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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리플리라는 것을 안다
정한아의 《친밀한 이방인》
칠 년 동안이나 소설을 쓰지 못한 나는 어느 날 신문에서 흥미로운 광고를 보았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신문 전면에 소설의 한 부분이 실려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소설을 읽던 나는 충격에 빠졌다. 그 소설은 십여 년 전 내가 익명으로 펴낸 소설이었다. 데뷔하기 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공모에 제출했던 작품이었으나, 낙선한 뒤로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다음날 신문에도 소설이 연재되어 실려 있었다. 신문사에 더 이상 광고를 싣지 말라고 연락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여자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섯 달 전에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다는 선우진이었다. 진은 남편이 광고 속의 소설을 쓴 작가로 행세했다고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어요. 내게 이 책과 일기장을 남기고 육 개월 전에 사라져버렸죠.” 나를 만난 진은 소설가인 줄 알았던 남편이 사실은 여자였다고 말했다. 그 남편은 진을 만나기 전부터 거짓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고 했다. 본명은 이유미였지만 진에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 열여섯에 아이를 낳고 결혼했던 진은 몇 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재작년 겨울 교회 모임에서 이유상을 만났다. 그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라졌다. 서재에는 일기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 “가짜 대학생, 피아노 교사, 예술전문대학 강사, 의사로 신분을 바꿔가면서 남자를 셋이나 갈아치우고 인생을 거짓으로 살아가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진은 이유상이 사라진 뒤 그의 과거를 좆았다고 했다.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가 대체 왜 그 일기를 내게 보여줬는가예요. 마음만 먹는다면 떠나기 전에 얼마든지 그걸 없애버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 전시라도 하듯 책상 위에 올려두었거든요.” 진은 물었다.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고 간 것이 무엇일까요.”
“이유상, 이유미, 혹은 또 다른 어떤 이름의 그 여자.” 나는 점점 이유미가 살아온 삶에 강한 호기심을 느겼다. 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해나가면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는 그 사람의 반복된 거짓과 위증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어요. 단순한 흥미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은 내게 이유상이 남겼다는 책, 수첩, 전화번호부, 공문서, 일기 여섯 권을 보냈다. 나는 생의 어떤 순간마다 이유미와 스친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발자취가 끊기는 곳에서 ‘나’는 그녀의 실체와 그녀가 감추고 있던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도했다.
정한아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은 이유미가 이유미에서 이안나로 그리고 이유상으로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산 흔적과 이유를 추적한다. 이 작품은 화자인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훔친 비밀스러운 인물인 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해나가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유미는 합격하지 못한 대학에서 교지 편집기자로 활동했다. 음대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으면서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했고, 자격증 없이 의사로도 활동했다. 게다가 그녀는 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았다. 인간은 때로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을 감춘 채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주인공 이유미는 이런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 행적이 그와 여러 방면에서 조우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된다.
이유미는 양복기술자 아버지와 청각장애인에다 예닐곱 살의 지능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부는 모두 문맹이어서 출생신고는 이웃 양품점 여주인의 아들이 대신 해주었다. 어머니는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과묵했다. 집안은 무성영화처럼 조용했다. 아버지는 하나 뿐인 딸을 애지중지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미군 부대 근처에 살았던 이유미는 열세 살 때 미군 다섯 명에게 윤간을 당한 뒤 질식사한 로라를 제 눈으로 직접 보았다. 몇 해 동안 미군의 부인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이유미는 그 집에 드나들면서 기본적인 영어 회화와 서양식 식사 매너까지 익혔으나 정작 피아노 연주 실력은 기대처럼 늘지 않았다. 예고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미는 아버지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으나 맞춤 양복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예고에도 가지 못했다.
이유미는 열등감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의 열등감은 부모로부터 기인한다. 등은 구부정하고 문맹인 아버지. 청각장애에 발달장애까지 갖고 있는 어머니. 부모가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늙었더라는 말을 퍼뜨린 아이를 찾아내 따돌림을 해 급기야 전학을 가도록 만든 이유미이지만, 그런 부모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니 넘어서야 한다. 그런 욕망은 일탈행위로 이어진다. 급기야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선생의 자취방에서 일을 치르고 그것을 다음날 친구에게 발설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부모에 대한 열등감을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대담한 행동을 통해 상쇄하고자 했다.
