랑이날 바람이 많이
불면 봄철 내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첫
토끼날에는 여자의 출입을 금한다. 토끼는 경망스러운 짐승이라 잘못하면 화를 자초한다고 해서 금한 것이다. 이 날에는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대문을
열어야 하며, 남자아이들이 먼저 남의 집 출입을 한다. 또 첫 토끼날은 장수를 비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명(命)실이라고
해서 명주실을 팔에 감거나 옷고름에 매달고 다닌다. 그 전날 밤 집안의 안주인은 물레와 고치를 준비해서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고 실을 뽑아
식구들 주머니에 넣어주거나 옷고름에 매달아 준다.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사고가 없으며 명이 길어진다.
첫
용날에는 연장을 만지지 않으며 방아도 찧지 않는다. 또 이 날 칼질을 하면 용머리가 깨진다고 해서 칼질도 삼가한다. 반면 첫 용날은 김이나
나물로 쌈밥을 해 먹는 날이다. 잎이 큰 걸로 쌈을 해먹으면 병이 없고, 누에가 잘된다고 한다. 이 날 먹는 쌈을 용쌈이라고
한다.
첫
뱀날은 집안에 뱀이 나타나지 않고, 뱀에게 물리지 않도록 방책을 쓰는 날이다. 뱀과 비슷하게 생긴 새끼줄에 숯을 붙여 태우거나, 물에 젖은 썩은
새끼를 마당에 끌고 다니면서 “뱀 끌어냈다.”고 소리치며 문 밖으로 내다 버린다. 뱀날에는 장을 담궈서는 안되며 일을 해서도 안된다. 이 날
일을 하면 집에 뱀이 들어온다고 한다.
첫
말날은 장을 담그는 날이다. 정월 말날에 담근 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있지만 이월에 담근 장으로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 또 첫 말날은 노는
날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윷놀이를 하기도 한다.
첫
염소날은 특별한 금기가 없다. 다만 집에 버드나무를 꽂아 두면 시집간 딸이 아무 탈없이 잘산다고 하며, 풍산읍 소산동에서는 이 날 목화를
심는다.
첫
원숭이날은 토끼날과 마찬가지로 경망스럽다 하여 여자들이 남의 집에 가지 않는다.
첫
닭날에는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변한다고 한다. 또 이 날은 여자들이 일찍 잠을 자면 그 해 닭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하며, 닭띠 사람이 들어와도 일년동안 닭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첫
돼지날은 말날과 마찬가지로 장을 담그기 좋은 날이다. 첫 돼지날에 일을 하면 논둑과 밭둑이 터져 새기 때문에 하루종일 논다. 재수있는 날이라고도
한다.
⑤
복을 기원하는 세시(복조리)
정월
초하룻날 새벽이면 누군가 “복 많이 받으시오.”라고 소리를 치며 조리 한 쌍을 집마당에 던져 놓는다. 이렇게 던져 놓은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이 복조리를 갈퀴와 함께 부엌 문 앞이나 대청 마루 위에 매달아 놓으면 그 집안은 1년 내내 복을 받는다. 까꾸리와 같이 두는 까닭은 까꾸리로
복을 끌어 복조리 속에 담으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설날에 장만한 복조리는 그 후 필요에 따라 사용하지만 그대로 두어 여러 쌍이 함께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조리장사는 주로 마을 청년들이 하는데 며칠 후 이들이 조리값을 받으러 온다. 조리값은 “장사치”가 부르는 대로 줘야 한다.
최근에는 조리 대신 바가지를 집안에 던져두기도 한다.
각
가정에서 복을 기원하는 세시로 이 외에도 잘 사는 집의 흙을 훔쳐오는 복토 훔치기가 있다. 안택굿을 하는 집안도 있다.
⑥
한 해를 점치는 세시(청참과 윷점)
정월
초하루날 꼭두새벽에 거리로 나가서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세시가 있다. 이를 청참이라고 한다.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한 해를 점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토정비결이다. 출생 생년월일을 통해 한 해의 운수와 매달의 운수를
점치며, 이에 따라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액막이를 한다. 또 정초에 윷점을 친다. 윷을 세 번 던져서 주역에 따라 점을 치는 방법이다. 이처럼
정초에는 주로 개인의 한 해 운을 점치는 세시가 집중되어 있다.
