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준석 동양고전 해외 정기답사 글올립니다.
11/2 첫째날, 오전 9시 좀 일찍 서둘러 학교에 잠시 들를려고 했던 계획은 여유를 부리며 준비하느라 지체한 시간으로 깨져버리고 600번 버스를 타고 급행1로 환승하여 도착한 대구공항.
한껏 왁스로 멋을낸 머리는 뛰어오는 도중 바람에 날려 엉망이 되버려 이리저리 정리하느라 혼자 꽤나 용을 쓰다시피하며 들뜬 마음으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무이산 답사에서 뵈었던 분들과 국내 답사에서 뵈었던 분들 그리고 나와 같은 고1 여동급생 2명에게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에게 잠시의 작별 문자를 돌렸다.
해외여행갈때의 어머니의 필수 코스 면세점 쇼핑으로 어느덧 탑승시간이 되어 12:15 드디어 출발!
이번이 네번째인 중국이지만 갈때마다 떨리는 기분 좋은 느낌.
1:05 드디어 상해 푸동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절차 후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첫 일정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금요일 오후여서 인지 차가 정체되는 바람에 일정보다 늦게 도착한 주장수향마을.
이곳에 내리자마자 가장 눈에 띈 것은 한집 건너있는 족발가게였다.
우리나라의 족발과 다른것이 없었지만 윤기나는 기름진 맛을 맛보고 싶었다.
골목사이마다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고 곳곳에 아치형 다리가 놓여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밤기운이 성큼 다가오자 더욱 화려하게 펼쳐지는 야경은 루미나리에 축제에 온듯했다.
심만삼의 고거를 지나 오봉선을 타러갔다.
한배에 여섯명이 탑승하고 수향마을을 따라 흘려가면서 펼쳐져 보이는 야경과 뱃사공 아주머니가 불러주시는 민요풍 곡조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천하일경이었다.
그리고 내심 현지식을 기대했던 저녁은 아쉬운 한식이었다.
소주의 유명한 털게요리에 군침이 꼴깍했는데 살아있는 털게를 구경하는것에 만족해야했다.
밥을 일찍 먹고 거리를 거닐어 보는데 귀에익은 기타 선율이 들리어 그곳에 가보았다.
한번 연주를 해보고 싶었지만 기타줄의 상태가 신통찮아 그만두었다.
11/3 둘째날,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중국 4대 명원의 하나인 유원에 도착했다.
700M에 달하는 복도식 통로를 통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언제나 이곳복도를 따라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파에 떠밀려 감상할 새도 없이 출구에 도달했다.
새삼 중국의 거대한 인구밀도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한때였다.
역시 4대 명원중의 하나인 졸정원은 수목, 물, 암석 가운데 물의 이미지를 최대화하여 물에 비친 4계절의 정원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며 물에 잠긴 담장을 따라 낙엽진 담쟁이덩쿨이 가을의 운치를 더했다.
운수대통의 뜻을 담은 대나무통을 힘껏 쳐보았다.
다음으로는 호구탑, 호랑이가 웅크려 앉은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춘추시대 오왕 합려가 이곳 연못아래 묻혔다 전해진다.
드디어 점심시간 빡빡한 일정 탓에 허기진 배로 식당을 향하는데 식당 1층의 공사로 인해 머리가 띵하였으나 2층 식당은 괜찮았다.
그토록 먹고싶었던 중국식 족발과 2조팀장 박은숙 선생님의 배려로 소수민족이 불러주는 비파 연주와 첨밀밀을 들으며 맛있게 먹었다.
족발은 기대만큼 맛있는 맛은 아니었다.
두툼한 비계와 설탕에 절인듯한 단맛이 가득했다.
다음목적지 당대고승인 한산자가 이곳에 머문후 명칭이 바뀌었다는 한산사.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의 시한수로 이곳이 유명해지고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오는데 요금을 내면 종을 쳐볼수 있다는 말에 왠지 감동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소주고성 어제 일정에 있었지만 오늘로 미루어진 곳이다.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문이란다.
입구에 '말밤'이라고 하는 말린 박쥐처럼 생긴 열매가 있었는데 서호의 뿌리 열매란다.
껍질이 얼마나 딱딱한지 반으로 쪼개느라 고생했다.
밤과 고구마, 연근 등을 섞은 맛이 났다.
몇개 쯤 먹으니 중국 특유의 향이 느껴지자 구미가 떨어져 버렸다.