수능시험이 석 달밖에 남지 않았을 때 이유미는 일탈에 대한 처벌을 받아 전학해야 했다. 그는 지방에서 서울로 학교를 옮긴 뒤 하숙집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부모로부터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이유미가 거짓의 행적을 갖게 된 원인은 그가 대학입시에 낙방하고도 아버지에게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 대학 불합격 소식을 듣고 며칠 지난 뒤 아버지가 전화해서 입시 결과를 물었을 때 이유미는 담담한 목소리로 S여자대학에 합격했다고 대답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이유미를 보러 왔고 하숙집에는 이유미가 S여자대학 의상디자인학과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대학 법학과 4학년인 하숙집 18호는 이유미에게 교지와의 인터뷰를 주선하고 학교에도 함께 가며 기독교 동아리에 가서 커피를 얻어 마시고, 18호의 문자를 받고서는 학생회관 2층에 있는 교지 편집부 사무실까지 찾아갔다. 인터뷰에서 그치지 않고 입시학원과 S여대를 오가며 교지 편집부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점차 입시공부는 소홀히 하게 되었다.
거짓말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획적으로 거짓말 하는 타입이며,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사소하게 거짓말 타입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유미가 시작한 거짓말은 두 번째 유형이었다.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했을 뿐 자신이 먼저 대학 입시에 합격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에는 거짓말에 대한 예비가 들어있다고 해야 한다. 그가 거짓말한 까닭은 부모에게 실망만 주었던 지난 몇 해를 생각하면서 자신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이었다. 강박 관념은 부모의 고생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거짓말은 병이 아니고 심하지 않으면 죄도 아니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거짓말은 숨겨진 소망의 반영이다. 거짓말이 문제가 될 때는 자신이 거짓말하다는 것을 모르거나, 거짓을 진실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을 때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거짓말이 거짓말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알랭 드롱이 연기한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이 연기한 《리플리》로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주인공 리플리가 거짓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태연하게 진짜처럼 말하면서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에서 리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이유미는 그렇지 못했다.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행위는 한 개인이 가진 퍼지 요인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자 할 때, 퍼지 요인에 따라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며, 도덕적으로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자기 자신을 긍정적인 인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애리얼리는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의 행위는 도덕성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이유미가 생각한 도덕성은 늦은 나이에 자신을 낳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미는 자신이 의상디자인과 학생이라는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사들였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그렇게 해서 모두 써버렸고 2학기 과정에 들어서는 원단비, 작업실 사용료, 모델비까지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아버지는 돈을 더 보냈고 그녀는 몇 장의 가짜 사진들로 아버지에게 보답했다. 이유미는 수능시험에서 전해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았고 입학을 포기했다.”
대학 교지 편집부 기자 총회에서 만난 K과학대학교 이상우와의 만남은 이유미를 좀더 진화시켰다. 둘은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연애를 했고 이유미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려고 돈을 헤프게 썼다. 그것을 덮기 위해 이유미의 아버지는 수입 양복 체인 경영자가 되었다. 이유미는 아버지가 소박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는데 그것이 이상우에게는 ‘수입 양복 체인을 경영하는 소박한 사업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유미는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가는 거짓에 두려움을 느꼈고 몇 번인가 진실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으나 아침이 되면 자신이 없어졌다. 이상우가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할까봐, 교지 편집부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웠다.
이상우의 부모를 만나고 이상우로부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할 때 썼던 다이아몬드 반지와 함께, 정식으로 청혼을 받은 이유미는 “어쩌면 이상우에게는 자신의 허물과 거짓을 들켜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를 향한 사랑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녀 역시 자기 삶을 연기하는 데 진저리가 나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유미는 결혼을 약속한 날 밤, 과도한 방법을 요구하는 이상우에게 다음으로 날을 잡아보자고 달래며 자신이 정말로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상우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유미는 잠이 확 깼다.
이유미가 대학생도 아니고, 부잣집 딸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날, 이상우는 그녀에게 자신이 준 반지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이유미가 말없이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주자, 그는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유미는 현실로 돌아왔다.