⑦
액막이와 금기(삼재막이)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아서 한 해의 운수가 좋지 않으면 액막이를 한다. 운수가 나쁜 사람은 대보름날 오곡밥을 물에 던져두기도 한다. 특히 그 해에 삼재가
든 사람은 방패(예방)를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구년마다 삼재가 든다. 삼재는 십이간지의 띠에 따라 뱀, 닭, 소해에 태어난 사람은 돼지,
쥐, 소해에 삼재가 들고 원숭이, 쥐, 용해에 태어난 사람은 호랑이, 토끼, 용해에 삼재가 든다. 또 돼지, 토끼, 양해에 태어난 사람은 뱀,
말, 양해에 삼재가 들고 호랑이, 말, 개해에 태어난 사람은 원숭이, 닭, 개해에 삼재가 든다. 삼재는 삼년간 머무는데 삼재가 드는 첫 해의
삼재를 들삼재, 삼년째인 마지막의 삼재를 날삼재라 한다. 삼재가 들면 점바치나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해와서 몸에 지니거나 집안의 적당한 곳에
붙여 나쁜 액운을 막는다. 또 짚으로 사람모양(제웅이라 한다)을 만들고, 인형의 뱃속에는 액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시, 떡, 동전 따위를 넣고
빨강․파랑 등의 헝겊을 매단 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삼거리나 사거리에 버린다.
정초에는
빗자루를 세워두지 않으며, 지게를 안으로 향하여 두지 않는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또한 정초에는 빨래도
삼가한다.
⑧
정초 놀이(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정월
놀이는 정월 대보름 놀이에 비해 대개 규모가 적으며 정적이다. 보통 정월 초이튿날부터 대보름까지 논다. 정초놀이의 대표적인 것으로 널뛰기와
윷놀이, 연날리기를 들 수 있다. 널뛰기는 폭 1자, 길이 7․8자 되는 두꺼운 판자 중앙에 짚단이나 가마니를 고이고 양쪽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서로 번갈아 뛰는 놀이이다. 이 때 가운데에 사람이 서서 양쪽 사람이 뛸 때 발을 굴러 박차를 가해 주기도 하는데 이를 “코차기”라고 한다.
“연애를 걸려면 널을 뛴다.”는 말이 있다.
윷놀이는
정초에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놀이이다. 설날 무렵부터 보름까지 윷을 놀거나 이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 놀기도 한다. 가족끼리 놀기도 하고 마을
단위로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마당윷놀이란 마을의 넓은 마당에 여럿이 모여 노는 놀이이다. 큰 마당 한가운데에 줄을 매어 놓고 줄너머로 윷을
던져서 윷가락이 나오는 대로 승부를 가린다. 이를 마당윷 또는 편윷이라고 한다.
연날리기
또한 섣달 그믐무렵부터 놀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까지 한다. 때로는 정월 한 달 간 연을 날린다. 연에 액(厄)자를 쓰거나 “송액(送厄)”이라는
글자를 써서 연을 멀리 날려보내기도 한다. 편을 갈라 연날리기 대회를 하기도 했으며 치열한 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신밟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 이후에 많이 하지만 마을에 따라서 정월 초사흘 이후부터 하는 경우도 있다. 상쇠 1명, 부쇠 2명, 징 1명, 북 1명, 소고
5명, 그밖에 사대부, 포수, 각시 등으로 구성된 풍물패가 농기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지신을 밟는다. 마당굿, 성주굿, 정지굿, 샘굿,
마굿간굿을 하며 온 집안의 지신을 눌러준다. 지신을 밟으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눌르세
눌르세 지신지신 눌르세
부꾸세
부꾸세 다래기다래기 부꾸세
딸을
놓거던 열녀낳고
아들
놓거던 효자나라”
(2)
정월 대보름의 세시
①
마을의 동고사
정월
한 달 동안 각 마을에서 동고사를 지낸다. 안동지역에는 정월 대보름 자시(子時)에 동고사를 지내는 마을이 많다. 보통 제사 지내기 일주일 전에
제관을 선출해서 삼일 혹은 칠일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근신기간을 갖는다. 제관 이외에 마을 사람들 역시 조신한다. 대체로 유교식
제사로 지낸다. 마을의 서낭신은 마을 주민의 무병과 건강, 농사의 풍흉을 관장한다. 영험이 뛰어나 각별히 조심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 동고사에
사용한 불종지를 훔쳐다 이것을 머리맡에 두고 부부관계를 가지면 득남을 한다고 믿어 요즈음에도 불종지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
