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월
5월 27일 새벽에 웬 여자의 처절한 가두 방송을 이불 속에서 들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공수부대가 처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도청광장으로 모여주십시오. 시민 여러분. 시민 여러분" 그리고 동녘이 떠오를 때까지 나는 가슴을 졸이며 도청 쪽을 지켜 보았다. 내가 숨을 쉬고 있을 그 무렵 윤상원 형을 위시한 많은 시민군들이 진압군의 총탄을 맞고 숨져갔다. 고은 시인이 쓴 '만인보'의 윤상원 편에 보면 그가 쥔 총에서는 실탄 한 방도 발사된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죽으러 그 자리에 있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죽어야만 했다. 그렇게 5월은 갔다. 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아침마다 집을 나와서 학교로는 가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께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서 발길은 무등산 쪽을 향하고 있었다. 무등산에는 풍암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김덕령 장군의 동생이 지었다고 했고 광산 김씨 문중의 소유였다. 그 풍암정에 광주고등학교 2년 선배이자 용봉문학회 회장이었던 김종훈 형이 기거하고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풍암정으로 출입했고 나중에는 거의 살다시피 했다. 저녁마다 선배들이 소주병을 들고 와서 저녁내 술을 마셨다. 나는 선배들이 술판을 벌이면 랜턴을 들고 계곡에 가서 새우나 가재를 잡아와서 주전자에 된장을 풀어 새우가재탕을 끓여대었다. 새우나 가재와 같은 갑각류들은 끓여 익으면 껍데기가 빨갛게 익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왜 하필 광주였을까. 왜 공수부대는 광주에 와서 그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피했다. 서로의 눈에서 피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면 현미가 부른 '보고 싶은 얼굴'을 불렀다. 광주에서 살 수가 없었다. 그 괴로움을 알았는지 어느 날 국방부에서 나를 데려갔다. 나는 논산훈련소 제26연대에서 4주간 훈련을 받고 철원 6사단에 배치되었다. 논산에서 나 혼자만 전방으로 끌려간 것이다. 작대기 세 개쯤 달 무렵의 주말엔 외출, 외박을 할 수 있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니 광주사태 주요 지명수배자 명단이 벽에 붙어 있었다. 거기서 김태종, 박효선 등 연극반 선배들의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입에 들어간 밥술은 입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그해 가을 철야 무전근무를 서고 있는데 사단사령부에서 급전이 왔다. 광주사태의 수괴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광주교도소에서 사망. 나는 그 급전을 다른 부대에 전해주고 화장실로 달려가 숨죽여 울었다. 84년 전역해서 전남대 국문과 2학년으로 복학했다. 그해 5월 광주항쟁 5주기였다. 우리는 전남대 뒤의 논으로 해서 망월동까지 갔다. 도처에 백골단들이 화이바를 쓰고 우리를 추적했다. 망월동에 가서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은 처절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많은 학생들이 붙잡혀 광주서부경찰서로 끌려갔다. 조금 지나서 선배들이 돌아왔다. 태종이 형도, 효선이 형도. 태종이 형은 학점 미달로 몇 과목을 재수강하느라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과목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태종이 형하고 상대 뒤 반룡슈퍼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벚나무들이 버찌를 매달고 있었다. 나무들은 푸르다 못해 갈매빛을 띠기 시작했고 이파리들이 바람에 뒤집히며 반짝거렸다. 이파리들에 젖어오는 윤기를 보면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생각에 눈물을 삼켰다.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교는 최루탄 생산공장처럼 온통 뿌옜다. 전남대 정문 앞에 살던 우리집도 최루탄 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에고 나쁜 자식들"하고 욕을 해댔지만 그 욕의 대상이 우리들 학생이었는지 경찰이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입고 온 옷에서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으니. 어느날 학교 가는 길에 종훈이 형을 만났다. 풍암정에 있다가 쌀이 떨어져 집에 내려와 쌀을 가지러 갔다가 그 다음날 군대에 끌려갔으니 종훈이 형도 내 소식을 내 친구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종훈이 형은 나를 보자 "이 귀신 같은 놈..."하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첫댓글 그려요..
그 새벽, 소쩍새는 왜 그리 섪게 울어에든지.
너도 그때 광주에 있었겠구나....
참, 요즘 저녁에 우,우,우,우 허면서 네 마디로 우는 새 이름이 뭐냐?
@송태웅 것두 몰르요?
홀, 딱, 벗, 꼬~ 새지.
찬찬히 들어보믄, 홀딱벗꼬! 안 그러요..ㅎㅎ
(검은등 뻐꾸기라고 안 갈챠줬음~)
@대숲에뜬달 거 참 야하게도 우네.
정식 명칭은 검은등뻐꾸기라고?
오늘 저녁엔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
@대숲에뜬달 잘해씀..
비밀이 없는 사람 매력이 없다고 누군가가 글드만..
송시인님의 글을 읽으니 많은 생각이 스쳐 갑니다.
80년 5월의 금남로, 구시청4거리, 광천동, 양동시장, 광주공원광장 등등~
얼굴 마주하면 밤샌 줄 모르고 많고 많은 이야기가 나올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예, 36년이 지나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해마다 이맘때면 분노가 솟구치고..
산자여 잊지마라 시민들의 투쟁과 억울함을...
에이~눈물이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