아버지로부터 계속 돈을 받아내고 이상우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인 데에서 이유미의 도덕적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이유미는 아버지나 이상우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유미는 이상우와의 만남에서 계산된 행동과 표정, 말투를 구사하지만 그것들은 자기 내면의 도덕성과 유리되어 있다. 또는 자기 내면에 있는 도덕성을 삭제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유미는 아버지가 수입 양복 체인을 경영한다고 냉철하게 말하는데, 이것은 고통스러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상될 때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더욱 침착해지고 냉정해지는 상태이다. 이상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이유미는 알기에 자신의 실제 모습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이상우가 알게 되더라도 용서가 될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이유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상우와 결혼해야 하지만, 사실 리플리적 구도는 제삼자가 조금만 의심을 갖고 접근하면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많다. 이유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은 그런 허술함에 의해 자신의 기도가 좌절당한다.
나는 이유미와 언젠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전국 대학생 교지연합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이유미, 이상우와 함께 나도 있었을지 모른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이상우가 스위스로 유학을 다녀온 뒤에 대기업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상우는 만나자는 나의 요청을 거절했다. ‘전 그런 여자를 모릅니다.’가 거절의 이유였다.
아버지의 죽음, 오랫동안 사업 부진에 시달린 아버지는 빚을 남기고 떠났다. 밀려든 채권자들에게 양복점과 집까지 잃은 이유미는 어머니를 옛날 자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출산을 도와준, 지금은 요양원을 하는 양품점 이모에게 어머니를 맡겼다.
평창동 A미술관에 잠깐 점원으로 일한 이유미는 A미술관 딸인 강미리의 이력서를 모방해 신도시의 피아노학원에 피아노 강사로 채용되었다. 엣날 미군 장교의 부인에게 배운 피아노 연주 덕분이었다.
이곳에서 이유미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다. 남자 이름은 조민호. 피아노학원과 같은 층에 있는 은행 직원이었다. 이름은 조민호. “음대 출신에 유학파였는데, 그런 식의 도도함이 없어서 인상적이었어요. 부모님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했죠. 홀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독립을 해보기 위해서인데 생활이 녹록치 않다고 하더군요.”
S여대에서의 가짜 학생, 이상우와의 만남이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시작된 거짓말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자책감은 없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유미는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으로서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면에 피아노 강사 취업, 조민호와의 만남과 결혼은 이유미가 본격적으로 리플리 행동으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 단계 이유미는 비록 이상우와의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가짜 대학생 생활로 터득한 요령은 그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부여했다. 그는 문서를 위조하면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책도 가지지 않는다.
그녀가 조민호에게 “민호씨는 나를 몰라요. 다 알면 아마 깜짝 놀라서 도망칠걸.” 이라고 말하는 데서는 감정의 흔들림이 보이지만, 그것은 혹시 앞으로 발각될지도 모르는 과거에 대한 책임회피이다. 결혼 후에 그것이 드러난다 해도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거꾸로 다그칠 거리를 만들어 둔 것이다.
결혼식에 대역을 동원한 데에서는 강미리에게 자신을 투영해 피아노 학원의 강사가 되었고 그것이 기회가 되어 조민호와의 결혼까지 이어졌기에 이제 이유미는 그것을 지켜야 했다. “미국에서 온 장인어른, 장모님은 교양 있고 점잖은 분들이었어요. 사업 때문에 당일에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셔야 했지만, 곧 여름휴가 때 찾아뵙기로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다른 실존 인물 또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계속 거짓말을 반복하다 마침내 그것이 정말로 실제 자신이라고 믿어야 했다. 하지만 충동적인 과소비와 게으른 가사로 인해 파경을 맞았으니 이유미는 성공한 리플리가 되지는 못했다.
피아노학원에서 이유미는 자신의 위조된 이력서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평균보다 웃도는 가짜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자꾸 거리를 좁혀오는 직장 동료 때문에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동료는 자신의 지인이 이유미의 이력서에 적힌 학교 졸업생이라며 그 지인을 학원에 데려오겠다고 했다. 조민호와의 결혼 생활도 악화일로를 걸었으니 설상가상이었다. 이유미는 피아노학원을 그만두었고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소개 받았다. 그곳은 학원보다 대우나 복지가 훨씬 좋았기에 실질적인 증명서를 필요로 했다. “이유미는 처음으로 위조업자를 찾아가서 몇 개의 증명서를 만들었다.” 돈을 주고 위조한 그 학위증명서로 평생교육원의 서류 전형에 합격했고, 그녀의 샤넬 투피스 복장에 매료된 원장의 호의로 초등학생 방과후 음악 수업과 일반인 교양 음악 수업을 모두 맡았다.