②
국수와 오곡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국수를 해먹는다. 이 날 국수를 먹으면 삼이 잘된다고 하여 삼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국수를 먹는다. 그러나 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음식은 오곡밥(찰밥)이다. 정월 대보름 새벽에 주부들은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떠온다. 이 물을 청룡과 황룡이 뒤엉켜 있는 “뒤비진
물”이라 하기도 하며, 용이 알을 낳아 둔 물(흔히 용알이라고 한다)이라고도 한다. 보름이면 서로 먼저 이 물을 뜨려고 한다. 이 물을 사용해서
오곡밥을 짓는데, 멥쌀, 팥, 찹쌀, 보리, 수수, 조, 대추 밤 등이 재료로 쓰인다. 오곡밥과 함께 나물반찬을 해먹는다. 또 이와 함께
대보름에는 무, 콩나물, 냉이 세 가지를 넣어 국을 끓여 먹으면 좋다고 한다. 아침에 냉이국을 먹으면 그 해 여름 내내 더위를 먹지 않는다. 또
이날 산나물을 먹으면 들에 가도 풀쐐기에 쏘이지 않는다. 송편을 쪄먹기도 하는데 이 송편은 1년간의 액을 막아주며, 콩나물을 먹으면 그 해
꿩알을 많이 줍는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차린 음식은 가족들이 식사하기 전에 성주와 조왕에게 먼저 올린다. 조왕에는 솥에서 밥을 푸기 전에 솥뚜껑만 열어 젖혀 두고 밥에 숟가락을 꽂고
나무새(나물)를 차린 뒤 절을 한다. 성주에는 찰밥과 나물 등을 놓은 성주상을 차린다.
③
복을 기원하는 세시(달맞이, 찰밥과 부럼 등)
정월
대보름에는 가정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행사가 벌어진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만월의 풍요로운 느낌과 우리 민족이 달에 대해
갖는 믿음이 어우러져 보름달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달맞이다. 정월 대보름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제일
먼저 보기 위해 달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간다. 달을 먼저 본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특히 부인들이 다투어 달을 보러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달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달을 행해 세 번 절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다. 각 마을에는 달을 보기 좋은 장소, 즉
달맞이 하는 장소가 있다.
달을
보면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가 하면, 특정한 음식을 먹으면서 소원을 비는 경우도 있다. 음식과 관련된 것으로는 부럼과 귀밝이술이 있다. 정월
보름 아침에 밤, 호두, 대추, 잣, 은행 등을 깨물면 일년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견과류의
음식을 먹는 것을 “부럼” 혹은 “부럼깨문다.”고 한다. 정월 보름 이른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일 년 동안 좋은 소식을 듣는다 하여
“귀밝이술”을 한 잔씩 하기도 했다. 보름날 아침에 쌈밥을 먹기도 했다. 밥을 김이나 취에 싸서 먹었는데 이를 “복쌈”이라 한다. 또
“진채식”이라 하여 호박고지, 무우고지, 외고지, 가지나물, 버섯, 고사리 등 여름에 말려둔 나물을 삶아서 무치거나 볶아서 먹었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 내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열나흗날 저녁에 대추, 밤 등을 넣어서 약을 해먹으면 그 해에는 약이 몸에 잘 받는다고
하며, 찰밥을 먹으면 여자들은 기미가 없어진다고 한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오곡밥을 짓기 위해 떠오는 물에도 역시 가정의 복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보름 새벽 주부들은 마을 우물 바닥에 짚다발을 놓고
바가지로 지그시 눌러 짚다발 위로 물이 스며오르게 한 뒤 그 물을 퍼온다. 우물 세 곳을 찾아다니며 퍼야 좋으며 무엇보다도 먼저 물을 떠야
부자가 된다. 이 물을 성주 앞에 먼저 올린 뒤 오곡밥을 지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집안이 평안해 진다. 또 부자집의 마당이나 부엌의 흙을
훔쳐오면 자신도 부자가 된다는 말도 있다. 달맞이와 부럼, 귀밝이술 등은 각 가정에서 끊임없이 행하는 세시풍속 중의 하나이다.
