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룡봉추를 알려준 수경선생 ‘사마휘’
최용현(수필가)
형주의 신야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는 형주자사 유표의 부탁으로 한 행사장에 갔다가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유표의 처남 채모가 자신을 죽이려고 군사를 사방에 배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유비는 살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와 적로(馰盧)에 올라탔다.
동쪽 남쪽 북쪽에 물샐틈없이 군사가 배치되어 있자, 유비는 서쪽으로 말을 몰았다. 한참을 달리니 폭이 3장(三丈, 약 9m)이나 되는 개울 단계(檀溪)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채모가 이끄는 추격병이 쫓아왔다. 유비는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적로에게 채찍을 내리쳤다.
순간, 적로는 휙~ 하고 솟구쳐 오르더니 물살이 험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저쪽 기슭에 내려섰다. 적로 덕분에 추격병을 따돌린 유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 소등을 타고 털레털레 오는 한 목동과 마주쳐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목동을 따라간 유비는 인재를 보는 안목이 특출하다고 소문난 한 고명한 선비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사마휘, 영천 사람으로 자는 덕조(德操)이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수경선생으로 불리고 있었다.
유비를 만나자마자 수경선생은 ‘유공 곁에는 너무도 사람이 없소. 천하를 경영하고 세상을 다스릴 모사(謀士)가 없소. 물론 관우와 장비, 조운은 홀로 만 명을 상대할 만한 장수들이지만.’하고 말했다.
유비가 한숨을 쉬며 ‘저도 몸을 굽혀 숨은 선비를 찾은 지 오래됩니다만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하자, 수경선생은 ‘이곳 형주에 천하의 기재들이 모여 있으니 잘 찾아보시오.’하고 말했다. ‘천하의 기재란 누구를 이르는 말입니까?’하고 유비가 되물었다.
“복룡봉추(伏龍鳳雛) 중에서 한 사람만 얻어도 가히 천하를 평안케 할 수 있을 것이오.”
수경선생이 대답했다.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유비, ‘복룡봉추가 누구입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수경선생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좋지, 좋아.”
그날 밤 유비는 수경선생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유비는 복룡 봉추가 누군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으나 다음날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원직이 이 밤에 웬일인가?’하는 수경선생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원직이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유표가 섬길 만한 분인지 찾아가 만나보았으나 실망하여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이어 수경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왕업(王業)을 일으킬 만한 재주를 지녔으니 마땅히 사람을 가려서 섬겨야 할 것이네. 어찌 가볍게 몸을 움직여 유표 따위를 찾아갔더란 말인가?”
다음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유비는 어젯밤에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수경선생은 ‘내 벗이외다.’하고 말했다. 유비가 ‘그 사람이 혹시 복룡과 봉추 중에서 한 사람이 아닌지요?’하고 물었다. 수경선생은 대답은 하지 않고 또 ‘좋지, 좋아.’라고 했다.
수경선생은 누가 어떤 사람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하면 매번 ‘좋지 좋아.’라고만 대답했다. ‘좋지, 좋아.’를 하도 남발하니 그의 별명이 ‘호호(好好)선생’이 되었다. 한번은 그의 아내가 ‘사람들이 물으면 마땅히 당신의 의견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무조건 좋다고만 하면 어떡하느냐?’하고 힐문했다. 그때도, 수경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도 좋지, 좋아.”
그가 끝내 복룡과 봉추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자, 유비는 이제 대답 듣기를 단념하고 그 대신 기우는 한실(漢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함께 일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수경선생은 ‘저 같은 늙은이가 설령 뜻이 있다 해도 재주와 능력이 모자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래잖아 저보다 열 배나 나은 이가 나타나서 유공을 돕게 될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유비는, 그보다 열 배나 나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여 다시 물어보았으나, 또 ‘좋지, 좋아.’란 답변만 돌아왔다. 그때 군사를 이끌고 백방으로 유비를 찾아 나선 조운이 도착하는 바람에 유비는 마침내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결국 유비는 그날 밤에 찾아왔던 원직, 즉 서서를 초빙하여 군사(軍師)로 맞이한다. 그러나 조조가 서서의 노모를 붙잡아놓고 있는 바람에, 서서는 조조에게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서는 떠나면서 유비에게 복룡 제갈량과 봉추 방통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 후, 서서가 유비의 군사(軍師)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경선생이 찾아왔다. 수경선생은 서서가 떠난 사정을 듣자, ‘아뿔사!’ 하면서, ‘서서의 모친은 의를 높이 여기는 분이라 서서가 갔다면 틀림없이 목숨을 끊었을 것이외다.’하고 말했다. 실제로 서서의 모친은 아들이 유비를 버리고 자신을 찾아오자 아들을 꾸짖으며 스스로 목을 매지 않았는가. 현자들은 정말 이를 미리 알 수 있는 건지….
서서 제갈량 방통 같은 준재(俊才)들이 모두 수경선생의 제자라는 얘기도 있고, 수경선생은 결코 제자를 둔 적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생각하건대 이들은 사제관계라기보다는 친밀하게 교류를 하며 지낸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수경선생의 소탈한 성품이 느껴지는 일화 하나. 유표의 작은아들 유종이 수경선생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시종을 보내 그가 집에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때마침 수경선생은 채마밭에서 김을 매고 오는 길이었는데, 시종이 ‘사마선생은 어디 계시는가?’하고 묻자, ‘내가 사마휘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시종이 그의 누추함을 보고 ‘형주자사의 아드님께서 사마선생을 만나고자 하시는데 하인 주제에 사마선생 행세를 하다니!’하며 꾸짖었다. 수경선생이 집으로 들어가 머리를 빗고 두건을 쓰고 나왔다. 시종이 곧 그를 알아보고 사죄했고, 시종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유종도 정중히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을 알려준 재야의 거목(巨木) 수경선생 사마휘, 뛰어난 안목과 경륜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끝내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유비 외에도, 형주를 점령한 조조가 그의 명성을 듣고 초빙하려 했으나 그 무렵 그는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그러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