정신의학의 공식용어는 아니지만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말을 단골로 사용한다. 원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리키는데 사회의 규범과 질서, 이익 등에 반대되는 성격을 말한다. 이 개념들은 법적으로 위배되는 행동과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행동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유년기 또는 청년기에 시작해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계속되는 타인의 권리 또는 도덕을 무시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런 사람들은 반복적인 범법 행위, 거짓말, 충동성, 공격성 등에 노출되어 있다. 사이코패스가 태어날 때부터 감정과 공감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반면, 소시오패스는 약간의 유전적 영향과 더불어 어린 시절의 학대 또는 결핍 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존경 받는 정치인과 경영인 가운데에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많다는 것이다. 소시오패스는 극단적 자기중심의 인물형이다. 자신은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따라서 자신은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여긴다. 그런 소시오패스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뇌가 권력에 취해 자기중심성은 더욱 강화되며 대중에게는 매우 공감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 공감능력이 결여된다.
이유미에게서는, 그가 반복적으로 문서를 위조하고 또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데에서 소시오패스적 경향이 보인다. 이유미가 반복적으로 과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중학생 때 아버지가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지 못한 것의 트라우마로 해석된다. 또한 문맹의 아버지와 발달장애의 어머니가 이유미를 정신적으로 학대한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가정과는 달랐기에 그런 환경 속에서 이유미는 스스로 난관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을 것이다.
평생교육원에서 일한 이 년 동안 이유미는 남자들과의 진지한 관계를 회피했다. 이미 두 번 실패한 것이 ‘반면교사’가 되어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남자만 만났다. 평생교육원에서 예술 강좌를 들은 성형외과 의사 임재필과는 죽이 잘 맞았고 작가, 화가, 영화감독, 클래식 음악가 등등인 임재필의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이유미의 가짜 신분은 한 번도 의심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임재필의 친구이자 예술전문대학 관계자인 모씨가 그녀에게 전공 강의를 맡아보겠냐고 제안하면서 새로운 위조가 필요했다. “이유미는 자신이 달리는 호랑이 위에 올라탄 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얻은 것을 보존하려면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면 안 되었다. 그녀는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다시금 종로의 위조업자를 찾아갔고, 몇 군데 콩쿠르의 입상 기록을 만들었다.” 면접을 피를 때 면접관 가운데 한 명이 이유미가 적어낸 출신 대학의 동문회장이었다. “그녀는 동문회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유미는 대담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유미에게는 상승욕구에 대한 본격적인 열망이 드러나는데,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실체를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 교지 편집기자를 할 때도 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상승에 대한 욕구,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욕망 등이 겹쳐져 이유미는 과감하게 그 제안을 승낙한다. 그러나 거짓말에도 과유불급이 있다. 그는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파국을 가져올 것이다.
지나온 삶의 밑바닥까지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했던 임재필은 이유미에게 청혼했다. “이유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역할 대행업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하객 일부를 고용했다. 임재필의 부모는 사돈 부부의 겸손하고 차분한 행동거지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결혼 전 자주 성매매업소에 드나들었던 임재필은 정작 아내인 이유미와의 관계에서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 짧고 부산스러운 관계를 가졌는데, 그마저도 이유미로서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임재필은 다시 어린 매춘부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과거의 망령이 불현듯 이웃으로 찾아오면서 임재필과의 결혼생활도 실패했다.