④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보리타작,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등)
정월
초하루와 대보름에는 개인이나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세시가 많이 있다. 그런데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는 대체로 정월 대보름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세시는 어떤 물건이나 행동을 비슷하게 모방하면 그와 유사한 결과가 생긴다는 “유감주술”적 성격이 짙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모의 보리타작을 한다. 아이들이 수수깡으로 보리모양을 만들고 훅쟁이(쟁기)도 만들어서 걸금(거름)에 꽂아둔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보리타작을 하러 온다며 회초리를 들고 쫓아와서 마구 두드린다. 어른들이 그 두드려 놓은 것을 모아서 불을 지르고 그 재를 모아둔다.
재는 봄에 보리 갈 때 거름에 섞어서 뿌린다. 이는 보리풍년을 위한 양밥이라고 한다. 또는 보름날 아침에 여자아이들이 수숫대로 보리, 나락,
조, 피, 기장 등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고 거름더미에 꽂아 세운다. 그 날 저녁 찰밥을 먹고 남자아이들이 타작한다고 도리깨나 회초리로 그것을
모두 부순다. 이 부스러기를 불에 태워서 꿀밤껍질에 말질하며 “한섬이요, 천섬이요.” 라고 소리내며 센다. 그 해에 농사지을 보리, 나락, 조,
피 등을 수숫대로 모양을 만들어 놓고 이를 타작하는 놀이를 하면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수숫대 껍질을 둥글게 만들어서 허리에
달고 다녔다고도 한다.
이와
같은 모의 농사 외에도 열나흗날 저녁이면 오곡을 볶아서 방구석에 두었다가 아침에 먹는다. 콩을 볶아서 방에 하루 두는 까닭은 ‘꺼저리’라는
벌레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꺼저리는 방바닥 장판 밑에 잘 생기는 딱정벌레를 말하는데 “꺼저리 이지마라.”, “꺼저리 자먹자.”면서 볶은
콩을 먹는다. 농사를 짓기 전에 미리 병충해를 예방하는 방책을 쓰는 것이다.
보름날
아침 주부가 대추나무에 찰밥을 붙여놓고 돌로 나무를 세 번 때리거나, 나무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다. 이렇게 하면 그 해 대추가 풍년이
든다. 또 대추나무에 찰밥을 세 번 던지면서 “대추야 잘자라라.”하고 외치거나, “열라나 안열라나.” 협박조로 세 번 외치기도 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첫째는 돌로 때리거나 협박을 해서 대추가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녀의 결합을 상징하는 뜻에서 나무가지에
돌을 끼워두고 결실을 기원하는 것이다.
⑤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세시(달점, 달불이 등)
정월
대보름에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와 함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세시가 많다. 농사의 풍흉은 그 해에 제대로 비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 해 제대로 비가 올 것인지를 점치는 풍속이 많다.
먼저
보름의 날씨를 통해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방법이 있다. 정월 보름달의 색깔이 붉으면 그 해 날씨가 가물 징조이고, 희면 비가 많이 온다.
또 날씨가 흐리면 그 해의 농사가 풍년이고, 날씨가 좋으면 흉년이다. 겨울인만큼 날씨가 춥고 흐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겨울에 날씨가 너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라는 등 피해가 있다. 또 꼭두새벽에 첫닭이 울기를 기다려, 그 우는 횟수가 열번 이상이면 가뭄이 든다고 믿는다. 닭이 울때
“어에 살꼬, 어에 살꼬.”하며 울기 때문에 많이 울면 부정을 타서 날씨가 가물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직접적으로 농사점을 쳐보고 그 해 풍흉을 예견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농점으로 달불이가 있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콩 열 두 개에 열
두 달의 표시를 해서 수수깡 속에 넣고 이를 묶어서 우물에 집어넣는다. 이튿날인 보름날 새벽에 그것을 끄집어내어 살펴보는데 콩이 많이 불어
있으면 풍년이고, 반쯤 부었으면 평년, 전혀 불어 있지 않으면 흉년이다. 또 각 달을 표시하는 콩의 상태를 봐서 어느 달에 비가 많이 올
것인지를 점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나온 ꡔ동국세시기ꡕ라는 책에는 이를 “달불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 용어를 대개
알지 못한다.