말밤도 까먹고 고성을 둘러보는데 성벽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과 그 옛날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불행이 이곳 성벽 저 아래쪽에서 행해졌음을 지금은 관광객들이 장난삼아 그옛날 함정으로 파놓은 가짜 성문벽을 기어오르며 즐거워 하고있었다.
갑자기 쏴~한 전율과 함께 소름이 돋는다.
11/4 셋째날, 오늘은 옛 오나라의 수도 항주에서 관광을 시작한다.
항주 최고 관광지로 꼽히는 서호이다.
유람선을 타고 서호를 한바퀴 돌며 서호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어느새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아쉬움이 남는 유람을 뒤로하고 동파기념관에 들렸다가 뇌봉탑으로갔다.
항주 3대 명탑으로 꼽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꼭대기에 올랐다.
탑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호의 풍경은 탑을 돌며 몇발짝 옮길때마다 서로 다른 장관을 연출하였다.
점심은 그 유명하다는 '루외루' 메뉴는 거지닭(시커먼 비닐이 식욕을 감퇴시켰다.), 소식이 좋아하였다는 동파육, 감히 입에도 대지 못한 오리혀바닥요리 등 신기한 요리를 감상만 잘했을뿐 즐기지는 못했다.
그곳에서는 마시는 차도 물도 모두 돈을 지불해야했다.
식당 인심 사납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장군 악비가 모셔져있는 악묘이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악비의 숭상이 실감났다.
악비묘앞에는 악비를 모함하여 죽게한 간신들을 무릎을 꿇게해놓은 동상이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동상의 이마가 훼손되어 청동주물에 시멘트로 보수시켜 놓았다.
다음은 서령인사 고대의 석각과 회화를 모아놓은 금석학 전문학문단체로 일반인에게 드물게공개되는 곳중 하나란다.
그곳에서는 옛거리에서 10원정도하는 먹을 50원에 팔았다.
깎아서 3개에 100위엔에 샀다.
집에와서 보니 먹 상단에 신품이라 찍혀있었다.
뭔가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한다.ㅋㅋ
절강성 박물관 옛 도자기들과 소수민족들의 생활관이 전시되어있었고 명, 청, 당시대의 옥공예품은 눈을 떼지 못하게 화려했다.
약간 어설픈 왕손들의 유화작품도 꽤나 재밌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향한 '육화탑', 뇌봉탑 못지않는 규모란다. 다들 체력소진으로 탑앞에서 조별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육화탑 옆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 6개의 비단을 늘어뜨려 육 화에 대해 적어놓았다.
1.意和同悅
2.利和同均
3.見和同解
4.口和無諍
5.身和同住
6.戒和同修
빡빡한 일정으로 발맛사지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로 하였다.
맛사지사들의 재밋는 입담으로 여정의 피로가 한결 풀렸다.
11/5 넷째날, 오늘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자연 유산으로 등록된 황산에 오른다.
등산인만큼 아침도 든든하게 먹고 황산행 전용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운곡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황산은 온통 기암괴석과 기송으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정도로 아득하게 펼쳐져있고 경치에 이끌려 정처없이 얼마를 내리막길을 걸었을까,, 갑자기 가이드가 내려가지 말고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라는 것이다.
길을 잘못들었단다,,,
결국 1km정도를 다시 올라가야 했고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들은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다행히 처음출발지까지 다들 무사히 올라오셨다.
결국 일정을 변경하여 비래석 코스는 포기해야했고 먼저 북해 빈관에 가서 점심을 먹은후 시신봉으로 갔다가 케이블카로 하산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도중에 봤던 무거운 식자재 생필품들을 막대를 어깨에 걸쳐 양쪽에 짐을 매달아 옮기는 일꾼들이 많았는데 평균 80kg의 짐을 메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던 거리를 오르내리며 날랐다.
그것들은 대부분 북해빈관의 음식재료들이였다.
이번점심은 아주 소중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으나 그래도 남겨진 음식들이 마구 버려지는 모습에 조금전의 노동의 고충이 눈에 선하여 씁쓸함을 뒤로 한체 시신봉에 올랐다.
'비로소 믿음이 시작된곳'이라는 뜻대로 황산의 경치는 엄청났다.
또 몽필생화라 하여 바위위의 한그루 소나무가 마치 붓을 닮아 붙여진 봉우리도 제법 그럴듯 했다.
집에 돌아와 기행문을 작성하면서 안 사실인데 그 위의 소나무가 고사해버려 지금의 소나무는 모사품이란다.
중국인의 짝퉁 솜씨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등산 후 두팀으로 발맛사지팀과 옛거리 쇼핑팀으로 나누어졌다.