강미리와 같은 아파트에 산 것이 발단이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강미리를 만났다. 강미리는 한낱 점원이었던 이유미가 같은 아파트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이유미도 그날 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유미는 임재필에게 이사를 하자고 졸랐고 마침내 임재필의 동의를 얻었으나, H음악대학 동문회에서 보낸 연주회 티켓이 강미리의 편지함으로 잘못 배달되면서 사단이 일어났다. 사실을 알게 된 강미리는 이유미에게 돈을 요구했고 기한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하자 강미리는 이유미의 학력위조와 허위경력을 제보했다. 대학에서는 이 사건을 은밀하게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학력위조가 아니라 일신상의 사유로 물러나는 것으로 발표했다. 임재필과의 결혼생활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는 ‘실패한’ 리플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도 리플리는 종국에는 실패했으니 ‘실패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은 ‘성공한’ 리플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소설 속의 리플리들은 하나 같이 실패한다.
강미리는 자신이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임재필은 내게 말하기를 “내가 조르고 졸라 했던 결혼이었어요. 그 여자가 원하지 않으니까 내가 점점 더 원하게 됐죠. 후회할 일은 시작하지도 마. 그 여자는 나를 가엽게 보면서 말했죠.”라고 했다. 임재필은 가짜 학력과 이름, 관계의 허위까지만 알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가리기 위한 것인지는 몰랐다. 이유미를 추적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예술대학 전임강사에서 해고되고 임재필과의 결혼도 끝난 뒤 이유미는 이안나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 좀 더 대담해져 종로에서 “가정의학과 졸업증명서와 노인건강학회 회원 인증서를 구매했다.” 그리고는 동해에 있는 실버타운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이안나는 자살을 시도하던 윤노인을 설득했고 둘은 연인이 되었다. 윤노인은 칠순 잔치에서 이안나와 결혼한다고 선언했고 며느리는 기절했다.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윤노인은 물론 이유미의 잃어버린 아버지였다. 남녀관계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니까.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유미는 윤노인에게서 잃어버린 아버지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늘 결핍 상태였으며 만년에는 사업조차 어려웠다. 윤노인은 재산이 많았다. 사랑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이유미가 윤노인의 청혼을 받아들인 까닭은 아버지에게 결핍된 것을 윤노인에게서 발견했으며 결핍에 대한 보상이 있어서였다.
어머니가 죽고 윤노인도 죽고 실버타운은 문을 닫으면서 이유미는 국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생활했다. 술에 취한 걸인이 그녀를 만지려고 했던 불쾌한 사건을 겪은 후, 귀찮은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남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죄책감이나 후회 따위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녀가 품고 온 삶에 대한 증오,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증오했다. 그 증오심이 이유미의 도덕적 각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각성하지 않아도 과거를 충분히 반추할 수 있다.
어느날 이유미는 공원 화장실의 휴지통 위에 버려진 책 꾸러미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난파선》이 있었다. 이것이 선우진과 나를 잇는 단초가 되었다. 내가 오래 전 《난파선》을 여러 권 제본해 지인들에게 주었는데 용케도 그 책이 국립공원 휴지통에 버려졌고 이유미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이유미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필력을 키우려 했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만 그 일로 소설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굶은 그녀는 공원을 내려와 작은 교회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주는 죽을 먹으면서 기력을 회복했다. “이유미는 자신의 이름을 이유상이라고 밝혔다. 서른네 살. 직업은 소설가. 부모님은 러시아 선교사였지만 얼마 전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이유미는 남자로 행세했고 어머니를 대신해 기도원 봉사자로 온 선우진을 만났다. 진의 집에서 이유상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상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유상은 진의 집에 얹혀 살면서 방세를 냈다.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묻는 진에게 ‘러시아에 있는 삼촌’이 보내준다고 했다. 그 말은 돌연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전의 거짓말이 그랬듯 미리 계산해놓은 것이 아니었다. 수면 아래 있던 것이 떠오르듯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이유상은 백화점에서 남자옷을 샀는데 그것은 “그의 남자 행세가 일시적인 음기응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생존수법이 되었다는 말이다.” 진은 이유상에게 《난파선》을 읽었다고 말했고, 이유상은 바다 밑바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곳은 모든 게 희박해요. 공기도, 빛도, 소리도 형체를 가지지 못하고 뿌옇게 무리 지어 머물다 사라져버리죠.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도 점성이랄까 강도랄까, 그런 것들이 약해져서 풀어지고 주변으로 흡수되어버리는 거예요.” 이유상은 감정조차도 흐릿해진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유미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그러니까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매우 희미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유미는 바다 밑바닥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곳은 뿌옇고 점성도 없고 주변으로 흡수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의식을 떠받들고 있는 무의식은 세계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참말이고 어디부터가 거짓말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계는 모두 거짓으로 포장돼 있고 무의식계는 모두 진실로 포장돼 있을지도 모른다. 무의식계에 규정성이 없다보니 무의식이 의식을 제어하지 못해 의식에서의 거짓말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거짓말은 생존의 전략과 전술일 수 있으니 무의식이 거짓말을 장려할 수도 있다.