또
보름날 아침밥을 할 때 쓰인 나무 수껑(숯)을 마당에 두어서 그 숯이 하얗게 변하면 날씨가 가물고 시커멓게 변하면 비가 많이 온다고 점친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아침에 찰밥을 먹기 전에 보리, 나락, 콩 등을 태운 후 그 재를 밥에 묻혀 두었을 때 변하는 색깔을 보고 풍․흉년을
점치기도 한다.
정월
보름 아침 한 해 농사의 주역인 소를 통해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소 외양간 앞에 나물과 밥을 차려놓고 소가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다. 또 새벽에 까치소리를 들으면 풍년, 새소리를 들으면 흉년이다.
정월
보름에 벌이는 놀이판에서도 농사의 풍․흉년을 점친다. 줄당기기를 해서 이긴 편은 풍년, 진 편은 흉년이라든가, 동쪽이 이기면 풍년, 서쪽이
이기면 흉년 등 그 점치는 방법은 다양하다. 윷놀이, 동채싸움, 기싸움 등 놀이종목도 여러 가지이다. 최근에는 화투를 통해서 풍․흉년을 점치기도
한다.
⑥
액막이와 금기(신수점, 제웅 등)
정초
무렵이면 토정비결을 비롯해서 신수점을 많이 본다. 이때 일년의 신수가 불길하게 나타나면 액막이를 하게 된다.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제웅이다.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몸에 차고 다니다가 정월 초순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세 갈래 길에 버린다. 이 짚으로 만든 인형을
제웅이라고 하는데, 제웅 뱃속에 돈이나 쌀을 넣고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를 넣어 버린다. 만약 이 인형을 타인이 주어 가면 그 해의 나쁜 운수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고 한다. 또 어린아이들이 청색, 홍색, 황색 조롱박 세 개를 차고 다니다가 정월 보름날 밤, 돈 한푼을 조롱박에
매어서 길에 버리면 일 년 간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
해의 액운을 막기 위해 방책(흔히 방법 또는 방술이라고 한다)을 쓰는 것과 함께 어떤 특정한 일을 금함으로써 액을 막는 것도 있다. 이러한
금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송천동 하리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아침에 찬물을 먹으면 여름에 들에 갔을 때 소나기를 맞는다 하여
금기했다. 또 고추장이나 짠지를 먹으면 풀독이 오른다고 해서 먹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정월 열나흗날 밤에는 물을 밖으로 쏟지 않았다. 물을 쏟게 되면 집안에 있는 복이 밖으로 나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날 밤에
우물에 가서 물을 떠오면 복을 떠오는 것이 되어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⑦
대보름의 놀이(불놀이, 동채싸움, 놋다리밟기 등)
정월
대보름 저녁 혹은 그 이튿날부터 마을엔 온통 놀이판이 벌어진다. 아이들 놀이부터 어른 놀이까지, 마침내는 다함께 참여하는 대동놀이로 놀이판은
확장된다. 가장 일반적인 몇 가지만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월 열나흗날 저녁과 보름날 저녁에 많이 하는 불놀이가 있다. 망우리(망월, 곧 보름달이라는 말이 망우리라는 말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라 하여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논이나 둑같은 곳에서 횃불을 돌린다. 불을 넣은 깡통을 돌리기도 한다. 불이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보름달같아 “망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둥근 불 주위에 검은 그림자가 많이 생기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송천동의 아이들은 낙동강 지류가 있는 강가에서 불놀이를
했었다.