옛거리의 홍등이 끊임없이 대롱거리며 오늘의 힘들었던 황산 등산의 피로를 위로하는듯 하였다.
11/6 다섯째날, 코스여행의 마지막날 월나라수도였던 소흥.
그래서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아Q정전과 광인일기로 유명한 루쉰의 생가를 관광지로 꾸민 노신고거.
그 주위로 많은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졌는데 현장학습온 학생들마다 손에는 '취두부' 튀긴것을 들고 먹고 있었는데 냄새가 어찌나 강하든지 냄새에 쫓겨나듯 걸음을 재촉했다.
10분정도 이동하여 심원을 둘러보며 육유와 당완의 애틋한 사랑의 편지 채두봉 이야기에 갸웃둥고개질하며 동호로 갔다.
여기서 또 한번 오봉선을 타게 되었는데 박은숙선생님과 나와 어머니 세명이 한조를 이루어 탔다.
뱃사공들의 손과 발로 노를 젓는 것이 특이했다.
물이 어찌나 깨끗하던지 손으로 물살을 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일자천이라 불리는 좁은 바위를 돌아 나오는데 작은 오봉선들이 좌충우돌하는 통에 아주 재미있었다.
다음은 우임금묘, 역시 이곳에도 유치원생 같은 꼬맹이들이 저보다 큰 짐보따리를 메고 조잘대며 지나치는데 엄청 귀여웠다.
입구에는 우임금이 치수에 성공하고 중국 대륙을 9주로 나누고 쇠붙이를 모아 9개의 정을 만들어 9주에 하나씩 놓았다는 9정이 조형물 위에 하늘을 날아 오를듯 놓여있었다.
제단에는 음양의 문양이 조화롭게 새겨져 있고 이곳의 대종 역시 돈을 주면 칠수 있다는데 치는 사람이 없어 종지기는 연신 두다리를 뻗은채 졸고 있었다.
우임금의 사당에 세개의 출입구가 있었는데 가운데 문턱이 유독 높았는데 옛날 임금들이 이 문을 지날때면 신하들을 엎드리게 하여 그 등을 밟고 안으로 넘어들어 갔다 한다.
나도 호기심에 문턱을 넘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높지 않아 가뿐히 넘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옛날 왕들은 왜 신하들을 생고생시켜가며 그랬을까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 차 범퍼가 손상된 난코스였다.
월왕대라는 곳으로 관광버스가 다니기엔 도로가 협소하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란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는 탓에 월국유지는 일찍 문이 닫혀버렸다.
아쉬운 일정을 마무리하고 막히는 교통체증을 뚫고 상해로의 긴 이동을 시작했다.
드디어 상해호텔 여행의 마지막 밤을 어머니와 간단한 자축을 벌이고 하루라도 다투지 않으면 뭔가 허전할듯하여 잠시의 다툼을 가진 후 잠을 청했다.
11/7 마지막날, 새벽4:45 갑자기 어머니는 나를 서둘러 깨우고 모닝콜이 울리지 않았다며 서둘러라 하시곤 어머니는 부랴부랴 로비로 뛰어 가셨다.
나는 어리둥절 한채 앉아 있으려니 모닝콜이 왔다.
뭔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다시 방으로 돌아오셨고 온갖 쇼를 다 했다며 어이없이 웃으시며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시며 빠질 수 없는 모닝 커피 한잔의 여유를 부리셨다.
역시 마지막이라고 조용히 넘어가지 않는 여행이었다.
-끝-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 하고싶습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 고마워요.
준석인 우리 동양고전의 꿈나무. 이렇게 여행을 정리해보며 지나온 곳을 되새김질하고 느낌을 적어보는게 여행의 가장 첫번째 요소.중국여행에 전문가들과 다녀 행운이고 어머니와도 알콩달콩 다투며 다니는 아름다운 모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슴.
무이산에 이어 두번째 함께한 준석이와의 중국여행. 우선 학교 공부보다 더 우선적으로 큰세계를 아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엄마의 교육관에 대해, 또 학교 공부 마치고 와서 고문진보를엄마와 함께 듣는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준석이의 여행 후기로 미처 놓쳤던 부분도 다시 느끼게 되고, 우리의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해 주서 고마워요. 준석이를 통해 우리의 희망을 봅니다.
글을 읽으니 어질러졌던 기억이 가다듬어져서 좋습니다. 엄마와 언제까지나 알콩달콩 연인같은 관계 이어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