그날 이후 이유상은 진과 연인 관계가 되었고 그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진을 속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발단은 이유상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진이 그에게 입을 맞추었고 그의 몸을 끌어안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유상은 자신이 짐을 챙기고 다시는 진의 가족에게 돌아오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유상은 문인협회를 찾아가 “지금은 폐간된 지방의 문예지로 등단했고, 몇 년 전에 소설책을 한 권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그 문예지로 등단한 다른 시인과의 다툼, 그리고 문인협회 총무가 이유상이 그 문예지로 등단한 기록을 찾지 못하면서 탄로가 났다. “그가 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작가라는 이름이 화관이고 명예였던 때는 오래전에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총무의 말마따나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은커녕 늘 불안함과 회의감에 젖도록 하는 것이었고, 삶은 늘 곤궁했고, 그럴듯한 성취도 없었고, 애를 쓴 만큼의 반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인데, 이유상은 왜 소설가로 행세했는지 궁금하다. 문단을 알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그것은 밝혀지지 않는다. 진과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뒤 매일 미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던 이유상은 이렇게 시간을 끌다 뒷덜미를 잡히고 말 거라고 생각하고는 더 늦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금껏 그때는 아는 감각으로 살아남았다.” 결혼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유상은 사라졌다. 책상 위에는 원고만 있었다. 신문에 낸 광고는 진의 어머니인 한권사가 낸 것이었다.
나는 선우진을 만나면서 반전을 발견했다. 선우진은 이유상이 여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남자에게 환멸을 느낀 진은 그러나 오래전부터 교회의 미리엄과 동성애의 관계에 있었고 둘의 도피를 위해 어머니로부터 유산을 받기 위해 이유상을 끌어들여 계약결혼을 한 것이었다. 이유상은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모두를 속일 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무대이며, 도처에 아름다운 사물들도 결국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유상과 진은 진의 어머니 한권사를 향한 공모자였다. 추정하건대 이유미가 등단한 소설가로 문인협회 회원으로 행세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가 선우진과 공모하고 한권사를 속이려면 좀 더 정교한 프로그램, 곧 그녀가 등단한 작가여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진이 내게 물었던 것, 그가 대체 왜 자신의 일기를 책상 위에 남기고 떠났는지,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고 간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결국은 거짓말이었다. 이유미의 거짓말을 이용해 선우진도 내게 거짓말을 했다. 애드거 앨런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에서 장관과 뒤팽처럼 말이다. 더욱이 진은 어머니를 속이기 위해 내게 전화도 했다. 이유미가 장관이라면 선우진은 뒤팽이다. 두 사람 모두 창의적이며,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며 산다.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것에 맞추어 자신을 속인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거짓을 진실로 믿기도 한다.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고 당당해지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미의 거짓말은 이런 일반적 경향과는 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하는 것을 자각한다. 그는 그 거짓말들을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 거짓 상황들을 연출한다. 속이는 주체와 속은 주체가 같은 경우를 자기기만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면서도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미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기분을 잘 안다. “스스로를 진실에서 배제시키고,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찍고, 어둡고 습한 자기혐오의 늪에 가둘 때 느껴지는 작은 쾌감도 있다.” 거짓말은 이유미에게 그런 쾌감을 제공한다. “그 사람은 타고난 거짓말쟁이였어요. 말을 하는 데 능숙했고, 자기감정을 잘 감추었죠. 사교적인 사람처럼 보였지만 자기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정해놓은 엄격한 규칙 안에서만 움직였죠.”
이유미는 자신이 현실의 이방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반복되는 실패는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잘 그어주었다. 그 결과 선우진과의 계약결혼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이유미의 리플리 행각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왜냐하면 소시오패스의 원인을 스스로도 타인에 의해서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