정초부터
각 마을의 청장년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짚단을 얻어서 지름 10cm, 길이 100m쯤 되게 줄을 만든다. 여러 마을의 줄이 도착하면 두 편이
각각 수십 개의 줄을 나란히 늘어놓아 엮은 다음 두루말이를 하고, 지름이 두 자쯤 되는 머리를 만든다. 그 후 몸에 여러 갈래 새끼줄을 늘여
손잡이 줄을 만든다. 암줄머리에 숫줄머리를 꿰어놓고 “꽂대”를 꽂아 줄이 빠지지 않게 한 다음 줄당기기를 시작한다. 동쪽 또는 남쪽 줄을
숫줄이라 하고, 서쪽 또는 북쪽을 암줄이라고 하는데, 이긴 편의 마을은 풍년이 든다고 했다.
안동에서는
동채싸움과 놋다리밟기를 많이 했다. 동채싸움은 동부, 서부로 나뉜 사람들이 상대방 동채를 땅에 떨어뜨려 승부를 내는 것이다. 놋다리밟기는
여자들이 하는 놀이로서 줄놋다리와 웅굴놋다리 등이 있다. 공주로 분장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엎드려 있는 등을 밟고 지나간다. 또 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놀이 방법도 다양하다.
보름
이후에는 마을의 청장년들이 풍물패를 조직해서 집집마다 다니며 지신을 밟아준다. 풍물을 치면서 마당, 뒤뜰, 부엌, 광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지신을 즐겁게 하여 집주인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해 주는 것이다. “잡귀잡신은 물아래로 물러가고 천복만복은 이 집으로 오라.”는 축원의 노래를
부른다.
(3)
곡식날, 귀신날, 벌날
안동에서는
정월 열나흗날을 곡식날이라고 일컫는다. 이 날 산에 가서 차분하고 부드러운 나무를 한 짐 해오면 그 해 풍년이 든다. 특히 이 나무로 불을 때서
보름의 찰밥을 지어먹으면 몸에 좋다고 한다.
정월
열엿새는 귀신날이다. 또는 “귀신 다래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 날 저녁 야광귀라는 귀신이 지상에 내려와서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봐서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간다. 그런데 이 신발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잃기 때문에 이 날 저녁에는 집안의 모든 신발을 감춰두거나 엎어둔다. 야광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에 체를 걸어두거나, 장작불에 소금과 고추를 넣어 태우기도 한다. 또 머리카락을 모아 두었다가 대문 밖에서 목화씨와 나락을 함께
넣어 태운다. 그러면 고약한 냄새 때문에 귀신이 범접치 못한다고 한다.
안동의
일부지역에서는 정월 열이레를 벌날이라고 한다. 이 날 아침에는 식사하기 전에 온 식구들이 보름날 먹고 남은 찰밥을 한 숟가락씩 먹는다. 이렇게
하면 여름에 밭에 나가서 풀쐐기, 벌, 벌레 등에게 쏘이지 않는다. 벼릿날이라고도 일컫는다.
(4)
입춘과 우수
정월에는
봄이 시작한다는 입춘과 우수가 있다. “글을 아는 가정”에서는 입춘문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일반적으로 “입춘대길 국태민안(立春大吉
國泰民安)” 등이 입춘문의 문구이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써붙여 두어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또 농가에서는 입춘일에 보리뿌리를 캐어 그 해
풍흉을 점친다. 입춘 팔일 후에 보리싹이 나기 때문에 보리뿌리점을 보는 것이다. 보리뿌리가 세 가닥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
입춘
무렵이면 농사준비를 한다. 이엉이나 새끼를 꼬고 보리밭에 두엄을 주어야 하며 거름을 재워두는 기간이다. 또 미리 볍씨를 준비해 두기도 한다.
요즘에는 수박씨를 넣거나 버섯종균접종을 하는 때이다. 서후면 명리동에서는 “정월 초순에 거름을 내서 보름을 쇠고 나면 보리를 간다.”고 한다.
이 외에도 풍산읍 수곡동에서는 입춘날 조밥을 먹으면 부뚜막에 개미가 인다고 해서 조밥을 먹지 않는다.
