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03일 (일)
제목 : 세바 사건의 진압
오늘의 말씀 : 사무엘하 20:14-26 찬송가: 340장(구 366장)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중심 단어
세바, 아벨, 벧마아가, 요압, 지혜로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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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의 반란과 그 결과
18-19절: 지혜로운 여인이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는 것은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20-21절: 요압이 다윗을 대적한 세바만 내주면 떠날 것을 약조하였다
22절: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졌다/ 요압이 성읍에서 물러나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도움말
1. 아벨… 베림(14절): 세 곳은 납달리 지파의 영내에서 가장 끝단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최북단 성읍이다.
2. 어머니 같은 성(19절): ‘매우 규모가 큰 성’이라는 의미와 함께 ‘이스라엘 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묵상
교만한 요압
다윗이 유다를 용서하고 화합하려는 상황에서 발생한 세바의 반란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다윗은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마사에게 세바를 잡을 것을 명했는데, 그는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20:10).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중요한 임무에서 배제됐던 요압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요압은 자신이 매우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인 다윗조차도 자신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지혜로운 여인
사무엘서에는 3명의 지혜로운 여인인 아비가일, 두고아의 여인, 그리고 본문의 아벨 성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처해 있던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여인들입니다. 아벨의 지혜로운 이 여인은 전쟁에 능한 요압이 성읍을 치려고 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여 성읍을 위기에서 구합니다. 이 여인은 요압에게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19절)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요압은“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20절)라고 하며 다윗 왕을 대적한 세바만 내주면 물러갈 것을 약속합니다(21절). 한 여인의 지혜와 용기로 한 성읍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세바의 반란과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깊은 묵상
1. 공동체가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사무엘하 20:14-26>
주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 눈을 감으니 선선한 가을 아침 공기가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가을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일까? ‘감정’이란 무엇일까?...
압살롬을 죽여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한 요압은 이종사촌 형제 아마사에게 군대 장관의 직책을 빼앗기게 된다. 요압은 그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찾아오려고 애를 썼다.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요압은 다윗의 왕권보다 아브넬을 향한 증오가 더 컸다. 그래서 그를 죽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대 장군의 자리를 빼앗긴 아마사의 대한 증오로 불타오른다. 그래서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윗이 군대장관으로 임명한 아마사를 살해한다.
아마사를 뒤따르던 군사들은 그의 시체를 보고 어쩔 줄 몰라 주저하고 있을 때 요압은 병사 한 사람을 시체 옆에 세워 놓고 “요압을 지지하며 다윗왕 편에 설 사람은 당장 요압 장군을 따르시오!”라고 외친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요압을 따라 세바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요압의 마음은 오직 세바의 반란을 진압해서 그 공로로 빼앗긴 군대장군의 자리를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요압의 마음은 다윗을 위한 충성도 아니고, 이스라엘을 위한 애국심도 아니다. 그저 ‘군대장관’이란 직책에 집착할 뿐이었다. 요압의 마음에는 온통 ‘군대장관’이란 자리였다.
집착하는 것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빼앗기면 분노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찾아와야 만족하게 된다.
나는 오늘 무슨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서 있는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부분은 없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세바는 결국 요압과 아비새의 추격으로 아벨벧마아가로 들어간다. 요압은 그 성읍을 치기 위해서 토성을 쌓고 부수기 시작한다. 그러자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에게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라고 묻는다. 요압은 그녀에게 세바만 넘겨주면 물러갈 것을 약속한다. 지혜로운 여인은 온 성읍 사람들을 설득해서 세바의 머리를 잘라 요압에게 던져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세바의 머리를 요압에게 던져주는가?
요압은 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군대 장군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된다.
다윗은 왜 요압에게 다시 군대 장군의 직책을 주었을까? 하나님은 왜 요압을 다시 군대 장군의 자리에 앉는 것을 허락하셨을까?
세바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라기, 보다는 요압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다윗은 그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을 세워 놓으면 요압에게 잔인하게 희생당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과 요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왕과 신하로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를 이용하는 불편한 관계였다.
다윗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게 된다.
‘왕하2: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다윗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요압이 아도니아 편에 섰다가 결국 솔로몬의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주일 아침 주님은 내 마음을 점검하게 하신다. ‘난 무엇을 집착하고 있는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기와 질투,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주님은 실수투성인 나에게 오늘도 예배자로 서게 하시는 은혜를 보게 하신다.
잘해서가 아니다. 맘에 들어서도 아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잘할 것으로 믿어주시는 것이다. 기대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닮은 종이 되고 싶지만, 여전히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가 실수를 반복하는 저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예배자로 설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마음은 넓고 자비롭고, 오래 참아주시고, 온유하셔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셔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고 하셨으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마음과 생각에 집착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기대가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배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채워지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