2)
2월의 세시
(1)
영둥제사
이월
초하루는 영둥할매가 오는 날이다. 이 날 첫 새벽에 세 군데의 샘물을 그릇에 담아 장독대에 놓는다. 초하루에는 떡, 과일, 포 등의 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올리고 보름까지 매일 정화수를 떠놓는다. 영둥할매는 지상에 내려올 때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오는데, 비가 내리면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것이고 바람이 불면 딸을 데리고 오는 것이라고 한다. 며느리가 와야 풍년이 든다. 지상에 내려온 영둥할매는 마을에 따라 올라가는 날짜가
다르다. 10일경에는 영둥할매가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올라가고, 보름에는 영둥할매 바로 밑의 나졸이 올라가고, 20일경에는 가장 마지막 졸병이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각 마을에 따라서 영둥을 15일, 또는 20일까지 모시기도 한다.
영둥할매를
모시기 위해 주부는 미리 짚으로 만든 “봉새기”에 햇곡식을 한말 정도 보관해 둔다. 이 쌀을 이월 초하루에 타작을 하고 세 번 씻어서 밥을
짓는다. 제를 올리기 전에 이 밥을 먼저 먹으면 안 좋다. 새가 먼저 먹어 죽은 일도 있었다. 영둥상의 제물은 집집마다 대동소이하다. 주로
찰밥, 송편, 청어, 채 등의 제물을 차린다. 청어는 구어서 올리며 찰밥은 솥째로 올리는데 여기에 식구 수만큼의 숟가락을 꽂아둔다. 제사를 지낸
후 마당의 싸리나무에 꽂아둔 문종이와 농기구들을 부엌에 놓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영둥할매, 대주어른, 어린아이들 순으로 올린다. 20일까지는
영둥할매에게 정화수를 올리며 이 기간에 음식이 생기면 먼저 영둥상에 갖다 놓는다. 장에 가서 물건을 사와도 먼저 갖다 놓는다. 2월 20일까지
변소 청소를 하지 않으며 개고기나 노루고기를 먹지 않는다. 만약 이 기간 동안 초상이나 궂은 일이 생기면 영둥에게 올린 물을 쏟아 버리고 제사를
올리지 않는다.
(2)
머슴날과 무방수날
이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고 한다. 이제 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일꾼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해 준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머슴이 썩은 새끼에 목매는 날”이라고도 한다.
이월
초아흐레는 무방수날이라 하여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안난다. “땅이 귀감고 하늘이 눈감는 날”이며, “부지깽이를 거꾸로 세워두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한다.
(3)
액막이와 금기
이월에는
머슴날이 있어서 일을 하면 안된다. 만약 일을 하면 음식에 벌레가 든다고 한다. 또 초하루날에는 조밥을 먹지 않고, 콩을 볶아 먹는다. “새알
볶아라, 새알 볶아라.”고 주언을 하면 새가 곡식을 축내지 않는다.
(4)
경칩
경칩
무렵이면 초목의 싹이 돋아나고 겨울잠을 자던 짐승들이 깨어난다. 이 날 개구리 알을 먹으면 양기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또 경칩날에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는 등의 흙일을 하면 좋다고 하고, 단풍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
3)
3월의 세시
(1)
삼짇날
삼월
초사흘, 삼짇날은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이 날의 시절식으로,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꿀과 잣을 넣어 먹는 화면과, 진달래꽃과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꿀을 섞어 만든 수면이 있다.
안동지역에서는
삼짇날 진달래꽃을 꺾어 조왕단지 앞에 꽃아 두고 농사의 풍년과 해충의 예방을 기원했다. 또 산, 들, 우물, 바위 등에 불을 켜놓고 빌기도
하였다. 삼짇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아름다워진다 하여 여자들은 머리를 감는다. 꿩은 천신(天神)의 사자이기 때문에 꿩알을 주우면 길하다고
해서 이날 꿩알을 주우러 다닌다.
이
무렵에 처음 보는 나비의 색깔에 따라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 흰나비는 부모상을 당할 운이며, 노랑나비나 색깔이 있는 나비는 운수가 좋다. 봄에
두꺼비가 집에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에 만약 이날 머리를 감거나 자르면 머리가 제비의 날개처럼 된다고 한다.
(2)
삼월의 월내 행사
삼월
보름날 동고사를 지내는 곳이 있다. 남선면 도로리 마을의 경우 10일 전에 동회를 열어 제관을 선출하고 3일 전부터 금줄을 치며 14일 밤에
제를 지낸다. 또 남선면 외하리 마을에서는 3월 15일 남자들만 마을의 못에서 못제를 지낸다.
정월
말날 장을 담그지 못한 집에서는 삼월에 장을 담근다. 특히 그믐께 드는 닭날과 말날에 담그면 좋다. 하지만 뱀날은 피해야 한다. 서후면
저전동에서는 “이월에 장을 담으면 근심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양력 삼월이 관광을 하는 달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가까운 곳에 놀러 가거나, 일정하게 돈을 추렴하여 멀리
관광을 떠나기도 한다. 이 기간은 볍씨를 담그기 전이며 고추 모종을 해놓아 한가로울 때이다. 또 날씨가 풀려 멀리 놀러가기 좋다. 각 집안의
화수회를 삼월 보름에 하는 경우도 많다. 화수회를 할 때에는 음식을 장만하여 함께 먹거나 놀이를 즐기는 시간을 겸한다. 농촌의 여가 시간은 주로
바쁜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농사를 끝낸 이후에 갖는다. 삼월은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갖는 여가의 달이다.
(3)
청명과 한식 및 곡우
청명과
한식은 같은 날이거나 또는 청명 다음날이 한식이 된다. 일년 중 하늘이 가장 맑은 날이라는 청명에는 풋나물과 산채를 먹는다.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서 이월이나 삼월에 든다. 임동면 수곡동에서는 “이월 한식은 해도 삼월 한식은 안한다.”고 한다. 이는 이월에
한식이 들었을 때에는 사초(莎草)를 해도 삼월에 들었을 때에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한식에는 후손들이 조상의 묘에 가서 떼를 다시 입히고 차례를 지낸다.
풍산읍
막곡동에서는 이 때 영덕대게를 제물로 장만하고 말뚝상어를 먹는다고 한다. 한식은 사방 팔방의 잡귀가 묶여 있는 날이라고 해서 “귀민날”(귀맨날,
귀신 맨날)이라고도 일컫는다. 한식에 나무를 심고 채소씨 혹은 콩을 심는다. 한식에 바람이 불면 소값이 안나간다는 말도 있다.
곡우에는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외출했을 때에는 불을 피워서 잡귀를 몰아 낸 다음 집안으로 들어온다. 이 날 꿩알을 주으면 알은 삶아 먹고 빈껍질은
대문 위에 꽂아둔다. 그러면 잡귀가 근접을 못한다. 부부가 함께 자는 것도 피했다.
곡우
무렵에는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못자리를 하고, 땅콩이나 콩 등의 씨를 뿌린다. 콩을 심을 때에는 손으로 골을 그어가며 심는다. 삼,
벼, 목화씨를 파종하며, 서숙찰밥을 해먹는다. 이 날 모내기를 하면 모가 뿌리를 잘 내린다고 한다. 임동면 고천동에서는 곡우에 비가 오면
“돗다리에 불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곡우에 비가 오면 가뭄이 든다는 뜻이다.
(4)
봄철 세시풍속의 특징 및 의례력
정월에는
한 해의 복을 기원하거나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가 많다. 특히 정월 초하루 혹은 정초에는 개인적으로 가정의 복을 기원하는 세시가 많은 반면
정월 보름에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가 많다. 또 정월 보름은 대동놀이와 동제 등을 지내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와 정월 보름을 집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대칭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에 많은 방법을
통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달의 모양이나 색깔, 모의로 벌인 싸움과 놀이판의 승부 등을 통해 그 해 농사를 점친다. 더 직접적으로는
농사짓고 수확하는 모양을 본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이월의 영둥고사도 가정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다. 이월 초하루가
지나면 농사가 시작된다고 해서 머슴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삼월
들어서는, 본격적인 농사에 들어가기 전 가까운 곳으로 화전놀이를 간다.
봄철에는
대부분 한 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뜻에서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한 해 액운을 막기 위해 액막이를 하는 등 예축과 예방을 내용으로 한 세시가
집중되어 있다. 일년 중 액막이와 금기가 가장 많은 철이기도 하다. 따라서 봄철의 세시풍속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는 특징이 있다
하겠다.
봄철의
의례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